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금오도 비렁길 완주기

carmina 2015. 5. 7. 10:37

 

 

2015. 5. 4 ~ 5. 5

 

벼랑 끝에 오르니 코발트 빛 바다가 바로 눈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대로 밧줄 하나만 넘으면 나는 저 아름다운 물빛 속에서 평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살기 싫어지면 여기로 올까 하는 달콤한 유혹이 밀려든다.

 

지난 2월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계획했다가 일정이 맞지 않아 남해 바래길로

대신했었는데 아무래도 다녀온 사람들이 칭찬일색이라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 5월 샌드위치 데이가 있어 얼른 결행했다.

 

시간을 이리 저리 알아봐도 서울에서 여수까지 내려가 배를 타고

금오도에 들어가는 일정이 하루에 서너 편 밖에 안되는 뱃시간을 고려하면

1박 2일에 전코스를 다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2박 3일을 계획했다.

 

금오도에는 총 거리 약 18.5Km로 5개의 코스가 있는데

어느 항구로 가느냐에 따라 코스의 시작점이 달라진다.

각 코스의 종점이 항구인데 그 항구로 가는 배가 별도로 있다.

그러나 나는 모두 한 번에 걷고자 하는 계획으로 1코스가 시작되는 함구미항을 택했다.

 

주일 예배 후 오후에 배낭하나 걸치고 출발.

버스가 여수에 들어서며 멀리 여천의 LG칼텍스 정유공장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고급기술로 정유공장을 세우고 이렇게 운영하는

멋진 현실에 나 또한 그런 산업에 평생 몸바쳐 일했다는 것이 뿌듯했다.

 

여수에 밤 늦게 도착해 터미널근처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6시경 금오도비렁길의 1코스 시작점인 함구미 떠나는 첫배는 어려울 것 같아

2번째 배인 9시 50분 배의 예매를 서둘러 할려고 갔더니

마침 8시 조금 넘은 시간에 임시 운항편이 생겼다며 왕복 표를 판다.

아울러 신아해운 (구, 화신해운)을 이용하면 금오도내 무료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며

이용방법과 연락처를 알려 주기에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이 쉬는 날이라 금오도 들어가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을 줄 알았는데 임시편이라 그런지 승객도 별로 없고 승선한 차도 없었다.

지난 주 청산도에 갈 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불편했지만 오늘은

여유롭게 갑판에서 주위의 아름다운 섬들의 풍경을 감상하며 여행한다.

 

작은 섬에 민가가 있는 곳도 있고, 큰 나무 하나만 달랑 서 있는 섬도 있다.

저런 작은 섬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갈까?

그래도 멀리서 보니 그 섬에서 농사를 짓는지 잘 경작된 곳도 있다.

어떤 섬은 모양이 흡사 거북이같이 생겨서 이름이 있는 섬인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거북이섬이라고 명명했다.

금오도라는 이름도 커다란 자라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40분 정도 물보라를 헤치고 달리니 함구미항에 도착했다.

뱃터엔 페리호에 실려 온 대형 관광버스도 와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이 곳이 유명한 곳인 줄은 알았지만 나중에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오는 것을 보고 길이 복잡할 것 같아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마을 앞 수퍼에서 늘 먹는 캔커피 하나 사서 배낭 옆구리에 챙겨 놓고

트레킹화의 끈을 겹으로 매고 1코스를 출발하여 도착점인 두포항으로 향한다.

보수가 안되어 깨져 있는 세멘트길이지만 호젓한 길이라 천천히 걷고 있는데

동백나무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 작은 게 한 마리

칠게보다 크고 꽃게보다 적은데 보호색을 가졌는 듯 흙색깔하고 비슷한

게 한 마리가 쏜살같이 숲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로 게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다.

뒤이어 도착한 배에서 나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 등산복이나 등산화를 심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그저 평범하고 편한 옷차림이다.

 

그런데 천천히 사진찍으며 지나가는 내 옆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줄이 끝이 없다. 얼마나 많이 왔기에 이렇게 끝없이 지나갈까?

걷기 전날 우리나라 전역에 비가 왔기에 흙길이 질퍽거린다.

좁은 숲길에 발이 닿는 곳이 모두 흙탕물이고 진흙으로 사람들이 애를 먹는다.

한 번 넘어지면 온 몸이 흙탕물로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숲을 지나면 늘 파란 바다가 눈에 들어 온다.

그 공간 사이로 끈 벌레 한 마리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는 거미줄 한가닥에 매달려

바둥대고 있다. 사람도 이 절벽 아래도 떨어지게 되는 상황이 되면

이 끈벌레의 모습과 다름없으리라.

 

동백나무가 무성하다 싶었는데 길을 꺽어지니 이번에 작은 대나무밭이 무성하다.

일부러 심은 것 같지는 않은데 길을 걸으며 쭉쭉 뻗은 대나무들이 나그네를 기분좋게 한다.

시람들이 진흙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느라 고개를 들고 가는 사람이 없다.

 

이미 바지의 하단은 흙범벅이다. 도무지 피할 수 없다. 체념하는 수 밖에..

지난 번 청산도 슬로우길 트레킹시 세멘트길만 걸어 발에 물집이 잡혀

오늘은 이전에 신던 낡은 등산화를 신고 왔는데 이 신발이 비가 새면 낭패다.

정말 다행인 것은 비렁길이 비록 현재는 질퍽한 흙길이지만 세멘트길이 아니라 부담이 덜했고

낮시간에 걸을 때 다른 길들은 땅이 말라 아주 편했다.

 

모든 길이 절벽이다 보니 이 곳은 유난히 전망대가 좋다.

한 구비 넘어갈 때마다 펼쳐지는 바다의 풍성함.

그리고 아래 쪽으로는 깍아지른 절벽과

뒷편으로도 거대한 바위와 산들.

정말 등산을 하는 느낌, 오솔길을 걷는 느낌,

숲 속에 파묻히는 느낌과 아슬아슬함이 모두 갖추어진 곳이

바로 비렁길의 특색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함구미선착장을 떠나 처음 만나는 전망대는 '미역널방'이라는 곳이다.

이름처럼 아마 이 곳사람들이 앞바다에서 수확한 미역을 커다란

바위 위에 길게 널어 놓고 바닷바람에 말렸던 곳일 것이다.

함구미 앞바다에 가득하게 미역양식장이 보인다.

농사는 농약을 쳐야 제대로 자라지만

이런 바다 농사도 농약을 쳐야 하는 것일까?

 

미역널방을 지나서도 사람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배가 얼마나 자주오기에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일까?

어린 아이부터 아줌마들 나이든 아저씨들까지

열을 지어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멀리 보이는 건너편 절벽에 바위가 직각으로 서 있고

그 위로 길이 보인다. 참 대단한 길이다.

 

어떤 이들은 걷다 말고 밭에서 나물을 열심히 캐고 있다.

모든 땅이 마을 사람들 것일텐데 저렇게 허가없이 캐도 되는 것인가?

그 많은 사람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도 보이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일반 운동화를 신은 여행객들의 예쁜 신발이

보기 흉하도록 흙범벅이 되었다.

 

나무데크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니 수달피비령 전망대에서 다시 한번

바다의 웅장함을 보고 조금 더 가니  송광사 옛절터라는 안내판 앞에 거대한

바위산이 하늘로 솟아 있다.

송광사는 순천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웬 송광사?

알고보니 송광사를 짓기 위해 여기 저기 후보지를 물색했었나보다.

 

넓은 공간에 나오니 해풍이 분다.

오솔길을 걷는데 산들 산들 바람이 분다.

걷기에 최적의 날씨다.

 

길은 바닷가 절벽을 걷다가 숲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는데

숲으로 들어가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빽빽하다.

제주도 곶자왈에서 이런 숲을 걸었던 적이 있었는데

여기도 무성하게 자란 동백꽃 군락들이 숲속 중간 중간 터널을 만들었다.

 

어느 곳을 돌아가니 커다란 편의점이 보이고 이제까지 몰려 온 관광객들의

무리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먹거리 마실거리에 빠져 있는데 이정표를 보니

왼쪽으로는 다시 함구미 항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비렁길

진행방향으로 되어 있어 아직 무엇을 마시고 먹고 싶은 욕구가 없기에

비렁길 진행방향으로 가다보니 그 많던 무리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관광객들은 잠시 1시간 정도 걷고 다시 함구미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일정임을

그제서야 알았다.

 

이젠 호젓한 길을 즐긴다.

나처럼 길을 걷는 몇 몇 젊은이들과 나이든 이들.

그 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숲길로 들어서니 길가에 '초분'이라는 안내표식이 보였다.

지난 주 청산도를 걸었을 때도 이런 이정표를 보았는데

이 곳에서는 눈 바로 앞에 밀짚이엉으로 만든 무덤이 보였다.

이곳의 장례문화로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기에 앞서 풀잎으로 시신을 감싸 두었다가

육신이 모두 썩으면 나중에 뼈만 추려 매장한다.

지금은 극히 드물다 하는데 아직도 무덤 몇 기가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젊은 시절부터 나의 죽은 육체가 땅을 갖고 있기 싫어 수목장을 원했다.

그러나 이젠 그 수목장도 탈법의 온상이 되고 있다 하여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나 죽으면 화장하고 골분을 내가 좋아하는 길에 뿌려 주기를 원한다.

나의 후손들이 나를 추모하기 위해 무덤보다 자연을 찾아 주기를 원한다.

아빠가 좋아했던 자연 속에서 내 영혼이 숨쉬며 아들 딸들의 발자국을 느끼고 싶다.

 

길을 걷다가 계속 의아한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 궁금증은 풀리지 못하고 그냥 와야 했다.

왜 산쪽으로 난 길에 돌담들을 쌓아 놓았는지..

돌의 이끼로 보아 오래 전에 쌓은 것 같은데

그 안에 농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길을 막아 놓은 것 뿐인데

만약의 경우 돌이나 흙이 쓸려 내려오니 안전을 위해 쌓아 놓았을까?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린다.

산위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위 틈을 지나 거북이 석상 입에서

긴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옆에 놓인 바가지로 시원한 물 한모금 하고

숲의 긴 터널을 지난다.

 

신선대로 향하는 길.

여기 저기 나무가 쓰러져 있는 채로 푸른 이파리를 키우고 있고

거대한 소나무가 길을 막고 있기도 하다.

자연 있는대로 모습을 보며 걸으니 이처럼 좋은 것이 없다.

 

신선대에 오르니 바다가 더 넓어 졌다.

사람들이 이 곳이 얼마나 좋으면 신선대라 명명했을까?

이 곳에 누워 파란 바닷물을 보고 있으면 몸이 돌에 붙어 버려도

세월가는 줄을 모를 것 같다.

 

길은 도무지 하나도 비슷한 것이 없다.

폭포가 보이고 숲 터널이 보이고 커다란 바위가 길을 열어준다.

멀리 두포항이 보인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긴 대나무 터널이 열병식을 하는 것 같다.

 

우선 이 곳에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몰려 있는 식당이 방풍전복 칼국수.

이 곳 금오도에는 방풍나물이 유명하다 한다.

각종 질병에 효과가 있다해서인지 여기 저기 방풍나물을 키우는 곳이 많다.

 

작은 식당에 사람이 빼곡하다.

옆에 앉은 사람들이 시켜 놓은 칼국수를 보니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방풍잎을 넣은 듯한 면발 그리고 홍합과 굵은 전복과 새우.

이렇게 해서 9000원이면 비싼게 아니다.

여럿이 같이 왔으면 해물파전에 막걸리라도 같이 즐겼으련만

칼국수 한 그릇 시키니 김치와 깍두기가 더 맛있어 보인다.

칼국수와 김치 깍두기를 바닥이 보이도록 다 먹어 버렸다.

너무 맛있다.

 

오늘 하루 묵을 민박을 정해 놓아야 하는데

내가 오후에 도착할 지점 근방의 숙소들을 찾지 못하겠다.

어쩌다 찾은 전화번호도 미리 입금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기에

어쩔 수 없이 지금 이 곳에 민박집이 많으니 무조건 잡아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집 몇 군데를 찾아 제일 저렴한 곳을 찾아 방을 얻고

가방의 무거운 짐은 우선 내려 놓고 가볍게 출발했다. 

 

조용한 두포항.

배들의 흔적은 없다.

이제 2코스의 목적지인 직포항으로 찾아 가야 한다.

언덕을 올라가는데 문득 길바닥에 움직이는 것이 있다.

뱀이다. 실뱀. 이 뱀은 흙속에서만 살았나

색깔이 흙갈색이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흙탕물속에서 빠져 나와 

급히 숲속으로 비틀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세멘트 비탈길을 올라가다보니 바다가 보이는 언덕 꼭대기 펜션 앞에서

사람들이 점심을 즐기고 있다.

그 앞에 커피샵이 있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길을 가다 보니 또 다른 전망대가 있다 굴등전망대.

전망대에 올라갈 때 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내 발길을 잡는다.

 

길 아래 언덕 밑에 빨간 지붕의 집이 나무로 둘러 쌓여 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덤불에 휩쌓여 있는 것을 보니

방치된 지 오래 된 것 같다.

이상하게 나는 저런 것만 보면 욕심이 난다.

저런 집들을 싸게 살 수는 없을까?

욕심을 버릴려고 오는 트레킹인데...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소유가 본능인 인간인가보다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폐가인 듯 한 집들이 몇 채 보인다.

이 곳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나같이 돌담으로 둘러 쌓인 집들. 높은 곳에 있는 집이라

어느 집은 제주도처럼 지붕에 굵은 동아줄로 매어 놓았다.

 

집을 지나 언덕밑으로 잠시 내려가는가 싶더니

이제 다시 오르막이다. 그것도 불편한 바위길..

혹시나 돌 때문에 발이 삐끗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스럽게 걸었다.

바위틈에서 생존을 위해 자란 나무들이 기기묘묘하다.

 

멀리 촛대바위가 보인다.

어느 곳에서는 누군가 장난으로 ㅊ의 위 점을 지워버렸다.

하긴 내가 봐도 촛대바위보다는 그 외형이 

ㅈ으로 시작되는 이름이 더 어울려 보인다.

가파른 언덕을 기어 올라가 바라다 본 바위는 영험스럽기까지 한다.

저 바위가 조금 낮은 곳에 있다면 소원을 비는 아줌마들이 바위 꼭대기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반질 반질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러나 바위는 높은 곳에 있어 바위 주위를 덤불들이 감싸고 있다.

녀석. 불쌍하네..

 

촛대바위를 지나 한참 밑으로 내려가니 멀리 직포항이 보인다.

역시 이 마을도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대나무 터널이 있다.

이것도 마을의 전통인가?

푹신한 길을 따라 내려가 조용한 마을길로 들어서니 인적이 없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무척이나 큰 소나무 하나가

커다란 쇠기둥으로 간신히 버틴 채 겨우 균형을 잡고 있다.

툭 건드리면 나무가 그대로 폭 쓰러질 것만 같은데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에 들이는 정성이 보이는 듯 하다.

 

조용한 마을길.

사람도 없는 유령마을인 듯 작은 세멘트 건물하나가 완전히 풀들에 점령당해 버렸다.

 마을 한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나무도 미친듯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조용한 직포항을 지나 3코스 학동으로 가는 언덕을 올라간다.

비렁길은 늘 항구가 구간을 잇고 그 항구는 늘 언덕과 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직은 처음 만든 나무데크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언덕을 올라가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그 많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아주 가끔씩 사람들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끝없는 나무들의 열병식. 때론 대나무 때론 동백나무 때론 이름 모를 나무들..

이렇게 길이 좋을 수가...

 

다듬어 놓지 않은 길.

자연적으로 만들어 진 길.

길이 없었다면 길벗들을 위해 잠시 뚫어 놓은 길.

그런 길들이 좋다.

숲 속을 지나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늦은 시간이면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벼랑길은 안전막을 해 놓았고 전망좋은 곳에는 나무데크로

편하게 전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련해 놓았다.

갈바람통 전망대.

여기까지 땀흘리고 올라왔는데 다음 목적지는 매봉전망대라 한다.

하늘을 보니 산이 가파르게게 솟아 있다.

마침 마주오는 사람들이 있어 물어 보니

걸어 온 길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가파르게 올라간 끝에 경치 좋은 곳이 2군데 있다며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란다.

 

자! 이제 언덕을 오를 각오해 볼까?

매봉의 높이는 얼마나 될까? 얼핏 보기에 정상이 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 200미터 정도? 그래도 이렇게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면 힘든 법이다.

 

구비 구비 산을 올라가며 얼핏 얼핏 보이는 바다의 모습은 정말 환상이다.

바위 틈 사이에 보이는 작은 바다가 보기 좋고

그 사이를 직각으로 세운 바위가 보기 좋고

그 바위에 뿌리박고 있는 나무들이 보기 좋다.

 

숲만 지나가면 굳이 전망대라고 써 붙이지 않은 곳도 전망대고

그 언덕에 올라서면 옥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왜 이 산은 돌담이 많을까?

무슨 용도로 이렇게 담을 많이 쌓아 놓았을까?

굳이 담을 쌓을 필요가 없는 곳에도 여지없이 돌담이 있다.

설명해 주는 마을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

 

깍아지른 벼랑 위에 전망대가 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를 그냥 바라만 봐도 좋은 곳.

누구나 가슴이 탁 트인다고 말하고 있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표정들에서 행복이 보인다.

 

매봉 전망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서로 교차한다.

이제 막 산에서 내려 온 사람, 맞은 편에서 올라온 사람.

이 곳은 오래 머무르는 곳이다.

양쪽 편으로 가파르게 올라온 길이라 사람들이 더 충분히 쉬고 가는 편이다.

 

충분히 쉬고 가파른 나무테크를 내려갔다.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여보게 나도 반대편에서 올라올 때는 그렇게 힘들었네.'

비탈진 흙길을 내려가는데 흙이 푸석푸석하여 조심스럽다.

 

멀리 이상한 원형 조형물이 보인다.

이정표를 보니 출렁다리로 표시되어 있다.

좁은 계곡을 이은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가 출렁거린다.

그리고 한 가운데는 바닥을 투명으로 해 놓아 저 아래 바다가 보인다.

비록 서양의 자연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연 그대로를 이용한 볼거리 중의 하나다.

 

어느 부부동반자들이 무서워 쩔쩔매는 부인의 손을 잡아 주며 건너고 있다.

이제 3코스의 종점인 학동으로 간다.

시간은 벌써 4시. 다음 코스로 가기까지는 해가 곧 어두워 질 것 같다.

학동항구에 작은 쉼터에서 싱싱한 해삼, 전복, 멍게를 조금씩 시켜

금오도 막걸리와 함께 즐기고 맛있는 전복죽으로 저녁을 대신하며

오늘 수고한 나 자신을 축하해 주었다.

 

숙소로 잡은 두포항까지 택시를 타고 오니 이미 어스름 저녁.

밤 하늘에 별이 한 두개씩 나타난다.

선착장에 나와 하늘을 보며 누웠다.

 

세상...

참...

아름답다..

이대로 별이 되고 싶고나...

혼자 노래를 부르며..

밤과.. 별과..바람과.. 땅과...바다와..내가...하나가 되었다.

 

2015. 5. 5

 

아침 일찍 일어났다.

마침 방에 취사가 가능하기에 어제 밤에 사둔 삼양라면하나로

아침을 대신하고 주인에게 부탁해 5코스 종점까지 태워 달라했다.

원래 택시를 이용하고자 했으나 택시가 이른 시간에 영업하지 않는단다.

이 곳의 택시는 참 불친절하다.

어제도 택시를 예약하기 위해 몇 번을 전화하면서 그런 불친절을 느꼈다.

오늘은 5코스 4코스는 역으로 학동까지 약 2시간 넘게 걸어 완주하고

해운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택시를 타는 시간이 뱃시간과 맞추어 있어 필히 그 택시를 타지 않으면

비싼 일반 택시요금을 물어야 한다.

 

5코스의 종점은 장지항.

이른 아침인데 벌써 관광객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금오도 비렁길의 큰 장점 중의 하나는 매 코스 시작이나 끝 지점에

깨끗한 화장실이 준비되어 있어 좋다.

 

장지항에서는 금오도와 안도를 잇는 안도대교를 볼 수 있다.

여기까지 바래다 준 사람이 안도가 좋다고 한 번 가보라 추천해 주기도 했다.

 

세멘트 언덕을 오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꾸부정한 허리로 천천히 뒷짐을 지고 내 앞을 걸어가신다.

길가에 도시 사람이 여행복차림으로 바다를 바라보기에 인사하니

누워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이 곳 펜션에서 잤다며 무척 좋아한다.

펜션이라는 간판이 없어도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도시 사람들이 원하는 장면, 아침에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 곳은 단체 손님만 받는단다.

 

4코스 종점인 심포로 가는 길은 우선 비탈진 언덕을 한참 올라야 한다.

조금 힘들게 느껴져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도 전망대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이고

힘들었던 것들을 다 잊는다.

숲구지전망대에서 고요한 아침바다를 즐기고

멀리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는 작은 배를 오래 바라보았다.

사람이 머물 수 없는 작은 섬들이 보인다.

내 노래방 18번인 무인도 노래를 크게 불러 본다.

 

5코스의 특별한 점은 돌밭길이 많다.

아마 특별히 비렁길을 만들기 위해 없던 길을 만든 것 같다.

산 비탈에 무척이나 많이 쌓여 있는 돌들을 고르게 하여 만든 돌길.

발을 헛 딛을까봐 걷는 것이 조심스럽다.

돌산이다 보니 나무들도 곧게 자라지 않고 비스듬하게 자란다.

아마 곧게 자라다가 산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쓸려 내려가느라 옆으로

누웠을 것이다. 끝없는 돌길을 보며 이렇게 어려운 작업을 누가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제주도 올레길처럼 군인을 동원해서 했을까?

 

이 길을 걸으면서 여름 장마 때는 폭우에 쓸려 내려오는 돌들이 있다면

이 길을 폐쇄시킬 것 같다. 그만큼 길이 협소하고 다른 대안이 없다.

땀을 흘리며 한참을 걸어도 이른 아침이라 마주 오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비렁길 중간 중간에 나홀로 혹은 야간걷기를 하지 말라고 경고판이 붙어 있다.

매코스마다 중간 지점에 아무 시설물도 없고 내 위치를 알려 줄 수 방법도 없어

만약 응급시에는 낭패를 볼 것 같다.

 

두번째 전망대인 막포 전망대를 지나서야 편한 길이 지속되었다.

숲속의 푹신한 숲길. 나무가 하늘로 치솟고, 파란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은

길 걷는 모든 이에게는 천국 길일 것이다.

길 외에는 전혀 인공적인 꾸밈이 없어 좋다.

대나무밭으로 이어지고 멀리 내가 갈 숲길도 보여 좋다.

아침 햇살이 있어 좋다.

여린 이파리들이 자라나는 모습이 좋다.

 

가끔 돌담으로 된 인공구조물도 보이긴 하지만

오랜동안 방치되어있는 듯 이끼만 가득하다.

쌓여 있는 돌담에서 넝쿨이 덮히어 자연미가 있고

섬에서 길게 뻗어 나온 바위산의 모습들이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학동에서 예정되어 있는 무료택시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발길을 서둘렀다.

물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그래도 지도에 써 있는

소요시간보다 다를 수도 있으니 만전을 기해야 한다.

 

심포에 가까이 오니 차가 언덕끝까지 올 수 있도록 도로가 닦여 있는 곳에

민달팽이가 허리를 길게 늘이고 기어가고 있다.

그 곳에 어른들이 잘 다듬어진 밭에 약초를 심고 있다.

걸으면서 늘 이런 것들을 보면서 시골에 와도 무슨 일이던지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용한 심포항.

바닷가 펜션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니

요즘 방이 부족할 정도로 손님이 많단다.

길을 혼자 많이 걸으며 비싼 펜션에서 자는 적이 거의 없으니

내겐 그런 펜션이 사치다.

 

심포 바닷가에 정자를 덮은 등나무에 보랏빛 꽃들이 가득 피어 있어

그 밑에서 잠시 물 한 모금 마시고 4코스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 선착장에 가족이 모여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그 중 꼬마의 낚싯대에 고기가 퍼득거리며 올라왔다.

엄마가 기념사진찍어 주느라 바쁘다.

바닷가의 긴 나무데크를 걸어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숲 언덕에 나무들이 모두 비스듬하게 자라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는 나무들이 숲길에 길게 사다리 그림자를 만들고

나는 그 그림자 사다리를 하나 하나 밟으며 숲길을 간다.

 

4코스가 5코스 보다는 그다지 높지 않은 길이지만 매번 언덕을 오르게 되어 있어

이른 아침부터 지속적으로 머리와 등에 땀이 흐르다가

언덕에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땀들이 모두 바람에 날라가 버린다.

 

멀리 바닷가 절벽아래 걸어서는 닿지 못할 곳에 낚싯군들이

코너 하나씩을 잡고 낚시를 즐기고 있다.

아마 낚싯배들이 강태공들을 그 곳까지 배로 데려다 주는지

바다 한 가운데는 빈 배만 하나 달랑 떠 있다.

 

숲길에 중간 중간 이 곳을 다녀간 산악회나 걷기 동호회에서

걸어 놓은 리본들이 자주 보이는데 대개 한 나무에 집중적으로 걸어 놓는다.

많은 리본 중 유난히 반가운 리본하나가 눈에 뜨였다.

강화도 나들길 리본. 누군가 이 리본을 걸어 놓을 정도로

여유있게 리본을 준비했다면 아마 내가 아는 사람일 것이다.

 

숲길에서 나무들이 몸을 비비꼬며 춤추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자랄 수 있을까? 나무들이 자라다가 방향을 완전히

틀어서 뻗어 갈 수 있을까?

 

온금동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 동백나무 숲과 내나무 숲이 이어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국립공원 남해 바다의 섬들.

바람하나 불지 않아 바다가 출렁임도 없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전망대에서 멀리 내가 갈 곳을 보고 있는데 저편 절벽길에

무언가 얼핏 다른 색깔이 보였다. 누군가 맞은 편에서 오고 있구나

인적이 반가왔다.

그런데 내가 그 곳을 걸어가도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헛것을 보았나? 

의아해 할 때 쯤 아주머니들이 손에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두리번 거리며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복장은 등산복장인데 나물을 캔다?

아마 여행상품중에 나물캐는 상품도 있나 보다.

두 세사람이 보이는 듯 하더니 곧 이어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오고 있다.

약초나 나무를 캘려면 길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저렇게 줄지어 가면

뒤 따라 가는 사람은 어떡하지? 괜한 걱정이 생긴다.

 

숲 길에 누군가 돌 진지를 쌓아 놓았다.

이게 무슨 목적일까? 군대 초소도 아닌 것 같고

진지 내에 아무 것도 없다.  혹시 대피소?

대피소치고는 참 엉성하다.

 

높이 올라갈수록 금오도 비렁길의 모습이 뚜렷해 진다.

참 아름다운 길이다. 쉽게 갈 수 없는 길을 만들어 놓아

걷는 내내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고

그간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던 곳들이다 숲이 살아 있다.

동백꽃들이 만개할 때 이 곳에 오면 아마 끝없이 탄성을 지르며

걸었을 것 같다.

 

사다리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의 풍경은 태평양을 보는 것 같다.

하늘과 바다가 수평으로 만나는 곳.

가끔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이렇게 바다와 하늘이 명확하게 맞닿은 장면을

보고 기내에서 사진찍을 수 없음이 아쉬웠는데 오늘은 마음껏 셔터를 누른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뿌리박은 소나무들이 경건해 보이고

수십년을 그 자리에서 모진 바닷바람을 견뎌낸 나무들이 실로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길이 거의 끝나간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기에 여유있게 걸어왔다.

여행은 게을러야 도시를 떠나 온 보람을 느낀다는데

나는 여행은 부지런해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학동으로 가는 길에 약간 방심했는지

그만 튀어 나온 나무 뿌리를 밟아 다리를 삐끗했다.

다행히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글을 쓰는 지금까지

뻐근함을 느낀다.

 

이제 어제 오후에 길을 끝낸 곳에 도착했다.

이로서 금오도 비렁길을 완주하고, 내 걷기 기록에 또 하나의

역사와 훈장을 남겼다.

 

총 거리 18.5 Km.

다른 길 같으면 하루에 걸을만한 거리지만

여수에서 함구미까지 하루 3번밖에 없는 선박운행과,

서울에서 4시간 반을 내려가고 올라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1박 2일 코스로도 완주가 힘든 형편이다.

그러나 여수항말고도 백야항이나 혹은 여천에서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여러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다.

 

이제까지 내가 걸었던 전국의 길 중 가장 자연적이고

어촌풍경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으며,

길을 만들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한 정성이 보이는 경이로운 길을 걸었다.

 

언젠가 가지고 있는 것이 시간밖에 없을 때 다시 내려 오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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