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청산도 슬로길

carmina 2015. 5. 5. 20:51

 

 

2015. 5. 1

 

메이 데이. 메이 데이

비행기가 추락할 때 급하게 외치는 말이다.

모든 직장인에 5월 1일은 가장 기다리는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날 만은 모든 근로자들이 휴가를 갖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기에 아빠는 마음껏 혼자 쉴 수 있는 날이다.

그런데 이게 올해는 달라졌다.

5월 1일 쉬고 5월 4일은 샌드위치 데이니 웬만한 직장인은 다 쉬니

학교도 5월 1일과 4일은 쉬기로 했다. 5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그러나 내겐 주일이 끼어 있으니 이틀 쉬고 교회가고 다시 이틀을 쉬어야 한다.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스마트폰을 뒤적이더니 싼 여행표가 있다며 구해 주는 것이 청산도 무박2일 코스

솔깃해졌다. 청산도. 그토록 가고싶었지만 워낙 먼 곳이라 언감생심이었는데

무박 2일에 모든 비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말에 청산도 슬로길을 다 걷지는 못해도

두개 코스 정도는 걸을 수 있겠다는 욕심에 목요일 저녁 부천시립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급히 집으로 와 옷만 갈아 입고 집을 나와 밤 11시 반에 광화문에서 관광버스를 탔다.

 

개인이 일반교통을 통해서 청산도를 가는 것보다 비용을 따져보니 약 3만원 정도 절약되는 것 같다.

세종문화회관뒤에 버스를 승차하니 나는 혼자라 자리 배치를 처분을 바라고 있는데

아가씨 3명이 올라서더니 버스 좌석이 3자리가 연이어 있지 않다고 투덜거리더니

1명 떨어져 앉는 아가씨가 모르는 사람이 자기 옆에 앉아야 하느냐며 또 한 번 투덜댄다.

어이없는 청년들같으니..

예쁘장한 가이드 아가씨가 쩔쩔매며 자기들도 좌석에 대해 무척 노력하고 있다고 양해를 구한다.

양재역에 들러 또 다른 손님들을 태우니 버스가 만원이 되었다.

 

버스가 막 12시를 넘은 시간에 떠나자마자 실내불을 꺼버린다.

나도 바로 눈감아 버렸다. 그리고는 얼마나 잤던가.

버스에 불이 켜져 시간을 보니 한밤중 2시.

그런데 군산휴게소란다. 세상에 2시간만에 군산까지..?

얼른 네이버로 거리를 보니 서울에서 약 200Km 정도니

충분한 2시간만에 도달하는 거리임을 알았다.

 

잠시 쉬고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꼬박 졸다가 다시 불을 켜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서울 출발 5시간만에 완도에 도착했다.

일출이 5시 반 경이라며, 가까운 곳 완도타워에 올라가 일출을 보고 오면

승선 티켓을 준비해 놓겠단다.

 

아직 어두운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높은 완도타워가 하늘 높이 치솟은 것이 보였다.

멀리 어스름한 곳에 도시의 불빛과 어두운 밤바다가 김양식장인듯 바다를 격자모양으로

틀을 채워 놓았다. 완도타워는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굳게 잠겨져 있고

버스 승객들은 옆 돌계단으로 해서 봉수대로 올라갔다.

 

운무가 가득하여 낮은 산들과 섬들이 희미하게 봉우리만 보이는 새벽바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나도 잠에서 덜 깬 눈으로 한참을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이제 여행의 시작이 희미하게 시작되고 조금 후 희마한 산 봉우리에서

안개에 묻혀 자줏빛의 태양이 여명도 보이지 않고 조금씩 솟아 오르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 손을 대어도 데지 않을 것 같은 연한 빛깔의 태양이

하늘에 둥실 떠 있을 때 아직 안개는 가득하지만 날도 밝아졌다.

 

완도 여객터미널 앞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제공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누어 준 승차권을 소지하고 8시에 배가 출항하니 신분증을 지참하고

터미널에서 기다리는데 뱃시간에 맞추어 사람들이 차들이 밀려온다.

터미널 빌딩 앞에 하얀 꽃 보라빛 꽃이 아름답게 핀 등나무 밑 벤치에

일반 승객들이 이른 아침에 떠나느라 아침을 먹지 못했는지

컵라면과 김밥 혹은 싸온 음식으로 삼삼오오 몰려 식사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벽에 보았던 안개가 조금 걷히는듯 싶더니

다시 안개농도가 짙어 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8시 출발 예정이던 청산행 여객선이 안개로 지연된다 한다.

사람들은 무수하게 줄지어 서 있는데 모두 막막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지연방송은 10분마다 알려주고 있는데 떠날 시간이 기약이 없다.

이러다가 안개가 걷혀 출항하면 청산도에 들어가 점심만 먹고 나오는 것 아닐까?

 

여객터미널에서 청산도 뿐만 아니라 제주도도 가고 여기 저기 인근 섬에 가니

안개때문에 모든 배가 출항 못하니 사람들이 터미널에 가득 차 애들 노는 소리고 시끄럽고

각 지방에서 몰려든 아줌마들 사투리 소리에 아수라장이다.

 

시간이 9시 정도 되니 안개가 걷히고 있다고 승선허가가 났다.

사람들이 뭐가 급한지 좁은 개찰구로 먼저 나갈려고 다시 몸싸움이다.

사람들이 신발벗고 들어가는 2층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서로 넓은 자리 차지할려고

드러 눕는다. 남자고 여자고..마치 찜질방에 온 듯...

그 모습이 보기 안좋아 3층으로 갑판으로 올라가니 의자가 준비되어 있어

여유가 있어 좋았지만 그 마자도 몰려드는 사람들로 금방 모든 의자 뿐만이 아니라

바닥에 조그만 공간만 있으면 가져온 돗자리를 깔고 옹기 종기 모여 들어 술판을 벌인다.

 

세월호의 경험이 있는지라 그래도 300명 정원을 넘긴 것 같지는 않지만

페리호인지라 차들도 1층 갑판에 가득 채우고는 출발.

하얀 물살을 뿜으로 나가는 페리호 옆에 작은 배가 따라오는데 가만히 보니

해양경찰선이다. 오호라 다시는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런 만반의 준비를 하는구나.

 

강화도에서 석모도를 오가는 페리호는 배가 떠나면 바로 갈매기들이 배 주위로 몰려들어

승객들이 주는 새우깡을 탐내는데 여기서는 겨우 한 마리만이 따라 올 뿐이다.

어떤 손님이 새우깡을 던져 주니 강화도 갈매기 같이 공중에서 나꿔 챌 생각은 하지 않고

물보라 위에 떨어진 새우깡을 찾아서 먹고 있다. 가능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한 마리 밖에 없던 갈매기가 갑자기 3마리로 늘어났다.

어? 어디서 갑자기 날아왔지? 복제했나?

승객이 더 많은 새우깡을 던져 주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깜짝 놀랐다.

저 멀리 배를 따라 갈매기들이 날아 오고 있다.

이럴수가..먹이가 있다는 것을 냄새로 알았나? 아니면 갈매기들이 서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반지의 제왕같은 영화의 한 장면같이 갈매기들이 아득히

먼 곳에서 날아오고 있다. 가까이 와서 세어보니 그새 열마리가 넘었다.

 

갈매기들을 더 가까이 오게 하기 위해 배의 측면으로 새우깡을 던져도

일정 거리만을 유지하고 물에 떨어진 먹이만 거센 물보라속에서 어떻게

그 작은 것을 찾아 먹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언제가 갈매기가 가까이 왔을 때 사진을 찍고 나중에 집에 와서

대형TV로 클로즈업을 해서 보니 갈매기의 눈이 얼마나 무섭던지..

그 어느 무서운 야생동물보다 더 무서운 눈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청산도에 닿았다.

가이드의 지시가 없어도 모이는 시간만을 정해 주고 모두 뿔뿔히 흩어졌다.

청산도는 전체 11개의 슬로길코스가 있는데 모두 거리를 더하면

마라톤 풀코스의 거리과 같은 42.195Km 이다.

5000원을 내면 마음대로 타고 내릴 수 있는 순환버스가 있어

굳이 걷지 않아도 청산도를 다 둘러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버스표를 사러 갈 때 나는 파란 화살표 방향으로 묵묵히 걸었다.

내 목적은 걷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다짐을 했다.

천천히 걸어보리라.

욕심내지 않으리라.

가능한 나도 길을 열어 준 이의 목적에 따라 보리라.

그래서 인지 이 곳 슬로길의 상징은 달팽이다.

 

선착장에서 달팽이 모양의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달팽이 두마리가 올라가 있는 느림의 종을 쳐보며

나 이제 걷는다 하고 신고한다.

 

길이 두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서편제 촬영지로 가는 당리 아스팔트 언덕길

또 한 길은 어부들이 일하고 있는 도락리 슬로길.

화살표가 마을길로 이어져 있다.

 

어부들이 길가에서 까만 철구주믈을 잔뜩 쌓아놓고 손질을 하고 있기에

가까이 가서 보니 철판에 달라 붙은 굴껍질들을 떼어 내고 있기에

굴 양식틀이냐고 물었더니 전복 양식 틀이란다.

그 비싼 전복을 이렇게 많은 철 구조물로 양식하는 것을 보니

비록 어촌에 살고 있어도 수입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긴 요즘은 도시사람들의 귀촌(歸村)보다는 귀어(歸漁)로 정하는

사람들이 수익면에서 좋다고 하여 인기란다.

 

 길가에 벽에 써 있는 글.

'시간은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감하며 걷는다.

나무판위에 슬로길이라고 써있는 바닷가길을 가다가 곧 마을길로 들어섰다.

 

슬로길 출발이고 써 있는 달팽이 그림 밑에 이상한 단어가 써 있다.

Cittaslow. 이게 무슨말일까?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

 

치타슬로(CittaSlow)’느리게 사는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어다.

그리고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다섯 사람들이 모인 밴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구나. 혹시 city of slow 를 이렇게 쓴 줄 알았는데 이태리어라니..

 

길가에 알록달록한 색깔로 써 있는 글들을 모두 하나 하나 읽으며 걷는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일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당신이다'

참 지당한 얘기다. 이 곳 슬로길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더 자주 멈추게 하는 것은 갈가의 벽에 붙어 있는 수없이 많은 사진들.

모두 청산도의 사진들을 전해 놓은 것들이다.

 

마을의 돌담벽에도 예쁜 애기똥풀 그림을 그려 놓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한다.

그냥 걸어가도 될 길을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만드는 작은 아이디어.

 

마을이 모두 잠들어 있는 인적없는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동네아저씨가

저기서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왜 그럴까?

알고보니 내 뒤를 따라오는 젊은 커플들이 오늘 묵을 민박집 아저씨다.

이 곳에는 펜션과 민박집이 많다.

예정없이 그냥 이 곳을 찾아도 잘 곳은 걱정없을 것 같다.

그리고 민박집에서 묵는다면 시골 할머니집에서 자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길 옆 보리밭에 보리들이 추수된 채 길게 누워있다.

보리를 탈곡하기전에 말리는건가?

잘꾸며진 집들은 없지만 동네 골목들이 깨끗해서 좋다.

어디 하나 쓰레기가 나 뒹구는 곳이 없고 집안 쓰레기를 밖에 내 놓은 곳도 없다.

곧 마을길을 벗어나니 멀리 낮은 산이 보이고

다랭이밭들 사이로 하얀 길이 언덕으로 이어져 있다.

 

동구정길.

까만 염소하나가 풀을 뜯고 있는 그 앞에 전설의 동물석상입에서 샘이 솟고 있는데

바가지가 있어 마셔볼려 했더니 물 색깔이 뿌옇게 보여 그냥 길을 갔다.

 

길가에 눈을 끄는 양식장 하나.

각종 회를 파는 간판도 보여 들어가니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공간에 양식을 하는 대형 콘크리트 수조들이

줄이 지어 있어 혹시 전복양식장인 줄 알고 허락을 받고 들어가 보니 모두 비어 있어

이유를 물으니 돔양식장인데 지금은 치어를 기르는 때라 고기가 안 보인단다.

만약 다 자란 돔들이 이 곳에 있다면 참 장관이겠다 생각해 본다.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한옥집에 슬로쉼터라고 간판이 붙어 있다.

사람들이 몰리니 이런 것들을 새로 지은 것 같다.

가는 곳마다 먹을 곳이 널려 있고, 사람들은 사색하기 보다

먹기 위해 이 곳에 오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작은 조약돌이 해변가에 길게 이어져 있는 맑은 바닷길가를 따라 걷는다.

평화가 밀려 온다. 평화는 하늘에서 내려온다 하지만

내게는 땅에서 바다에서도 밀려온다.

 

멀리 산 언덕으로 올라가는 밭사이길.

저길이 서편제 촬영길인가?

 

나와 같이 배를 타고 온 사람들 중에 나같이 길을 걷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다른 길을 걷고 있거나..

 

유채꽃이 아름다운 길,

청보리가 가득 심어져 있는 밭사이 길을 두리번 거리며 천천히 걷는다.

보리와 눈을 맞추고 노란 유채꽃에 공허한 시선을 보낸다.

평지가 별로 없는 청산도.

그러나 먹거리를 찾아야 하기에 산 비탈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밭을 만들었다.

선조 대대로 얼마나 많은 땀들을 흘렸을까.

길이 구비 구비 이어진다.

살랑 살랑 바람이 불어 좋고

멀리 한두명씩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기 좋다.

걱정했던 안개는 모두 걷히고, 구름없는 파란 하늘이

자연의 색깔들을 더 밝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아주 큰 돌담이 있기에 이게 혹시 구들장밭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언덕위로 올라가니 주차장. 허탈감에 웃었다.

 

그 언덕위에 올라갔더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아마 버스를 타고 올라온 관광객들인 듯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운집해 있고
이제껏 보아온 청색, 노란색 외에 수없이 많은 등산복 색깔들이
어우러져 있다.

이제까지 올라 온 길을 뒤돌아 보니 시야가 닿는 곳 모두가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 가득 들어온다.
파란 바다와 낮은 산, 유채밭의 노란 물결, 보리밭의 청색.
노란 언덕길, 여리디 여린 숲속 나무의 빛깔들…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벤치가 있었으면 아마 오랫동안 앉아 있었을 것이다.

 

이 곳은 서편제 촬영지 기념장소인듯, 서편제의 영화에 대한
설명게시판앞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다.
그런데 사람들 많이 몰리는 곳이라 먹거리가 있고
그러다보니 음식냄새도 솔솔 풍긴다.

서편제 영화는 아마 현재의 젊은이들은 그 영화의 아름다움을
잘 모를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 상영되었기에 사람들에겐 서편제 영화보다
그곳에서 촬영했다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예쁜 집에
더 관심이 많은 듯 그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사람들의 서편제 흥행이 얼마나 어려웠던 것을 알까?
요즘같이 복합영화관이 없던 시절에 서울에 단지 영화관 2개에서
하루 10번 정도 상영하면서 800만 인파를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그 엄청난 인기를..
요즘은 멀티플렉스영화관 한 곳에서 인기영화를 하루에 100번 상영하기도 하면서
천만관객이 넘으면 호들갑인데 당시의 상황으로 800만의 인기를 생각한다면
아마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서편제에서 창을 부른 오정해는 일약 국민영웅으로 대접받고
쌍꺼풀없는 여성의 모습이 진정 한국인의 모습이라고 떠들던 때도 있었다.

조금은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드라마셋트장으로 가니
드라마를 잘 안보는 내게도 이름은 잘 모르지만
눈에 익은 배우들의 그림이 판에 세워져 있다.
산 언덕에 그림 같은 집도 이쁘지만
그 앞에 펼쳐진 유채꽃 밭이 참 아름답다.

사람들 무리 속에서 떠돌다가 슬로길가는 방향을 잃었다.
길을 찾아 언덕 능선길로 걸으니 그 많았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 쓸쓸함이 몰려온다.

무척이나 먼 곳까지 노랗게 포장된 길이 이어져 있다.
이게 흙길이면 얼마나 좋을까?
흙길이 아니더라도 요즘 등산길에서 볼 수 있는 굵은 아마 밧줄로
만든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길은 차 한대가 다닐 정도로 넓고 가도 가도 눈에 가득찬 것은
파란 바다와 김양식장.

이제부터 룰루랄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걷는다.
바다만 있어도 좋은데 언덕 아래로 펼쳐진 파란 녹음이 좋다.
여름에 걸으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힘들겠지만
시원한 바다 바람이 있다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청산도에서 아래로 삐죽 길게 나온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데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쏜살같이 스쳐 지나간다.
마침 같은 버스로 타고 온 일행들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고
그러다가 마주 오는 자전거 타는 사람과 부딪힐 뻔 하여
하마터면 자전거 탄 사람이 급정거하며 뒷바퀴가 공중에 높이 솟아
길 아래로 한 없이 떨어질 뻔 했다.

요즘은 차량 교통사고보다 자전거 사고가 더 많다니 조심해야 한다.
길을 걷는 사람도 자전거와 부딪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길 바닥에 달팽이 그림들 그리고 청산도의 각종 문화를 그려 놓은
그림들이 걷는 길을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슬로우길 걷기만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지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 오다가 걷는 속도에 따라 천천히 흩어진다.
거의 한 시간 넘게 걸어 쉬고 싶은데 쉴 곳이 없다.

바다가 보이는 이 곳에 벤치가 있으면 길게 누워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 같다.

내 평소 걷는 속도라면 벌써 1코스를 다 돌고 2코스로 접어 들었을텐데
일부러 천천히 걷다 보니 아무래도 2코스를 걷다가 다시 선착장으로
2시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길 바닥에 문득 써 있는 낯선 단어. 초분.

청산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지 않고 풀로 싸서 덮어 두었다가
나중에 살이 다 썩으면 뼈만 추려 매장한단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아직도 초분이 남아 있는 장소가 있다고
지도상에 설명되어 있다.

길 옆 언덕 밑에 꽃들이 이뻐 가만히 보니 모두 서양꽃들을
심어 놓은 것 같다. 데이지 종류의 각종 색깔을 내는 꽃들이
이쁘게 보이긴 하지만 이것도 조금 씁쓸해 보였다.

 

포장도로를 계속 걷다 보니 그다지 많이 걷지 않았는데도
벌써 발바닥이 아프다. 내가 빨리 걸었나? 슬로 슬로 했는데..
그러나 바다가 보이는 땅 끝에 정자를 이미 선점해 버린 사람들이 많아
그 곳에서도 앉아 쉴 자리가 없었다.

다른 여행사에서 온 사람이 중간에서 길 안내를 한다.

계속 걸으면 선착장까지 돌아가는 거리 때문에
뱃시간에 닿지 못하니 1코스의 끝에서
산길을 가로 질러 가면 다시 드라마 촬영장소가 나온단다.
시간은 이미 12시가 가까워 오는데 먹을 곳이 없어 배도 고프다.
아무래도 2코스로 연계해서 걷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나도 산길로 접어 들었다.

산길로 접어 드니 이제야 트레킹하는 기분이 난다.
절벽의 능선길을 따라 가니 지난 2월에 걸었던
남해의 바래길이 생각나 기분이 좋았다.
이런 곳이 내가 원하는 길이었고 이 곳을 걷는 이들이
많지 않아 입에서 노래가 절로 난다.


낮은 산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한 20분쯤 갔던가
다시 눈 아래 저 멀리 넓은 청색 벌판이 펼쳐진다.
속세로 다시 돌아온 듯. 다시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구비 구비 이어진 길 끝 저 멀리에 아까 보았던 드라마셋트장이 보이고
한 참을 걸어 사람들 사이로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사람들은 이미 오후시간인데도 계속 무리지어 걸어 오고
차량들도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길은 늘 아쉬움을 느낀다.

아마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은 내 욕심때문일 것이다.

 

어느 골목을 돌아가던 음식점이 있고

사람들은 옹기 종기 모여 즐겁게 떠들며 청산도를 즐기고 있다.

조용한 청산도가 참 시끄럽다.

걷는 길도,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어수선하고

어디든 냄새 풍기는 음식점이 있다.

 

사람사는 곳이라 당연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슬로우시티는 아닌 것 같다.

 

선창가의 식당에서 성게비빔밥을 시켜 먹었는데

냉동된 성게가 있는 것을 보고 차라리 싱싱한 멍게비빔밥을 시킬걸 하고 후회했다.

 

축제가 있는 곳은 더 이상 가지 말아야겠다.

자연의 축제가 아니고 사람의 축제밖에 안되기에...

 

그래도 길을 걸으니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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