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의 샹그릴라, 서해 황금들녘길

carmina 2015. 1. 24. 23:38

 

 

2015. 1. 24

 

아침에 나들길을 걷기 시작하면 가끔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아

구름속에 솟은 산을 볼 수 있지만

오늘은 걷는 내내 종일 강화의 산들은 구름같은 안개속에 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망월평야 저 편에는 아이스크림에 조코렛을 올려 놓은 것처럼

산, 산, 산, 산들이 솟아 올랐다.

 

서해 바닷가 저편에 보이는 석모도의 성주산도, 그 건너 편 교동도의 화개산도

모두 그렇게 안개 속에 솟아 올랐다.

인디애나 존스박사가 저 곳으로 모세의 십계명이 새긴 돌판이나

예수님의 성배를 찾으러 가는 것일까?

 

이 곳을 국토의 중간지점으로 볼때 서쪽 끝지역인 강화의 창후리는 동쪽끝의 강릉까지

마라톤 출발점이라는 표석을 옆에 두고 빨리 뛰는 것이 아닌 천천히 걷는 길을 떠났다.

창후리 포구의 우편에 있는 무태돈대에 올라 아름다운 서해바다 아침풍경에 빠지고

작은 바위섬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겨울새들에게 눈인사를 나눈다.

 

아침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을 것 같은 서해황금들녘길의 초입에는

짙은 갈색 숲길이 일주일동안 내 몸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 순간에 모조리 흡수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지난 일주일간 매일 야근하며 피곤했는데도 휴일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멀리 부천에서 여기까지 1시간 반동안 버스를 타고 온다.

내겐 이보다 더 좋은 비타민과 자양강장제가 없다.

이제까지 살면서 평생 보약먹기를 거부하는 나는 이러한 자연의 기운이 내 보약이라고 생각한다.

 

바닷가에 둑 안에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기에

훠이하고 소리치니 잠시 한꺼번에 무리지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금새 물가에 내려앉는다.

지난 가을 이 곳을 황금색으로 물들였던 벼들이 사라진 곳에는 농부의 새로운 희망을

기다리며 고요히 잠들어 있고, 아직 남아 있는 낟알들을 즐기는 참새들이 떼지어 몰려다니고

길을 같이 걷는 이들도 겨드랑이에 날개가 솟는지 날아가고 싶어 팔을 벌리고 걷는다.

 

지난 가을에 오랜동안 나들길 스탬프를 보관해 놓는 작은 나무상자안에서 지내던

작은 청개구리 두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문에 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 살그머니 열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한 여름내내 바다로 이어지는 돌축대끝마다 낚싯군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들은

이제 얼어붙은  둑 안의 얼음에 구멍을 뚫어 많은 갯수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마냥 기다리고 있다.

정적인 놀이를 즐기는 그들과 동적인 놀이를 즐기는 우리들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서해황금들녘길.

그 들은 고기가 있기에 낚싯대를 던지고 우린 길이 있기에 걷는다.

그러나 그 들이 머물다 간 곳에는 늘 쓰레기가 남아있고

우리가 머물다 간 곳에는 발자국만 남아 있다.

 

머드팩을 해도 좋을만큼 고운 갯벌에 바닷물이 스멀 스멀 올라오며 갯골을 채운다.

다른 갯벌과 다르게 이 곳에는 칠게의 작은 구멍이 없다.

왜 여긴 게가 살지 않을까?

갯벌과 바다가 너무 거리가 짧아서인가?

 

오른편 바다도 정적, 왼편 평야도 정적.

그 사이 둑을 지나가는 길벗들의 재잘거림은 잠시 둑위에 머물렀다가

하늘로 사라지며 다시 정적이 흐른다. 이 고요함. 그 어떤 묵상보다 더 좋다.

 

아침에 집에서 출발할 때 기온을 보니 낮에 영상으로 되어 있기에 옷을 어떻게 입을지 고민했다.

그래도 바닷가를 걸으니 춥겠지 하고 내복을 입었는데 한 시간 정도 걸었는데 벌써 불편하다.

어디 갈아 입을 공간도 없으니 불편해도 그냥 견디는 수 밖에...

 

1시간 정도를 걸었나. 망월돈대에 도착했다.

길벗들이 가방에서 온갖 간식들을 꺼내 놓는다.

술떡, 팥떡, 고구마로 전을 부쳐 오고 묵을 쑤어 오고, 과일를 가지고 오고,

밤을 쪄 오고, 막걸리와 따끈한 커피와 인삼차와 매실차들을 내어 놓는다.

걷는 즐거움에 먹는 즐거움이 없으면 피곤밖에 없을 것 같다.

 

얼어 붙었던 길이 녹아 흙이 절척하게 되어 영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랴. 누구도 입에서 불평은 하지 않는다.

 

조선 시대 이 곳에 해안방비를 위해 축대를 쌓아 만리장성이라고 불렀단다.

이곳에 지금은 나들길이 생겨서 걷기 편한데데 이전에는 길이 없이 많어 고생했다 한다.

 

은빛으로 빛나도 억새들도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꾸어 누렇게 변해 황금벼가 자랑하던

색깔을 대신하고 있는 둑길을 하염없이 걷는 저 편 마을 한 구석에 종이학 모양으로

지은 망월교회가 눈에 들어 온다. 강화에 사는 길벗이 저 마을에는 동네 주민이 모두

기독교인이라 한다. 그럴 수도 있구나.  

 

끝없이 넓고 빈 벌판에 흰색 악세사리가 돋보인다. 가축사료를 위해 볏단을 모아 만든

하얀 볏집포장들. 가끔 녹색포장도 있는 것을 보며 저 포장 비닐 색깔을 여러가지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름이면 파란 잔디가 좋았던 계룡돈대에서 바라보는 우리가 걸었던 망월평야의

모습이 참 깨끗하고 산뜻해 보인다.

저런 길을 좋일 걷는다 해도 힘들지 않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길 옆에 들깨를 타작하다 그대로 두어 마을길을 걷는데 깨 냄새가 진동한다.

남은여름과 지난 가을에 늘 단체 체험객으로 붐비던 용두레 마을은

물을 퍼 나르는 용두레도 그네들도 멈추어 있기에 아이들 대신 길벗이 즐긴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괴이하게 생긴 나무가 있어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다가 굳어 버린 것 같은

모습이다.

 

수녀원으로 가는 길에 원래 가는 길이 아닌 황청저수지 둑으로 올라가 걸으니

평소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칡넝쿨이 발길에 칭칭 감긴다.

늘 낚싯군으로 붐비던 황청저수지는 조용한데 이 곳에서 강화빙어축제가

열리는지 여기 저기 안내판이 보였다.

 

수녀원들어가는 입구의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에

한 켠에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 있어 천주교인듯한 길벗이

조용히 기도를 올린다. 나도 그 앞에서 조용하게 알렐루야 찬양을 불렀다.

평소 외국을 다니면 성당에 자주 들르게 되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꼭 이 곡을 혼자 조용히 부른다.

돌 제단에 손바닥을 대니 돌의 차가움이 금방 가슴속으로 들어옴을 느낀다.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인 Pax를 새긴 돌 앞 잔디에 돌십자가가 바닥에 뉘어져 있다.

남미 국가의 성당앞에는 누인 십자가처럼 무릎으로 혹은 누워서 성당으로 들어가는

카톨릭 신자들을 많은데 십자가를 보면서 그 들이 생각났다.

 

수녀원 정문에서 오른쪽 숲길로 들어간다.

무척이나 밤나무가 많은 이 곳. 길을 가다 넘어지면 손에 온통 밤가시가 박힐 것 같이

밤송이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오늘은 특별히 이 곳 숲길 중에 작은 등산코스가 있어 가파른 산길로 올라 갔다.

그 곳에 오르니 넓은 평야의 모습과 건너편 석모도와 강화도를 잇는 다리 건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습이 기둥이 보였다. 앞으로 석모도는 더 사람들이 모일 것 같다.

누군가 그 곳 전망대의 돌더미위에 돌 하나를 세워놓고 국수산 193 이라는 숫자를 써놓았다.

 

산을 내려와 16코스의 긴긴 숲속 길을 걸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이 길을 걸으면 행복감을 느낀다.

지리산의 둘레길이나 제주도의 올레길에서 느낄 수 없는

강화도 나들길의 자연스러운 길을 걷는 행복이 바로 이런 숲길이다.

 

숲길을 내려와 강화도 청소년 수련원을 앞을 지나서 지난 번 이 곳에

개인적으로 걸을 때 찾지 못했던 길로 들어갔다.

생각해 보니 당시 숲길 입구인 이 곳에 행사를 한다고 텐트를 쳐 놓아

막아 버리는 바람에 내가 찾지 못했었다.

 

낙엽을 밟으며 숲길을 지나 도로로 나와 일행이 길을 건너야 하는데

마침 앞에서 오는 까만 고급차에게 손짓으로 멈추라고 했더니 그냥

지나가 버린다. 배려가 있는 곳에서 지내다가 욕심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구나.

 

천국, 샹그릴라같이 나는 늘 서로가 배려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렇게

자연 속의 숲길을 걸으며 지내고 싶다.

 

행복한 토요일.

그러나 내일 저녁엔 12시간을 비행기로 날라가 상대방보다 나의 이익을 많이 가져야 하는

미팅을 위해 며칠간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