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길걷고 산오르고 바다보고. (강화도 나들길 5코스)

carmina 2015. 3. 4. 22:09

 

 

2015. 2. 28

 

2월도 마지막 날.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14인치 모니터 그리고 스마트폰 4인치 모니터만 빠져 있으니

도무지 눈이 침침해 못 견디겠다.

넓은 자연이 치료약이려니 하고 토요일 아침 강화로 날랐다.

 

조금 일찍 도착해 강화버스터미널에 있는 분식집에서 4000원짜리  해물칼국수를 주문했더니

바닥에 앉아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던 할머니가 손에 가득 묻은 밀가루를 털고 일어나

뚝딱 한그릇 만들어 주시는데 면발이 조금 특이하다.

 

칼국수 면발이 왜 이리 가늘지?

홍합과 바지락이 가득하고, 먹음직한 김치는 군침이 돈다.

맛있게 먹다가 손칼국수냐고 물었더니 직접 모두 만든단다.

나이들어 눈도 어두우실텐데 어찌 이렇게 가늘고 규격있게 썰으셨을까?

먹을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오늘 5코스는 원래 터미널부터 걷는데 아스팔트 도로를 피하기 위해

국화리 저수지 지나서부터 걷기로 했다.

저수지 지나서 길 옆에 교회 옆 마당에서 오늘 모인 사람들끼리 인사를 하고

바로 옆을 보니 못 보던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요즘 강화도에 주민들을 위한 지원이 많단다.

우선 지난 해 아시안게임 덕분에 강화도 들어가는 도로가 편해졌고

교통이 좋으니 외지사람들도 많이 이사와 살고 관광객도 많아졌다.

 

학생야영장으로 가는 길 옆의 하천에 드리워진 나무가지에 누군가

리본을 매달았다. 하천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리본을 못 달 위치인데

어떻게 달았을까 하고 리본을 유심히 보니 어렴풋이 4대강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아마 누군가 연구목적으로 달아 놓은 것 같다.

 

여름이면 마을사람들이 이 아침에 어슬렁거릴 시간인데

동네는 조용하기만 하다.

커다란 개가 갇혀 있던 철망 안에 개똥만이 가득하고

소들이 눈만 껌뻑이던 곳에는 축사가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

이제 곧 봄이 되면 이 곳에도 생명이 흐르겠지..

 

언덕을 올라 숲길로 들어서면 세상이 바뀐다.

세상 것의초라함은 보기 흉하지만

자연의 초라함은 오히려 더 빛을 발한다.

낙엽이 가득하고 잎을 모두 떨어 버린 채 겨울을 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에서 생명과 같은 햇빛이 내려 오고 있다.

그런데 문득 무덤도 없는 곳에 노란 국화 한 다발이 보인다.

왜 저 곳에 두었을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비록 지금은 죽은 듯이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지금도 나무를 자세히 보면 작은 싹이 움트고 있다.

어느 순간 비 한 번 내리면 모두 일제히 세상을 변하게 하리라.

 

학생야영장으로 가는 길은 지난 번에도 우회해서 정문 앞을 지나

체험장으로 가로 질러 갔는데 이제는 그마저 휘 돌아가게 만들었다.

작은 쉼터가 없어져 아쉽긴 하지만 오히려 더 숲길을 오래 걸을 수 있어 좋다.

 

길게 이어지는 푹신한 낙엽 숲길.

숲 사이로 난 조그마한 길은 월든이 그리던 치유의 길일까?

그 숲길을 걸을 때 마다 모든 세상의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다.

언제까지 이렇게 씩씩하게 걸을 수 있을지..

어느 순간 내게 시련이 다가오면 이 마저 추억이 되리라.

 

숲 길가의 수많은 진달래나무들이 살아 움직이며 아우성치고 있다.

봄이면 강화의 모든 산은 진달래때문에 화려하게 변한다.

특히 고려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어느 길이던 사람으로 초만원이다.

이 길도 고려산 가는 길중의 가파른 길이지만

덜 알려진 길임에도 봄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다.

 

강화를 그렇게 많이 와 봤지만 진달래 축제를 위해 산을 오른 적은 없다.

사람 많은 곳이 싫은 까닭이리라.

 

좁은 계곡 사이의 길 한 복판에 있는 서낭당 나무에 걸려 있던

치마 저고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이길을 지나며 볼 때마다  점점 퇴색되고

바람에 조금씩 옷의 솔기가 사라지고 있다.

그 옷을 입었던 영혼도 그렇게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길을 걸으며 늘 같이 걷는 길벗들이 지난 해의 추억들을 얘기하며

까르르 거린다. 서로 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 동행함이 참 즐겁다.

숲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이상하게 숲길이 내게 조금 낯설다.

알고 보니 5코스를 오랜만에 오니 그간 숲길도 조금 바뀌어 있었다.

아무 이정표가 될만한 사물조차 없는 숲길에서도

낯선 것을 기억해 낼 만큼 내겐 참으로 익숙한 길이다.

 

같이 걷는 일행이 내게 봄 노래를 청한다.

길을 걸으며 봄 노래들을 낮은 소리로 흥얼거린다.

봄이오며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봄처녀 제 오시네..

 

마을길로 들어서니 가끔 고급차들이 지나간다.

인근에 큰 기독교 수도원과 절이 있어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곳에도 잘 지어 놓은 별장들이 있어

별장 앞 마당에도 좋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주말이면 도시와 집을 떠나서

자연을 바라보며 나 만이 쉴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

내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그런데 앞에 마주 오는 도시형 옷차림의 사람들 모습에서

금방 눈살이 찌푸러 진다. 이런 시골을 찾아 다니며 포교하는

사이비 종교들. 우리 일행에게도 포교전단을 주려는 듯 멈칫 하다가 그만둔다.

젊은 시절 강화도에 여름성경학교 해마다 봉사를 온 적이 있었다.

어느 해 인가 강화도 어느 구석에 있는 교회를 와서

애들을 가르치는데 애들이 무척 적어 물어 보니

이 동네는 일본 종교가 가득퍼져 부모들이 교회를 못가게 한단다.

사이비 종교는 이렇게 소외된 곳을 찾아가

그들에게 허망된 꿈을 심어 주고 있다.

 

길가에 늘 보이던 집 앞에 커다란 흰 개가 있었는데

그 개가 새끼를 낳았는지 이미 다 자란 똑같은 흰 개 몇 마리가

비좁은 철망 안에서 우리를 보며 외치고 있다.

어쩌면 그리 똑같이 생겼는지 바라 볼수록 신기했다.

 

길 옆 조그만 공터에 성냥갑만한 집이 있어 가까이 가 보니

모두 조립식 건물이다. 가로 약 4미터 세로 약 2.5미터 정도

벽하나 바닥하나 그리고 지붕들도 모두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저런 조립식 집을 차 뒤에다 싣고 어디든 펼쳐 놓고 쉬는 여유로운

생활도 할 수 있을까?

 

내가저수지로 가는 길 옆에 비어 있던 건물이 주인을 찾았는지

예쁜 간판이 붙어 있다. 강화기독국제학교.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학생들이 모습이 그려진다.

 

고인돌에서 잠시 쉬고 내가저수지로 향하는데

그간 공사중이던 내가 저수지 둑이 완공된 것 같아 길을 접어 들고는

그만 크게 실망했다.

둑위에 가득 피었던 야생화길이 참 좋았는데 그 길을

모두 세멘트와 보도블럭으로 덮어 버렸다.

보기에는 좋아도 이전의 자연의 멋이 사라져 버려 몹시 아쉬웠다.

대신 내가 저수지로 돌아가는 길을 만들긴 했는데

그 길도 세멘트로 덮이어 있어 저수지를 끼고 돌아가는 재미가 없었으면

굳이 이 길을 걷지 않을 것 같았다.

 

문득 내가 저수지에서 오리들이 만드는 커다란 무늬가 반갑다.

어쩌면 저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물살을 헤치고 갈 수 있을까?

봐도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저수지 끝나는 곳 쯤에 오늘 우리의 점심을 준비해 준

작은 찻집이 있다. 화가가 운영하는 봄봄이라는 카페 겸 간이 음식점에서

부페로 준비해 준 음식이 한결같이 맛있어 보인다.

마당에는 큰 항아리를 뒤집어 엎어 만든 커다란 화덕이 재미있어 보였고

이상하게 생긴 화목난로도 눈을 끌었다.

여럿이 다니니 이런 특이한 점심을 즐길 수 있다.

화장실 이름도 해우소가 아닌 '비우소'라고 써 붙여 나를 웃게 만들었다.

 

오늘 리드하는 이가 슬슬 발동을 걸었다.

늘 걷던 코스가 아니고 새로운 길을 가자고 선동(?)하더니

이제까지 한 번도 걷지 않았던 길로 접어 들었다.

 

마을 뒷 골목의 커다랗게 잘 지어놓은 노인들 놀이터인 게이트장을 끼고

언덕으로 올라가니 바로 눈 앞에 바로 환상적인 소나무숲이 펼쳐진다.

아마 소나무만 찍는 사진작가 배병우씨가 봤으면 이 곳에 대포같이 큰

카메라를 들이댔을 것 같다.

 

그 거대한 나무 숲에 들어가 있는 우리 무리들이 작은 개미같이 보인다.

나무 숲 속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중간 쯤에서

같은 방향으로 꺽어져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능선을 내려오면서 산길에 작은 흑염소들이 무리지어 사라지고

숲 속에 꿩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 오른다.

 

완만한 경사 언덕을 올라가다가 급한 경사길을 오르니

오늘 편하게 걸을려던 내 몸이 긴장하고, 땀이 흐른다.

요즘 운동을 좀 덜해서 그런지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힘이 부친다.

그러나 이 정도는 견뎌내야지 하며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올라 본다.

그 꼭대기에 오르니 넓은 바다가 보여 올라온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저 편에 보이는 덕산 정상. 몇 명이 군침을 삼킨다.

이렇게 올라 오지 않으면 언제 이 길 가보겠느냐며 가자고 다그친다.

 

목표는 반대편 덕산봉우리.

길도 없이 우리는 무작정 산길을 헤집고 조심 조심 내려간다.

한 참을 내려가니 덕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나오고 다시 산행.

오늘은 완전히 명절 때 찐 뱃살 빼는 날이다.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산에 오르니 모두 좋아라 한다.

등산은 그런 것이다.

산에 올라 바라보는 멋진 풍경 하나 보는 것으로

땀 흘려 올라온 어려운 시간들을 모두 한 순간에 잊어 버린다.

 

정자가 있고 돌탑이 있는 곳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히고

룰루 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가다 보니

16코스 서해 황금들녘길의 숲길과 이어진다.

 

그 언덕길을 어느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올라 오고 있다.

아이들에게 그런 숲 길을 걷게 하는 엄마의 마음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내려 오는 편한 길.

그 길 끝에 오늘의 보람이 마주 오며 팔 벌리고 반기고 있다.

 

땀을 많이 흘렸지만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어떤 휴식의 시간보다 걷는 휴식을 먼저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