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고려산 진달래

carmina 2015. 4. 11. 23:03

 

 

2015. 4. 11

 

시작은 그랬다.

이제껏 강화도를 그렇게 다녔어도 한번도 그토록 유명하다는

고려산 진달래 축제를 참가하지 않았었다.

늘 4월 이맘때 쯤이면 당연히 나들길 걷기 행사 중 한 번은 진달래 축제에

참가하는 스케쥴이 있다.

그런데 이제껏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 인산인해의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싶어서였다.

 

이미 사진으로 고려산의 진달래 장관을 여러 번 보아왔기에

당연히 그 아름다운 핑크빛의 산을 보고 싶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의 무리가 꽃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킬 것 같아 가기가 싫었었다.

그런데 지난 한 달간 거의 자연을 멀리 했기에

이대로는 정신이 병들 것 같아 토요 걷기 모임에 참가했다.

 

고려산으로 가는 길.

강화터미널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일행들과 함께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소형으로 바뀌었다. 아직 의자의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 차.

일행 중 누군가 이 버스가 중국차라 말해 준다.

그랬구나. 이제 이런 시내버스도 중국제로 변하는구나.

 

버스가 작다보니 좌석이 적어 금방 만원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있다가 머리가 허연 마을 주민이 어수룩한 옷차림으로 타기에

자리를 양보하니 고맙다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고맙다기에

이제 나이 35세밖에 되지 않았다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난 아직 35세정도로 젊어. 적어도 마음만은..

 

버스가 창후리 마을을 지나 미꾸지고개를 향해 가는데

왕복 2차선 도로에 차가 밀려 있고 길 옆의 빈터에는 많은 자가용들이

주차되어 있으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주차 안내를 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등산을 준비한다.

 

길가에서 바로 가파른 등산길이 시작된다.

그간 오랜동안 겨울가뭄이 들어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등산화로 인해 먼지가 날린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 길이 이렇게 퍽퍽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어 풀도 사라지고 산길도 넓어졌다 한다.

원래 우리가 오늘 가는 길도 고려산으로 올라가는 일반적인 코스는 아니다.

대개 청련사나 백련사로 올라가는데 걷는 거리가 짧아 우리같은 매니아들은

조금 멀리 돌아서 가는 긴 길을 택했다 한다.

 

건장한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 간다.

그런데 내 곁을 스쳐 지나치며 하는 대화들이 자연의 순수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힘을 믿고 걷는 사람들이라 대화에도 힘이 들어있다.

주로 험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기에 우리같이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보다

산길을 올라가는 것은 훨씬 빠르다.

 

강화도 마니산을 젊은 시절부터 즐기기 시작한 이래 그리고

나들길을 지난 5년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껏 나들길을 80번 정도 걸으면서도 강화도는 마니산 외에는

사람들이 별로 즐겨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 숫자는 고려산 정상에 올라가면서 그 선입견을

크게 수정해야 했다. 고려산으로 을라가는 길의 사람들의 규모가 

마치 몇 년 전 걸어본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 같이 많다.

그 뒤로 사람들이 많은 그 길이 싫어 가지 않았었는데..

 

양쪽으로 소나무가 울창한 가파른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가 숨을 고르고

평지를 걸으니 양편에 예쁜 진달래들이 군데 군데 피어 있다.

이제 고려산에 저런 진달래꽃들이 잔뜩 피어있을 것을 상상하며 걷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산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 바람이 남으로 오네..

 

평지를 오르고 또 언덕을 오르고.. 평지 그리고 언덕의 반복적인 길..

멀리 내가저수지가 보이고 강화읍부터 외포리까지 걷기 위해

지나치는 나들길 5코스의 길들이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나들길 17코스인 고인돌탐방길인

유명한 적석사 낙조대도 보이고...

멀리 산넘어로 불어 오는 봄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봉우리 하나를 올라갈 때 마다 멀리 보이는 강화 평야을 볼 때마다

작은 언덕을 오르며 힘들었던 다리에 힘이 솟는다.

 

그런데 문득 바로 눈 앞에 시야의 바위 뒤에서 언덕을 올라 올 때

내 뒤에 따라 오던 배불뚝이 아저씨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있다.

우리 일행이라면 피지 말라 하겠지만 거리도 있고

차마 다른 사람이라 말을 못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몰래 숨어 피네.

 

이런 예의 없는 사람은 산을 내려 갈 때 또 한 번 보았다.

숲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흙을 파서 묻고 있다.

최근 가뭄으로 많은 산에서 산불이 났다는 뉴스가 많았는데도

그렇게 산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어느 봉우리에선 무거운 막걸리를 산꼭대기까지 들고와 팔고 있는

장삿군 주위에 등산객들이 몰려 있다. 힘들 때 막걸리 한 잔의 효과는

농삿군들이 느끼는 그 것이랑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꽃구경 사람구경에 힘은 들지만 길이 즐겁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것은 사람 다니는 모든 길에 풀잎하나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다녔으면 이렇게 풀한포기 자라지 않았을까?

작은 오솔길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 모습도 북한산 둘레길과 다를바 없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잘 정비해 두었는데 그건 거의 아스팔트와 다름없는

굳은 흙길이다. 나는 푹신한 숲길을 걷고 싶은데..

이 곳은 트레킹코스가 아니고 등산로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일행들끼리 앉아서 점심 먹을 공간도 많지 않다.

내가 점심으로 싸가지고 온 빵보다 다른 사람들이 넉넉하게 준비해 온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데  등산길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최근에 어느 일간지에서 한국인들이 즐기는 취미 1위는 무엇일까 조사했는데

단연 1등 취미는 등산이라고 하니 한국인들의 등산 사랑은 참으로 알아줄만 하다.

 

나들길 17코스로 이어지는 산길에서는 막걸리 뿐만이 아니라 부부합동으로

아이스케키까지 팔고 있다. 등산객들에게 마실 것 시원한 것 제공하고싶은

마음들은 가상하지만 지금 강화산들이 난리구나.

다행히 사람들은 고천리 고인돌 무덤안에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모든 고인돌에 번호가 부여되어 있는데 그 옆에 커다란 넓은 돌이

길가에 버려져 있다. 저것도 분명 고인돌이었을텐데..

 

길이 넓어 고려산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쾌적하다.

여유롭게 걸어 고려산 방향으로 향하는데 멀리 보이는 데크길에 보이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입을 벌리고 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니..

나들길 17코스와 고려산가는 갈림길에 바람이 두 갈래로 찢어져 한 쪽은 위로 뻗고

다른 한 쪽은 길에 누워 자라고 있는데 찢어진 부위에 간신히 남아 있는

부분이 양쪽의 두 나무를 겨우 먹여 살리고 있다. 놀라운 생명력이다. 

 

레이다 기지가 있는 고려산으로 가는 데크에는 피난민처럼 사람들이

떠 밀려 올라가고 내려 오고 있다. 데크 양옆으로는 사람들이 들어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워낙 사람들이 많아 쉴 자리도 없으니 마구잡이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간식과 도시락들을 즐긴다.

 

원래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다음 주 토요일 부터라 아직 정상부근의

진달래들은 꽃봉우리만 머금고 있어 아마 활짝 필려면 일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하지만 이미 몇 주 전부터 고려산이 사람들의 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다.

설마 산이 무너지기야 하겠냐마는 조금 전에 길 옆에 쓰러진 커다란 돌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 만약 데크라도 해 놓지 않았으면 길의 훼손은 어느 정도되었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겨우 겨우 떠밀려 고려산 헬기장에 올라가니 다시 한 번 내 눈이 휘둥그레 진다.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건가?

노란색으로 페인트칠한 헬기장에는 온갖 색깔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의 무리가

노란색 헬기장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리도 일행찾기가 어려웠다.

 

알고보니 이 곳 고려산으로 올라오는 일반적인 등산 코스는

건너편 아스팔트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수없이 많은 인파들이 그 길로

올라오고 있다. 어린 아이들로부터 몸집좋은 아줌마들 아저씨들. 가족들...

여기까지 올라 오느라 정말 힘들었을텐데 모두들 웃는 얼굴들이다.

등산은 정말 사람들을 고생 후에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내려가면 갈 수록 사람들의 무리가 더 많아 진다.

끝없이 무리지어 올라오고 있다.

아이들과, 연인들과, 친구들과, 부부들이...

진달래가 만개해 있는 곳에선 여지없이 꽃을 배경으로 미소짓고 스마트폰을 눌러낸다.

  

아직 피지 못한 진달래 언덕이 아쉬운지 길가에 만들어 놓은

커다란 진달래 언덕 사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 일행도

그렇게 아쉬움을 달랬다.

 

길을 여러갈래로 나뉘어 진다.

청련사로 내려가는 길, 백련사로 내려가는 길

우린 청련사로 가는 길을 택해 길을 걷는데 이 길이 올라오기에 쉽지 않은

가파른 길이다. 아래서부터 50분정도를 가파른 길을 올라와야 한다.

 

길이 건조해 퍼석퍼석한 흙길로 조금만 한 눈을 팔면 미끄러지기 일쑤다.

조심 조심 걸어 내려온 청련사 돌축사이에 할미꽃이 이쁘게 피어 있다.

청련사에서 강화터미널까지 조금 힘들더라도 걸을만한 거리인데

모두 세멘트 도로밖에 안된다기에 콜택시를 불러 강화터미널로 날라왔다.

 

강화를 나오면서 보니 늦은 오후 시간인데도 아직도 차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음을

보고는 다시는 이 즈음에 고려산을 가지 않을거라고 중얼거린다.

차라리 야산에 홀로 핀 진달래가 내 눈엔 더 아름답다.

 

고려산 진달래 축제를 보기 위해선 청련사 백련사를 통해 올라오는 길보다는

나들길 17코스의 시작점인 강화지석묘 방향이나, 오늘 우리가 걸은

미꾸지 고갯길이 덜 힘들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