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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집 봉사

carmina 2015. 4. 6. 21:40

 

 

아래 글은 전 회사에 다닐 때 정기적으로 찾아갔던 안나의 집 봉사 후기입니다.

 

우리회사는 매달 둘째 금요일에 안나의 집 봉사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 달은 금요일이 명절 전날.

 

날이 날이니만큼 부서서무 보는 아가씨가 아무도 안갈려 한다고 걱정.

 

나는 어차피 먼 고향 가는 것도 없으니 내가 가마 하고...또 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부서아가씨가 가기로 했다.

 

싫은 것 억지로 하면 봉사가 아니지..기쁜 마음으로 해야지.

 

실은 회사에서 정해준 의무 봉사는 일년에 두번이다. 그러나 난 일년 12번이라도 가고 싶다.

 

어제부터 눈이 많이 내려, 승용차를 포기하고 택시로 가니 눈발 흩날리지만 너무 일찍 도착했다.

 

이태리 신부님이 오늘 같은 날 오는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시고..  봉사하기 전에 우리끼리 미리 저녁을 먹는데 오늘 온 자원봉사자들중에 기도를 하고 식사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낮부터 와서 반찬을 준비 했다는 아줌마들이 정리하고 간 뒤에 오늘 나에게 주어진 배역은 밥퍼주기.

 

문을 열기전에 신부님의 한마디. 사랑을 가지세요.

 

밀려든다. 눈발 날리는 겨울, 허름하고, 푸석한 머리, 구부러진 어깨, 피곤해 보이고, 병색이 있어 보이는 노숙자들이 밀려든다.

 

밥 퍼주는 일이 쉽지 않다. 찰진 밥을 푸기 좋게 부수기 전에  믿지 않는 돌아가신 형님을 위해 형수님이 해 오신 수법을 써 먹는다. 슬쩍 밥 푸기 전에 밥 위에 주걱으로 십자가를 긋고..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밥의 양을 해 치우고도 모자라 더 달라는 노숙자들.  이 정도면 우리가 보통 먹는 밥 공기로 몇 공기나 나올까? 

 

밥과 함께 나누어주는 빵 하나 더 얻기 위해 더 처량한 눈빛으로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고등학생 자원봉사자가 미안한 마음으로 거절해야 한다. 이 여고생 눈썰미가 있어서 빵을 두번 타러 오는 사람을 정확하게 확인해 거절한다. 밥은 두번 먹어도 괜찮지만 양이 정해진 빵은 비록 남더라도 두개를 줄 수 없다.

 

배식이 한참 진행 중에 첫번째 비상상황 발생.

 

키작은 늙으수레한 아줌마 다가오더니 밥을 안쪽에서 퍼달란다. 뭐..그래도 되니까 큰 밥통에서 안쪽 밥을 퍼 주었다. 옆에 반찬배식하는 곳에 가더니 반찬 몇가지도 안쪽의 반찬을 퍼 달라며 요구하고, 미리 퍼 놓은 국대신에 새로 퍼달라 한다. 조금 후 비명소리. 밥그릇을 들고 와 못 먹겠다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다른 사람이 자기 옆에 와서 먹어 자기 그릇이 지저분해졌으니 밥을 못 먹겠단다. 그러면서 빵을 하나 더 달라고...  이런 결벽증이.. 

 

이미 배식된 밥은 먹어야 하고, 빵은 더 줄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하니 그럼 밥을 안 먹겠단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하니 밥 그릇을 놓고 출입구의 앞에 가 앉는다. 고집부리고 있다. 한참 있다가 다시 와서 빵 하나 더 달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니, 다른 노숙자들이 와서 우리보고 저 아줌마 더 주지 말라 한다. 너무 자주 그런다고..아마 노숙자 사이에서도 그런 어거지를 자주 부리는가 보다.   

 

두번째 비상사태 발생

 

이상없이 계속 줄지어 나오던 밥통이 두개쯤 남았을 무렵. 밥푸던 내가 밥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 밥이 덜 익었다. 설었다. 이걸 그대로 주어야 하느냐 고민하는데 관리하는 이가 그냥 주자고 한다. 대안이 없다고..

 

아니나 다를까... 밥을 먹던 노숙자들이 불평한다. 이 밥을 어떻게 먹느냐며..  어찌하랴..어찌하랴..설익은 밥이라도 먹고 가는 그들. 아니면 이 저녁 굶어야 하니까..

 

아까 첫번째 비상사태시 버린 밥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다.

 

막판에 밥을 일반 전기밥솥으로 급히 했더니 겨우 늦게 오는 사람들에게 밥을 나누어 줄 수 있었다.

 

밥을 오래 퍼주다 보니 오른 팔이 뻐근하고  꼬박 2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중노동임에도 힘든줄 모르겠다.

 

기분 좋은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