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농촌체험 (2004년)

carmina 2015. 5. 15. 17:16

2004년 여름휴가 (8월 2-3일)

주) 다른 사이트에 있던 글을 이 곳으로 옮겨 왔습니다.

 

2004년 고3 아들과 9월에 연주를 앞두고 있는 딸을 둔 부모로써 여름 휴가를 갈까 아니면 가지말까 고민하던 어느 날 상가단지에서 같이 신우회 모임을 하던 분이 검게 탄 얼굴로 방문하였다. 시골에서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고 계시다는 소식을 익히 듣고 있던 차에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시골에 가서 흙을 만져 보자. 그 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지만 설마 죽기까지 하랴. 남들 다하는 일인데…
조심스럽게 여름휴가를 그곳에서 지내도 되느냐 물었더니 언제라도 오케이란다.
동지를 규합했다. 교회에서 늘 같이 다니는 친구가 합류하겠단다. 합창단에도 의사를 물었는데 동조자가 없다. 그래 둘만이 가자. 아직 그곳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많은 인원 가는 것도 안 좋으리라

8월 2일가서 하룻밤 지내고 3일 올라 온다.
아침에 느지막한 시간에 친구가 집으로 왔다. 가서 야영하거나 밥해 먹을 것 아니기에 짐도 단촐하다. 늘 가지고 다니는 가방 하나 그리고 디지탈 카메라 하나.
인터넷 홈페이지 (http://bonacom.or.kr)에서 지도를 출력하여 떠났다. 냉커피와 오징어를 싸주는 아내가 조금 섭섭한 눈치이다.

여름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 낮의 기온은 전국적으로 무려 35도를 넘나든다.
고속도로가 조금 막히는가 싶더니 도로가 합쳐지고 갈라지는 곳 몇 군데 이외에는 비교적 제 속도를 내며 달린다. 남의 차 옆에 타고 먼 길 가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라 주변의 경관이 새롭게 보인다. 청주를 빠져 나와 국도로 접어 들면서 길은 더욱 여유롭다. 녹음이 짙고, 군데 군데 보이는 개울에는 피서객들이 삼삼오오 텐트를 치고 여름을 즐기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자는 친구의 제안에 밥은 국도변의 기사식당이 맛있다는 내 고집으로 보은 가는 길에 있는 시골밥상 집 앞에서 핸들을 급히 꺽었다. 우리가 들어 오기 바로 전에 식사를 끝낸 어떤 이의 상에 반찬들이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어 혹시 반찬이 맛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불과 5분도 못가서 ‘왜 이리 맛있는 것을 남겨’할 정도로 폭 빠지고 말았다. 도토리를 갈아 묵보다 조금 단단하게 만든 반찬, 연근, 된장국, 나물까지 일일이 집에서 만든 반찬들이 여름 한낮의 입맛을 돋군다.
식사 후 해우소에 들르니 남자화장실은 강쇠로 되어 있고 여자화장실은 옹녀로 되어 있다. 이것도 좋은 아이디어네. 계산하고 나오는데 문간에 올갠이 있고 악보가 그득하다. 노래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군침을 흘리고 있으니 올갠을 치는 주인집 딸을 부르기에 노래 한 바탕 하고 가자고 하니 친구가 내 팔뚝을 잡아끈다. 오는 길에 들르자고..

아주 정확하게 그려진 지도를 따라 구비 구비 돌아가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이는 충북 보은의 대원리 마을에 도착했다. 여느 마을이나 시골은 이렇게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의 상징이다. 길도 하나 밖에 없고. 천천히 차로 들어가니 젊은 아가씨들이 몰려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또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있고..

그 무리들 사이에 반가운 얼굴. 한 때 내가 일하는 곳에서 같이 신우회 활동을 리드하던 분이다.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기를 즐겨 하고, 늘 웃는 낯으로 다가왔던 분이 오늘도 내 앞에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 그러나 바쁜 모습인지 우리에게 잠시 쉴 곳을 가르쳐 주고는 급히 청년들을 몰고 사라져 버린다.

전형적인 시골집들 가운데 우뚝 현대식 목조건물이 서 있다. 집의 내부는 잘 다듬어져 있고 2층 거실에는 피아노와 여느 목회자의 서재같이 책이 가득하고 아래 층 부엌에는 시골냄새 나지 않는 분이 부엌일을 하고 있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에서 같이 공동체 생활하고 계시는 목사님의 사모님. 천안에 있는 단대의대 교수고 재직중이신데 가을에 학교일을 그만 두고 이곳으로 들어오신다고..

숙소를 정해 주고 옷을 갈아 입었다. 작업복. 언제 우리가 작업을 해 본적이 있으랴마는 그래도 농군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고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입었어도 농군같아 보이지 않는다. 놀러가서 족구하는 사람들 옷차림 정도 될까나.

미리 나와 있던 젊은이들이 논옆의 막힌 도랑을 쇠스랑으로 물꼬를 만들고 있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폼이 아무래도 이런 일 해 보지 않은 듯. 그러나 그 중 군대다녀온 듯한 이들이 씩씩하게 도랑으로 들어가 일을 마무리한다. 그래..사람은 이래서 군대다녀와야 하는거야.

짐칸이 있는 짚차에 아가씨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도심거리를 다니면 그럴싸한 차인데 내부에는 온통 흙천지다. 실장갑이 돌아다니고 허름한 모자가 구석에 처박혀 있다. 청년들은 뒷좌석과 짐칸에 올라타고 출발하니 운전하는 분이 일부러 차를 가끔 급제동하여 뒤에서 비명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아마 이것도 생활에서 저절로 터득한 안전교육이리라.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냥 질주하면 분명이 짐칸에서 방심하고 있을 테니까..

자..논에 다왔다. 건물 뒤를 돌아 소나무 숲길을 지나 논앞에 일렬로 섰다. 뭐 그다지 크지 않으네. 금방 할 수 있겠다싶었지.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따스한 물이 있는 논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뭘 뽑으라는거야. 논에 있다는 피가 모야. 인솔하는 이가 피가 뭔지 뭘 뽑아야 하는건지 가르쳐 준다.

하늘을 한 번 보고 허리를 구부렸다. 눈앞에 솟은 녹색의 줄기 줄기 사이에 잡초들이 더 진한 녹색으로 보인다. 형제가 아닌 것들은 모두 뽑아라. 물 속에 손을 넣고 잡아 뜯는다. 금방 손에 왼 손에 한 웅큼 가득, 허리를 들고 이거 어디에 버리느냐고 외치니, 똘똘 뭉쳐서 벼들의 행렬 사이 도랑에 집어 넣고 발로 꾹 눌러 버리란다. 아하..그렇게 좋은 방법이. 참으로 우리 선조의 지혜가 놀라웁다. 그걸 버리지 않고 논 속에 묻어 버리라 하니..

땀이 흐른다. 혼자 노래를 부른다. 가만있자 논일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뭐가 있나? 상주아리랑도 아니고..밀양아리랑도 아니고..좌우간 흥얼거린다. 어차피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푸른 잎줄기, 그리고 논물바닥뿐이다. 안경알로 구슬이 또르륵. 머리에서 땀이 흘러 온 얼굴이 비오듯한다. 불과 몇 미터 진행해서 허리를 들고 말았다. 모자를 벗어 안경을 벗어 놓고 목에 두른 수건으로 머리의 땀을 씻는다. 씻어도 씻어도 흘러내리는 땀. 과연 이렇게 땀이 흘러서 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같이 일하던 청년이 묻는다. 집사님 저 위의 논까지 해야되는거예요. 네. 그래요. 아이고 죽었다. 이러다 정말 죽을라. 신문에 나는 사건을 만들면 안되지. 천천히 하자 천천히…
핸폰이 울린다. 딸한테서 전화. 저녁에 올 때 모기향 사오라고. 딸은 아빠가 오늘 뭐하러 어디에 가있는지도 모르나보다.

허리를 들어올리는 빈도가 잦아진다. 다행히 거머리는 없다. 다른 논에서는 이런 일 할 인력이 부족하여 모두 농약으로 대신한다고 한다. 잡초를 제거하고 병에 걸리지 않게 농약뿌리고 벌레들 죽이고..

내 다리 사이로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벼들이 지나가고 있다. 혹시나 넘어질까봐 조심 조심. 갯벌을 밟는 것처럼 발 밑이 불안하지만 넘어지는 날에는 완전 낭패다. 옷은 아래 윗도리 모두 흙탕물이 잠긴지 오래다.

부지런히 앞장 서 나간 끝에 제일 먼저 논뚝에 도착했다. 발 앞에 하얀 망초꽃과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진한 청색의 야모 잠자리가 나를 휘돌고 있다. 어릴 때 다른 잠자리에 비해서 무척이나 강하게 보였던 야모 잠자리를 이 곳에서 다시 보았다.

나는 벌써 논뚝에 나와 힘들어 하고 있는데 인솔자는 아직도 불과 몇 미터 진행하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일하고 있다. 분명 내가 일을 엉터리로 했을거야. 제대로 했다면 벌써 일을 끝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 큰 모자를 쓴채 좀체 허리를 피지 않고 일하고 있다.
도심에서 일하던 그가 불과 몇 달 사이에 전형적인 농부가 되어 버렸다.

논뚝에서 마시는 물 한잔이 얼마나 달콤한지… 청년들도 어느 정도 끝내고 모두 논뚝으로 나오는데 얼굴이 모두 힘든 모습이다. 오늘 안으로 남은 논 하나를 더 김매기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아 포기하고 만다. 내가 76년 여름 한 번 가 본적이 있는 부산의 서문장로교회에서 왔다는 그들의 표정은 비록 힘들지만 밝은 얼굴들이다. 나랑 같이 일한 교회 친구는 힘든지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린다.

청년들은 떠나고 우리는 숙소에 들어와 흙이 묻은 발을 씻고 샤워를 하고 그 사이 친구는 빨래까지 해 버렸다. 2층에 숙소가 있는 교회에서는 저녁에 공동체 한 분이 생일이라 저녁식사를 같이 한다고 한다. 서너명의 젊은 부인들이 부엌일을 하고 있다. 시원한 물을 한 잔 달라하니 수도에서 따라주며, 이곳은 모두 지하수물이라 그냥 마셔도 된다 한다. 차가운 맛은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깊은 곳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색깔이 탁한 쥬스를 주는데 복분자 쥬스라 한다. 흠...시원...달콤..

부엌을 자세히 보니 찬장의 각 문마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 조그마하게 표시되어 있어 공동체 생활의 질서를 엿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식사를 준비해도 찬장의 모든 문을 열어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고 그릇이나 식기 정리할 때도 편하겠구나 생각한다.

여러 개의 식탁이 바닥에 놓여 있는데 각 식탁마다 긴 컵에 들꽃이 꽂혀 있어 신선함이 보인다. 이게 농촌생활의 웰빙인가? 자그마한 정성과 관심이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생일상이라고 해도 반찬을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우리 친구가 가지고 간 케잌에 비상시 사용하던 반토막짜리 하얀 양초를 키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기도한다.

농촌의 힘든 일을 해서 그랬나. 배가 고팠다. 직접 기른 버섯, 밭에서 따온 고추와 시골 된장, 지하수물로 시원하게 내온 미역냉국, 차려진 음식 맛있게 먹고 둘러 앉아 남자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성경에 대한 인물과 역사와 은혜에 대한 주제뿐이다. 아.. 이 것이 이 분들이 사는 방법이구나. 세상 근심 걱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갑자기 머리가 숙여진다. 부엌에서 설거지와 마무리 일을 하는 이들의 대화도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모두 정답게 웃으면서, 자주 들리는 말이 ‘이건 내가 할게’ 얼마나 이 말이 정겹게 들리는지.. 우리의 모든 삶이 이러면 어떨까?

얘기를 하다가 목사님은 먼저 다른 곳으로 가시고 자녀들 교육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 보았더니 홈스쿨이라 한다. 특별히 학교는 보내지 않고, 부모들이 맡아서 가르친다고 한다. 내일은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 발표하는 날이라고..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 참 교육이 아니겠냐는 이들의 말이 모두 지당하다. 그러나 때론 자녀들의 특별한 재능 때문에 이 곳에 둘 수 없어 공동체 생활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예능이나 운동에 재능을 보인 아이들이 있는 경우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한다.

아직 밤이 깊지도 않았는데 시골 사람들은 일찍 자야 하는지 모두 뿔뿔히 흩어진다. 우리도 모두 간 후 자기 전 바람을 쐬고자 밖으로 나왔다. 하늘의 별들. 금방 밝은 곳에 있다가 나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조금 어둠에 익숙하니 산골짜기에 별이 가득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하늘에는 별이 울고 논에서는 개구리가 운다. 길이 어두워 랜턴을 하나 빌려 들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바람이 없지만 시원함을 느낀다. 조용해야만 할 시골 길에 낯선이들의 인기척 때문에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분명 시골모기가 많아야 하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음이 아마 잠자리가 많아서일것이다. 자연은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 인간에게도 이로운 것이 이런 현상에서 알 수 있다.

잘 모르는 시골길을 그것도 밤길을 멀리 갈 수 없어 조금 가다가 밤의 정취만 느끼고 돌아와 어두운 방에 누우니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너무 더워 선풍기를 키고 자는데도 이리 저리 엎치락 뒤치락. 하다 못해 베개속의 부스럭 소리까지 잠을 방해하기에 차라리 베개없이 자리에 눕는다. 겨우 겨우 잠들었다 싶은데 친구의 핸폰에서 나는 벨소리. 거의 비몽사몽간에 잠을 들고 잠을 잤었나 싶은데 새벽 5시. 하지 않던 새벽기도를 드려야 한다.

이튿 날 새벽 5시 반에 어김없이 공동체 식구들 중 남자들만 모여 들어 QT 식으로 새벽예배를 드리고 오늘의 일정을 이야기한다. 낮에 너무 뜨거워 일하기가 곤란하니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쉰다고..

아침식사 초대를 받았지만,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우리끼리 해결하기로 했다. 마침 교회 1층에 주방시설이 완벽하니 라면하나 끓여 먹는 것은 쉬웠다.

식사 후 어제 밤 걷지 못한 곳들을 다시 걸어 본다. 이른 아침에 벌써 논일 밭일에 열중인 시골 노인들이 보인다. 시골에 젊은이들이 하나도 없으니 차세대 농부는 누가 될꼬 하며 걱정하며 마스크 쓰고 경운기 돌려가며 농약뿌리기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개울에 송사리가 뛰놀고, 길가에 호박과 옥수수가 익어가고 넓은 콩밭에는 로보트처럼 콩나무들이 열지어 서 있다. 가끔 새소리 들리고 나비와 잠자리들이 여름 아침 하늘을 여유롭게 노닐고 있다. 마을 회관 앞 창고에는 농약들이 포장이 뜯긴 채로 굳어져 있고 여기 저기 퇴비가 쌓인 곳에서 계분 냄새가 난다. 시골 냄새들이 좋다. 내가 돌아갈 곳의 냄새. 인생에 있어서 잠시 흙을 떠나 살다가 다시 영혼이 영원히 살 곳에 미리 와보는 것인가?

그렇게 거닐다가 공동체 마을 앞에 오니 우리를 초청한 분이 집 앞에서 개에게 아침 식사를 주며 개를 훈련시키고 있다. 언뜻 보니 개도 어디선가 기증받은 것인지 외국 냄새가 물씬 난다. 도심지 아파트내에 살면 무척이나 고귀하게 커 갈 개가 이 곳에서 흙을 파고, 털도 그대로 자란 채 개 집에 묶여서 낑낑 대고 있다.

개는 숫놈인데 지금이 발정기인지 자꾸 빨간 고추를 내 놓으며 끙끙대고 있고, 주인의 눈치만 슬슬 살피며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아침에 일하러 나가기 전에 어제 소개받지 못한 곳들을 둘러 보았다. 버섯사육장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습기를 먹어가며 자라고 있고, 사육장 옆 구석 구석이 만들고 있는 특이한 농약을 보여준다. 이 곳은 화학비료 대신 한약재를 이용하여 비료를 주는 유기농을 하고 있다.
당귀를 비롯한 한약재를 이용하여 마치 식혜나 수정과 같은 액을 만들어 물에 희석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이 곳 농부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농약을 주는 공동체 젊은이들을 이상하게 보고 있단다. 그러면서 한약재를 이용한 특별한 농약을 주고 있다 하니 진짜로 그러면 그 농약을 먹어 보라고 하기도 하여 입에 농약을 찍어 먹어 보기도 한단다.

화학농약을 사용안하고 유기농을 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 같지만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농부들이 아니면 모른다. 각종 잡초나 해로운 벌레들을 제거할 때 농약쓰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잇는 것들을 이들은 모두 일일히 손으로 해결하고, 비록 수확이 많지 않거나 튼실하지 않은 것을 보면 얼마나 농약사용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지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한다.

공동체에서는 양계장도 하고 있는데 숫닭없이 암닭이 알만 낳는 무정란 계란이 아닌 유정란을 생산한다고 한다. 요즘은 닭들이 계란을 많이 낳게 하기 위하여 24시간 잠을 재우지 않고 달걀만 생산하느라 동물학대를 하고 있는데 이 곳에선 자연의 법칙대로 제대로 키워서 제대로 된 알을 낳게 한다고 한다. 대개 양계장은 냄새가 무척 나는데 이 곳에선 양계장을 청소를 잘하고 계분도 처리를 잘하여 냄새가 나지 않는다. 갈색 암닭들 사이로 하얀 숫닭들이 군데 군데 군기를 잡고 있다. 축사도 무척 깨끗해 보였고, 닭들도 건강해 보였다. 닭들에게 일부러 손가락을 내 주며 깨물도록 하는 모습이 마치 자기 식구들과 장난하는 것 같아 보기 흐뭇했다.

축사 옆에는 한약재도 기르고 있고 그 옆의 논에서는 오리농법을 이용해 논을 관리하고 있다. 오리 농법이란 논에서 오리를 길러 병충해를 잡아 먹게 하는 방법이라 한다. 오는 길에 담배밭의 큰 이파리들이 노랗게 말라 죽고 있어 물어 보니, 날씨도 뜨겁고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저렇게 방치해 두고 있단다. 일 할 사람은 노인네들 밖에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채소밭의 김을 매주고 있는 호호백발 할머니는 87살로 이 동네 최고령자이신데 아직도 정정하게 일하고 계신단다.

마을이름이 충북 보은군 산외면 대원리이지만 이곳 공동체분들이 열심히 활동하니 이젠 보은 예수마을로 더 통한다고 자랑스러워 한다. 마을 입구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시골 아침의 고요함을 즐긴 후 오전에 고추밭 김매기를 하기로 하고 옷을 갈아 입고 나왔다.

공동체 형제 2명이랑 우리 둘이 5인승 1톤 트럭을 타고 길을 조금 달리다가 계곡으로 내려가니 산 기슭에 고추밭이 가득하다. 계곡에 주차를 하고 라디오로 어느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크게 틀어 놓는다. 내가 일하며 음악듣는 것을 즐겨 하듯이 이 분들은 일하며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즐겨하고 있다.

공동체 형제들은 고추밭에 띠를 두르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고추밭에는 이랑에 쇠말뚝을 박아 놓았는데 고추가 자라며 옆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비닐 끈을 가끔 매 주어야 한다. 파란 고추들이 주렁 주렁 달려 있다. 우린 고랑에 잡초를 뽑으라고 한다. 고추밭 고랑에는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틈이 촘촘한 그물을 덮어 놓았는데 그 옆으로 잡초가 많이 자라고 있다. 낫을 들고 엎드려 잡초를 뽑아 내는데 한 여름 폭염 아래서 이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만 진행하면 땀이 줄줄 흐른다. 노동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조금 하다 쉬고 조금 하다 쉬고.. 
           
잠깐 모두 쉬는 틈에 공동체 형제 두분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조금 후 하얀 플라스틱 박스에 빨간 산딸기를 따온다. 아…간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굳이 콜라 사이다 과자 싸 가지고 갈 필요없이 산에서 자연 그대로 자란 것들을 간식으로 먹는 이 섭리. 또 한 번 놀란다. 그러면서 조금 있으면 산에서 먹을 것이 많이 난나고 한다. 특히 저기 으름이 익어가고 있다고 낫 끝으로 가르쳐 주는 곳에 조그만 몽키바나나 같은 으름이 주렁 주렁 열려있다. 빨간 산딸기를 몇 개 집어 입에 툭 털어 넣으니 그 신맛. 그러나 입에서는 꿀맛같다.

잠시 쉬고 난 후 비교적 쉬운 일을 택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고추밭에 띠를 매주기로 했다. 그렇게 쉬워 보이는 일도 왜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지. 자꾸 고추를 건드려 떨어트린다.
떨어트린 고추는 이따 먹으면 되니까.. 고추줄을 매다가 색깔이 바랜 고추를 하나 들어 보이며 이런 고추는 발견 즉시 따서 멀리 버리란다. 탄저병에 걸린 것이고 전염이 된다고..

고추밭 김매는 일이 워낙 힘들어 가끔 제초제를 쓰고 싶은 유혹이 간절하다는 형제의 말에서 오염이 안된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이렇게 농부의 땀이 있어야만 가능함을 깨닫는다.

힘들어 풀 숲에 앉아 쉬는데 바로 옆에 날개가 찢어진 호랑나비 한마리가 이 풀에서 저 풀로 넘어가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디서 그 아름다운 날개를 찢겼을까? 불쌍도 해라. 도와 주는 것보다 그냥 놔두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을 깨닫는다. 어차피 이런 병든 나비도 어느 다른 곤충의 먹이가 되어야 하니까..

점심때쯤 일이 끝나고 형제 한 분이 낫을 들고 숲을 헤치더니 무슨 풀인지 가득 잘라 차에 싣는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염소 줄 풀이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인 교회로 오니 문 앞에 흙 묻은 조그만 하얀고무신 까만 고무신들이 줄지어 섰다. 아이들이 무언가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다. 이것도 공부일거야. 주부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남편들은 농사일에 바쁘다. 땀에 밴 몸을 씻어내고 점심을 다같이 먹는다. 콩국수..오호라 내가 안 먹는 유일한 음식 중의 하나. 다른 것 없냐 했더니 얼른 밥을 가져다 준다. 미안해라.

식사 후 우리보고 개울에 가서 놀다 가라며 권하지만 아무래도 농사일 하는 노인분들이 있을텐데 물가에 앉아 놀기가 모습이 안 좋을 것 같아 그냥 돌아가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짐을 싸 들고 나와 찬송 하나 불러 주겠다 하니 어느 분이 피아노앞에 앉는다.
공동체 생활하는 모습이 어느 가정의 모습보다 좋아보여….
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
찬송을 하나 마치니 앵콜이 터져나온다. 신청곡을 받아 노래한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내 노래를 들은 공동체 식구들이 가을 쯤에 와서 마을 음악회를 해 주길 바라기에 음악친구들과 함께 그렇게 해 보겠노라고 하니 무척 즐거워한다. 기회 봐서 합창단 식구들과 이곳에서 가을 밤 마을 음악회를 해 보리라.

찬양이 끝나고 나오니 주부들이 부랴 사랴 우리에게 줄 것들을 챙겨준다. 고추며 호박…
내가 아는 형제도 나에게 줄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따 오겠다고 그릇하나 들고 밭으로 들어간다.  같이 간 친구는 그 사이 딸아이의 손끝에 물들일 봉숭아따는데 여념이 없다.

좋은 것이 없어도, 재미있는 것이 없어도, 비싸고 특별한 음식이 없어도, 놀이도구가 없어도, 맛있는 간식이 없어도, 기계를 통해 나오는 시원한 바람 없어도…

그들에겐 신앙 안에서 참 소망을 가지고 사는 꿈이 있음을 본다. 2004년 여름 휴가는 내 일생 가장 의미있는 휴가였고,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슴에 마음에 농촌의 귀중함을 알게 해 준 좋은 기회였다.

참고 : 보은 예수마을의 홈페이지는 http://bonacom.or.kr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