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서해바다와 만난 바위들 산책 (나들길 7코스)

carmina 2015. 5. 9. 22:31

 

 

2015. 5. 9

 

5월 8일 어버이 주일이라 처갓댁 식구들이 모두 우리집에 모여

1박 2일 놀기로 했단다.

그런데 노는 거야 여자들이나 놀지 애들은 집에서 할 일이 게임밖에 없으니

내가 조카들을 데리고 토요일 나들길을 걷기로 했다.

 

이미 한 두 번 걸어 본 애들이라 나들길 간다하니 눈이 반짝인다.

그 중 몇 아이는 토요일 다른 일이 있어 못간다며 서운해 하고..

 

토요일 지난 밤 늦게까지 놀았을 애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강화로 날랐다.

조카 중 한 명이 자폐아로 늘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

지난 번 나들길 데리고 갔더니 너무 좋아라 하기에 이번에도 데리고 나왔다.

벌써 떠나는 것부터 설레는 아이들..

 

급하게 내 작은 배낭과 등산모자와 양말들을 빌려주고

얼굴에 선크림을 발라 주었다.

 

나들길 7코스는 화도터미널에서 시작해서 갯벌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화도터미널로 오는 코스라 차를 가지고 가면 나중에 집에 오기 편하다.

토요도보팀들과 만나 인사하고... 자. 출발.

 

애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길가의 작은 하천의 물빛깔도 신기하고, 농사를 위해 경작해 놓은 밭도 신기하다.

역으로 가는 길에 세멘트 언덕을 올라가는데 뒤에서 어른들이 소리친다.

너무 빨리 가지 말라고..

애들은 몸이 가벼워 언덕도 가뿐하게 올라가고 있다.

애들에겐 길 옆에 거대한 바위의 색이 하얀 것도 신기하다.

 

그래도 애들이라 그런지 낮은 고개나마 힘들었던지

또 고개가 없느냐며 묻는다.

 

작은 매너미고개길은 비록 세멘트 길이지만 걷기 편한 펜션촌 길.

여기 펜션촌은 호젓하고 시끄럽지 않아 좋다.

지나다니는 차들도 그리 많지 않고 평탄하여

천천히 걸으며 도란 도란 이야기하기 좋은 길이다.

 

아이들과 앞서서 걷는데 뒤에 삼삼 오오 걸어오는 길벗들의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가

소프라노소리와 테너 베이스의 소리로 작은 숲을 진동시키고 있다.

어쩌다 토요일 만나는 사이들인데도 어쩌 저리 웃을 수 있을까?

나는 직장인들에게 MT나 단합대회 행사로 산행보다는

걷기를 적극 추천한다. 산행은 힘들게 오르고 하산한뒤 술먹으며

취한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걷기는 맑은 정신으로 기분좋은 이야기들로

서로 격의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길가에 평소 보아왔던 딸기나무, 개복숭아 나무들에 벌써 눈독을 들인다.

다음에 오면 따먹을 수 있을려나.

아내가 지난 해 개복숭아 효소를 먹고 난 뒤 몸에 좋다고 올해도

개복숭아 효소를 담고 싶다고 겨울 부터 이야기했었다.

사던지 따던지 해야지.

 

한참 길을 걸어오니 멀리 바다가 보인다.

내려 오는 길의 펜션촌에 가꾸어 놓은 꽃들과

길가 별장들 마당의 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차도로 내려와 다시 농로길로 접어든다.

도시풍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고구마 모종을 심고 있다.

살면서 시골에 내 땅이 있고 그 곳에 이렇게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삶의 여유가 부럽다.

 

잘 아는 길이라 한참을 앞장서 걸어가는데

지난 겨울 낚싯군들이 꽁꽁 언 하천에 낚싯줄을 드리던 곳에

오늘은 수면위로 계속 물방울이 올라와 원을 그리며 퍼지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들이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뒤에 오던 일행들이 다른 길로 가고 있다.

7코스의 정식 코스인 바닷가 둑을 따라 걷는 길은 세멘트길이라며

논둑 사이를 걸어 먼저 앞질러 가버렸다.

하긴 세멘트 길은 정말 걷기 힘들다.

 

둑을 따라 간 끝에 못보던 펜션들이 자리잡았다.

으리고 얼마전 TV에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울랄라펜션이 보인다.

끝없는 갯벌이 펼쳐진 곳에 영원한 생명이 살아 움직인다.

비록 육지는 훼손되어 펜션이 덮어버려도

저 갯벌만큼은 그대로 두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미침 썰물 때인지라 오늘은 모두 둑 아래길을 걷기로 했다.

부드러운 모래가 기분좋게 하고 와삭 와삭 밟히는 수초들의 느낌이 좋다.

여기 갯벌은 다른 갯벌과 달라 조금 단단하여 발로 밟아도 빠지지 않는다.

아는 사람만 알고 걷는다.

 

둑 아래는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없는 곳이라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바다와 바로 만나는 바위들의 형상이 그야말로 볼거리다.

강화도에 용암이 흐른 적이 있었던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현무암을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 모습.

모든 바위들이 뾰족한데 어느 곳에서는 마치 바위를 사포질 한 것같이

부드럽게 둥글스런 면도 있고, 대형 편마암같은 바위들도 있다.

대개 이런 바위들이 공존하지 않는 편인데 이 곳에서는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좋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간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가 있다.

 

우리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데

누군가 멀리서 우리 뒤를 따라 오는 일행이 있다.

누구일까? 나들길 걷는 사람들 같지 않기에 기다렸다 물어보니

강화사람들인데 강화의 육지와 갯벌 사이를 이렇게 걷는 모임이란다.

이 사람들이 이 길의 재미를 아네.

 

북일곶 돈대에 올라 길벗들이 보물을 캔다.

평소 안 보이던 달래를 누군가 발견하고 보니 완전히 달래 군락이다.

모두들 엎드려 달래를 캔다.

우리 아이들도 신기해서 달래를 캐고 있다.

 

오늘은 완전히 갯벌가를 걷는 재미에 빠져 버렸다.

보통 산 언덕으로 가야 할 길을 모두 갯벌가로 걷고

그것도 모자라 7코스 경로를 이탈아혀 장곶돈대로 가는 길을 걷는다.

 

바위가 험하고 길이 불편해도

아이들은 어른들 만큼이나 바위를 날라다니며 걷고 있다.

만약 아이들 엄마들이 봤더라면 위험하다고 극구 말렸을텐데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위험한 길은 돌아가고

안전한 바위들만 밟고 다니고 있다.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자주 갖게 하면 스스로 위험을 판단하며 살 것 같다.

비록 등산화도 신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상처입은 아이가 없다.

 

아이들이 거의 무아지경으로 바위 사이를 걷고

틈틈히 작은 게들과 놀고, 생명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연과 놀고 있다.

이게 공부라면 그렇게 했을까?

 

어느 갯벌가에 텐트를 치고 가족캠핑을 즐기고 있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완전히 갯벌에 들어가 온 몸에 개흙을 바르고 놀고 있다.

 

그렇게 조카들도 걷고 놀더니 배가 고프다며 예약된 갯벌식당에서는

된장찌게로 밥도 남김없이 다 먹어 버렸다.

 

점심을 먹고 다시 갯벌가로 나오면서 작은 뱀 하나가

길을 막고 있는데도 무서워 하지 않았다. 

 

이 바위 투성이의 길이 워낙 좋아 원래의 코스를 잊은지 오래다.

힘들다는 얘기 하나 없이, 어쩔 수 없이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나는 아이들과 먼저 빠져 나와 콜 택시를 기다리면서

애들에게 물었다.

 

"여기 또 올래?"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게임기도 없고, 핸드폰이 있어도 꺼내보지도 않고

편한 것 하나도 없어도 애들은 자연처럼 가장 좋은 놀이가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집에 와서 엄마 아빠에게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다음에 나들길에 또 가고 싶단다.

갯가에서 주워 온 작은 돌맹이 하나를 소중히 간직하며 만지작거리는 아이들.

 

오늘 아이들에게 땀의 보람을 느끼게 해 준 것 같아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