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고시원 생활

carmina 2015. 6. 17. 16:41

 

 

2013. 11월에 써 놓은 글을 이곳 블로그로 옮깁니다.

 

어느 덧 주말부부 생활한지도 1년이 되었다.

회사가 상일동에 신사옥을 지어 이사가느라

부천에서 출퇴근이 하루 4시간씩 걸리는 것을

견디다 못해 지난 해 10월부터 강동역 근방으로 혼자 나와 살고 있다.

 

아침 출근을 위하여 와이셔츠를 입는데 팔이

여기 저기 벽에 부딪힌다. 한 팔 조차 제대로 뻗을 수 없는 공간.

 

일주일치 내의를 챙겨두기는 하지만 어쩌다 일주일 내내 바쁠 때는

빨래할 시간이 없어 어제 입던 팬티를 한 번 더 입어야 한다.

런닝셔츠야 다시 입어도 상관없지만 팬티는 조금 찜찜하다.

그러나 누가 알랴.. 나혼자만 불편하면 되는데..

 

빨래를 하는 날은 복도 끝의 빨래 걸이에 삼각 팬티를 널기가 무안해서

런닝만 그 곳에 널고 팬티와 양말은 실내에서 말린다.

그래서 빨래를 방에 널은 날은 저녁에 방문을 열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

 

빨래는 그 후 나만이 작은 건조대를 제공받아서 내 방문 앞에서만

사용하게끔 되어 편해졌다.

 

와이셔츠는 동네 세탁소에서 한 장당 1500원으로 해결하는데

세탁소 아주머니가 왜 다른 양복은 세탁 맡기지 않는지 상당히 궁금해 한다.

 

그래도 명색이 대기업 간부인데 남들이 보기에 내 신세가 처량해 보여도

돈이 없어 고시원으로 들어오는 홈리스보다는 낫지 않은가?

아닌가? 돈이 없어 들어온 건 맞구나.

돈이 있다면 조금 번듯한 곳으로 옮겨 편하게 지낼텐데..

아내가 이 문제로 늘 내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살고 잠만 자는데 큰 방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일부러 큰소리친다.

그리고 내가 지난 해 암수술을 받은 후 건강이 염려되니

일부러 출퇴근 피곤하지 않게 직장 가까운 곳에서 다녀야 한다는 핑계도 있다.

  

하긴 이 나이되도록 아직 구입한 아파트의 이자를 내고 살고 있으니..

생활의 여윳돈이 없는 내 삶이 조금 걱정된다.

이러다 애들 결혼시킨다고 집 팔거나 대출받으면 내 노후는 어떻게 생활할지

불을 보듯 뻔하다.

 

방에 노트북 하나 올려 놓을 만한 책상에 브라운관 타입의 17인치 TV가 있다

그래도 케이블 TV가 연결이 되어 있고

인터넷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가을에 들어왔기에 가을 옷이 옷장에 그대로 있지만 내년 봄에 다시 가져 오기 싫어서

그냥 냅두고 있다. 게으르면 안되는데..

어쩌다 저녁에 잠시 홀로 식사를 위해 나갈 때는 가을 면바지 안에 잠옷을 껴 잆었다.

 

침대도 두명이 눕지 못할 정도의 작은 크기.

칼 잠을 자면 두명이 잘 수 있을까?

가끔 자다가  침대가 썰렁한 기분을 느껴 일어나 보면 

전기매트가 침대 밑으로 흘러 내려가 있다.

 

회사에서 저녁 먹는 것도 늘 같은 것을 먹기 싫어

방에 콘플레이크를 사다 놓고 가끔 먹는데

모 은행에서 적금 들었다고 선물로 준 플라스틱 용기에

내가 좋아하는 포스트의 아몬드플레이크와 우유를 타서 먹고는

앉은 채로 몸을 돌려 그릇을 세면기에 헹구면 그뿐.

처음엔 숟가락 조차 없이 아래 층에 있는 주방에서 빌려쓰다가

집에서 올 때 하나 챙겨왔다.

 

고시텔을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은 주방에서 밥도 먹고

반찬도 해 먹는 것 같은데

나는 거의 그렇게 먹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컵라면 하나 데워 먹은 기억은 있다.

내게 주방은 보온병에 뜨거운 물만 가지러 가는 곳이다.

혼자 지내는 저녁에 뜨거운 녹차 한 잔이 유일한 즐거움이고

한 달 전부터는 근처 이마트에서 저렴한 와인 한 병을 사다가

일주일에 걸쳐서 한 잔씩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항상 똑같이 지속되는 것은 싫다.

 

회사에서 식사를 해도 과일을 먹는 기회가 없어

영양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인근 마트에서 귤이나 사과, 토마토 등 과일을 한 봉지 사다가 놓지만

때론 한 봉지 양도 많아 썩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지런히 먹는 수 밖에 없지만...

혼자 먹어야 하기에 한 가지를 계속 먹다보면 맛있는 과일도 나중엔 맛이 없어진다.

 

어쩌다 미드 하나에 폭 빠지면 그간 방영된 것을 모두 다운 받아

저녁에 한꺼번에 연속으로 보는 재미도 있지만

때론 몸이 불편하여 하루 쉬고 싶어 아내가 걱정할까봐 이야기도 안하고

휴가를 내고 종일 방에서 뒹굴거리는 날도 있다.

그래도 연속 며칠 아픈 적이 없어 다행이다.

 

저녁에 TV도 보고 인터넷도 하지만  할 일이 없어

이제껏 직장생활 30년의 월급봉투를 모은 것이 있어

액셀파일로 표를 만들어 보았다.

직장생활 20년동안 내가 받은 돈이 액면가치로만 약 4억

그리고 7년을 장사하다가 다시 직장생활 5년동안 받은 월급은

20년동안의 월급보다 월등히 많다.

화폐가치도 있으니 그렇게 계산하면 안되겠지?

 

아침에 늘 일찍 일어나 양치와 면도 세수만 하고 머리는 헝크러진

머리칼을 다듬기 위해 물만 묻히고 나와 회사의 헬스장에서 땀 흘리고

제대로 샤워를 한다.

덕분에 돼지우리처럼 좁은 공간에 살지만 평소 체중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다.

숙소 가까운 곳에 사우나가 있어 가끔 모자 푹 눌러쓰고 뜨거운 물에 푹 담그고 오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때론 그것도 너무 쳇바퀴 도는 생활 같아서

일부러 아침 운동을 빼 먹고 조금 늦게 출근하고 운동은 저녁에 할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아침 6시에 알람이 울리면 다시 일어나 6시 50분으로 알람을 다시

셋팅해 놓고 다시 누울 때가 기분이 좋다.

부천 집에서 출근한다면 알람 울리고 대문을 나와 통근버스 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여유부릴 틈이 없는데... 

 

사람이 사는데 그다지 큰 살림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하긴 내가 좋아하는 오지여행가 한 비야씨도 배낭 하나 메고 몇 년간을 지구를 떠돌아 다녔다.

내가 지금 가진 것도 많은 편에 속한다.

 

평소 책은 주로 퇴근시 전철에서 읽는 편인데

요즘은 전철타는 기회가 별로 없으니 책 읽을 기회도 별로 없다.

퇴근 때 회사를 나와 버스를 타면 집에 내 방에 들어오기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버스 기다리고, 내려서 잠깐 걷고...

그러니 내 손에 책이 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도 내 게으름의 탓이다.

 

옆 방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문을 닫으면 방음이 잘되어 벽을 사이에 둔 옆방에서도 소리가 안들린다.

한 때 인도네시아에서 온 40대의 남자의사가 현대 아산병원에 교육차 방한하여

이 곳에 잠시 기거하는데 나랑 복도나 주방에서 마주칠 기회가 많아 

좋은 대화 친구가 있다 싶었는데 어느 날 급히 귀국해 버렸다.

 

가끔 아침 화장실 세면기에 누군가 담배를 피웠는지 담배재가 보인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팬이 있어 냄새가 배지는 않았다.

이것도 기우지만 만약 이 곳에 불이 나면

어디로 피신해야 하는지 조그만 창문을 유심히 보곤한다.

 

내가 있는 이 곳은 외국인이 많다.

주인이 영어를 할 줄 알기에 외국인들 사이에 알음알이로 소문이 났는지

반 수 정도는 외국인인 것 같다.

아래층은 주로 여자들 혹은 외국인들이 살고

내가 있는 층에는 주로 한국인 남자들이 산다.

그래서 가끔 화장실에 런닝셔츠 바람으로 가기도 한다.

 

아침이면 10분 단위로 여기 저기 방에서 핸드폰의 알람소리가 울린다.

부시시 일어나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

가끔 보는 얼굴인데도 인사가 없다.

서로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굳이 밝힐 필요가 없으니

인사하는 것은 오히려 결례일 것 같다.

 

나보다 나이든 어느 아저씨는 아침 저녁을 꼭 주방에서 직접 끓여 드시는 것 같다.

잠옷차림으로 나와 주방에 가는 모습이 보기 안스럽다.

이 분은 나 만큼이나 오래 이 곳에 있는데

주말에도 어디 가시지 않는 것 같다.

가끔 공중 빨래 건조대에 구멍이 많이 뚫린 낡은 런닝셔츠가 널려 있는 것을 보면

누구 것인지는 몰라도 가슴이 많이 아프다.

 

이 생활이 언제까지 갈까?

한편으론 지금 직장 수입이 있지만

만약 직장 그만두게 되면 넓은(?) 집으로 다시 들어가

무위도식 생활할 것이 더 불안하기만 할 것 같다.

 

차라리 여기서 불편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월급쟁이 1%에 속하는 내 월급 만큼의 수준이나 나이에서 

통상적인 체면 유지 생활은 안되어 챙피하더라도 가족이 그 수준을 즐기고 있으니

그걸 위안으로 삼는 수 밖에 없다.

 

내년 봄도 여기서 맞을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독일로 유학 간 딸이 카톡으로 하는 말이

'아빠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살날이 있을까?' 하고 묻기에

아마 이젠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고 나니

괜히 마음이 싸~~해 진다.

 

어느 덧 이젠 가족도 삶도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