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서울싱잉커플즈 일본연주여행 1 (2001년 10월)

carmina 2015. 6. 8. 11:46

 

일본 연주 여행 (2001. 9. 30~10.2)

(오래전에 써 두었던 글인데 내 자신의 마음에 안들어 보류했던 글입니다.) 

 

 

일본에서 도착한 날 밤에 그간 장모님 댁에서 지내고 있었던 딸을 데리러 차를 몰고 가면서

갑자기 외친 말.  . 정말 즐거웠다.

 

그래. 정말 즐거웠다.  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추억이 또 하나 만들어진 날이었기에 그 즐거움의 마음을 혼자 미소 지으며 행복해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크게 외치며 표현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으리라.

 

사람이 일생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하 웃으며 지낼 수 있을까? 1000분의 1? 하루가 1440분이니 하루에 1.4? 그래. 아마 걱정 반 근심 반 정도 가지고 사는 보통사람이라면 그 정도 될 거야.  그런데 이번 일본 여행에는 그 지수가 아마 1000분의 200 정도는 되었을거야.

 

음악이라는 것만 있어도 나에겐 즐거움의 세상인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며칠간의 생활, 그리고 또 내가 음악 다음으로 좋아하는 여행까지  이런 기회가 내 일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올해 합창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몇 년 전부터 일본에 유학 가서 8년째 살고 있는 박형이랑 의논해 왔던 일본 공연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유럽음악여행을 다녀 온 지도 몇 년이 지나 단원들도 해외로 가고 싶다는 희망과, 11월의 공연 전까지의 긴 여백을 채우기에는 아주 좋은 프로젝트라 가능성을 타진하니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단원들의 일본공연에 대한 참가 의사를 묻고 개략적인 추진계획을 알려 주며 잘만 하면 스폰서를 받아 비행기 요금 정도면 다녀 올 수도 있겠다는 언질도 주었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교과서 문제, 일본 수상의 신사 참배 강행등으로 한.일간의 관계가 악화되고 이에 따라 한국. 일본의 문화 교류는 감히 입도 벙긋 못할 정도로 정부 측에서 강경하게 나온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일본 경제의 급락적인 하강으로 예정되었던 스폰서 금액의 3분의 1 정도 밖에 지원받을 수 없었다.

 

우리 단원들의 사정상 추석 연휴밖에 부부가 해외 나들이 할 기회가 없기에 비행기 요금도 성수기의 가장 비싼 요금을 물어야 했고, 스폰서 비용도 축소됨에 따라 단원들의 마음도 차츰 멀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합창단의 발전을 위해 계획했던 공연은 실행하기로 합의했으나 당초 계획했던 인원에 비해서 몇 커플이 여러가지 이유로 중도하차했다.

 

인천공항이 생긴 이래 처음 외국을 나가 보는 날.  부천에서 인천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라 마침 김포공항에 종일 주차 요금이 5000원으로 대폭 변경했다는 뉴스가 있어 주차요금을 5일치를 내는 것이 버스나 택시 이용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겠다 싶었는데 더 경제적인 방법이 저절로 생겼다.

 

가까이에 사는 최근에 입단단원이 아침에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이렇게 고마울데가..  아침 6시에 우리 집에 오겠다기에 저녁에 아이들에게 추석 연휴기간동안의 행동지침 및 생활 지침을 모두 알려 주고 짐 정리하고 밤 12시가 훨씬 더 지난 시간에 2개의 알람 시계를 5 20분에 맞추어 놓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린다. 

 

아내가 받아 보니 공항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다는 단원이 한 20분 정도 늦게 출발해도 될 것 같다기에 시계를 보니, 아차 지금 몇 시냐6 5분전.  이런 황당한 일이  1개의 자명종시계는 먹통이고 또 하나는 오후 5 20분에 맞추어져 있다. 만약 합창단원이 아침 시간에 전화를 안 걸었다면 꼼짝없이 늦잠으로 일본행이 좌절될 뻔 했다.

 

새삼 미국 휴스톤 출장후 귀국시에 호텔에 모닝콜을 부탁해 놓고는 내가 지난 밤 모뎀을 쓰느라 전화코드를 빼 놓고는 까맣게 잊어 버려 허둥대던 일이 생각났다. 

 

같이 가는 합창단원도 지난 밤에 새벽 2시 넘어 잠이 들었다고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을 보인다.  인천공항을 가기 위해서는 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인천 공항 IC로 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고속도로 톨케이트비가 저렴한 다른 길이 있다며 계양 방면으로 핸들을 돌린다.

 

계양산으로 가는 길은 어릴 때 그리고 군 시절에 그토록 황량한 곳이었는데 어느 새 아파트와 공장지대가 가득 차 버렸다.  그 곳에서 유격훈련을 받고 10 키로 완전군장 구보를 뛰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25년정도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게 남은 것은 흰 머리와 허약해진 기력, 고지식한 생각들만 가득차 버렸으니 세월이 이렇게 지나가는 구나 생각한다.

 

북부 IC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 비용이 3000. 가격은 절반이긴 하지만 3000원치 영종대교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가 버렸다. 이 쪽으로 가면 영종대교위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대교 밑으로 달리게 되어 있다.  대교 밑의 도로는 앞으로 건설될 전철과 평행으로 달린다. 

 

아침에 허둥대느라 면도도 못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모임 시간인 7시에는 늦지 않았다. 단원 모두들이 일본가서 저녁에 출출할 때 먹으라고 빵을 잔뜩 사서 챙겨 오는 고마운 마음씨의 아저씨와 함께 출국장으로 올라가니 벌써 많은 대원들이 모여서 서성대고 있다.

 

밝은 미소들, 아들부부 여행간다고 배웅나오신 부모님도 계시고, 부모님 여행가신다고 딸이 배웅을 나왔과 단원들 배웅을 위해 이른 시간에 온 가족이 다 출동한 못가는 대원들도 있다.

 

아침도 못먹고 나왔기에 몇 단원과 함께 카페테리아를 찾아 갔다가 모든 음식들이 비싸서 간단하게 먹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래도 스낵코너가 하나 생겨서 비교적 작은 금액으로 따끈한 국물이 있는 우동을 즐겼다. 

 

점점 비싸지는 공항 이용료를 내고 짐검사를 하니 평소에는 문제없던 스위스제 속칭 맥가이버 칼 때문에 보안 검사에 걸렸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가 이 칼로 자행된 것이라 하니  보관했다가 나중에 도착해서 찾으란다.

 

평소같으면 비행기를 타자마자 무슨 영화를 볼 수 있을지 궁금해 기내 잡지부터 펼치는데 이번엔 아침을 주는 지가 더 궁금하다.  아직은 조용한 아침. 웃음꽃이 피어나기 전이다. 모두 일찍 나와서 그런지 기내에서도 잠을 청하는 모습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일본에 도착해, 막내 단원의 짐을 누가 다른 사람이 가지고 나갔다며 당황해 하고 있다.  짐의 외관이 너무 비슷해 저질러진 실수. 그러나 이 곳에서부터 일본 사람들의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나온다.  손님에게 그런 신고를 받자 마자 잘못 가지고 간 승객을 찾느라 급히 밖으로 뛰어 나가 한참 만에 우리 단원의 짐을 찾아 가지고 온다. 또 한 단원은 워낙 웃음에 빠져서인지 그만 자기 짐도 찾지 않고 그냥 나와 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이 때부터 우리는 웃음과 터지는 요절복통에 정신을 빼 놓고 다녔다.

 

마중나오기로 한 박형 부부가 공항에 얼굴을 비치지 않아 집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핸드 폰 번호가 적혀 있는 전자수첩의 데이터가 며칠 전 몽땅 날라가는 사고가 생겨 이런 때 난감하다.  직장 다닐 때 자주 만나던 일본 거래처의 손님 전화 번호도 잊어 버려 이번공연에 초대도 못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40대로 보이는 여자 가이드. 이름도 일본식 이름이다. 김양자. 말이 또렷하고 여행 내내 해박한 일본 지식을 보여 주었다.  일본에만 있었다면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를텐데 한국 사정도 잘 알고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폭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하나도 막힘이 없다.

 

나리타 공항은 시바현에 있는 작은 위성도시에 있는데 이 곳은 일본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관동지방에 있어 겨울에도 섭씨 4도를 웃돈다고 한다. 그런 열대성 기후이기에 나무가 잘 자라고 따라서 목조 건물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이 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습기를 머금고 있어 뜨거운 열을 방지하기에 주택 재목으로 알맞다고 한다.  또한 지진이나 화산이 많은 나라이기에 콘크리트나 석재 건물보다는 나무 건물이 지어야 안전하고 유리창 하나 조차도 지진에 깨져도 안전한 강화 유리도 만들어져 있다 한다.

 

모든 도로가 겨우 왕복 2차선에 불과하지만 차가 막히는 적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일본은 길가에 장시간 주차해 놓는 경우가 거의 없어 이렇게 도로가 좁아도 차가 다니는 데는 불편이 없음을 이미 체험한지 오래다.  비가 자주 오지만 도로사정이 좋아 물이 고이거나 그로 인해 물이 튀겨서 지저분하지 않고 고속도로 또한 물을 빨아들일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어 도로는 늘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비가 자주 와 도로에 먼지도 없고 차 또한 먼지가 끼어 있는 차를 보기 힘들다. 이는 일본의 차의 광택 기술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어 그렇기도 한단다.

 

늘 지진이 많은 나라라 가옥의 난방은 연료를 때우지 않고 주로 다다미로 지내는 일본은 그 다다미에 벌레라던가 지저분한 것들이 많아 첨단 기술을 이용해 다다미를 살균하고 세척하는 방법이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은 모두 베란다에 따뜻한 태양의 기운을 담기 위해 요와 이불을 널어 놓는다.  내일과 모레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가 거의 틀림없이 맞는다 하니 오늘 따라 유난히 아파트나 단독주택에 이불을 걸어 놓은 집이 많다.

 

일본에 많이 와 보았지만 이렇게 일본인의 생활 습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 조금 더 적어 보았다. 

 

일본도 요즘 한류(韓流)가 불어 한국에서 즐겨 먹는 음식들이 대단히 인기라 한다. 우선 소주는 진로 소주가 단연 인기이지만 우리 같이 스트레이트로 먹는 것이 아니고 거의 칵테일을 해서 마신다. 이들은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거의 즐기기 위해 마시기에 우리같이 폭주는 하지 않는다.

 

한국김치에 대한 열풍은 가히 최고조에 달해 김치를 다이어트 식품으로 생각하여 여성들에게 인기이고 우리 김치의 매운 맛에 반해서 모두 눈물을 흘려가며 억지로 먹는다고 한다. 김치의 매운 맛을 즐기다가 이젠 고추장까지 한국산을 먹으며 살빼기에 열중인 일본 여자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본..  이제는 평범한 것도 싫을 세대가 되었지.

 

일본 민족은 남방민족이라 얼굴이 그다지 이쁘지 않다. 필리핀 여자나 인도네시아 여자들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 들창코, 못생긴 치아, 얼굴에 검은 점이 많고 키도 작고 늘 자기 얼굴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기들과 같은 동양인인 한국 여자들이 자기들 모습보다 나은 비결을 매운 음식에서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한국음식을 즐겨 먹고 요즘은 또 한국부인들이 찜질방과 목욕탕에서 가서 때미는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한국에서 특별히 초청되어 온 목욕탕 때밀이 선생들이 때밀이 교습을 강의할 정도라 한다.  일본은 이러한 것에 대한 제도를 잘 만들어서 때밀이도 자격증이 있어야 영업을 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의 이러한 상술에 대해서 김치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몇 천년을 김치를 먹었지만 미국 FDA에 규격을 인정받을 만한 김치 제조 매뉴얼과 효능에 대한 매뉴얼이 없는데 일본에서 이러한 매뉴얼 및 국제 표준에 맞게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 기무치란 이름으로 상표를 먼저 등록하는 바람에 국가적으로 망신당한 적이 있다. 또한 전주 비빔밥도 맛의 비결을 각종 재료의 배합량에 있다고 생각하여 비빔밥 자동 제조기를 만들 정도이니 감히 일본의 상업적인 마인드에 혀를 내두른다.

 

기내에서 아침을 먹은 지 몇 시간도 안되었는데 공항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단다. 많은 인원이 움직이기에 갑자기 일정을 바꿀 수 없어 모두 따르기로 한다. 식당은 부페로 마련되어 있고 샤브샤브가 가능하도록 준비되어 있다.  모두들 제일 먼저 스시가 있는 곳에 줄을 지어 선다.  조용하던 일본 식당에 갑자기 한국사람들 때문에 왁자지껄하여 먼저 와서 식사하던 일본인 몇 명이 조금 언짢은 눈치다.

 

한 테이블에서 샤브샤브에 김치를 넣어 만든 김치 칼국수가 이국이라 그런지 더욱 맛이 들어 있다.  본격적으로 보는 일본 말 히라가나, 가타가나들을 하나 하나 짚어 본다.  이제 이 말이 이렇게 생소할 수가 20년 전만 해도 일본말과 글을 보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웠는데 이젠 동사 변화하나 각종 부사들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 몰려 식사하고 버스는 동경 시내로 들어갔다.  눈에 익은 동경의 거리들. 눈을 들어 공중을 보면 한국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지만, 수평으로 보는 일본의 거리 모습은 한국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1억이 넘는 인구에 비해 그리 많은 않은 차량 소통, 깨끗한 거리, 잘 정리된 빌딩의 간판들, 깨끗한 쓰레기통 이루 말할수 없이 많을 정도의 정리 정돈된 것들이 일본에 왔음을 알게 해 준다.

 

사거리 신호도 보행 신호 한 번에 좌..대각선 모두 건너게 하고, 별로 많지 않은 버스들로 거리는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동경에서는 98프로의 사람들이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이용하고, 승용차를 타거나 버스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탄다 한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은 일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반드시 내 행동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그 들.  정이 없는 민족인가? 아니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 아니, 제대로 사는 것에 대한 정의는 어디에도 없을거야.

토요일이라 조금은 한산한 동경시내를 달려 호텔에 체크인 하기 전에 우선 현재 천황이 살고 있다는 황거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 곳은 황거를 둘러 쌓고 있는 연못이 있고 황거의 담장 뒤에 또 연못이 있어 적의 습격으로부터 천황을 보호했다 한다. 

 

일본 사람들은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라 생각하기에 천황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 복종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때 가미가제 특공대들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자폭했고 지난 번 천황이 죽었을 때도 일본인 3명이나 할복 자살로 자결했다고 한다.

 

일본에 기독교의 전도가 어려운 것은 이 사람들이 천황을 신으로 생각하는데 굳이 다른 신을 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 한다.

 

황거로 가는 길은 탁 트인 공간에 깨끗하게 다듬어진 잔디, 그리고 듬성 듬성 소나무 숲을 지나 작은 자갈들이 깔린 길로 가야 한다.  소나무 밑에서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잔디가 어찌나 푹신한지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이 인다.

 

어느 여성단원은 급기야 신발을 벗어 들고 걷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황거의 출입이 금지되기에 그냥 먼 발치서만 바라다 보고 신년 초에는 천황이 황거 안에서 국민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광장을 메운다고 한다.

 

황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단원들이 하는 말 하나 하나를 모두 성적인 것으로 묘사해 생각하는 바람에 모두들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이러한 우리들의 야한 이야기는 여행 내내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로 박장대소하며 웃을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황거에서 잠시 머물고 호텔로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아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상가 타운인 아키하바라를 방문했다.  일본에 오면 제일 가고 싶은 곳이 이 곳이다. 내가 컴퓨터 쪽에 관심이 많고 이 곳에 오면 앞으로 우리 전자 산업이 대충 어느 방향으로 갈지 예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 곳 아키하바라는 주로 내수용 전자제품만을 취급한다고 한다. 가끔 이 곳에서 물건을 사면 한국과 전압이 틀려 늘 불편했다.  몇 년전 왔을 때는 GPS 시스템이 참 인기를 끌었는데 이번에는 온통 핸드폰 전시장이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핸드폰이 가게들마다 그득하고 MD 들이 여러가지가 출시되어 있다.

 

혼자 다니면 이것 저것 차근 차근 볼 텐데 일행이 있어 그냥 우리 아이들 선물로 시계하나 씩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키하바라는 사람들로 붐비고 일본 특유의 물건들이

 

저녁에 있을 일본 합창단의 환영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3일간 우리 숙소가 될 YMCA 호텔로 향했다.  이 호텔은 한국 YMCA에서 운영하는 호텔로 현관 앞에 삼일운동 전에 2.8 독립선언이 이 곳에서 있었다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 때 호텔의 경영난으로 매각처지에 있었으나, 재일동포와 한국에서의 후원으로 매각은 모면했단다.

 

우리 인원이 40명을 넘으나 호텔의 트윈 룸 숫자가 우리 부부 인원 수보다 적어 어쩔 수 없이 두 부부는 싱글에서 따로 자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하기에 누구 다른 사람보고 해외에 까지 와서 따로 자라는 부탁을 할 수 없어 진행을 맡은 총무 부부와 우리 부부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싱글 룸을 사용하기로 했다.

 

각층마다 복도에 오랜 손 때가 묻은 책들이 꽂혀 있지만 대부분 전집류로 보기 힘든 것들이다. 대개의 일본 호텔들이 이렇게 복도에 책을 두는데 단편 소설들을 주로 비치하는데 이 곳은 아마 형식적으로 해 놓은 것 같다.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저녁에 일본 합창단체들이 준비한 환영식장으로 이동했다.  환영회를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는 이미 한국을 떠나오기 전부터 계획서를 보았던 터라 알고는 있었지만 홀에 들어 가자 마자 우린 모두 조금씩 놀랐다. 

 

넓은 홀에 목에 소속 합창단 이름 자기 이름을 크게 써서 건 여자 남자들이 열심히 음식테이블을 정리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명찰이 하나씩 주어졌다. 비록 허름하게 생긴 명찰이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만날 때 이름이라도 알고 있으면 대화가 쉽겠다라는 생각에 이런 준비를 해 둔 일본인들의 아이디어가 본받을 만 했다.

 

차려 놓은 음식의 푸짐함도 놀랐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말로 인사하는 내용을 쪽지나 혹은 한글 안내 책자를 가져와 머쓱해 진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고 잘 표현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친절을 베푸느라고 열심인 그들의 모습들이 서먹한 우리들을 기쁘게 하고, 인사를 한 일본측 지휘자의 인사가 우리를 웃음으로 시작하게 만들었다.

여자의 치마와 인사는 짧을수록 좋다며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 어서오세요로 환영 인사를 끝내는 그의 재치에 우린 한바탕 웃어 버렸다.

 

우리가 배 고플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인사보다 우선은 먹기를 권했고, 먹으며 자연스레 우리 일행들은 테이블 앞으로 나와 일본측 사람들과 잘 안되는 영어, 일본어지만 섞어서 이야기하느라 우린 서로 웃음 반, 손짓 반으로 즐거운 만남을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유독 영어를 못하지만 그 중 영어를 떠듬거리며 할 수 있는 젊은 단원들이 있어 대충 상대 합창단의 성격을 알 수 있었고, 맥주잔에 조금이라도 맥주가 없으며 즉시 즉시 와서 맥주를 따라주는 이네들의 주도를 알 수 있었다.  늘 손님의 잔은 차 있어야 한다.

 

같이 공연할 일본 3개 단체 중 두 팀은 혼성 합창단이고 한 팀은 여성합창단인데 비교적 나이들이 많이 이번 공연을 같이 주관한 콜 샹티는 젊은 멤버들도 많아, 그 들의 공연이 자못 기대되었다. 

 

게임을 준비했다 하는데 보통 우리 나라에서도 하는 2 3각 그리고 귓속말로 말 전하기. 일본은 우리 한국말을, 우리는 일본말을 모두들 즐거움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다가 사회를 보는 박형에게 같이 노래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