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서울싱잉커플즈 일본연주여행 2 (2001년 10월)

carmina 2015. 6. 8. 11:49

 

 

 

일본 연주 2일째.

 

지난 밤 좁은 방에서 따로 자야했다. 아내는 침대 위에서 나는 침대 아래서.. 대개 외국의 침대는 싱글이라도 침대 하나에 둘이 잘 만큼 넉넉하게 큰 편인데 이곳은 그 나마 허용되지 않는 일본이기에

 

어디선가 찬 바람이 바닥을 통해 들어와 내 발 사이를 휘집고 들어 옴을 느끼며 밤새 뒤척였다.  잠을 설쳐서 그런지 아침에 일찍 잠이 뜨고 식사 예정시간이 8시 보다 일찍 식당으로 내려가니 나이 드신 단원 한 분이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신다. 

 

일본이니까 일본말로 인사하고 식사를 달라 하니 야채 때문에 4사람이 앉아야 식사를 준단다.  그런가 보다 하고 다른 단원 올 때까지 기다려 갈비탕 한 그릇을 받았는데 야채라는 것이 김치 하나 나물하나.  아니, 이 것을 4사람분 야채라고 기다리라고 했던가?

 

하도 어이가 없어 일본에 와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역시 식당에 먼저 내려 오는 사람들은 모두 고참단원들이다.  밝은 얼굴들, 이렇게 단원들이 아침을 함께 할 때마다 우린 무언가 즐거움의 행사 속에 있다.

 

오늘은 주일. 오전엔 한국인 교회와 오후엔 일본인 교회에서 찬양해야 한다.  일본의 아침거리를 보고 싶어 아내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우리가 있는 YMCA 호텔은 학원가에 있어 호텔 주위에 모두 학교 또는 학원들로 가득 차 있다. 

 

아침에 호텔 앞 여자중학교 같은 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듯한 아이들이 열심히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 정겨워 보인다. 앞치마를 두른 아이들이 마당에서 무언가를 나르고 그릇을 준비하고 김이 모락 모락나는 그릇도 보인다. 

 

깨끗한 학원가 골목을 지나는데 어느 학원 앞에 비닐봉투가 바람에 날리고 있는데 갑자기 학원 안에서 경비보는 아저씨가 나오더니 비닐봉투를 주워가 버린다.  아하. 이게 깨끗한 비결이구나.  버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집 앞은 자기가 치운다. 이 광경에서 우리나라의 완장이란 소설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완장만 차면, 모자만 썼다 하면 제복만 입었다 하면 질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의 우리 나라와 제복만 입었다 하면 자기가 맡은 일이 천직이려니 생각하는 일본.  도대체 우리 나라의 이런 사고 방식은 언제나 바뀔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은 일본의 어디가나 볼 수 있다. 길에서 도로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제복이 그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제복이 흐트러지지 않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나 지하철의 안내원까지도 감히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다.

 

주일 아침인데도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등교를 하고 있다. 짧은 치마, 그다지 미끈하지 않은 다리, 무릅가까이 올린 양말들,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다. 일본에서는 중고등학생은 반드시 교복을 입어야 한단다.  치마 길이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더 짧아지고

 

일본식 24시간 점포와 도쿄 돔 호텔이 우뚝 서 있는 배경으로 사진 하나 찍고 아침 집합 시간이 가까워 호텔로 돌아오고 있는 깨끗한 거리의 도로 한편에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어젯 밤 젊은이들이 이 곳에 머물렀는지 그냥 길거리에 꽁초를 버린 것 같다.

 

꽁초를 유심히 살펴 보니 하나같이 휠터가까이 태운 알뜰함을 보여준다. 낭비하지 않는 이 들의 습관, 작은 것이 습관이 되어서 욕심까지도 적은 사람들. 그러나 나라의 꿈은 커서 세상을 집어 삼킬려 하는 사람들

 

가이드가 아침인사말을 가르쳐 주었다. 보통 아침에는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하는데 이것마저 길다고 느껴진 줄이기의 명수 일본사람들은 오쓰로 간략하게 인사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인사할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 이후로 우리의 아침 인사는 누구나 오쓰가 되었다.  또한 남의 말을 경청하기 좋아하는 일본인은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마다 ! 스바라시 (, 훌륭하네요.) 하며 감탄한다 하여 우리도 무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스바라시를 외쳤다.

 

비가 오는 주일 아침, 이미 전날부터 비가 오는 것으로 예고가 되어 있고, 기상예보는 거의 맞춘다는 일본이기에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우산을 준비해 왔지만 다른 사람들 것은 우산을 한 25개 정도 미리 준비한 버스기사의 친절함을 이용해야 했다. 

 

일본은 태풍이 무척 많다. 일년에 한 50번 정도  태풍, 해일, 화산, 지진등 워낙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신이 많다. 길가의 모든 것이 신이고 모든 것들에게 아무 일 없게 해 달라고 빌어야 한다. 

 

일본의 거리는 유난히 신호가 많지만 교통위반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는 많지 않다. 길도 좁지만 그 좁을 길을 달릴 때 방해하는 시설물이나 도로변 주차 같은 것이 없어 도로가 좁아도 차량소통에는 지장이 없다.

 

비가 추적 추적 오는 날 버스 창문 너머로 영구차가 보인다. 리무진 승용차의 위에 절의 지붕처럼 모양을 만들어 관을 올렸다.  일본은 죽으면 누구나 다 화장을 하기에 일본의 산하에서 무덤은 찾아 보기 힘들다.  가끔 고속도로변에 유럽처럼 공동묘지가 있는 것이 보이긴 하지만 산 기슭에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덤하나 볼 수 없다.

 

이전엔 사람이 죽으면 화장한 재를 49일 동안 집에 모셔 두었다 한다. 49일 동안 가족은 물론이고 상주와 친한 친구도 매일 정성을 들여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웬만한 친구는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같이 하지 못하기에 그 정도 고락을 같이 하지 못할 사람은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초상기일동안 사람이 찾아 올 수 없기에 이들은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닌 다음에야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 한다.  그래서 더욱 남에게 마음을 열기 어렵고, 친절하게 하는 것과 마음을 여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 들은 이렇게 저녁 시간에 혼자 하는 생활에 익숙해 있기에 정밀제품을 만드는 공업이 발달되었고 특히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을 철저히 하기에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혹은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분야는 거의 전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한다.

 

하긴 내가 회사 다닐 때 일본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손바닥만한 두터운 노트에 빼곡하게 필기가 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사양서도 큰 A4사이즈의 책으로 가지고 다니지 않고 책을 축소해 크기를 반으로 줄여 가지고 다니기에 하도 그것이 편리해 보여 우리도 출장 시에는 항상 그렇게 책을 축소 복사해 다니곤 했다.

 

혼자 하는 잡기 중에 제일 좋은 것이 일본에 흔하디 흔한 빠징코.  누구랑 의논하지 않고 혼자만의 결정으로 돈을 벌기도 하고 잃기도 하기에 스스로의 판단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국민성 때문에 빠징코가 이 사람들 적성에 맞고, 빠징코 사업이 대단히 번창한 사업인데 일본 빠징코 사업의 98프로는 재일교포가 운영한다고 한다.

 

가이드는 교회가기 전까지 부지런히 일본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일본사람들은 태생이 왜인이라 신체가 작아서 큰 사람에 대한 동경이 대단하다. 그래서 일본에서 유명한 스포츠가 큰 사람들이 겨루는 일본 씨름 쓰모다.  옛날에는 제사 때 큰 사람을 앞장 세우곤 했기에 큰 사람을 모아서 별도로 마을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큰 사람이 점점 줄어드니 외국에서 일본계의 큰 사람을 수입해서 쓰모를 하게 했다. 대표적인 외국계 쓰모 선수가 하와이 태생의 고니시키다.  고니시키는 일본의 유명한 연예인과 결혼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그 문하생이 무척 많았다 한다.

 

언젠가 고니시키의 다큐먼터리를 하는데 고니시키의 팬티 안에 정상인의 남자 5명이 들어 가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한다.  이들은 워낙 신체가 크기에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특별 제작된다. 변기라던가, 차량이라던가, 집의 구조라던가

 

쓰모 선수들은 화장실에서 일을 본 후 혼자 휴지로 뒷처리를 할 수 없기에 별로 문하생이 그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일 때문에 절대적으로 제자들이 필요하고 자기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 칼로리가 높은 양고기를 많이 먹는다. 이들의 기념관에는 신체중의 머리카락을 보관한다. 일본의 스포츠나 연예인들 중에 한국계가 상당히 많지만 숨기는 경우가 많다 한다.

 

오늘 오전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는 한인침례교회. 이런 비싼 동경에서 번듯한 건물하나 갖기 어려운데 한인 침례교회는 그래도 자그마하지만 4층짜리 교회건물을 갖고 있다. 몇 년 전 이 곳에 왔을 때는 남의 건물을 세들어 살고 있었는데 그 건물이 헐리는 바람에 이 곳에 새로 지었다.  친구가 내부 인테리어 설계를 하고 친구 아내가 성가대 지휘, 그리고 딸이 피아노 반주를 한다.  떠날 때는 코흘리개 어린애였는데 벌써 장성해서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예배실 의자의 반 이상을 우리 단원들이 앉고 나머지 반은 교인들이 겨우 채울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몇 분이랑, 영락없이 한국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친근한 얼굴들.  목사님은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렇게 작은 교회라도 동경에서 5번째 안에 드는 큰 교회라는 것을 알아 달라 하니 일본에서의 기독교 선교활동이 얼마나 힘든지 가히 짐작할 정도이다.

 

찬송가는 한국말로 부르는데 어느 여자 분의 대표기도는 일본말로 기도한다.  그래도 모두 다 알아 듣겠지.  은혜로운 찬양, 올라설 자리도 없는 좁은 공간에 힘차게 찬양하니 듣는 성도들이 눈이 밝아 진다.  우리의 소리를 혼자 듣기 안타까웠던 일본말로 기도하시던 여자 집사님이 닫혀 있는 유아실의 문을 조금 열어 둔다.

 

한 사람이라도 우리의 노래가 필요한 곳에서는 노래를 하고싶다. 그 곳이 미리 마련된 장소이건 혹은 노래할 수 없는 악조건이건 우리의 노래를 듣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우리 모두가 노래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많이 사용해야 달란트가 더 커질 테니까..

 

예배 후 일본 전통의 고기덮밥을 모두 나누어 먹는 중 우리 단원 중 수학교사인 분이 우연히 그 곳 교회의 교인으로 있는 제자 청년을 만나 반가운 해후를 했다. 나 또한 그 곳 교인 중 내가 잘 아는 분의 친구를 만나 인사를 하고

 

그렇게 오전에 한인 교회 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있을 일본 침례교회 방문을 위해 약간의 시

안된다는 의견이 더 지배적이어서 예상 시간 보다 조금 일찍 일본 침례교회에 도착했다.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고층 아파트 숲 가운데 우리네 전통 형식의 교회가 있다.  일본인 교회, 일본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  과연 그 들의 신앙은 어떠할까.. 왜 아프리카나 동남아인의 교회는 대충 어떤 모습인지 연상이 되는데 일본인 교회는 쉽게 상상이 안되는 걸까?

 

오후에 찬양 예배시간에 우리의 찬양이 준비되어 있어 교인들이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다는 사전 이야기가 있었고 비가 조금씩 내리는 오후 우리가 들어 간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교회 정문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부는 조금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따뜻한 느낌의 목조 바닥 및 의자에 천정은 콘크리트 구조를 페인트칠 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내 모든 것 벗어 던지고 주님께 온다는 의미일까? 

 

이 교회의 목사님은 다카끼라는 일본인인데 목회하시기 이전에 검사생활을 하셨으나 부르심을 받아 목회를 시작하셨다하는데 말씀이 무척 가슴깊이 와 닿는 설교를 들려 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말씀으로는 일본사람과 한국사람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우린 하나님 안에서 모두 같으니 하나님 안에서 서로 존중해야 한다. 어차피 천국에 올라가면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의 천국시민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고 서로의 존재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 곳은 일본 교회지만 부목사님이 젊은 한국인으로 음악목사님으로 재직하신단다. 기타를 들고 리드하는 목사님과 베이스기타를 든 턱수염의 일본인.  그들은 서로 민족이 다르고 말이 다르지만 역시 음악 안에서 하나님의 찬양을 한 목소리로 인도할 수 있다.

 

무척이나 잘 울리는 성전안에서 우린 마음속으로 힘찬 찬양을 불렀다. 성도들 중 맨 앞에서 뚱뚱한 몸매의 일본인이 얼마나 가슴에 손을 모으고 기쁜 얼굴로 찬양을 듣는지 부르는 내가 눈시울이 뜨거웠고, 어떤 남자 분은 가사의 내용도 전달되지 않을텐데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다. 바로 이게 우리가 찬양하는 즐거움이다. 어찌 그 기분을 다른 사람들이 알랴?

 

연주가 끝나고 모두 함께 일어나 다 같이 찬양을 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일본차를 대접하며 교인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는데 그 중 한 일본인이 한국말을 떠듬 떠듬 제법하고 있기에 물어 보니 한국 가곡이 좋아서 한국어를 배웠단다. 그러다 보니 예수를 알게 되었고 이젠 찬양이 좋단다. 할렐루야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떠듬 떠듬 기억을 되살려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안녕을 고하고 나오니 비가 부슬 부슬 자 이제는 어디로 갈까나

 

일본의 역사에 유명한 사람 하나, 명치신왕, 메이치 황거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다시 시내를 통과했다.  동경시내를 통과하다 보니 지나 간 곳을 또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명치신궁의 입구에는 황거처럼 넓은 도로에 작은 자갈들이 깔려 있었고 이런 자갈이 사람들을 빨리 걷지 못하게 한단다.  하긴 늘 종종걸음치는 것이 일본사람들의 전통습관이니 모든 것이 이렇게 연관되어 있다.

 

수없이 많은 나무 숲사이로 난 큰 길을 가니 두개의 거대한 삼나무 기둥에 일본 전통의 홍살문 같은 것이 서 있다.  혹자는 이 삼나무가 몇 개의 나무를 이어 만든 것이라 하나 자세히 보니 삼나무는 완전히 나무 한 그루였다. 이렇게 큰 나무가 있을까 하는 것은 하꼬네에 가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3 5 7살에 반드시 이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단다. 아마 정신적인 혼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해서리라.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 와 신사에 참배하고 그 해의 안녕을 비는데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떠 밀려 갈 정도라 한다. 나도 이미 몇 년 전 이러한 광경을 경험했던 터라 그 광경이 가히 짐작된다.  그리고 불교식의 시주를 동전으로 하는데 그 신궁앞에까지 가지 못하니까 동전을 던져서 신궁 주변의 기둥에는 동전 자국이 많이 패어져 있다.

 

신궁으로 들어가는데 왼편에 하얀 도포를 걸친 건장한 젊은이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 신궁에는 전통 제례악이 연주되고 있었는데 오늘은 제례는 기업인들이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이는 행사라 한다.  들어갈 수 없었지만 멀리 제례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왼편에 전통 의상을 입고 제례를 드리는 사람들 그리고 오른편에는 기업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검정양복을 입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주 엄숙하게 제주의 낭송을 듣고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큰 북소리가 나더니 의식이 끝나고 제례자들이 일렬로 서서 걸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았고 그 사람들이 비를 맞아야 하는 마당으로 가로 지를 때는 일본 전통 우산을 하나씩 들고 가는 모습이 마치 내가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기도 했다.

 

모두 모여서 사진 하나 찍고 신궁을 빠져 나오는데 신궁 앞 선물 코너에는 운전기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커피나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위해 찾아 간 곳은 한국식당.  그러나 식당이 얼마나 조그마한지 한꺼번에 우리 많은 인원이 앉을 자리도 부족하여 겨우 겨우 끼어 앉아 식사를 해야만 했다. 

 

이런 조그맣고 좁은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 일본 사람들은 불평도 하지 않나 보다.  하긴 내가 일본 갔을 때마다 제일 여유로운 공간에서 식사할 수 있던 곳은 고속도로 휴게소 밖에 없었으니까

 

식사 후 인근 슈퍼에서 밤에 아내와 함께 마실 와인 한 병을 샀지만 매일 밤 따로 떨어져 자야 했고 매일 밤 합창단원들과 같이 회식을 하느라 결국은 그 와인아닌 포도 샴페인은 단원들끼리 마셔야만 했다.

 

오늘 밤에는 동경의 야경을 보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를 찾았는데 일본의 신개척지구인 오다이바를 찾았다. 오다이바는 포대라는 뜻인데 이 곳에서 미국의 상선에 포 사격을 했던 곳이라 한다.

 

일본은 각 가정의 쓰레기가 처리가 바로 쓰레기 소각로로 통하는 압축펌프로 이송되어 한 곳에서 처리하는데 그 곳에서 나온 재를 매립하여 거대한 대지위에 만들어진 테마 파크식의 현대식 쇼핑센타와 놀이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오다이바로 가기 위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데 무지개 다리의 야경이 볼 만 했다. 도시는 다리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며 다리에 온갖 치장을 다 해놓는다 한다. 하긴 세계 어느 도시나 유명한 다리가 많다.  영국의 금문교, 샌프란시스코의 다리, 프랑스의 미라보다리나 퐁네프 다리, 시드니의 하버 브리지 등등  우리나라도 근간에 들어와서 다리에 등을 밝히며 다리를 아름답게 치장할려 하지만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다.

 

오다이바에 내려 대형 쇼핑몰로 가는데 비가 와도 우산없이 걸을 수 있고 햇빛도 받을 수 있도록 거대한 육교의 양 옆에 지붕을 해 놓았다.  어쩌면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갈까?  수많은 젊은이들이 쇼핑센터로 향하고 있다. 

 

우리 일행을 쇼핑센타 안에 풀어 놓았지만 이 곳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곳이라 모두 시큰둥하며 시간을 때웠다.  일행에서 빠져 나와 혼자 어슬렁 거리며 바다가 보이는 난간을 산책했다.  목조 난간에 있는 노천 카페에 많은 젊은이들이 쌍쌍으로 바다를 보며 음료를 즐기고 있고 그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마치 미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라 유심히 쳐다 보게 되지만 일본인끼리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아니한다.

 

어느 문 앞에선가 많은 젊은이들이 줄을 지어 입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어 간판을 읽어 보니 라이브카페라고 써 있다. 이 들도 이렇게 라이브를 좋아하는구나.  아이들이 오면 좋아할 듯한 게임기의 대명사 세가코너가 있어 상당액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지만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 수 없어 포기했다.

바닷가에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작은 규모로 세워 놓았고 난간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참으로 좋았다. 비가 와서 그리 붐비지 않고 깨끗한 공간들, 우리 나라 같이 열심히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도 별로 없고, 각 쇼핑코너의 뛰어 난 디스플레이가 마음에 들었다.

 

언제 시간 되면 아이들과 이곳에 다시 한 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모임 장소로 오니 모두 피곤한 눈치이다.

 

숙소로 돌아와 어제 밤같이 호텔의 지하 강당에서 연습을 할려는 계획이었으나 강당의 연습조건이 안 좋아 일찍 해산하기로 하고 헤어졌지만 이 밤을 그냥 보낼 위인들이 아니라 삼삼 오오 호텔 앞 공간의 의자에 둘러 앉아 한국에서 가지고 온 진로 팩소주와 각종 마른 안주 그리고 컵라면으로 11시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