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일본 출장 (1999년 10월)

carmina 2015. 6. 15. 14:43

 

 

오래 전 하이텔에 써 놓았던 내 여행기가 있어 올려 봅니다.

 

1999년 10월 7일  일본 동경에서…

 

일본에 온 김에 친구를 만나 그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아침에 업무에
참석차 택시를 탔다. 콜택시를 부르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 무작정 거리로 나오니
마침 빈 택시가 눈에 보여 타보니 택시기사가 여자다. 여자가 기사니 무척
조심스러운 운전을 하겠구나 그리고 또 아침 출근시간이니 내가 비록 여유있게
나오긴 했지만 잘못하면 늦을 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우려가 내심 앞섰다.

 

목적지의 지도를 보여 주니 금방 어느 곳인지 알겠다며 차를 능숙하게 운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골목 골목을 누비며 차가 달린다. 왜 이러나,  내가 가는 곳은
도쿄에서 무척 번화가에 있는 곳이니 큰 길이 있을 법하고 그 길로 달려야 빠를 것
같은데 차는 계속 차 한대 겨우 지나 갈 만한 골목길로만 달리고 있다. 이러다가
골목길이 막히면 어떡할려고…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일본의 택시기사는 친절하기로
유명하고, 절대 손님에게 속임수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가만히 두고
보았다.


그런데 이 골목길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도대체 그 좁은 골목길을
전혀 속도도 늦추지 않은 채 고속으로 달리고 있다.  이건 말이 안돼.  골목길에
다른 차들이 주차 되어 있으면 그걸 피해가는 것만해도 위험한데 이런 고속
운전이라니…

 

그러나 나의 이런 기우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아오던  보통의 사고방식에 젖은
편견이었다.  그 좁은 주택가 골목길의 도로변에 주차되어 있는 차가 하나도 없다.
그럼 여기 사는 사람들은 승용차가 없단 말인가?  아니다. 분명히 차는 있었다.  그
모든 개인 승용차들은 집의 조그만 앞 마당에 겨우 주차되어 있어 주행하는 차량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이러한 법이 있기로서니 모든 주민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지킬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누구하나
복장에 흐트러짐이 없고 좁은 길이지만 차도로 나와 걷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좁은
길을 택시가 달려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골목길마다 일방통행로가 지정되어 있는 듯, 비록 좁은 길이지만 반대 방향으로
오는 차량은 없다.  함부로 길을 가로 질러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길거리에
장사하기 위한 입간판이나 물건을 내 놓은 사람도 없다.

가끔 도로변에 정차되어 있는 차를 보지만, 지나치면서 보니, 손님을 태우고 있거나

혹은 물건을 내리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차가 어느 정도 달리다 큰 도로로 나왔지만 교통신호에 잠시 정차하는 것 외에는
역시 차가 별로 막히지 않는다.  수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고 수 많은 학생들을
지나가지만 모든 것이 조용히 행해 질 뿐이다. 지하철을 타기위해 들어가는 지하도
입구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밀려 들어가고 밀려 나오고 있다.

 

택시 기사는 신호등을 만났을 때 결코 횡단 보도 안에 차를 세우는 적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외국인인 나에게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인가? 또한 그
복잡한 출근시간인데도 합승할 사람을 찾기 위해 머뭇거리는 것도 없다.  원래
합승이라는 것이 없나 보다.

 

차의 실내를 한 번 주의 깊게 둘러 보았다.  자동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는 뒷좌석의
문. 앞 좌석의 뒤에 조그만 광고 전단들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고, 혹시나 실내가
더웁다고 생각하는 손님들을 위해 깨끗한 부채가 몇 개 비치되어 있다.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르는 택시 강도로부터 운전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기사석의 머리 뒤에는
두꺼운 방탄 유리가 가로 막혀 있고 운전기사의 옷 차림도 무척 단정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히 다듬어진 손톱을 보니 얼마나 깨끗한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고 비록 뒷모습밖에 못 보긴 하지만 유니폼도 무척 깨끗하다.  

 

사람들이 많이 타면 차의 시트가 지저분해지니 검은 색 계통의 시트로 하면
편하겠건만, 시트는 모두 깨끗한 흰색 일색이다. 시트를 매일 갈아 끼우는 것임에
틀림없다.

 

차의 통행이 우리와는 반대 방향이라, 운전석도 오른 쪽에 있다.  운전석 뒷좌석의
옆 문으로는 사람이 타지 않으니 별로 열일이 없는 듯, 문 고리에 플라스틱으로
카바를 씌워 덮어 놓고 비상시에는 옆으로 밀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운전석 옆에는 조그만 시내 지도가 비치되어 있어 혹 기사가 모르는 곳은 지도를 펴
주며 갈 곳을 지적하여 주도록 되어 있다.  라디오가 있건만, 내가 아무 말하지
않으니 라디오도 켜지 않는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자 기사는 얼른 미터기의 버튼을 눌러 더 이상 요금이
올라 가지 않게 하고 일반택시인데도 요금을 내니 금전등록기 같은 것으로 영수증을
끊어 준다.  비록 조금 비싼 감은 있지만 서비스를 고려할 때 결코 비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은행에서 사용하는 돈쟁반을 이용하여 요금과 거스름돈을 주고 받음으로서 손님과
기사간의 직접적인 접촉도 하지 않게 만든다.

 

일본에는 올 때마다 택시를 보고 늘 감탄한다.  친절과 청결의 상징, 고객이
왕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해 주는 택시기사를 볼 때마다, 이런 사업을 한국에서도
하고 싶어지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가능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