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45) Nobody Knows Trouble I've Seen (흑인영가)

carmina 2015. 6. 22. 12:01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Nobody knows but Jesus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Glory Hallelujah!

 

Sometimes I am up

Sometimes I am down

Oh! Yes! Lord!

Sometimes I am almost to the ground

Oh, Yes! Lord!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Nobody knows my sorrow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Glory Hallelujah!

Oh No you see me

Going on so. Oh! Yes! Lord!

I leave my troubles here belows

Oh! Yes! Lord!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Nobody knows but Jesus

Oh!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Glory Hallelujah!

One makes all sittle, hate me so.

Oh! Yes! Lord! You see help me Lord!

But to know he has let me go

Oh, yes Lord!

 

Oh!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Glory Hallelujah!

 

 

찬송가에 이 노래가 있는데

나는 찬송가에 있는 노래를 알기 전에 이 노래를 먼저 배웠다.

 

흑인영가를 참 좋아한다.

흑인영가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가 고향인 그들이 노예사냥꾼에 의해

백인의 나라에 노예로 팔려와 온갖 노동을 하며 부르던 노래들을

통칭해서 흑인영가라 한다.

영가 (靈歌). 즉 영으로 부르는 노래다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다 하지만

그건 단지 교과서에 나오는 명언일 뿐이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상 노예가 있었던 기간이 훨씬 길다.

 

단지 검다는 이유하나로

단지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우지 못했으니 가난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백인의 노예가 되었고 그저 묵묵히 일만 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온갖 힘든 일들을 하면섣

그들에겐 소망이 있었다. 하늘나라에 가는 꿈.

저 하늘 나라에 가면 핍박 안 받고 힘들게 노동 안하고 살 수 있다는 꿈.

 

흑인영가는 흑인들에게 일종의 노동요(勞動謠)이다.

어느 나라나 다 그런 노동요가 있지만

흑인들같이 별로 배우지 못하는 이들에겐 서로 교감하며 부르는

노래가 있어 그 일들을 견뎌냈다.

천국에 소망에 대한 꿈.

 

그리고 흑인영가는 일반 백인들이 부르는 영어발음과 다르다.

귀동냥으로 배운 영어라 그들이 발음대로 부르기 상당히 어렵다.

 

누군가 선창하면 따라 부르는 후매김.

그렇게 끊임없이 노래는 이어진다.

마치 우리네 진도아리랑같이..

그러나 우리 아리랑은 푸념섞인 가사가 대부분이고

생활에 대한 가사가 대부분이지만

흑인영가는 대개 하늘을 노래했고 성경을 노래했다.

 

분명 그들은 주이란 백인주인을 따라 교회에 가더라도

교회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밖에서 찬양을 들으며

노래를 배웠을 것이다.

 

왜 성경에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 하는데

왜 자기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을것이고

백인들이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 했으니 무조건 믿었을 것이다.

아멘을 따라 해야만 주인이 이뻐했을테니..

 

그러나 백인 주인은 해보지 않은 노동이기에 그들의 고통을 모른다.

흑인들은 단지 하나님만 알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예수님만 알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힘들어 쓰러지고 주인의 채찍에 맞아 고꾸라져도

예수님만은 내 고통을 알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빨리 죽고 싶어 노래를 불렀다.

날 하늘로 데려가 달라고..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이런 흑인영가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노예 12년을 비롯하여 시스터액트, 블랙가스펠 등 무수히 많은

영화에서 들리는 간절한 흑인영가를 들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수없이 많은 흑인영가를 부르고 불렀다.'

일부러 흑인영가 노래모음을 따로 사기도 하고

씨디를 사서 듣기도 한다.

어느 가사 하나 가슴에 와닿지 않은 가사가 없으며

어느 곡 하나 그 들의 처절함이 스며들지 않은 노래가 없다.

참 신기한 것은 그들은 고통과 슬픔을 노래해도

즐거운 리듬으로 밝게 노래한다.

 

언젠가 유명한 흑인 소프라노 제시노만의 한국공연에서

맨 앞에서 그 두터운 입술로 부르는 흑인영가를 들었다.

가슴이 저미던 그 소리..

하늘의 소망은 그런 것이니까..

 

흑인들은 노래는 일반인의 박자와 다르다.

재즈리듬. 재즈는 누가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다.

그들의 걷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그들은 엉덩이뼈가 일반인들과 다르다.

아프리카에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동물보다 빨리 뛰어갈려면

골반구조가 달라야 한다. 

그들의 리듬은 자연스럽게 몸에서 흘러 나온다.

그건 아무리 백인이나 동양인들이 따라 할려고 해도 할 수 없다.

영화에서 흑인들 걷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성가대 지휘할 적에는 흑인영가를 자주 선곡했다.

그러나 옮긴 교회에서는 거의 흑인영가를 부르지 않는다.

아마 정통 클래식을 전공한 지휘자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음악적인 끼가 없으면 흑인영가의 맛깔스런 느낌을 내지 못한다.

 

천국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불렀던 흑인들의 노래들.

그래서 그 음악을 영혼이 부르는 노래라 해서 영가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