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거꾸로 걸으니 새로워 보이는 교동 다을새길

carmina 2015. 7. 21. 18:38

 

 

2015. 7. 18

 

내 페이스북을 자주 보는 이전 직장의 친구가 몇 달 전부터

나와 함께 걷기를 바라다가 한 달 전쯤에 날짜까지 정해주고

걷고 싶다 하기에 걷는 김에 합창단 사람들도 초대했지만 아무도

선듯 나서지 않아 친구만 둘이 참석한 교동 다을새길.

 

원래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걸으면 식사 때문에

코스 정하기가 쉽지 않아 점심이 가능하고 그다지 힘들지 않은

5코스 고비고갯길을 정해 강화 시외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토요도보 리더를 우연히 만나 5코스보다는 오늘 교동도보에 꽃게조림을

특별히 준비해 놓았으니 같이 가자고 권유하니 친구도 솔깃하여

코스를 변경해 버렸다.

 

친구의 동료가 가지고 차를 타고 교동으로 들어가는데

해병대 장교 출신인 친구가 교동 검문소를 지키는 해병대원을 보더니

무척 반가와 하며 새까만 후배의 기수를 묻는다.

 

자동차 네비로 월선포 선착장을 찍고 가다 보니 선착장 근처의

엉뚱한 마을길로 들어가 버려  GPS도 이런 오류가 있음을 알았다.

 

핑계김이 나들길 친구들과 걷는 교동 다을새길.

이전에는 늘 순방향으로 걸었는데 이번엔 역방향으로 걷는단다.

 

해안가로 가기 위해 작은 언덕을 넘으니 풀 숲에 산딸기들이 주렁 주렁.

길을 멈추고 입안에서 터지는 산딸기의 달콤한 맛에 빠져 버렸다

해안가를 끼고 걷기 시작하는데 원래 이 곳에 갈대가 무성했는데

도보여행자들을 위한 지나친 배려인지

아니면 야간경계를 서는 초소근무자를 위한 배려인지 몰라도

무성했던 갈대를 다 베어버려 갈대숲길을 걷는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도 이 무더운 여름에 바다 건너편 보이는 석모도의 상주산을 넘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너무 좋다.

답답한 도심 속 아파트를 떠나 오는 것이 이리도 좋은 것을...

 

올초부터 지난 주 까지 극심했던 몇 십년만의 가뭄으로

온 산하의 논과 저수지의 땅이 다 쩍쩍 갈라졌는데

특히 강화도는 가뭄이 더 심하여 대통령이 직접 이 곳까지 와서

소방호스로 물을 주는 모습을 방영하는 TV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비록 여름이 지나도 가뭄이 지속되긴 했지만, 아마 올 가을에도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풍이 들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해마다 가뭄때문에 고민하고 철이른 장마때문에 고민해도

가을이면 늘 그렇게 풍년이라 하고 농악대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인기척에 놀랐던지 작은 저수지 건너편에 숨어있던 고라니 한 마리가

쏜살같이 숲에서 빠져나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긴 뚝길을 가는데 잠자리들의 무리가 마치 하루살이처럼 무수하게

내 앞을 날라가고 있다. 흥얼거리는 내 열린 입속으로 혹시 잠자리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이제 햇빛이 조금 더 강해지면 잠자리들의 꼬리가 빨갛게 물들 것이다.

슬픔 고민없는 계절은 어김없이 때가 되면 올 것이다.

 

갈매기 한 마리가 쉬고 있는 물빠진 갯벌 위에는

작은 칠게들이 정중동의 아침을 맞고 있다.

 

아직 태양이 뜨겁지 않을 때 그늘 없는 곳을 걸어야 편하다는

리더의 판단이 고맙기만 하다.

 

긴 뚝길 끝에 정자가 있는 곳에서 그늘 속에 잠시 쉬자고 발길을 재촉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정자를 어느 가족이 차지한 채 누워 자고 있어

길벗들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며 대충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

 

뚝길 끝에 누군가 버린 고구마가 큰 무덤같이 버려져 있다.

저걸 왜 버렸을까? 저런 것을 보면 몇 년 전 읽은 책이 생각난다.

전세계에 기아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먹을 것이 부족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전세계 통계로 볼 때

식량은 남아 돌지만 식량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굶어 죽는다는 통계가 있다.

저렇게 버려지는 고구마들이 제대로 처리된다면

아마 세상의 고통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뚝길을 지나면서부터 내 기억이 사라져버렸다.

분명 이 길을 여러번 온 곳인데도 역으로 걸으니 전혀 새로운 곳같이 보인다.

왜 이리 낯설을까?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사물을 잘 보고 다니는 편인데

숲하나 나무하나 집하나 모두 낯설다. 계절이 바뀌니 달리 보일 수도 있지만

주위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새로워 보이니 눈이 참 간사한 것 같다.

 

옥수수가 조금씩 가운데가 부풀어 가며 익어가고,

밤송이들의 가시가 아직 여리고, 감들이 대추 크기만큼 열려 있고,

호박은 주먹만하고 고추는 발갛게 불타고 있다.

금국화가 철이 지난 듯 시들어가며, 해당화가 곱게 피어 있고

올해가 광복70주년인 줄 아는 듯 무궁화가 돌담위에 가득하며

아직 철모르는 아카시아의 흰 꽃이 듬성듬성 나있고  

그 많던 오디는 누가 다 따 먹었는지 나뭇잎 뒤에

까맣게 익은 것이 겨우 하나가 있어 따 먹어보니 제철맛이 아니다.

 

원래 걷는 길이 아닌데 볼거리가 있다며 주민의 양해를 구하고 접어든 과수원밭길에는

커다란 닭들이 나무들 사이를 마음껏 뛰어 다니고 있다. 갑자기 군침이 돈다.

 

밭둑 건너편에 300년 먹은 느티나무가 밭 한가운데 거대하게 뿌리박고 있다.

너도 나도 사진 찍어 주고 나도 찍어 본다고 내 카메라를 주고 받고 하다가

카메라 줄이 목에 걸려 있는 줄 알고 카메라를 놓았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는 카메라의 촛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제껏 고장없던 카메라인데 아쉽게도 배낭에 집어 넣어야만 했다.

 

연산군 적거지로 불리우는 유배지였던 곳에 오랜 역사만큼이나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보니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철망으로 가려져 있는 우물 한 가운데

저절로 자란 것인지 박아 놓은지 분간이 안되는

커다란 고목이 있어 바닥 보기가 더 힘들다.

 

같이 걷는 친구는 리더가 얘기해 주는 강화의 역사에 폭 빠져 있다.

이제껏 등산만 즐겼던 그가 이런 트레킹이 처음인지 자주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이 곳에 꼭 같이 와보고 싶다며 프로포즈를 하고 있다.

 

교동읍성이 돌로 쌓은 성문이 몇 년 전 보았을 때는 윗부분이 무너져

보기 흉했었는데 그간 보수를 해 놓았는데 말끔해 보이지만

지금 현재로는 기운 옷을 입은 것같이 바위 색이 다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20년 지나 이끼가 가득해지고 비와 풍상을 같이 맞으면

사람들이 보수했다는 것을 알아 채지 못할 것이다.

힘들고 낯설었던 삶은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 갈 것이다.  

 

교동읍성에서 나와 남산포로 향하는 넓은 길을 걸으니 바람이 시원하다.

언제나 한적한 길.

가끔 마을 사람들만 천천히 걷는 이 길은 어부들이 작업 후 말리기 위해

널어 놓은 젖은 그물만 가득하다.

 

읍성을 나와 벌판길을 걸어 남산포로 향했다.

교동대교로 연결되어지기 전에는 늘 썰렁하고 가끔 낚싯군만 보이던 남산포에

간이로 만든 듯한 음식점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발 빠른 상술. 왜 그런 것에 난 익숙치 못할까?

몇 명이 낚시질을 하고 넓은 마당에서는 각종 강화의 토종 해산물들을 팔고 있다.

특히 새우는 전국 어획량의 80%가 강화에서 잡힌다니 가을이면 김장용 새우냄새가

강화 온 땅에 가득 퍼진다.

안보이던 길거리 메뉴가 생겼다. 게튀김. 게도 튀김으로 먹나?

그럼 껍질까지 모두 씹어 먹어? 맛은 어떨까? 오늘은 패스

 

오늘 점심은 꽃게조림으로 준비했단다.

우리를 위해 이미 식당내 평상에 자리를 마련해 놓았고

먹음직한 간장게장과 새우 그리고 나물들이 밑반찬이다.

밑반찬만 먹어도 행복할텐데 커다란 냄비에 나온 새빨간 꽃게조림은

게가 통째로 요리되어 나왔기에 가위로 반을 자르니 알이 가득하다.

금액에 비해서 고급요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맛은 있으나 소스에 이것 저것 채소를 넣어 양념을 했다면 밥을 비벼 먹기도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밥을 먹어도 매운 소스국물밖에 없어 조금 불편했다.

꽃게조림보다 내겐 밑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이 더 맛있었고

그 가격만으로도 충분히 점심값을 지불할 만 했다.

 

식사 후 식당에서 일하는 분에게 국물 얘기를 했더니

그거 없이도 장사 잘 된다며 사장님께 이야기해도 안 들어 줄것이라 한다.

식당 내 외부에 최불암씨가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에 이 곳 식당이 방영된 듯

여기 저기 사진이 붙어 있다.

촬영 후 방송국에서 사진 만들어 주는 것도 많은 금액을 내야 한다.

간장게장이 맛있어 너도 나도 한통씩 사서 우리가 다 걸으면 도착하는 월선포에

시간맞추어 가지고 나오기로 했다.

 

조용하던 남산포 입구에 허름하고 폐가로 있던 집들이 하나 둘씩 새로 건축되고 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오래 전 부터 이 곳에 폐가라도 하나 사두고 싶었는데

벌써 다른 사람이 선수쳤네..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집 한 채 살 수 있건만 아직 마음이 부족한건지..

 

남산포를 나와 조용한 마을 길을 지나 대륭마을로 들어섰다.

공중파 TV프로그램에서 이 곳을 쵤영해 간 후

이제는 이 곳이 유명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골목에 가득하다.

교동대교가 서기 전까지는 이 곳을 지나면 졸거나 한가로히 얘기를 나누시고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밖에 없었는데 이젠 주민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호객한다.

없던 가게가 생기고 보이지 않던 예쁜 상품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원치 않을텐데...

 

문든 내 눈에 이전에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였다.

골목 안으로 휘익 날라가는 것이 제비. 그것도 여러마리가..

그리고 집집마다 처마 밑을 보니 제비집들이 있고

여러마리의 새끼들이 꼼지락 거리며 때로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얼마만에 보는 풍경인지..

굳이 처마밑을 보지 않아도 담벼락 밑에 제비똥이 있으면 여지없이 그곳에

새끼제비들이 입을 작은 집안에 서너마리식 보인다.

 

가까이 사진촬영하지 말라 달라는 경고문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들이 너무 신기한지 삼삼오오 몰려 있다.

하긴 서울이나 인근 위성도시에서 제비가 사라진지 하세월이니

애들은 이런 모습 보기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저런 군것질거리도 많지만 배가 부르니 통과.

 

화개산으로 가는 길 옆에 커다란 상설장이 생겼다.

넓은 주차장과 지난 번에는 안 보이던 가건물까지 생기고

보기 좋은 화장실도 생겼다. 

마을이 변하고 있다. 곧 이 곳도 여느 명승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리라.

 

화개산으로 올라가는 하천도 큰 공사중이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것같은 조선시대 돌한증막 주위에 포크레인이 동원되어

계곡을 정비하고 있다. 그냥 두면 돌한증막이 사라져 버릴까?

화개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천화문(天華門) 이름표도 새 것으로 만든 것 같다.

산 저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라 힘들었는데

이 쪽은 경사가 완만해서인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산위에 오르니 파란 벼가 넓게 자라고 있는 벌판 뒤의 북한땅이 바로 지척에 보인다.

날씨가 조금 흐려서인지 비록 시야가 깨끗하지는 않지만

썰물때 인지라 북한까지 이어지는 바다가 거의 갯벌만 보인다.

뛰어서 가면 몇 십분 정도 걸릴 거리.

 

빗방울이 떨어진다.

화개산 정자에 앉아 잠시 쉬는데 빗방울이 굵어진다.

서둘러 하산했다. 가빠른 바위길을 내려가고

나무가 울창한 산길을 내려갔다.

길가의 주위에 수풀이 우거져 꼭 남미의 정글같다.

 

산입구의 인적없는 화개사도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싸릿문이 입구마다

세워져 있고 걷는 통로도 만들어 일반인이 들어가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

 

화개사에서 교동향교로 가는 숲길도 이전에 이렇게 넓은 숲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거의 차가 다닐 정도로 길이 넓어졌다. 왜 이렇게 편하게 만들어 진 것들이

마음을 거스리게 할까.  나만이 즐길려하는 독선인가?

 

공자의 사당을 모셔 놓은 교동향교에 들어서면서 더욱 놀라운 풍경.

그저 숲속의 작은 향교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 대규모 공사를 하고 있다. 향교를 새로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큰 유적지를 만드는것인지, 주변이 공사중이고 향교도

빛바랜 건축물들을 윤이 반들걸리는 새로운 나무로 치장하고 있다.

길을 걷다 향교로 들어가는 숲길에 잡초가 우거져 겨우 헤치고 걸었었는데

이젠 공사하느라 흙에 빠져 걷기조차 불편하다.

얼른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

 

숲을 빠져 나와 도로에 들어서면서 다신 산딸기들이 보이고

멀리 선착장이 눈에 들어 온다.

이전에는 뱃시간에 맞추어 나가느라고 때론 뛰기까지 했다 하는데

이젠 여유가 생겼다.

 

마을 입구에 귀신이 나올것 같은 허물어 진 교회를 보면서

자꾸 무언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외국처럼 저런 곳에서 락콘서트를 하면 어떨까?

 

이 곳 동네에 내가 늘 가지고 싶은 집이 한 채 있다.

작은 툇마루가 있는 오래된 양철집.

마루에 앉아 기둥에 기대어 졸면서 해바라기를 하고 싶은 곳.

 

점심시간까지 포함해서 꼬박 6시간을 걸었다.

 

뿌듯한 하루.

아까 점심 식당에서 사놓은 간장게장을 받아 들고 친구의 동료차로

교동을 빠져나오다가 친구가 이전에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을 찾아가고 싶다며

내게 시간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강화대교를 지나 물어 물어 부대를 찾아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것을 새삼 느낀다.

거의 한 시간 넘게 헤매다가 부대를 찾고 부대안에 민간인들이 사는 곳을

돌아보는 친구의 마음은 이미 30년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해도 해도 재미있는 군대 이야기.

걸어도 걸어도 즐거운 강화 나들길..

 

친구도 나도 오늘은 무척이나 즐거운 날이었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