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도 진강산 등반

carmina 2015. 8. 2. 23:01

 

 

20115. 8. 1

 

토요일에 아내가 아이들과 강화도 나들길을 가고싶어 했다.

금요일 뉴스를 보니 토요일에 비소식이 있다.

비오니 식구들은 당연히 포기한다 했다.

그럼 비오면 나 혼자 간다했다.

 

토요일 비소식이 있었다.

등산샌들을 신었다.

오늘 비 좀 맞아 볼까?

비를 맞으며 걷는 즐거움을 가족들이 알기나 할까?

 

강화도로 향하는 버스의 창가에 빗방울이 튄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은 나들길을 걷지 않고 진강산을 간다 했다.

강화도에 몇 개의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중 하나다.

그리고 진강산은 강화에서도 등산하기 조금 어려운 산이라 했다.

진짜 강한 산이라고..

 

처음에는 진강산 숲길이라 해서 이 더운 날에 설마 산에 올라갈까 했는데

리더는 산에 간단다.  오늘 땀 좀 흘리겠네.

 

가릉으로 올라가는 길에 길 옆의 꽃들에 눈길이 간다.

노란 나리꽃, 보랏빛의 도라지꽃, 작은 꽃사과와

농약을 치지 않아 못생긴 토마토와 복숭아 그리고

아직 여물지 않고 떨어진 작은 밤송이를 보며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요즘 도심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능소화가 아름다우며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작은 코스모스와 길가의 썩은 나무 가지에

피는 하얀 꽃 같은 버섯들 그리고 개암들이 익어가며  

국적이 불확실한 커다란 백합꽃 모양의 꽃이 눈길을 끈다.

 

우선 3코스를 역으로 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늘 마음에 드는 숲이 좋은 이 길

여름 폭염에 뜨거운 태양빛이 이 곳에서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얼마전 큰 비가 내리더니 길가의 언덕 밑 부분이 흙이 무너져 내려

큰 나무들의 뿌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간신히 뿌리를 버티고 있다.

 

진강산 길목의 정자에 며칠 전 누군가 벌집이 있다고 신고해서인지

가까이 가지 못하겠다.

 

쭉쭉 하늘로 뻗은 나무 숲 사이로 뻗은 곧은 숲길.

이런 길을 아침에 뒷짐지고 천천히 산책하는 날들이 매일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숲 속에 오래 전에 설치해 놓은 듯한 나들길 이정표가

마치 고목처럼 천천히 썩어가고 있다. 아마 얼마 후에는

이런 흉물들도 숲 사이에 섞여져 버려 사라지겠지.

 

숲 속 어디서든지 버섯이 눈에 뜨인다.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구분 할 줄 아는 상식이 있다면

아마 오늘 내 배낭속은 완전히 버섯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오늘 산길은 완전히 버섯의 천국이다.

눈에 띄게 하얀 버섯, 낙엽속에 핀 낙엽빛의 버섯

노란 물감을 쏟아 놓은 것도 있고, 주홍 색 그리고 검은 빛도 있다.

 

늘 가던 길에 새롭게 보이는 작은 집. 언제 저렇게 지었을까?

난 아무래도 노년에 강화에 와서 살아야 할까 보다.

저런 집들을 보면 자꾸 욕심이 생긴다.

 

길을 걷다가 리더가 진강산 올라가는 길이 여러 코스가 있는데

제일 힘든 코스가 가파른 언덕길이 있다 하니

한 길벗이 그 길을 택하고 싶다며 혼자 떠났고

나머지 일행은 조금 편하다는 길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

 

숲길을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 곳 어디엔가 계곡이 있는 듯 하다.

숲 사이 저편 계곡에서 놀던 아이와 눈이 마주쳐 눈빛으로 인사하고

숲길로 천천히 올라가는데 며칠 전 내린 비로

산으로 올라가는 언덕 길에 돌들이 모두 흙위로 드러나 있다.

 

날씨도 폭염인데 아직 숲에는 습기가 가득 차 있어

걷는 기분이 다른 날과 다르게 마음도 몸도 불편하다.

지난 2달간 다이어트를 위해 먹는 것을 늘 부실하게 먹고

직장에서도 거의 종일토록 자리에 앉아 일을 하다가

일어나면 약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내 컨디션이 오늘 말이 아닌데

오늘 산행은 아무래도 다른 날보다 더 힘이 들 것 같다.

 

바람한 점 불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도 우거진 숲과 나무로 바람이 들어올 틈이 없을 것 같다.

허리만큼이나 자란 잡초와 밟으면 바위조차 물이 나올것 같은 습한 대지가

더 답답하게 한다.

 

그리고 산을 오르면 어느 정도는 언덕과 평지가 번갈아 가며 있어야

힘이 덜드는데 이 길은 계속 위로만 치닫는다. 잠시 쉬고 싶어도 바위조차

물에 젖어 있어 망설이다가 워낙 힘이 드니 물이 있건 없건 바위에 주저 않아 쉬었다.

 

날씨가 좋다면 그다지 힘들지 않을텐데 내가 엄살을 부리는 건가?

길가 숲의 낙엽들 있는 곳엔 낙엽이 많아 새로운 싹도 나지 않을 정도이고

길도 작은 골에 쌓인 낙엽이 마치 폭설왔을 때 눈에 발이 빠지는 깊이다.

 

멀리서 먼저 올라간 일행들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이 보인다. 이제 다 왔네..

산은 늘 그렇게 내가 도저히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정상에 도달하는 것 같다. 그러니 언제나 포기하지 말자.

 

진강산 겨우 443m의높이이건만 아기 자기하지 않은 코스로 애를 좀 먹었다.

멀리 보이는 강화도 양도면의 벌판에 비안개에 쌓여 희미하게 보인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강화도의 간척지모습을 환하게 볼 수 있다.

낮은 산과 산사이의 벌판은 모두 오래 전에 기계의 도움없이

사람의 손으로 간척한 곳이다.

 

가지고 온 도시락을 정상의 좁은 공간에서 나누어 먹는데

우리가 걸어 온 길에서 언젠가 같이 나들길을 걸었던 키큰 남자가 홀로 올라와

잠깐 인사 후 먼저 우리가 갈 길을 가다가 도로 돌아왔다.

길에 이끼가 너무 많다고..

혹시 우리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건 아닐까?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와 맞은 편 헬기착륙장이 있는 낮은 봉우리를 향해 가면서

경사가 심해 이 길로 올아오지 않길 천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마 이 급경사로 왔다면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 길은 밧줄이 있으니 조금 편할 것도 같았고..

 

건너편 산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은 거의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길이 없을 정도로

겨우 사람하나 지나갈 정도의 폭에 불과하다

길만 나 있을 뿐 양 쪽의 숲들어 우거져 헤치고 걷지 않으면 걷기 힘들 정도이다.

길 옆 작은 빨간 앵두같은 나무에 열매를 따서 입에 넣어 보니 떫어서 먹다 뱉었는데

어떤 열매는 새들이 파먹다 말은 듯 여기 저기 부리로 쪼아 댄 자국이 보인다.

 

혹시 이렇게 한 참 내려가다가 건너편 헬기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또 땀을

많이 흘려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하게도 진강산의 중간쯤에서

거의 평지처럼 되어 있어 헬기장에 도착하니 바람이 분다.

바람 한 점이 이리도 고마운 것을 새삼 느껴본다.

 

비가 올 것 같아 얼른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길이 내려가는 길도 정말 길다.

그것도 거의 45도 정도 되는 흙길을 오래 내려가는데 넘어질까봐 조심스러웠다.

이 코스도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그렇게 한 참을 내려오고서야 제대로 된 임도를 만났다.

차 한대가 지나갈 정도의 넓은 길에 부드러운 흙을 밟는 기분이 좋다.

양 쪽에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고 보이는 곳 여기 저기 수없이 많은

야생 버섯들이 온갖 모습을 내 카메라를 유혹하고 있다.

 

계속되는 비탈길로 다리에 서서히 무리가 갈 정도의 통증을 느낄 때 쯤

짚시 펜션이라는 팻말이 보이는 세멘트 길이 나타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이제 완전히 산을 넘어 왔다.

 

이 곳 삼흥리의 마을은 내가 이제껏 보아 온 강화도의 마을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고급 주택들이 많고 집집마다 각종 유실수들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포도와 참외와 복숭아 감나무 등등..

몇 개의 집들은 내가 노후에 살고 싶은 집같아 탐이 나서 눈독을 들였다.

 

길 끝에 오래된 삼흥리 교회라 부르는 성당이 있다.

성당 앞에 진교각이라 써 붙인 범종이 있는데

20년전 쯤에 어느 분이 순직한 교사 부인을 위해 범종을 희사했다 한다.

그런데 종의 망루에 붙어 있는 진교각이름에는 한자가 참 '眞' 가르칠 '敎'로 되어 있는데

안내문에는 한문이 진압할 '鎭' 가르칠 '敎'로 서로 달라 이런 오류를

아내의 뜻을 기리고자 범종을 희사한 남편이 후에 알았다면 진노했을 것같은 생각이 든다.

 

성당 옆 길 가에 앉아 등산화를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니

더위에 얼음물 마시는 것처럼 시원하다.

그런데...이제 마실 물도 다 떨어졌다.

이렇게라도 더위를 식힐 수 있으니 다행이다.

 

멀리 오늘 올랐던 진강산을 바라보니 정상부근에 비구름으로 모자를 썼다.

늘 이런 즐거움으로 산을 오르는 것 같다.

 

이 곳은 강화의 외진 곳이라 그런지 땅도 넓어 큰 농장에 각종 가축을 키우고 있다.

많은 닭을 방목하여 키우고 이제껏 강화도를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돼지를 키우는 것을 못 보았는데 여기서 커다란 돼지를 보았다.

 

산 밑에 내려오고서도 한 참을 걸었는데 오늘은 겨우 10km 정도 밖에 안 걸었다며

길벗이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하긴 산길을 걸었으니 그 정도일것이고

만약 오늘 흘린 땀으로 계산하면 거의 20km 정도 넘는 다른 길을 걸은 셈이 될 것이다.

 

어쨋거나 오늘도 힘들었지만 대 만족이다.

비오면 우후죽순 보이는 버섯들처럼

나도 언제부터인가 비가 오면 가슴이 설레고

그 날은 배낭을 싸들고 숲으로 들어가고픈 걷기 본능이 생겼다.

 

종일 온갖 종류의 야생버섯의 사열을 받으며 걸었던 진강산 숲길.

눈이 많이 온 날 또 한 번 걷고 싶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