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산딸기 물들고, 오디 물들었던 날

carmina 2015. 6. 6. 22:12

 

 

2015. 6. 6

 

 

현충일.

그러나 오늘은 슬픈 일들이 겹치기로 모여 있는 날이다.

오랜 가뭄이 들어 강화의 저수지들이 바닥이 들어났고

어느 날 갑자기 치료약도 없는 메르스 전염병이 퍼지고 있어 온 나라를 불안케 하고 있다.

서로를 불신케 하고,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지는 날이다.

 

평소같으면 강화나들길을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타면 되지만

오늘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내와 타협하여

군중에 섞이지 않도록 내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초지대교를 넘어 강화에 들어서니 불안감이 모두 환희로 변한다.

언제 이렇게 강화도의 도로들을 꽃길로 만들어 놓았을까?

온통 노란색 금계국이 도로 주변에 가득하여 노란색 길이 되어 버렸다.

필경 저절로 자란 꽃이 아닐것이니 도청에서 특별히 신경을 쓴 것 같다 기분 좋다.

그리고 바야흐로 장미의 계절.

집집마다 담장에, 그리고 낮은 축대에 장미를 심어 놓아

초록색 바탕에 빨간색 길이 되어 버렸다.

마을 길 마다 엉겅퀴들이 가득해 보랏빛 길이 되어 버렸다.

쑥부쟁이들, 망초들, 찔레꽃, 초롱꽃, 수국들, 산철쭉들로 온통 하얀색 길이 되어 버렸다.

그 사이들을 노랑나비, 흰나비들이 쌍쌍이 어울려 다닌다.

 

늘 모이는 길 벗들.

휴일을 보낼 수 있는 그 어느 재미보다 걷기재미에 빠진 사람들.

오늘 코스가 어떻고 힘든지 길이가 긴지 두말 할 필요없다.

그 중 성장한 딸과 딸의 친구가 함께 온 엄마가 있어 보기 좋다.

 

약 13명이 5코스 고비고갯길로 출발.

더우니 세멘트 길은 건너띄고 숲길부터 걷는다.

걸으며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지

앞장서 걷는 내 뒤로 계속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길벗들과 5년동안 걸으며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린 적이 없다.

크게 소리 내어 본 적도 없으며, 화를 낸 적도 없다.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강변한 적도 없고

불편하게 하는 이들에게 다그친 적도 없다.

단지 오래전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던 몰지각한 사람외에는..

 

오랜 가뭄에 숲속 흙길이 걸을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린다.

일부러 앞 사람과 거리를 두어 걸어야 한다.

걷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먼지를 내고 있는지 모르니까..

 

숲속으로 들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대열이 흩어져 버렸다 

상체를 곧게 피고 걷던 이들이 모두 꼬부랑 허리가 되어 버렸다.

모두 숲속에 머리를 박고 덤불들 사이에서 고혹적인 빨간 색깔의

산딸기에 빠져 버렸다.

건드리면 빨간 물이 톡 터지는 산딸기를 조심스럽게 두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니 단 맛이 입 안에서 톡톡 터진다.

지금 이 시기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산딸기.

먹을 만큼 먹고 앞장을 서서 가는데 뒤에서 따라 오지 않는다.

모두 허리를 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걸음이 느려진다. 조금 걷다가 산딸기가 보일 때마다 발길을 멈추고 있다.

그러면 어떠랴. 이 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산딸기에만 빠져 있다가 다시 길가에 까맣게 잘 익은 오디나무 열매에

또 다시 빠져 버렸다.

오디를 딸 때마다 손가락이 빨갛게 물들고 입 주위에 저절로

자연스러운 빨간 루즈를 발라야 했다. 거기에 버찌까지... 

오늘은 도대체 걷는 날인가? 먹는 날인가?

 

어쩌면 이렇게 산딸기가 온 산에 지천에 가득할까?

그러나 산딸기와 뱀딸기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아는 사람은 알지어다.

 

길가의 소들이 날씨가 더워서인지 축사에 푹 퍼져 앉아 있기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슬며시 피한다. 죄를 지었나?

멀리 당나귀 한마리가 경계심을 가득 가지고 바라보고 있고

낯익은 백구들이 꼬리치고 소리치며

산까치와 까마귀들이 구석 구석 나를 반긴다.

 

지난 달에 길가에 조립식 작은 가옥이 있었는데 사라지고 없어 이상하다 했더니

위치를 바꾸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저런 집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상리 고인돌유적지 옆에 있던 나들길 스탬프찍는 박스 안에

지난 달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었었는데 오늘 보니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누구일까? 절대 새가 그냥 날라간 흔적이 아니다

분명 사람 손이 거쳐간 것이 틀림없다.

 

숲을 벗어나 바닥을 들어 낸 내가저수지를 보며 모두 안타까워 한다.

물이 있어야 할 곳에 풀만 가득하다.

고기들이 물가에 배를 들어내고 죽어 있고

구석에 물이 조금 남아 있는곳에서는 오리들이 모두 코를 박고

물 속에서 살려고 바둥거리는 고기들을 거의 줏어먹다시피 먹고 있는 듯하다.

 

봄봄이라는 한국화가가 경영하는 카페테리아 겸 식당에서 맛있는 부페로 점심을 하고

리더는 조금 높은 곳으로 코스를 변경하고자 하지만 모두 오늘은

걷기 본능이 사라져서인지 높은 곳을 싫다 한다.

그래도 제 코스인 일반 세멘트 도로가 아닌 숲길을 택해

이 곳 강화도에 살지 않으면 절대로 알지 못할 숲속 오솔길로 

얼크러 설크러 자란 무수한 나무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며 즐거워했다.

 

일부 인원은 힘들어도 가보지 않은 덕산정상을 향해 가고

우린 다시 룰루 랄라 덕산휴양림으로 들어가 걷고 쉬고..

 

날씨가 덥고 좋다보니 강화에 온통 캠핑족들이 덮고 있다.

숲속에 자리깔고 노는 가족들, 바닷가에 텐트치고 단체로 즐기고 있고

싸이클을 즐기는 사람들,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

 

걸으며 몸에 좋다는 야생 개복숭아와 매실을 참 많이 보았다

내일은 모레는 숨죽어야 하는 날이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는 뿌듯하고

즐거웁고 보람차고 집으로 가지고 온 여러가지 강화의 수확물들로 사랑받는 날이었다.

 

내가리 성당 꼭대기에 성모마리아 상이 큰 하얀 손을 벌리고

오늘 내가 너를 사랑했노라 하며 이야기하는 것 같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