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벼락과 천둥, 단비 맞은 별악봉

carmina 2015. 6. 20. 21:22

 

 

2015. 6. 20

 

올해 가뭄은 그야말로 아이들도 걱정할 정도로 심각했다.

몇 주간 나들길 다녀온 사람들은 말라붙어 거북이등이 되어버린

강화도의 저수지들을 보고 걱정을 넘어 안타까워 할 정도였다.

모든 사람들이 비 좀 왔으면 하는 바램은 비단 농사짓는 사람들 마음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이면 요즈음 크게 두가지 바램이 있는데

하나는 비 좀 와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메르스 전염병이 빨리 물러 가길 바라는 마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통된 소망이었다.

 

토요일 비가 온다는 뉴스는 틀리지 않았다.

어느 지방에 국한되어 비온다 했으면 뉴스와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전국이 비온다는 뉴스는 믿을만 했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보니 날씨는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강화도에 접근할 때 쯤 갑자기 기사아저씨가 중얼거린다.

강화에 비가 와요. 강화에 비가 와요.

 

어디선가 멀리서 천둥이 치고

비가 조금씩 강화시외버스 터미널 마당에 흩뿌릴 때 쯤

이전에는 이 곳에 수없이 보이던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오늘은 거의 우리 일행밖에 안보이고

우린 막 출고된 듯한 버스를 타고 강화도의 최북단으로 달려 갔다.

오늘 코스는 나들길 정규코스가 아니고

강화지맥의 맨 꼭대기에 민통선 지역에 있는 별악봉에서 성덕산까지 걷는다.

이전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을 보니 숲길이 너무 좋다.

 

강화지맥은 강화도를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산봉우리들로

별악봉, 성덕산, 봉천산, 고려산, 혈구산, 덕정산, 진강산까지

이어지다가 서쪽으로 마니산으로 동쪽으로는 길상산으로 이어진다.

그 중 마니산이 472m로 제일 높고 다음에 강회지맥의 중간에 있는

466m의 혈구산이다. 

 

빗방울이 거세어지고 번개가 치고 벼락이 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거센 비를 맞아야 하니

내리기 전부터 우린 모두 우비를 갖춰 입고 인적 뜸한 곳에 내리니

빗방울이 아스팔트에 우유선전하듯이 왕관현상을 내며 떨어지고 있고

잠시도 길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마구 쏟아진다.

 

배낭은 배낭 밑바닥에 있는 배낭포로 감쌓았고

우비는 일회용 비닐 우비를 챙겨 입었다

이 정도면 될 줄 알았었다.

그러나 비가 너무 거세 배낭 속의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안난다.

오늘은 사진 찍는 것 포기.

 

아스팔트 도로를 한참 올라가다가 숲으로 들어가니

숲속 길 언덕에 흐르고 있는 물등이 웅덩이를 만들어

거의 돌계단처럼 이어져 있다.

조심스레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데 앞서 가던 사람들이

무엇인지 수풀 속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큰 두꺼비 한마리가 우리의 인적때문에 숲속으로 피해 들어가는데

가만히 보니 왼쪽 뒷다리가 뭉개어져 있어 힘차게 도망가지 못하고 있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비가 와서 그런지 숲 냄새에 가득하다.

멀리 전방에 보이는 나무들은 운무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고

그 운무속에서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 나올 것만 같다.

 

별악봉은 높이 167m의 그다지 높지 않은 봉우리라 어렵지 않게 산을 오른다.

이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나무들도

거의 자연의 모습대로 구비 구비 동서남북으로 자라고 있다.

 

눈꼴사나운 것은 이 곳에 인적이 뜸하니 길 옆 숲속에 냉장고들이 버려져 있다.

슬며시 버린 양심들이 숲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등산화사이로 들어오는 빗물을 막기 위해 비닐로 조치했는데도

신발이 젖어 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나들이 토요모임을 처음 참가했던 5년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계속 걸을 것이냐 말 것이냐고를 놓고 의견을 나누기도 했는데

그 이후 빗속을 걷는 즐거움을 알아 비가 온다해도 나들길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단지 오늘 조금 걱정되는 것은 번개가 치고 있으니

길벗들의 배낭에 있는 스틱이 문제가 될까봐 보니

모두 스틱의 뾰족한 쇠부분을 아래로 해놓아 마음이 놓였다.

스틱을 빼서 사용하는 이도 가능한 스틱을 하늘로 향하지 않게 했다.

 

얼마 전에 산 챙이 넓은 등산모가 고어텍스라 그런지

비를 맞아도 머리가 젖지 않는다. 확실히 비싼건 가치가 있다.

내가 평소 등산시 머리에서 땀이 많이 흘러

뙤약볕 아래서도 모자 없이 머리 밴드를 해야 하는데 이 모자를 쓴 뒤로

밴드없이도 모자만으로 충분히 땀을 방출할 수 있어 좋다.

 

비를 맞아도 이 비가 길 옆의 나무들과 갈라진 논밭에 커다란 생명수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모두 기분이 좋다.

하긴 이제껏 비를 맞고 걸어도 비가 싫다고 하는 이는 본 적이 없다.

 

경사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언덕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별악봉의 정상인 듯 시야가 탁 트인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물이 그다지 차지 않은 저수지가 보이고

건너편 산에서는 불이 난것처럼 운무가 가득해 천천히 안개가 피어 오르고 있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그다지 높지 않은데도 우리 발아래 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이 맛에 산을 오를까?

 

산을 내려와 성덕산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트레커들의 천국같이

약 3m 폭의 숲길 양 옆으로 나무들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치솟아 있다.

모든 길을 걷는 이들이 이런 길을 걷기 원한다.

적당히 잡풀이 섞인 흙은 부드럽고 나무는 울창하고, 

나뭇잎이 햇빛을 가리워 주는 이상적인 길.

오늘은 이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앉아서 쉴 곳이 없으니 리딩하는 이가 놀랄 정도로 걷는 속도가 빠르다.

걷는 코스 내내 식당이 없기에 도시락을 준비한 오늘.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마침 야외 탁자가 있기에 먹을 것들은

우산 아래 모아 놓고 모두 비를 맞아가며 식사를 즐겨도 즐겁다.

 

오늘 처음 참석한 이가 깜짝놀랄만한 간식을 가지고 올라왔다.

수박 한 덩어리.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래 저래 오늘은 우리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즐거운 날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환상적인 숲길은 이어진다.

멀리 보이는 푸르게 솟은 커다란 나무가 운무에 쌓여 모든 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비가 너무 많이 와 인근에 동굴이 있다는데 오늘은 그냥 진행하기로 하고

성덕산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에 밧줄외에  바닥에 미끄럼 방지 발판을 깔아놓아

이 발판이 없으면 걷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

 

성덕산 언덕을 다 오르고 내려가는 길.

이제 빗물이 흐르는 길을따라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발을 딛기가 여의치 않다.

길 옆의 낙엽을 밟아 보지만 낙엽이 이미 축축해 신발마저 축축해 진다.

오늘은 어쩔 수 없다. 무엇이던지 젖는 것에 개의치 말자.

그래도 가능한 물 속에 발을 넣기는 힘들어 요리 조리 피하다가 그만 미끄러져 꽈당.

그래도 빗물하고 섞여서 바지는 그다지 지저분해지지 않았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어느 덧 마을이 보인다.

오늘 걷기 끝.

어떤 이는 폭 젖은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아스팔트를 걷는다.

마침 반대편에서 오는 순환버스를 타고 기사아저씨한테 양해를 구하고

젖은 옷 그대로 의자에 앉는다.

 

그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강화의 별미인 벤댕이회와 구이 그리고 무침으로

한바탕 웃고 오는 길에 비가 쏟아지고 있다.

차창가에 보이는 강화벌판에 할머니가 나와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너른 밭에 쪼그리고 앉아 아름다운  한 점이 되어 있다.

 

비가 온다.

올려면 그간 밀렸으니 몇 날 며칠 와라.

갈라진 논밭에 골골이 채우고, 저수지에 물고기가 뛰어 놀도록 가득 채워라.

도시 사람들은 비록 얼마나 가물었는지 금방 잊지만

농촌 사람들은 이 초여름까지 일을 못했으니

긴긴 가뭄으로 가을 겨울에 울며 추수할 것이다.

 

때론 모두가 당연하게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도

없으면 이렇게 힘든 것.

이 비에 온 나라를 힘들게 하는 메르스도 씻겨 내고

다시 도시마다 전철마다 관광지마다 관광객들로 넘치게 하라.

 

 

오늘 사진은 다른 사람이 찍은 것으로 대체하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