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가을 황금벌판길

carmina 2015. 9. 17. 11:39

 

 

2015. 9. 12

 

가을엔 이 곳을 와야 한다.

늘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가능한 토요일

난 이 길을 꼭 가야만 한다.

중국영화 황후화의 그 화려한 국화꽃의 금빛 만큼이나 화려한

강화도 망월 벌판의 황금 벌판을 봐야만 한다.

나들길 16코스로 알려진 황금벌판길.

 

회사가 조금 바쁘긴 하지만 평일 일을 조금 더하고

토요일은 이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아 길을 나섰다.

비가 온다 했는데...비 오면 둑 위의 길이 질퍽하여 걷기 힘들텐데...

우비를 챙겼다.

 

이른 아침 창후리 선착장.

교동다리가 건설되기 전에 이 곳은 뱃시간만 되면 늘 붐볐다.

다리가 생긴 뒤 이 곳은 찬 바람이 휭 돌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있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이 있다.

오늘 조카의 딸이 세상에 나와 첫 돌이라 해서 새로 자라나는 애기를 보니

한 해를 더 물러 선 내 모습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창후리 어물전에 뱃사람들이 하루를 준비하고 있어

기웃거리며 집어 먹은 김장용 새우는 얼마나 고소한지..

막 잡아 온 듯한 게들이 아직 바닷속인 듯 열심히 양동이에서 기어나오고 있꼬

이미 수족관 생활에 익숙해 진 숭어들은 유유히 거울에 가까이 붙어 몸집을 키운다.

나도 자유로움의 근성을 잃고 주어진 공간에 만족할까봐 걱정된다.

 

바닷가를 걷는 길이 시작된다.

이전에 이렇게 넓지 않았던 것 같은데 바다로 향해있던 철망을 치운 것 같다.

길가에 가을 꽃들이 한창이다. 나팔꽃이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을 지녔었던가?

조용한 마을 구석에 주민이 잘 익은 수수를 잘라 말리고 있어 모두의 관심을 끈다.

길가 집 마당에 감나무는 이제 색만 변하면 되고 감같이 생긴 작은 열매는

감보다 먼저 붉게 익었고 억새는 조금 더 은빛만 가득하면 가을이다.

 

둑에 오르기 전에 나들길 스탬프를 보관하는 작은 박스를 여니 그 안에 엄지손톱만한

청개구리가 두 마리가 스탬프 위에서 놀고 있다가 사람소리에 놀랐는지 그 마리가

서로 가까이 모여든다. 살그머니 두껑을 닫았다.

철구조물로 만들어 놓은 입구에 작은 조롱박이 열려있다.

조금 가꾸었다면 더 많이 열렸을텐데...

 

지난 여름에 폭염으로 걷지 못할 정도로 자랐던 잡풀들이 누군가의 노력으로

말끔하게 다듬어져 있어 일행들의 발걸음이 상쾌해 보인다.

 

일주일 내내 이른 아침  여의도 대형 빌딩 안에 들어가 퇴근 때 까지 거의

밖에 나오지 않는 일주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두 세시간 앉아 있다가 화장실이라고 갈라치면 왜 그리 다리가 뻐근한지..

다른 이들은 1시간마다 담배라도 피기 위해 빌딩 밖에 나가 코에 바람이라도 넣고 오는데

나는 종일 사무실 죽돌이다.

 

그런 내가 이런 숲길에 올라서면 어떤 기분인줄은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 늦잠자고 싶은 당연한 욕심도 버리고 이렇게 길을 나선다.

멀리 앞서가는 3명의 모습이 꼭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늘의 구름이 가을하늘이라 더 뚜렷이 보인다.

바다 건너편 석모도 상주산 위의 구름과

방금 지나쳐 온 별립산위에 살포시 얹은 하얀 구름 그리고

그 반대편 멀리 고려산 위의 구름들이 일부러 화가가 멋스럽게 그린 것 같이

펼쳐져 있다.

 

논 사이의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논둑길 세멘트는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다

가끔 그 논과 논 사이의 구획에 수수장군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다.

망월벌판 길게 이어져 있는 전기줄에 2년 전에는 그토록 많던 제비들이 앉아 있었건만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2 주전 교통도에 제비가 참 많았었는데..아직 이 곳으로 올 시기가 아닌가?

우리는 걸어서 세월을 낚고, 둑길에서 갈라진 작은 둑길에선 낚싯군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문든 보이지 않던 안내판에서 분노를 느낀다.

목함지뢰의 사고 예방에 대한 안내문.

이 목함지뢰로 지난 1달간 얼마나 큰일이 있었는지...

70년동안 이루어 놓은 우리의 문명과 생활이 한꺼번에 사라질 뻔 했던 아찔한 사건.

우리는 아주 나쁜 이웃을 두고도 하루 하루 아슬아슬하게 긴 긴날을 견뎌 왔다.

우리 세대에 해결될까? 개인적으로 성급한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지금 어느 날 도적같이 밀려드는 통일이 온다면 우린 서로 공멸할 것 같은 생각이다.

 

억새가 풀들 사이로 두 다리가 겨우 지나갈 만한 작은 흙길이 참 졍겹다.

이런 작은 소박함에 모두들 즐거워 한다. 이 길이 그렇다.

어린이에게 이런 실험을 해 보았다.

박스안에 무엇을 넣었을 때 가장 크게 웃는가...하는 실험..

결과는 의외로 박스 안에 아무것도 없었을 때 더 크게 웃었다 한다.

 

이 공간이 그렇다.

아무것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없다.

저절로 자란 풀들,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들

천천히 밀려 오는 바닷물.. 살랑 살랑 불어오는 가을 바람.

꾸미지 않은 공간 속에서 우리 모두 즐겁다.

 

멀리 산 위 짙은 구름위로 비행기가 이상하게 기우뚱거리며 하늘로 날아 오르고 있다.

오랜 직장생활동안 이런 비행기의 비상을 많이 보아왔기에

지금 내 시야에 보이는 저 비행기가 한 눈에 이상하게 비행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걸으면서 보니 그 비행기는 계속 하늘을 둥그렇게 선회하고 있다.

무슨 이유일까?  공항에 문제 있다면 저렇게 한 대만이 돌지 않을텐데..

연료를 소모하기 위한 것일까? 온갖 추측을 다 해본다.

 

망월벌판에 오면 꼭 찾아 보는 종이학 교회

오늘은 날씨가 맑아 멀리 있지만 또렷하게 종이학이 보인다.

누군가 이 곳 망월리에 모든 주민은 기독교인이라고 알려준다.

 

망월돈대에 들어가 니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기분이 좋고

서로 나누어 먹는 간식이 있어 좋다.

서해의 바닷물이 늘 갯벌로 검은색 비슷한 갈색이었는데

오늘은 파란 하늘빛이 바다에 투영되어

생전처음 동해나 남해같은 파란 서해 바닷물 색깔을 볼 수 있었다.

 

물빠진 갯벌위에 작은 배 하나와 조금 큰 새우배 하나.

물만나면 둥실 떠올라 새우를 가득 잡아 올리겠지?

누구나 다 때가 있는 법.

내게도 그럴 때가 있었고 앞으로 또 있을 지도 모른다.

 

올 초에 심한 가뭄이 들어 강화도의 벼 놓사를 망치나 하며 안타까와 했는데

지금 보니 그 넓은 벌판에는 언제 그런 가뭄이 있었냐는 듯 벼가 가득찼고

조금 게으른 농부가 관리하는 논에는 갈대같은 피가 쑥쑥 자라 올라와 있다.

마치 염색한 내 머리칼 속에 돋아난 흰 머리같이..

요즘은 일부러 피를 기른다 하는데...그런걸까?

어느 논 옆에 나이든 농부가 천천히 논을 살펴보며 걷고 있다.

벼는 농부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자란다 했던가?

끝없이 걷고 싶은 둑길을 걸어 계룡돈대에 도착하니 돈대 잔디밭에 햇빛이 가득하다 

 

돈대를 나와 용두레 마을길로 접어 들었다.

물을 퍼 나르는 용두레가 낡았었는데 모두 새로 만들어 놓았고

체험하는 아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지 마을회관 앞에 신발이 가득하다.

 

일행들이 길가에 발그스름하게 물든 담쟁이 앞에 모여 있다가 나를 부른다.

누군가 용케도 그 이파리들 위에서 작은 청개구리를 하나 발견하여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아마 색이 완전히 달라 눈에 띄었나 보다.

마을입구에 사과가 익고 감이 익고 수수가 익고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다.

그리고 없던 넝쿭터널이 생겼고 그 안에 둥그런 박과 수세미들이 길게 늘어져 있다.

 

수도원앞에서 잠시 쉬고 다시 숲길로 들어서니

길바닥에 수없이 많은 밤껍질들이 널려 있다.

이 길은 내가 참 좋아 하는 길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바닥은 완전히 밤천지다.

누군가 이미 한 바탕 털어갔는지 속이 비어 있는 밤송이들이 그득했지만

우리 일행들은 그 사이에서 벌어지지 않은 밤들을 찾아 주워 담느라

한참동안 그 곳을 떠나지 못했다.

 

덕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갈라지는 외포리까지 길게 길게 이어지는 호젓한 숲길.

그 길을 한 참 걸어 내려와 다시 속세로 돌아왔다.

도로에 차가 다니고 모텔들이 그득한 외포리.

 

오늘은 일년에 한 번 밖에 기회가 없는 왕새우 구이 먹는 날.

소금위에서 가을 낙엽같이 발갛게 색깔이 변한 새우를 구워

껍데기까지 먹고, 새우머리도 바짝 구워 먹어버리고

왕새우를 넣은 라면에 폭 빠져 버려 포만감에 젖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논둑길 옆에 포도밭에 또 다시 눈길을 끌어

누군가 포도송이를 몇 개 사와 달콤한 포도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 나이가 이제 가을이다.

남은 겨울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겨울은 그렇더라고 인생의 가을이 오늘 같으면 좋겠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