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왕따 기사를 보며

carmina 2015. 10. 2. 17:56

 

2015. 10. 2

 

어느 중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학교에 왕따 학생이 있는데 그 애랑 친하게 지내면 안될까?"

"아니다. 얘야..그 왕따학생과 가까이 지내면 친구들이 너도 비슷하게 대할거야.

그러니 가까이 하지마"

다음 날 엄마는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아들을 봐야만했다.

아들은 친구를 빗대어 자신의 고민을 엄마에게 얘기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페이스북에서 이 이야기를 보면서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중고등학생 시절. 나도 일종의 왕따 학생이었다.


남보다 허약한 나는 수업끝나면 학교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도서관에 푹 박혀 책을 읽으며 지내기를 즐겨했고
늘 내가 조용한 성격이라 친구들의 거친 장난이나 놀이에 끼지 않았다.

몸끼리 부딪히는 격렬한 농구나 축구보다는 각자 자기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구나 탁구같은 경기만을 좋아했었다.

 

어떤 나쁜 친구는 몰래 내 가방을 엎어 놓기도 했었다.
졸업즈음에 그 친구가 육사에 합격한 것을 보고
혼자 생각에 '저 녀석은 군대가서 부하들을 무척 괴롭힐거야"
하는 걱정도 했었다. 졸업 뒤로 그 친구를 보지 못했다. 

 

내 키가 조금 작다고 생각한 어떤 친구는

나보다 조금 더 크다고 나를 늘 비웃거나 깔보곤 했다.

나는 그 들과 싸우는 것을 피했다.

왜냐하면 그 들에게는 늘 어울려 다니는 패거리가 있었기에..

 

쌍소리를 하기 싫어했던 나는

입만 벌렸던 하면 거친 쌍소리를 내뱉는 보통의 아이들과 대화하지 못했고

하교후엔 중국집 골방에 모여 술먹고 담배를 피는 아이들과도 같이하지 못했고

또한 당시 학생들에게는 출입금지 구역인 당구장가는 것도 내 스스로 금지구역이었다.

그 곳에서 그 친구들이 담배피며 당구를 쳤으니..

 

가끔 몇 몇 아이들이 주말이면 그룹으로 놀러 갈 때도

내겐 놀러가기 위해 부모님께 돈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아침에 학교까지 걸어가는데

우리 집을 거쳐서 가는 친구들 몇 명과는

적어도 등교는 같이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들이 모두 교회다니는 애들이었다.

 

당시는 학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끝나면

학교에서 적당한 영화 하나를 선택해 그곳에 단체 관람을 가기도 했다.

그 때 본 영화들이 십계와 스카라무슈 그리고 미라클이라는 종교영화가 생각난다. 

 

그런 때도 내가 영화를 못간다고 하니 어느 날 우리 집에

친구들이 몇 명이 와서 부엌에 계시는 우리 어머니에게 나랑 영화 같이 가게

어머니 돈 좀 주세요 라고 사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내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지금도 나는 고등학교 동창회 모임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들어가고 나서는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예비고사와 본 고사를 잘 쳐서

일류대학은 아니지만 나보다 공부 잘하던 애들도 우수수 낙방한 대학에 입학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셈이다.

얘기가 통하는 애들을 만났고, 늘 같이 어울려 다녔다.

그들은 노래를 좋아하는 나와 같이 다니길 좋아했고

우리 과의 모든 행사의 사회자는 어떤 노래든 코드를 보지 않고도

기타를 칠 줄 아는 내게 주어졌다. 

교회에서 레크레이션을 늘 리드했던것이 내게 좋은 경험이었고

이러한 경험들은 후에 내가 좋은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고등시절 왕따였어도 상황이 바뀌니

내 세상이 되는 날도 있었다.

 

모든 왕따 학생들이여..

조금만 참자..조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