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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 40주년 기고 글

carmina 2015. 11. 23. 08:37

 

화양연화 같은 합창단 생활 28

며칠 전 지리산둘레길을 3일간 걸으며 보이는 곱게 물든 단풍, 지리산을 덮은 잘 익은 예쁜 감들과 황금빛 벌판을 보며 생각하길 내게 아내와의 결혼생활 30년 중 28년간의 합창단 생활은 이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풍성한 계절의 수확물을 바라보는 것 같은 흐뭇한 세월이었다.

서로 음악이 좋아 결혼한 2년 후 아내와 함께 여가생활을 즐길 취미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찾아 나선 국내 유명 아마추어 합창단 중 아내와 같이 노래할 수 있는 부부합창단을 정해 놓고 단지 친목을 위한 모임이 아닐까 걱정했다가 첫 날 모임에 참석하여 부르는 세노야의 아름다운 합창에 그만 매료되어 지금까지 부부들과 함께 노래를 같이 하고 있다. 이제까지 둘이 교회음악만 부르고 가곡만 불러왔는데 이 부부들과 부르는 모든 합창은 전문합창단의 화음 수준이라 교회 찬양대 수준만 알던 내게 그야말로 음악의 신세계였다. 그 뒤 턱시도와 멋진 드레스를 입고 예술의 전당을 비롯한 국내 유명 공연장에서 노래하는 일상이 행복하고 좋았고 때론 해외 연주여행도 다니는 합창단 생활이 내겐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유유상종이랄까? 내 또래의 부부들이 비슷한 시기에 모여들었다. 자녀들의 나이도 비슷했고, 종교나 서로의 취향도 비슷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니 서로 모이길 좋아하고 집에서 그리고 야외로 때론 해외로 어울려 다니며 같이 먹고, 노래하고, 인생을 얘기하고, 미래를 얘기했다.

살면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형제들과 학교 동창 혹은 교회 모임이나 직장친구들은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을 느껴 의무감으로만 만나야 하는 것에 비해 매주 한 번씩 만나 노래하는 합창단 부부들과는 모임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매주 갖는 합창연습을 잘하기 위해 늘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고 정기 공연이나 자선공연 그리고 단체 내 중창대회 같은 여러 가지 행사를 위해 일년 내내 서로 어울려 노래하고 계획하고 수다 떠는 재미로 늘 행복했다. 또한 개인사정으로 그만 둔 부부들은 오랜 세월 지났어도 같이 어울려 노래하던 시절을 못 잊어 합창단 내 작은 모임이나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합창단 창단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엄마 아빠들이 그렇게 노래하며 지내는 것을 본 자녀들은 모두 성년이 되어 변화된 모습을 보니,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음악이 좋아 전문 연주자가 되었거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좋은 직업들을 가졌으며, 멋진 배우자들을 만나 결혼했고, 성년이 된 자녀들은 부모들 공연에 같이 무대에서 노래하며 돕거나 공연이 있는 날은 각종 지원업무를 하며 돕고 있다. 때론 일부 몇 가족들은 팀이 되어 자녀들과 함께 불우한 단체를 찾아가 악기와 노래로 자선공연을 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선한 사람들의 모임인 서울싱잉커플즈는 지금 합창단을 시작하는 새내기 부부들이나 우리 부부처럼 몇 십 년을 노래한 모든 단원들이 해가 거듭할수록 인생을 더욱 보람있고 아름다운 여가생활을 즐기며 살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