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53) 사계 - 노래를 찾는 사람들

carmina 2015. 12. 7. 14:44

 

 

 

 

사계 - 노래를 찾는 사람들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도네 돌아가네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쌰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빛나고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노란 꽃 꽃밭 가득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우리 나라에는 노동자들의 끊없는 투쟁이 이어지고

많은 집회에 등장하여 노래하는 몇 명의 노래꾼들이 있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일명 노찾사

물론 나는 그 당시 이미 직장에 다니던 시기였기에

그러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이 노래를 보급하러 다니거나

노래를 굳이 따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들의 노래는 묘한 매력이 있어 늘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1991년 인사동에 있는 회사에 입사하여 혹시 내가 젊은 시절 알고 있던 

종로의 서울 YMCA에서 하는 Sing Along Y가 있을 까 해서 찾아 갔더니

마침 매 주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퇴근길에 양복을 입고 찾아갔다.

 

YMCA의 2층 넓은 강당에서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기타대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가르쳤다.

 

그 때 배운 노찾사의 노래 '사계'

가르치는 이가 노찾사의 멤버였다는 것을 들었고

이 노래는 템포가 상당히 빠르기에

배우는 사람 중 한 사람씩 나와서 부르게 했는데

거기 모인 젊은이들이 거의 따라하지 못할 정도였다.

앉은 사람 중 내가 유독 잘 따라 부르는 것을 보고

앞에 나와 불러달라기에 비록 초견이지만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불러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

 

70년대 민중가요로 등장했던 노래들이 핍박을 받아

울고 짜는 노래 외에 대부분의 아름다운 포크 음악들이 줄줄이

금지곡이 되었지만, 이런 노래들은 데모대에게 거의 투쟁가로 불리우게 되었다.

대표적인 노래가 '아침 이슬' 이었고 '금관의 예수'였다.

 

70년대 말에 인천에 달동네였던 우리 집 근처 쌀가게 앞에

주변 집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시산업 선교회라는 2층 빌딩이 들어섰다.

어느 날 그 곳에서 방직회사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빌딩 창문에

각종 구호를 크게 쓰고 농성을 하다

강제진압하는 경찰에 붙잡히고 피하느라

이층에서 뛰어내려 다쳐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70년대에는 인천 YMCA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타와 만돌린 그리고 우클렐레를 들고 여공들이 일하는 회사를 찾아 다니며

포크 음악을 가르치던 시기였는데 당시 내가 가르쳤던 노래들은

민중가요가 아니었기에 제재는 받지 않았지만

종일 미싱기 앞에 붙어 일하고 신발공장의 본드냄새때문에

늘 얼굴에 핏기 없던 여공들, 부평의 공단에서 일하던 어린 여공들이  

싼 집을 구할 수 없이 여러 명이 벌집 같은 방 하나에서 살고,

기름 쩔은 바지가 빨랫줄에 자주 보이던 그 시절에   

그들의 작업환경을 자주 보고 그들의 삶을 어느 정도 아는 

내겐 노동자들이 농성할 때 소리치며 민중가요들을 노래하는

그 모습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현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음악 스타일 때문에 이런 노래는

어디에서도 거의 불려지지 않는 노래가 되었지만

일종의 노동요인 이 노래는 아마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

미국의 흑인영가같은 인정을 받을 것이다.

가끔 휴일에 도심을 나가면 종로거리에는 농성하는

근로자들이 무언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생전 화이트 칼라로 살아온 내겐 무척 생소한 노래들이었다.

 

YMCA의 싱얼롱 프로그램은 얼마 뒤 사라져 버려 아쉬웠다.

그 뒤로 종로를 나갈 때 마다 YMCA 빌딩에 들어가 혹시

그 프로그램이 다시 재개되지 않을까 하고 늘 게시판을 보곤 했다.

 

노래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