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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한 감성여행

carmina 2015. 12. 16. 22:49

 

 

이 여행기가 아마 13년전 쯤 딸이 중학생 시절인 것 같다.

딸의 감성을 키워 주기 위해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그 쓰다만 여행기를 오래된 내 컴에서 발견해 옮겨 본다.

 

너에게 의미이고 싶다.

 

시인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그려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몸짓이 되고 싶다

 

인터넷 신문에서 늘 여행에 관한 기사를 사냥감을 노리는 하이에나같이 호시탐탐 검색하다가 어느 날 기사하나를 포착했다. 한국 자생 식물원과 허브나라.  지금 6. 온 천지에 꽃이 만발한 계절이다.  이른 봄에 핀 꽃은 이미 시든지 오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을 준비하는 꽃들이 그 청초한 모습을 나타내는 계절. 지난 번 안면도 국제꽃전시장에 갔을 때는 문도 안 열었다고 문전박대 당했다. 하긴 늘 사람들을 피해서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전시기간에 갔으면 아마 짜증만 났으리라.

 

자생화라..가꾸지 않은 꽃들, 화려하지도 않지만 수수함이 좋은 우리 꽃.  합창단의 원로 한 분이 자생화를 사진찍어 슬라이드로 보여 준 적이 몇 번 있어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 꽃을 본다. 지난 한 달간 우린 월드컵으로 인해 진한 한국애를 느꼈는데 이젠 진한 한국 꽃들을 볼까나. 

 

큰 아이가 시험. 차마 아내보고 같이 가자고는 못하고 슬슬 눈치보다가 딸을 데리고 가겠다 하니 선뜻 가라고 한다. 늘 바이올린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애에게 좋은 여행의 기회도 되고 잠시동안이나마 바이올린으로부터 떨어 뜨려 놓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오대산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 지도를 보니 거의 강릉에 가까이 있다. 하루에 다녀오기는 힘든 거리라 1 2일을 계획했다. 주일 예배 끝나고 오후에 출발. 그 다음 날은 월드컵성공으로 생긴 보너스 휴가. 비록 월드컵 기간동안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이 매출이 현저히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상을 빚었지만 온 국민의 마음이 즐거우니 같이 좋아할 수 밖에..

 

준비물이야 간단한 것. 가서 밥 해먹거나, 텐트 칠 것이 아니라 그냥 몸만 떠나도 좋은 여행이라 딸보고 가고 싶으면 챙기라 했더니 달랑 손가방 하나 들고 온다. 그리고는 중요한 것을 챙겨야 한다고 나에게 동전 2개를 얻어가더니 만화책 2권을 빌려온다. 그래. 그것도 좋으리라. 난 차에서 마실 거리 간식거리, 혹시나 생길지 모를 시간을 저녁 위해 책 한 권 준비하고 인터넷에서 지도 및 자료를 출력하여 출발. 부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빠지는 길은 상당히 수월한 편이다. 이전같이 서울을 거치지 않아도 직접 고속도로로 통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하긴 요즘 제2경인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 외곽순환도로가 모두 부천을 통과하니 외곽으로 빠지는 길은 부천만큼 편한 곳이 없으리라.

 

나처럼 오랜만의 연휴를 즐기러 교외로 나간 사람들이 모두 떠났음직한 오후 시간. 고속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에프엠라디오에선 노래의 날개위에 나오고, 아이는 벌써 만화책에 폭 빠져 있다. 아빠의 마음이야 아이가 창밖에 펼쳐지는 신록을 보기 원하지만 아이에겐 그런건 너무 시시한 일이다.

 

지금 이 정도의 속도로 가면 오대산에 너무 일찍 도착할터이고, 그러면 저녁시간이 무료할텐데 하는 생각에 혼자 골몰하다가 문득 아이랑 같이 에버랜드 야간관람을 계획했다. 전혀 사전에 얘기해 주지 않았기에 에버랜드 가자 하니 아이는 그 때부터 신이 났다.  스릴넘치는 놀이기구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이기에 벌써 손가락으로 시설물을 하나 하나 꼽고 있다. 바이킹, 청룡열차 등등..  지난 번 가족과 함께 미국 여행시 가보지 못했던 LA의 매직 마운틴의 놀이 시설을 무척 아쉬워 했었는데 오늘은 소원 좀 풀려나.

 

오후시간인데도 에버랜드는 주차장에서 정문까지 가는 셔틀버스에 기다리는 사람이 무척이나 길게 줄을 서있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가격표를 보니 새삼 플라스틱모니의 위력을 깨닫는다. 삼성카드 혹은 KTF와 관련된 카드로 입장권 구입시 거의 50% 할인이 일반적이다. 미리 알아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야간시간대라 일부 금액을 할인해서 입장했다. 어쩌면 그리 미국 LA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랑 비슷한지 이곳에 한국이란 것이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외국간판 일색이다. 상품도 거의 외국 상품들, 상품의 이름도 외국말.. 그 좋은 우리 말들은 다 어디갔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안내지도 중에서 아이는 제일 먼저 바이킹의 위치를 찾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바이킹이나 청룡열차를 타면 어지럼증과 구토증에 미리 포기해 버렸다.  평소엔 아빠 손 한 번 제대로 잡지 않는 아이가 더 빨리 놀이기구쪽으로 가기 위해 아빠 손을 잡아 끈다. 또 어찌 그리 빨리 걸어가는지 평소에 집에서 늘 아프다는 소리가 입에서 밴 아인데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선 누구나 저절로 힘이 생기나 보다.

 

아이는 뺑뺑돌아가는 것들, 거꾸로 돌아가는 것들, 갑자기 낙하하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 있다. 아무래도 아이들에겐 밋밋하고, 정적이고, 느슨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이의 세상과 맞지 않는 것 같다.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 오늘은 마다하지 않고 사줬다.

 

밤인데도 사람들은 수없이 몰려 다닌다. 구 정문 입구의 꽃밭에는 도로가 안 보일 정도로 사람들의 옷으로 덮혀 있다. 이전보다 고급 레스토랑이 더 생기고 사람들의 씀씀이는 더 커진 것 같다.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는 아이의 부탁도 들어 주었다. 스파게타랑 오무라이스랑 같이 시켜 놓고 양이 많다 싶었는데 아이는 몽땅 비워 버리고 말았다. 내가 먹는 소시지까지 곁들여 먹으면서도

 

에버랜드에서 펼쳐지는 가면퍼레이드는 이제껏 낮에만 보아왔는데 밤에 하는 퍼레이드는 가히 불빛의 행진이라고 할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았다면 어떻게 보였을까. 아마 뜨거운 쇳물이 도로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에버랜드 폐장은 밤 10, 그 남은 시간에 아이는 놀이기구를 하나라도 더 타기 위해 기를 쓰고 달린다. 손에 약도를 들고 여기 저기 물어가며 땀을 흘리며 돌아 다니고 있다. 멀리 하늘에는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아이는 시간이 다 되어 나오면서도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에버랜드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 입구는 거의 주차장에 가깝다. 우린 시원하게 뚫린 강릉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아마 강원도에 사는 사는 사람은 에버랜드에 거의 오지 않는 것 같으니 수도권과 지방의  생활수준의 차이가 이런 도로상황에서 금방 알 수 있다.

 

아이는 피곤한지 차가 고속도로를 올라서자마자 금방 잠에 빠져든다.  어디에서 하룻밤을 유할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유원지근처에 가면 민박이야 많겠지만 분명이 가격이 만만치 않으리라.

 

여주IC에서 빠져 나오며 숙박시설을 물으니 바로 옆에 있단다. 그래..어차피 여주를 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 여주 시내로 들어갈 필요가 없겠지. 톨게이트 바로 옆에 그럴 듯한 모텔이 있어 생각할 여지도 없이 주차를 하고 뒷 좌석에서 곤하게 자는 애를 깨워 방으로 들여 보내니 아이는 씻을 생각도 안하고 그냥 잠에 빠져든다.

 

아침에 아무래도 오전에 목적지에 도착해야 여유있게 관람할 것 같아 8시경 다해를 깨웠더니 투덜투덜.. 학교 안가는 날은 10시까지 자야 하는데 일찍 깨운다며 불평하지만 그래도 아빠말을 잘 듣는다. 씻고 나와 대충 정리하고 나가자 했더니 방안을 한 번 더 뒤돌아 본다. 집에서는 그렇게 꼬리가 긴 녀석이 밖에 나오니 정신을 차렸나? 아니면 잊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때문일까?

 

모텔 옆 바로 여주 톨게이트로 다시 들어갔다. 시원한 아침드라이브. 지금이야 이렇게 시원하게 가지만 나중에 집에 갈 때 연휴 마치고 귀경하는 차량들 때문에 얼마나 붐빌까? 첫번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평소 간단히 먹던 아침이 오늘은 아빠가 무슨 부탁이라도 다 들어 주는 낌새를 챘는지 돈까스를 주문한다.  다 먹지도 못할 것을그래도 평소보다는 많이 먹었다. 거기다가 아이스크림도 두개씩이나  평소엔 자기가 먹는 것에 대해 아빠 주는 것에 무척이나 인색한 아이가 오늘은 웬일인지 알아서 볼아이스크림을 아빠 입에 퍼 준다.

 

고속도로를 달렸다. 100키로.. 지금 이 정도 속도면 한시간이면 닿는다.  모든 고속도로가 이렇게 한산하면 어디든 여행갈 기분이 날텐데 우리 나라 고속도로는 너무 편중되어 있는 감이 있다. 그 유명한 관광지인 설악산, 강릉을 가기 위해서는 고속도로가 오로지 영동고속도밖에 없으니 아무리 차선을 확장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강원도로 들어서는 팻말이 보인다. 에프엠도 이곳에선 잘 잡히지 않는지 아침의 클래식에 잡음이 많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음악 틀어달라고 자꾸 재촉하고산이 많은 지방이라 그런지 에프엠방송의 주파수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새말, 둔내, 면온, 장평을 지나 진부로 빠져 나오면서 한국자생식물원 위치를 물으니 좌회전하면 바로 이정표가 보인단다. 아이가 이정표가 무엇이냐고 묻기에 저기 보이는 길 안내가 이정표라고 대답하면서 마음으로는 네 삶의 이정표를 위해 지금 아빠가 너랑 같이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자꾸 보여 주기 위해, 아름다운 것들, 자연을 보여 주기 위해.. 음악을 전공할 아이이기에 아름다운 것을 보여 주면 음악의 아름다움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목적이 담긴 여행. 아무래도 목적이 있는 여행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진부 IC를 빠져 나오는데 눈을 끄는 이정표 하나. 소금강....그래 이 곳에 소금강이 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소금강을 가보는 것도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 국도를 달리는 기분은 늘 상쾌하기만 하다. 창문을 열면 스치는 바람. 그리고 풍겨오는 시골내음, 풀내음과 거름내음까지아이는 냄새 난다고 창문을 닫자 하지만 난 이런 것이 좋다. 아해야..너도 이런 것이 좋을 때가 있으리라.

 

차의 머리를 오대산으로 향한다. 월정사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그 곳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왜 이리 날 유혹하는 것들이 많지? 역시 강원도쪽은 자주 못 오는 곳이라 그렇게 눈에 들어 오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방아다리 약수터가는 길, 저 곳도 가고픈데

 

한국자생식물원가는 팻말이 무척이나 깨끗해 보인다. 아니, 다른 지명의 팻말들도 신경을 썼는지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는다. 특별히 관리를 한 노력이 보인다.  한적한 길에 식물원으로 가는 깨끗한 포장도로가 있고 조금 가니 시골길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녹색의 옷을 입은 주차 안내원이 진로를 막는다. 대형 버스가 몇 대 보이고 주차장도 이미 서울, 경기번호를 단 차들로 그득하다.  이게 매스콤의 위력이리라. 며칠 전 모신문에서 이 곳을 소개하였기에 우연찮게 생긴 연휴를 노린 가족들이 분명히 이 곳에 눈독을 들였으리라. 월드컵 기간동안 도심의 아스팔트위에서 빨간 옷을 입고 받았던 뜨거운 열을 이런 곳에서 식히고 싶었으리라. 나도 역시 그 무리 중의 하나이고..

 

먼지가 푸석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커다란 가건물이 보인다. 한국자생식물원.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는 듯 매표소도 단촐하다. 어른 3000원 중고생 2000원 어린이 1500. 가건물은 크게 영상자료관, 이벤트관, 분경분화관, 조경소재관, 전시판매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이벤트관부터 들어가니 그리 많지는 않지만 커다란 야생화 사진들이 걸려 있다. 이름도 생소한 꽃들. 우리 한국말의 아름다움에 새삼 놀란다. 어찌 이런 말들이 있을까. 돌단풍, 술패랭이꽃, 용머리, 할미꽃, 쥐똥나무, 홀애비꽃, 둥근바위솥, 섬초롱 돌풀, 붓꽃 등등

 

바로 옆 분경분화관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보기 좋게 분재식으로 해놓았다. 그냥 숲 속에 있으면 그저 예쁜 꽃이려니 생각했던 꽃들도 이렇게 보기 좋게 가꾸어 놓으니 충분히 장식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것을 보며 우리 주위에 마치 패스트 푸드 맥도날드 같은 식물들이 너무 많은 것을 깨닫는다. 왜 그리 열대지방의 나무들이 많은지, 꽃향기도 없는 것들.. 그냥 관상용으로만 비치해 놓은 각종 아파트, 사무실의 나무들에서 우리의 가식, 허례허식, 사치를 읽는다. 사시 사철 늘 푸른 나무보다는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또 홀씨를 뿌리고 다음 해를 위해 죽을 줄도 아는 꽃들의 생리를 배워야 한다.

 

잎이 부처손같이 생겼다고 해서 부처손, 향기가 백리를 간다 해서 백리향, 꼬리같이 생겼다고 해서 꼬리꽃, 노루 오줌 냄새가 난다 하여 노루오줌, 병아리 부리같이 조그맣다고 해서 병아리난초 등등온실안에 비록 조금 덥지만, 꽃 들에 취해서 더운 것도 몰랐다. 커다란 항아리를 엎어 놓고 올려 놓은 화분들이 정이 듬뿍 들어간다. 그 옆에서 사진하나 찰칵..

 

온실 뒤로 해서 산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길이 있다.

 

후기 ) 아마 내가 글을 여기까지 쓰다가 이런 자생식물에 관심이 없고

건성건성 지나치는 딸을 탓하기 싫어 쓰기를 그만 둔 것 같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니 아이들은 경우에 따라서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충분한 감성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라던가..친구들 대화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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