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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무작정 떠나기

carmina 2016. 1. 7. 17:20

 

(오래 전 써 놓은 글을 찾아 기록을 위해 이 곳에 옮김)

 

 

서해 무작정 떠나기 

 


2002
4 5

실로 10개월만에 아주 조금의 자투리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사업이라고 시작한 것이 주말외에는 개인의 시간을 전혀 낼 수 없는 업종이라 얼마나 답답한지.. 지난 해 추석에 합창단에서 단체로 일본에 연주여행 간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사업에 전념하였다
.

지난 달부터 오늘 무엇인가를 도모해보자는 합창단원들의 계획들이 1 2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하는 토요일까지 무리를 해서라도 가자는 의견이 역시 무리인 듯 막판에 깨져버리고, 다른 음악모임에서 MT를 주선하는 사람도 막판에 모두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결정나 버렸다. 며칠 안 남은 기간이라 어디 갈 것인지 계획도 못하고, 콘도도 예약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 버렸다
.

결국은 아무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며칠 전 신문에서 스크랩해 놓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보기로 생각하고는 아내에게 양말하나만 챙겨 놓으라고 얘기해 놓았다. 그냥 발닿는 대로 가자고


식목일. 오전에는 새로 오픈한 중동의 월마트에 가서 쇼핑하는 것으로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냉장고에 조금 남아 있는 오렌지, 토마토 주스, 오렌지 몇 개, 급히 삶은 계란 몇 개, 카메라, 사진기를 챙기고 오후에 출발.

. 어디던 가자..이런 휴일은 면도를 하기가 싫어 까칠까칠한 턱을 한번 훔치고 핸들을 잡았다. 이런 날 놀러가는 사람들이 이미 고속도로를 빠져 나갔을 테니 도로가 조금은 여유가 있으리라. 그러나 나의 이 생각은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마자 후회로 바뀌었다. ..국도로 갈걸
이미 늦었지만 약속해 놓은 시간도 장소도 없이 억지로 여유를 부린다.

끊임없는 차량의 행렬들, 차 번호를 보니 전 국토의 차가 다 모인 것 같다. 아마 아랫녘 번호는 성묘나 혹은 서울 나들이 인파고 윗녘 번호는 나같이 일박 이일로 놀러가는 것이리라
.

떠날 때만 해도 선글라스가 필요할 정도로 따가운 햇빛이 금방 사라지고 구름이 몰려 든다. 라디오 날씨 정보도 오늘 오후부터 내일까지 전국에 걸쳐 비가 올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정말 얼마만의 비인가? 식목일에 나무도 심었으니 비가 오면 좋겠지만 하필 그 많은 날들 중에 오랜만에 휴가를 낸 오늘이야
하고 투덜대기도 해 본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산이 비안개에 쌓여 있는 모습이 이런 날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한폭의 동양화같이 보여 그것조차 아름답기만 하다.

도무지 차가 밀리고 아내는 졸음이 오니 운전하다 졸리면 어디 가서 쉬었다 가자 한다. 그래 그러자꾸나. 첫번 휴게소인 화성 고속도로 휴게소 들어가는 차량도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에라 이곳에서 잠 좀 자자. 의자 길게 뒤로 젖히고 잠깐 잠을 청하다가 핸폰 벨소리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화성 휴게소에서 나와도 역시 차가 한없이 밀려 있다. 당초 대천까지 가서 하룻밤 잘려는 계획을 바꾸어 서산으로 빠지기로 한다. 가는 중에 서해대교 밑의 행담도 휴게소에서 주유하고 차는 밀려 밀려 서산으로 겨우 빠졌다. 비는 내리고 시야는 어두워지고 서산으로 들어와서야 겨우 길이 숨통이 트였다.

조개구이를 먹고 싶다는 아내의 요구에 혹시 길가에 횟집촌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아 결국 만리포까지 장대같은 비가 차의 앞유리를 두들기는 어두운 길을 달렸다. 만리포로 가는 외길, 길 가의 군데 군데 환하게 등불장식을 한 모텔들을 보며 만리포에 방이 없으면 이 곳이라도 나와서 잘 수 있겠구나 하고 안심한다
.

만리포에서 차 문을 여니 비바람이 거세다. 식당을 찾을 생각도 못하고 차 앞의 식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리에 앉기 전에 주인아저씨에게 화장실을 찾으니 가게 뒷편의 간이 화장실을 알려 주기에 갔다가 그만 실망해 버린다. 다 허물어져 가는 공사판 간이 이동 화장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고개를 흔든다. 도무지 음식값이 말도 안되게 비싸단다. 이렇게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어야 하는 건지 휴양지 상술을 이해못하겠다
.

주인에게 혹시 이근처 숙박 좀 알아봐 달라 했더니 겨우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는 민박이 무려 4만원을 내라한다. 세면시설도 변변치 않을 민박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서 알아 보기로 했다
.

음식도 다른 곳에서 하고 싶었으나, 이미 자리에 앉았기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제일 싼 것으로 주문했는데 역시나 음식맛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 중 나은 것이 김치 하나. 갑자기 아내에게 미안해진다
.

식사 후 밤바다를 보고 싶어 해변에 우산을 쓰고 나갔다가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바람이 워낙 심하게 불어 내일 아침바다를 기약하며 밤바다를 포기하고 다시 오던 길로 차를 돌렸다. 한참을 차를 달려 모텔방을 하나 구하고 조금은 눅눅한 이불을 덮고 외지에서의 하루를 즐긴다
.

밤에 힘차게 창을 두들기는 빗소리, 세찬 바람소리에 마치 누군가 방문을 열려고 노력하는 듯한 소리에 잠을 뒤척이다 보니 핸폰의 알람소리에 집에다 전화를 걸어 아이들 학교 보내고 다시 아침잠에 빠져 드느라 실컷 늦잠을 잤다
.

아침바다를 만리포로 갈려던 어젯밤의 계획을 바가지 요금에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라 안면도에서 아침바다를 보기로 아직은 빗방울이 흩어지는 시골길을 달렸다. 날씨만 괜찮았으면 오전에 김제에 들러 장인어른의 산소도 가보고 동백꽃이 아름다운 선운사를 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무리가 될 것 같아 안면도를 택했다
.

어젯밤에는 보이지 않던 길가의 봄 꽃들이 드라이브를 시원하게 한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팬지꽃 등등.. 충청도는 지금 4월 말에 있을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를 선전하느라 수없이 많은 홍보용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지금 가면 혹시 개막 전이라도 약간의 꽃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

군데 군데 작은 곳에서도 꽃으로 정성을 드리고 있는 모습들이 앞으로 본격적으로 꽃 박람회가 열리면 이곳의 풍경들이 어떻게 변할지 자못 기대가 된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것은 그렇게 가꾸어 놓은 꽃들이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오래가지 못하고 잠시 동안의 기념행사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안면도로 가다가 홍성에서 오는 길과 합쳐지는 곳에서 갑자기 큰 도로가 생겨버렸다. 아하.안면도에 있는 꽃지 해수욕장에 대기업에서 운영중인 대규모 콘도가 생기더니 이렇게 도로가 변해 버렸네. 참으로 대기업의 힘이 놀랍기만 하다. 몇 년 전에 가족들과 이 곳에 여름 휴가를 올 때 만해도 시골길을 허위 허위 달려 왔는데 이제는 자칫 과속 카메라가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도로는 잘 닦여져 있다
.

꽃지 해수욕장은 안면도의 끝부분에 있기에 길가의 오른 쪽으로 계속 해수욕장이 보인다. 이름도 재미있는 밧개 해수욕장, 방포해수욕장, 장산포해수욕장 등등
서해안에 이렇게 해수욕장이 줄지어 있는 곳이 이곳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육지와 맞닿은 거개의 서해안 해변이 갯벌로 되어 있는데 유독 이 곳만은 아주 가는 모래들로 깨끗한 해변을 자랑하고 있다.

꽃지 해수욕장에 거의 다와서 꽃 박람회 팻말을 따라 앞서가는 다른 차량처럼 좁은 소로를 따라 가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길이 좁아질까? 배닿는 뚝을 따라 조심 조심 들어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막다른 길로 변해 버리고 다른 차들도 차를 돌려 나오느라 애를 쓰고 있다. 막다른 선착장에 길을 건너 갈 수 있도록 아치형 다리는 해 놓았지만 이 쪽에 주차장이 없으니 차를 돌릴 수 밖에 없다. 에이.. 안내 표시판좀 제대로 해 놓지.. 우리 차 이외에도 많은 차들이 계속 우리가 잘못 온 길로 들어서고 있다. 실제 국제 행사 때도 이렇게 될지 걱정된다
.

멀리 대형 텐트가 보이고 아주 넓은 주차장이 잘 포장되어 있으나 차량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는 가운데 인부들이 작업하고 있다. 얼른 차를 세우고 경비를 보고 있는 인부에게 혹시 일부라도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직 꽃들이 도착하지 않았단다. 아쉬움속에 차를 해변으로 돌렸다. 몇 년 전 모래밭길에 불과했던 해변도로가 마치 유럽도로처럼 벽돌로 포장되어 있고 보기 좋은 가로등들이 멀리까지 뻗어 있다
.

..눈 앞에 펼쳐지는 바다.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어 파도가 더 우람하게 보이고 금방이라도 육지까지 밀려 올듯한 기세로 하얀 파도들이 쏜살같이 밀려왔다가 다시 재 도약을 도모하는 듯 바다로 밀려가고 있다
.

그래..이 모습을 보기 위해 이렇게 여행을 떠나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
태초부터 있었고, 모든 생명있는 것들이 그 생명을 다한 후에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킬 저런 자연의 모습을 마음에 담기 위해 이렇게 여행을 떠난다.

길의 끝지점쯤 왼편에 대형 건물이 나무 숲 사이로 보인다. 이 건물이 롯데에서 운영중인 오션캐슬. 주변 환경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릴라가 우뚝 서있다. 주차할 장소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선 차량들 때문에 주차장 변에 차를 대고 오션캐슬의 로비에 들어섰더니 호텔을 연상케하는 내부가 산뜻해 보인다
.

로비에서 해변이 시원하게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바닷가에 자연친화적인 나무로 야외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

아침을 아직 안 먹었기에 로비에서 마침 아침부페를 할 수 있지않을까 들어갔더니 아침 부페 시간이 거의 끝나 손님 받기를 주저하고 있다. 그리고는 그 시간에 마땅한 식사 장소가 없어 빌딩 뒤로 나갔더니 특이한 산책길이 있다. 조그만 돌을 압착하여 마치 아스팔트처럼 해 놓았는데 산책길에 색갈을 해 놓아 발에 닿는 느낌이 상당히 좋다
.

그리고 비에 촉촉히 젖은 나무 무대. 이곳에서 라이브공연이 열리는 듯,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이미 심어져 있는 소나무의 자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무무대를 만드느라고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무대에서 보는 해변의 모습. 누구나 이런 곳에서 연인과 같이 마주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싶을만큼 운취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바람이 쌀쌀하고 배도 고프기에 그 곳을 빠져 나와 오는 길에 봐두었던 해변의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니 손님들이 모두 바다가 보이는 창가의 스툴의자에 앉아 커피와 함께 바다 전경을 즐기고 있다. 다른 손님에게 슬쩍 양해를 구하고 우리도 그 창가에 앉아 바다를 본다. 아내는 아까 오션캐슬을 보고 너무 부러웠던지 그런 곳에서 하루를 지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때문인지 말이 없다. 그리고는
우리도 돈 많이 벌어야겠다며 무언가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기에 난 돈에 대한 욕심이 없다며 무능한 남편의 모습을 보였더니 입을 다문다.

핑계 김에 아무 말없이 바다를 즐겼다. 바다의 파도가 모래에서 놀고 있는 애들을 집어 삼킬 듯이 밀려오다가 제풀에 꺽여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한적하게 노니는 갈매기들.. 한 발 두 발 뛰노는 아이들
저렇게 인생을 살 수는 없을까?

주문이 잘 못되었는지 우리 식사가 한참 만에 나왔다. 덕분에 더 오랜 시간 바다를 즐겼다. 바지락 해장국을 시켰는데 콩나물과 바지락으로 맛을 낸 국물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입에서
맛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둘이 밥 한 그릇을 더 시켜 먹을 정도였다.

아내는 우울했던 기분이 맛있는 아침 식사로 풀어진 것 같다. 바다로 나가 아주 곱디 고운 모래사장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즐긴다.  이런 바다를 몇 년 전 남미 콜롬비아의 카리브해에서 본적이 있다. 끝없는 모래밭. 더욱이 물안개가 끼어 해안선이 더 멀리 보이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 곳에 오래 남아 있고 싶지만 아내가 저녁에 다른 약속이 있어 안면도를 일찍 빠져 나와야만 했다
.

오던 길로 다시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홍성방향으로 머리를 돌린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에 방조제가 연이어 보이고 방조제가 옆에 있어 푸른 바다 사이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하다. 방조제가 끝나는 지점쯤에 멀리 포구가 보이고 지명을 보니 창리. 이름이 재미있다. 허름한 가건물들. 포구의 본래 모습인가? 각종 조개와 멍게 해삼등 해산물이 커다란 통에서 손님들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점심을 먹은지 얼마 안되는 시간이라 군침이 돌지만 먹음직스럽게 담긴 젓갈류 중 꼴뚜기젓을 하나 사서 담았더니 더 필요한 것 없느냐며 자꾸 권하지만 과감하게 유혹을 뿌리친다
.

어디가나 똑같은 횟감들, 똑같은 해물들, 왜 우리의 특산물은 꼭 이래야 하는지
창리를 나와 한참을 더 가니 귀에 익은 이름이 하나 나온다. 간월도. 그래이 곳을 지도상에서 본 적이 있다. 어리굴젓으로 유명한 간월도. 들를까 말까 지체할 여유도 없이 차를 간월도방향으로 몰아댄다. 조용한 입구를 지나니 또 포구의 정겨운 모습들이 펼쳐진다.

해변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길을 걸어가니 먹음직스러운 대하, 전어, 아나고 구이냄새 때문에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의 이런 모습이 측은했던지 아내가 먹고 가자고 먼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간다. 못이기는체하고 따라 들어가 모듬으로 조금 주문하여 맛있게 먹으니 아내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

뚝딱 전어 세마리, 대하 두마리, 아나고 한마리를 구워먹고 포구로 걸어나가니 바닷물이 찰랑대며 발 앞에서 부서진다. 포구에는 낡은 배를 이용해 손님들이 선상에서 회를 즐기도록 만들어 놓았다. 나오면서 또 발길을 잡는 것이 젓갈류. 또 한번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얼마나 이런 것들이 좋은지. 동네 까르푸에서 비싼가격 때문에 몇 번인가 살까 말까 망설이던 낙지 젓갈을 구입했다. 아줌마가 직접 담았다는 어리굴젓을 사고 싶었으나 요즘 사들인 젓갈류 때문에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포기하고 만다
.

아줌마들의 말투가 모두 정겨워 보이는 포구를 떠나 오며 마음이 뿌듯하다. 이렇게 바다내음들이 좋으니 내 어찌 내 짠 바다물 동네에서 태어난 인천태생을 숨길려나
.

부모님 산소를 거쳐 부천으로 돌아오는 길은 혹시나 했는데 전혀 막히지 않고 시원하게 뚫려 있다
.

..좋다. 4월의 어느 날 잠시 떠난 여행후기. 이 말밖에 할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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