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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방황기 (2002년)

carmina 2015. 12. 9. 10:05

(사라진 싸이 미니홈피에 있던 글을 이곳으로 옮깁니다.)

 

인사동 방황기

 

인사동 방황기인가?

십년동안 인사동에서 적어도 하루 10시간 이상씩 지낸 적이 있건만 한번도 인사동에 대해 기행문을 써 본적이 없어 내 자신에 대한 핀잔으로 이번엔 방황기로 적는다.

 

업무 외의 공돈이 생겼다. 오래 전부터 벼르던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구입하고 우선은 새로 산 자동차처럼 아직 기능도 다 익히지 못한 채 시운전하기 위해 주일 예배를 끝내자 마자 편하게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섰다. 평소부터 늘 구석구석을 카메라의 눈으로 보고 싶었던 인사동.

 

눈을 감고 다녀도 골목 골목 빠삭한 인사동길을 파인더를 통해서 보는 맛은 어떨까? 전철로 종각을 가는 동안에도 난 사진기 매뉴얼을 읽느나 바빴다.  어제 밤에 찍어 놓은 사진을 지우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다가 겨우 방법을 터득하고 기쁨에 차 있을 무렵. 종각입니다.종각입니다.  아이쿠 내려야지.

 

도심의 떠들썩한 종로거리를 촬영하기 보다는 우선 인사동을 생각하고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카메라 스위치를 작동 위치에 놓았다.  입구에서 각종 우리나라의 토속 기념품을 파는 손수레에 탈을 찍어 싶어 아줌마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물어보니

아줌마 왈.  이쁘지도 않는 것 뭐하러 찍노? 다른 걸 찍지.

대답으로는 이게 제일 이쁜데요.하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장사를 할 줄 모르는 아줌마가 인사동에 있다는 것이 꽤씸할 따름이다. 자기가 파는 것을 이쁘지 않다고 말을 하는 우리네 어른들의 직업관.  왜 그렇게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살까?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여도 제대로 팔릴까 말까 하는 세상인데 내가 물건 사지 않을 것이라는 지레 짐작 때문에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했을까?

 

반면에 조그만 판 위에 각종 아름다운 빛을 내는 유리알 보석을 놓고 열심히 손질하는 아가씨의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 대니 쌩긋 웃어준다. 그래..이렇게 웃어야지.. 고운 손과 유리알이 더 빛나 보인다.

 

가을 날 일요일 오후의 인사동.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고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귓가에 들리는 얘기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 서반아어 등등.. 내가 아는 말들은 모조리 귀에 들린다.   아마 내가 모르는 말도 많이 들릴텐데 그런 것은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것인가 보다.

 

입구의 공연장에 많은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무슨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큰 북과, 징을 드럼처럼 만들어 놓은 독특한 악기, 아직 공연 시간이 아닌 듯 악기들만 뎅그마니 놓여 있지만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계단에 가득 모여서 연주자를 기다리고 있다.  넓은 광장 한 편에 있는 까만 물항아리. 이게 물항아리인가? 아냐..항아리는 아니지. 분수인가?  그래 분수에 가깝겠다.  아이들이 분수에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즐긴다.  부모들은 말릴려 하고 아이들은 말릴수록 더 물장난에 열 올리고 있다. 

 

공연을 기다리다가 옆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잠시 발길을 옮기니 교회청년들로 보이는 남녀 젊은이들이 허슬을 즐기고 있다. 스스로 하면서도 계면쩍은지 표정들이 그다지 밝지는 않다. 그러나 열심히 해 볼려고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일요일은 차 없는 거리라 보도에 장삿군들이 밀집해 있다. 주로 조그만 장식품을 팔고, 어릴 적 향수가 생각나는 뽑기들.  어릴 때는 어쩌면 사탕으로 그리 투명한 과자를 만들어 내는지 신기하기만 했던 그 추억의 과자들이 손수레에 가득하다.  달기는 얼마나 달았던지

이제는 커서인지 아니면 혹시나 있을 지 모를 당뇨를 걱정해서 인지, 단 것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감히 그거 하나 사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손수레 앞에 가득 몰려 있다. 과연 이런 물건들을 압구정동이나, 종로통이나 혹은 백화점에서 팔면 저 옷 잘입은 멋쟁이 남녀들이 이 곳에서처럼 사먹을까?

 

남미를 연상케하는 자그마한 장신구들을 파는 사람들이 이곳에는 유난히 많다. 그리고 때로는 정말 남미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고  장신구 앞에 몰려 있는 아가씨들그리고 한 발자국 뒤에서 다른 곳을 쳐다 보고 있는 아가씨들과 같이 나온 남정네들표정들이 재미있다.

 

인사동하면 볼거리, 먹거리 뿐만 아니라 냄새도 좋다. 향을 파는 장삿군들이 많아서인지 인사동은 늘 그윽하기만 하다. 인근에 우리나라에 큰 절 중의 하나인 조계사가 있어 스님들이 많이 오고 여기 저기 스님들이 떼지어 몰려 다니며 사진도 찍고 있음을 심심찮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모든 것에 눈이 휘둥그레진 어린 아이의 시선을 잡느라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은 마치 풀어 놓은 망아지처럼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요리 조리 비켜가며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인사동에 서구의 물결이 들어선다고 매스콤에서 불평들을 하지만 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든 것. 특히 먹는 것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하나 밖에 없는 자기 몸을 위하여 극진히 신경쓰는 법이다.

 

아무리 인도사람들이 인도의 생명수라는 갠지스의 강물을 손으로 떠 마셔도 탈이 없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은 감히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 강물에 시체를 화장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는데 어찌 그렇게 육안으로 더러운 물을 마실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인사동에 오는 외국인들에게 쌍화차나 식혜 등 한국차를 내 놓으면 선뜻 마실 수 있는 외국인이 얼마나 있을까?  그들에게 불고기나, 부침개, 비빔밥, 김치 등을 내 놓았을 때 무척 맛있겠구나 하고 숟갈을 들고 덤벼드는 외국인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것처럼 인사동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용기없는 외국인들을 위해 햄버거 가게나, 스타벅스 같은 국제화 되어 있는 먹거리 판매소는 한 두개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외국여행하다가 한국식당이 있으면 무척이나 반갑듯이 그 들에게는 맥도날드의 빅맥이나 스타벅스의 에스프레소가 무척이나 먹고 싶을 것이기에..

 

깔끔한 젊은이들이 스타벅스로 들어서고 넓은 2층의 창가에 젊은이들이 길거리를 보며 담소하고 있다. 

 

인사동 사거리. 오른 쪽으로 가면 낙원상가, 왼쪽은 조계사 직진하면 인사동 한 복판이다.  골목 골목이 먹거리들이 가득하고 각종 토산품들, 전통의상들 파는 가게들이 몇 년만에 많이 모습이 변해 있지만 여전히 그 정취는 가득하다.

 

모퉁이의 호떡가게 역시 성황중이고 몇 년 전 인사동에 뎅그마니 돌 의자들을 많이 놓아 사람들이 볼 품이 없다고 빈정거리니 그 돌 의자들 사이에 돌 화분을 놓아서 연꽃을 키우고 있다. 그래..이건 좋은 발상이야.  우리 불교 문화를 조금은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 도심지에 핀 연꽃이라.. 하긴 연꽃은 지저분한 곳에서 더 잘피는 법이니..연꽃 하나에서 소중함을 느낀다. 

 

인사동 사거리에 즉석 한과를 만들어 파는 곳에서 커다란 무쇠 솥에서 연신 한과를 만들고 있다.  한국인들이나 외국인들에게나 한과를 직접 만드는 것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금방 만들어낸 바삭바삭한 한과를 맛 볼 수 있으니.. 

반원형의 솥에서 한과를 만들어 넓은 판에 넣고 평평히 펴서 큰 부채로 김을 나가게 한 뒤에 홍두깨 같은 큰 방망이로 평평하게 밀어서 도끼날 같은 것으로 싹둑 싹둑 잘라 내 놓는 한과.  사람들은 너도 나도 줄을 서서 한과를 사고 있다.

 

틈새시장이랄까?  그 토록 많은 토산품 파는 곳 귀퉁이에 자그마한 과일 가게.. 그곳도 성황이다. 커다란 슈퍼마켓은 공예품파는 곳으로 바뀌었어도 조그만 구멍가게 수퍼는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사동.  대형 옷가게는 자주 바뀌어도 조그만 호떡 파는 가게는 여전히 성황이고..  그게 인사동의 모습인가 보다. 무언가 고향의 모습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많이 멈추게 하는 곳은 큰 것이 아닌 작은 것.

 

넓은 도로가 조그만 도로로 바뀌어 버렸다.  사람들과 장삿꾼 사이를 헤치고 돌아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인사동은 사람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그 많은 장삿군들 중에서도 어릴 적 향수를 물씬 풍기는 설탕과자 또 뽑기.  갈색설탕을 큰 숟가락에 담고 불에 녹여 이스트를 조금 넣으면 크게 부풀 때 편편한 곳에 쏟은 후 얇은 철판으로 빈대떡 같이 눌러서 별모양이나 새모양 혹은 갖가지 모양의 철판으로 무늬를 새겨 넣는 것. 

어릴 때는 그 무늬가 상하지 않게 만들어 가지고 가면 또 하나를 주곤 했지만 지금 이곳 사람들은 무늬를 제대로 만들게 하기보다는 그냥 신기해서 구입한 것 뿐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렇게 만든 과자로 무늬를 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손의 온도 때문에 과자가 녹고 조금씩 구석부터 파 들어가도 자칫 잘못하면 똑 부러져서 쉽지 않은 일인데도 어릴 때는 그렇게 그 과장에 대해 욕심을 부렸다.  입이 새빨개지도록 그 과자를 뜯어 먹고 치아가 썩고..

 

인사동에는 소리가 많다.

조그만 새 모양의 도기에 물을 부어 새 처럼 소리를 낼 수 있는 피리를 파는 장삿군들이 많고, 엿을 판다고 가위를 두드리는 소리, 행운의 종소리들, 단소를 파는 장삿꾼의 단소소리, 가끔 품바 같은 옷차림에 얼굴 페인팅을 한 사람이 북을 치며 춤을 추고 이래 저래 인사동은 장터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인사동에는 특이한 찻집들이 많다. 

인사동을 대표하는 귀천(歸天)이라는 카페.  시인 천상병씨의 미망인이 경영하는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비록 내부는 적지만 문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인사동 입구에 천상병씨의 조각상을 세워 놓자는 의견도 있을 정도로 귀천은 유명한 곳이다. 

 

이름이 재미있는 카페들. 깔아 놓은 방석 놓고 간들 어떠하리,  꽃을 던지고 싶다, 솟대, 나에 남편은 나뭇군, 나의 살던 고향은, 학교종이 땡땡땡, 나는 오늘도 춤을 추고 싶다, 놀부가 기가 막혀, 등등이름만으로도 정겨운 카페들이 있는 가 하면 미술작품을 구경하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수없이 많아 직장다닐 때도 이 곳은 늘 새로운 곳이었다.

 

인사동에는 예술이 있다.  초상화를 그려 주는 사람, 단소를 불며 직접 제작한 단소를 파는 사람, 온 몸에 흐르는 기()를 보여 주는 사람, 그룹 연주와 각종 퍼포먼스, 가끔 전통음악 연주도 있고..등등 그래서 인사동이 좋다.

 

인사동에는 먹거리가 풍성하다  전통음식 뿐만이 아니고  이태리 식당, 패스트 푸드는 물론이고, 일식 집, 누룽지탕을 즐길 수 있는 중국집, 특이한 한식 집들, 정통 한식집도 있고, 산촌이라는 채식전문점도 있으며, 전통 한국 공연을 보며 식사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제대로 된 한식상을 차려 주는 고급 음식점도 있고, 된장 비빔밥으로 유명한 툇마루, 홍어회로 유명한 영산강, 평양만두와 갈비탕이 유명한 사골집, 선짓국으로 유명한 장터국밥집, 재첩국 집이 있는가 하면, 맛있는 솥밥집도 있다.

 

인사동 골목에는 없는 것이 없다. 그림  전시회장은 물론이고, 화랑, 전통음식 식당, 서구스타일의 식당, 요정, 전 세계의 칼들을 시대별로 종류별로 주로 전시하는 전시장도 있고, 여관이나, 저녁이면 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놀 수 있는 곳도 있다.

 

인사동에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들을 여행상품 중에 인사동 방문은 꼭 감초처럼 끼어 있기에 종종 깃대를 보며 무리를 지어 다니는 외국 관광객들을 볼 수 있고, 가족끼리 온 외국인들, 혹은 외국인이 연인인 듯한 한국인들과 같이 다니는 것을 부지기수로 볼 수 있다. 신기한 것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외국인이 많고, 한국의 먹거리들을 손에 들고 삼삼 오오 짝을 지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사동에는 사랑이 있다.  주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적당한 곳이며,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이고, 저녁이면 소주나 맥주에 질린 연인들이 막걸리나 파전이 그리워서 이곳을 찾기도 한다. 

 

유난히 사람들이 더 밀집해 있는 인사동거리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조그마한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필름구입비용이나 현상비가 필요없는 디지털 카메라이기에 신이 나게 찍어 댔다.  아직은 기능을 잘 몰라 우선은 자동으로 놓고 줌만 조절해가며 찍다 보니 어느새 60장을 넘게 찍었다.

 

경인미술관을 찾았다. 난 늘 경인미술관을 뒷 문으로 들어간다.  뒷 골목에 보암직한 전통식당들이 있고 우리 어렸을 적 골목을 걷는 기분이라 일부러 이 길을 찾는다. 이 골목 끝에 자주 가던 식당도 있고, 친구들끼리 모여 저녁이면 회식을 하던 과부식당도 있고, 때론 야근하다가 집에 가기 힘들 것 같으면 잠시 잠을 자던 여관도 있고, 지금은 업종을 달리 하고 있지만, 친구들끼리 모여서 기타치고 노래하고 전혀 모르는 손님들과 어울려 같이 맥주를 마시던 조그만 공간도 있고, 산채음식으로 유명한 식당도 있고 경인미술관 뒷문의 넓은 나무대문의 느낌이 좋아 이 길을 찾는다.

 

열려진 나무대문을 지나가니 첫 눈에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가 내 가슴을 반긴다.  시골가면 어디든 감나무가 있고, 이 때 쯤이면 눈에 보이는 것이 감천지겠지만 어디 도심에야 쉽게 볼 수 있으려나.  아직 덜 익었다 싶은 감을 근접 촬영하고, 경인미술관 가면 늘 앉아 있다가 오는 툇마루에 앉아 한가한 오후를 즐긴다. 해마다 조금씩 내부가 변해가는 경인미술관은 구한말 조선의 박영효 대감이 살던 집터이며 전통한옥과 정원이 어우러져 있는 찻집으로 직장다닐 때 외국 손님들이 오시면 꼭 점심 식사 대접 후 들르던 곳이다.  이 곳에서는 흙을 밟을 수 있고 그윽한 차의 향기가 늘 가득한 곳이기에 인사동에 오면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한 곳에서는 전시실이 있어 늘 각종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가끔 이 곳 마당에서 전통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곳에 솟대를 몇 개 세워 놓았으나 솟대가 너무 인위적인 미술작품 성격을 보여주기에 정감은 덜 가는 편이다 차라리 시골의 솟대를 그대로 가져다가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전통적인 분위기를 내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의 풍습을 알려 주기에는 좋은 볼거리이다.

 

이젠 나도 먹거리를 해결해야겠다. 인사동에서 오랜만의 먹거리라.. 어디로 갈까? 무척이나 망설여진다.. 이곳의 먹거리를 너무 잘 알기에..  종로쪽으로 걷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그래 토방을 가자.  저렴하고 반찬이 많기로 유명한 집.  이전에도 점심시간에 이 집을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점심시간 10분전에 나와야 자리가 있을 정도로 붐볐는데 오늘은 어떨려나.  아니나 다를까, 조그만 문의 허름한 입구를 들어서니 열심히 싱싱한 게를 묻히고 있고 각종 반찬들이 준비되고 있으나, 내가 앉을 자리는 없다. 조금 기다려도 안되느냐고 했더니 안된단다.  혼자라서 기피하는건가?  한 눈으로 주욱 둘러 보아도 앉을 자리는 없는 것 같다.

 

그럼 어디로 갈까?  햄버거?  칼국수? 된장비빔밥? 대나무통밥? 아냐 아냐..

내가 인사동에 있을 때 친구들이나 손님이 오면 잘 대접하던 곳으로 가자. 삼원정.  솥밥집.  밑반찬이 맛있기로 유명하고 오대산에 가지고 온 약수를 밥을 짓기에 노란 색갈의 쌀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집.  천도교 본당 앞에 있는 삼원정을 찾아 들어가니 휑한 실내.  들어가면서 한마디.  ? 왜 이 맛있는 집에 손님이 없지? 

 

넓은 집에서 혼자 독상을 받았다. 2년만에 찾아 왔는데 맛이 변함이 없는지 궁금하다는 너스레와 함께  그러나 역시 삼원정의 밑반찬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금방 지은 솥밥도 맛있고, 거의 20개가 넘는 각종 반찬들이 내 입맛에 맞는다. 반찬 하나라도 남기는 것이 아까와 배불리 먹으니 일어나기도 힘드네.

 

이제는 어둑어둑한 인사동을 거닌다. 아직도 인사동엔 사람이 가득하고 생기가 철철 넘친다. 비록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장삿꾼들도 있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오늘은 더 여유를 가져보리라.  어느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 볼까 하다가 그래도 창이 넓은 스타벅스를 택했다. 

 

카페모카를 톨사이즈를 하나 시켜서 2층으로 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사람들의 모습을 편히 보기 위해선 1층 창가가 좋을 것 같아 문 바로 옆의 큰 유리 앞에 앉았다.  옆에서는 두 아가씨가 열심히 가정에서의 남편 역할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고, 난 열심히 밖의 모습을 내 눈에 담기 바쁘다.

 

어떤 아가씨가 스타벅스 커피 하나 들고 문 바로 앞에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관심있게 보는 사람이 없다. 다른 곳이라면 눈길 많이 받을텐데..  스타벅스에 들어오는 이는 한국인 반, 외국인 반정도 되는 것 같고 한국인은 거의 젊은 연인들 뿐이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을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마시며 어두움속에 밝게 빛나는 인사동을 바라보고 있으니 온 몸이 편안해 진다. 

 

기분 좋은 모습으로 거리로 나와 포장친 점()집에서 관상을 보고 있는 이들을 사진 찍고 개량한복을 유난히 싸게 파는 집에 있어 오랜만에 두툼한 개량한복을 샀다.  자주 입지는 못하지만 옷장에 개량한복이 걸려 있으면 어쩐지 편한 느낌이 들기에

 

카메라를 목에 걸고 종일 인사동을 다녔다.  다음에 올 때는 더 깊게 찍어보리라. 더 느낌이 있는 사진을 찍어 보리라.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을 찍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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