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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그리고 외도 여행기

carmina 2015. 10. 12. 16:41

 

 

2015. 10.9

 

그 곳은 내게 파라다이스였다.

바다가 있고, 음악이 있고, 자연이 있는 곳이었다.

몇 년 전 통영에서 매년 봄이면 하는 국제음악제를 참관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여행기에 이렇게 써있다.

 

언제든 다시 맘껏 통영을 즐기고 싶다.

한번으로 끝내기엔 너무 맘에 드는 곳이다.

있어라. 다시 오마..  안녕..

 

그 날이 왔다.

 

아내가 여행사를 통해 통영과 외도 1박2일을 예약해 놓았기에

가볍게 차려입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1박 2일이라도 교통편과 숙박편이 모두 제공되니

내겐 많은 짐이 필요없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지 출장용 캐리어를 챙겼다.

 

교대역, 이른 아침에 전국으로 떠나는 많은 관광버스가 각각의

목적지를 유리창 앞에 붙이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 한군데 올라 출발.

몇 몇 부부가 함께 온 사람들 외에는 거의 다 모르는 사람들이라

인사를 할 필요도 없다.

 

길을 떠나니 내 뒤의 여자가 이런 여행을 좀 다녀 본 듯

가이드에게 큰 소리로 왜 일정표 빨리 안주느냐며 큰소리 친다.

젊어보이는 가이드가 여행에 대한 간단한 설명 후

모두 피곤할테니 일단 부족한 잠을 자라며 버스의 실내등을 꺼준다.

 

일행 중 서로 잘 아는 부부로 온 팀 중 한 명이 입이 걸쭉한지

자꾸 시시껄렁한 농담을 허공중에 흘려 보내고 있다.

오늘 손님들의 수준이 조금 모자른건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용하다.

 

이른 시간인데도 고속도로가 막히고 있다.

연휴의 시작이라 나처럼 이미 잠을 깬 여행객들이 움직이고 있다.

한참 가다가 옥천휴게소에서 잠시 버스가 쉬고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아까 일정표 타령하던 아줌마가 큰소리로 손님들에게

쓰레기 바닥에 버리지 말자고 앙칼진 목소리로 외치니

내 앞에 앉아 있던 일행이 주섬 주섬 흘린 비닐을 줍는다.

나중에 정리하면 될 것을 같은 손님 주제에 지가 뭐라고 큰소리를 쳐?

그 때부터 내 심사가 틀어져 가기 시작했다.

 

버스 옆으로 지나는 이정표에 산청 함양이 보이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리산이 보인다. 얼른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지리산 둘레길 지도를 꺼내

여기가 어디인지 대충 보니 멀리 보이는 산이 지리산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 해 지리산 둘레길을 다 완주하긴 했지만 무언가 조금 켕기는 것이 있다.

지리산 둘레길 여행기만 모아 책을 하나 쓰고 싶은데

이미 지난 번 발간한 내 책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에 이미

초기에 걸었던 둘레길 몇 코스의 여행기가 있으니 그걸 다시 쓸 수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책에 올렸던 부분을 다시 걸어야겠어.

 

통영에 도착할 때 쯤부터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가기도 차가 막혔으나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게 도착했다. 그러나 통영 도로도 차들로 가득 찼다.

지나치는 거리의 대형 전광판에 유명 바이올리스트인 다니에 호프의 공연 소식이

번쩍이고 있다. 역시 통영은 음악이 도시다.

그 많은 대도시를 두고 통영까지 와서 공연 하는 것은

통영이 고향인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씨에 대한 대단한 배려다.

 

우리 버스 2대에서 내린 여행객들이 모두 해변의 도담식당에 들어가

이미 차려진 굴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또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종업원에게 주문했는데 늦게 나오는지 큰 소리로 불평하는 이가 있어

뒷모습을 보니 아침부터 우리 버스안에서 큰 소리 치던 여자다.

 

식사 후 버스 타기 전 통영바닷가에 나오니

멀리 지난 번 하루에 3개의 음악회를 즐겼던 예술회관이 있고

주위에 보이지 않던 빌딩들이 몇 개보인다.

바닷가 물은 여전히 깨끗했고, 사람들은 바닷가를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고 있다. 고요한 평화가 음악같이 보인다.

 

통영에 도착하자 마자 제일 먼저 찾아간 여행지는 지난 번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한 미륵산케이블.

한 시간에 1000명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케이블카는

당시 표를 사고 대기시간만 해도

무려 2시간가량 되어 결국 버스시간때문에 포기했었다.

 

이번에는 단체에서 미리 티켓을 예약해 놓았기에

그다지 많이 기다리지는 않겠지.

그러나 개인으로 온 사람들은 표를 사 놓고 긴 대기시간을 때우느라 길 옆에

자리를 펴 놓고 기다리는 이도 있었다.

 

1인당 8000원하는 케이블카에 8명이 탑승.

대충 계산하면 하루 10시간 운행한다 치고

1000명 X 8 시간 X 8000원하면 간단히 하루 8천만원.

한달 25일 일년 운영한다 치자. 거의 200억원 정도.

수없이 많은 케이블카들이 줄줄이 산으로 올라간다.

대개 스키장 케이블카는 밑에 안전망을 쳐 놓는데

여기에는 그것마저 없다. 안전에 자신하는 것인가?

 

한려수도의 섬들이 눈에 보이는 모든 바다에 만두같이 흩어져 있다.

내가 탄 칸에 가이드가 타서 여기 저기 섬 이름을 알려 준다.

바로 아래 골프장도 보이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듯한 숲길도 있다.

10분정도 올라갔나?

케이블카에서 나와 바로 미륵산으로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이 곳은 걷는 길도 이렇게 해 놓아야만 산이 견딜 것 같다.

걸어서 정상까지 약 15분.

그다지 힘든 길이 아니다. 그래도 가파른 길이라

노인들 올라가기는 힘에 부치는지 자식들이 사준 등산복을 입은

할머니들은 밑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미륵산 높이 461m

정상에 서니 남해 한려수도의 섬들이 모두 보인다.

날이 좋은 날이면 대마도까지 보인다지만

오늘은 멀리 안개가 끼어 있어 방향만 알려 준다.

 

눈 앞에 제법 큰 한산도가 보이고

걷기 코스가 좋다는 비진도, 욕지도, 매물도 소매물도가 보인다.

멀리 눈길을 뻗치니 거제대교도 보였다.

사람 살지 않은 작은 섬도 있고 제법 큰 섬도 있는 한려수도 국립공원

이렇게 불과 몇 개만 보여도 아름다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섬이 많은 천섬지역은 어떤 모습일까? 

 

미륵도 표시석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역광으로만 사진을 찍고 내려와

통영사람들이 주로 산책을 하고 자전거타는 길이라는

삼칭이 해안도로로 나와 작은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고기가 별로 잡히지도 않는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잠시 망중한을 즐겼다.

 

매번 유명 관광지를 바로 바로 찾아가는 것보다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는 시간도 좋다.

동네 사람이 태우는 쓰레기 연기도 향으로 맡아질 정도로 좋았었나?

 

그러나 바로 옆 산비탈에는 커다란 스티로폼으로 만든 어구들이

오랜동안 박혀 있었던 듯 서서히 수풀속에 파 묻히고 있어 아쉬웠다.

아름다운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이

지저분한 것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바닷가를 특성 때문인지

바닷가는 늘 지저분했다.

일본이나 유럽의 바닷가는 그렇지 않았었는데 한국은 유난히

바닷가는 지저분하다. 아직도 국민 전체가 선진국 되기는 거리가 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보았다.

선착장에서 담배를 피며 손님에게 표를 받고 있는 선장.

배에서 시끄럽게 틀어 주는 트롯트음악

왜 우리나라 관광지의 유람선은 모두 트롯트음악인지..

식당에서 밥 늦게 나온다고 소리치며 나가버리는 손님들.

 

잠시 쉬고 찾아간 박경리 기념관.

통영 내려오는 버스기사안에서 가이드가 통영의 유명인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나도 사전에 조사했었다.

통영을 무대로 한 김약국의 딸들과 지리산 둘레길의 하동군에 있는

평사리를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 '토지'

 

박경리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단아한 모습의 해국이 보이더니

기념관 바닥에도 해국의 무늬로 새겨 넣었다.

특별히 해설자 한 분이 나와 사투리를 섞어가며 박경리의 삶을

이야기해 주고, 김약국의 딸들 무대가 되었던 마을의 모형판도 소개해 준다.

생전 박경리씨들이 사용했던 물건들과 육필원고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글 한 마디를 쓰기 위해 고쳐 쓴 부분들을 보면서

단어 하나 선택에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기념관 구석에서 아이 하나가 책을 읽고 있어 신기하다 했는데

알고보니 '토지'를 만화로 그린 책에 빠져 있었다.

김약국의 딸들의 영어판 제목에는 소설의 성격상 '딸들'이라는 표현보다

저주라는 표현의  'Curse'라고 정한 것이 이채로웠다.

 

통영 시내가 관광차들로 거의 주차장 수준이라 도로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바람에 관람시간이 부족해 박경리씨 묘소까지 갈 시간이 없어

기념관을 나와 해저터널을 찾았다.

 

해저터널은 우리 나라 아픈 역사의 일부분이다.

1930년대 통영에 일본인 어민들의 숫자가 많아지니

일본인들이 만들었는데 다리를 놓지 않고 해너터널을 만든 이유는

임진왜란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에게 패한 왜군들이

통영 인근에 많이 잠들어 있는데 그 곳에 다리를 놓으면

왜군들의 영혼을 밟고 다닌다해서 해저 터널을 건설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미륵산이 있는 산양까지 가는 문이라 해서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고 휘호를 써 붙였다.

만약 아직도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더라면 일본에서 한국까지 해저터널을

건설하지 않았을까?

 

길이 약 500m 높이 약 3.5m 정도의 터널에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마을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어떤 젊은이가

통행이 금지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자전거 탄 어른에게 한마디 들었다.

 

거기서부터 동피랑언덕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거의 차들이 기차같이

연결되어 가는 것 같았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니 멀리 나폴리모텔이 보이는데

거기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서 기다리느니 

차라리 걷는 것이 빠를 것 같다.

 

동피랑 벽화동네는 원래 달동네라 재개발을 위해 철거하고

새로운 주택의 모습으로 개발할 예정이었는데

도시의 재개발을 위해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기존의 집을 그대로 볼품없는 세멘트 벽에 예술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생명을 불어 넣었다.

 

이 발상의 전환으로 도시가 새로 태어났다.

골목 골목에 이어지는 벽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밀려 들었고

인근의 전통수산시장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먹고 마셨고

인근에 모텔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충무김밥집은

통영의 명물이 되었으며, 이전 통영 방문때는 하나도 없던

꿀빵집이 서로 원조라고 이름 붙이고 가게 3개중 한 개가

꿀빵집일 정도로 많아졌다.

 

매년 봄에 열리는 통영 국제음악축제때만 기획공연 및

프린지 콘서트인 거리음악회들이 많았는데

이젠 여기 저기서 사시사철 클래식 공연이 열린다.

내가 알고 있는 음악가들도 이 곳을 자주 온단다.

 

충무공 이순신의 한산대첩 장소가 바로 인근이라

거북선을 해변에 실제 모양대로 크게 만들어 사람들이 들어가게 했고

통영에 충무공을 모시는 사당인 충열사에도 사람들이 찾는다.

 

차가 거북이처럼 움직이기에 가이드에게 가서

혹시 걸어가면 안되겠느냐 했더니 주차할 장소를 찾지 못하면

나중에 찾아오지 못한다며 이대로 가야한다기에 그 말이 맞을 것 같아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내 뒷좌석에 있던 성깔있는 아줌마가 급기야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 내려 주고 나중에 찾아오면 되잖아'라며 반말로 크게 소리치기에

몇년전 기억이 있어 아무래도 이 여자 사고칠 것 같아 내가 거들었다.

 

몇 년 전 비슷한 여행팩키지에서 가이드가 곤욕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 해도 이번처럼 팩키지 여행 후 밤늦게 돌아오는데 버스기사와 가이드가
죽전에서 탔던 아줌마 한 분을 내려주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아줌마 죽전을 지나칠 때는 아무말 없다가

강남쯤 오면서 왜 자기 안 내려주었냐고 따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당초 버스 출발점인 부천까지 따라 와서는

여행경비랑 부천에서 죽전까지 가는 택시비 내라고 윽박질렀었다.

가이드는 회사에 사정을 설명하느라 쩔쩔 매는 것을 보면서

우린 내렸는데 늘 그 여자가 몹시 나쁜 고객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이번엔 얘기를 할 때마나 엄마와의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하며 설명하는

착한 가이드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래서는 큰소리 치며 잘났다고 떠드는 이 아줌마가
더 기세등등할 것 같아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내가
그 아줌마에게 즉시 받아쳤다.
당신의 큰 소리때문에 여행이 짜증나니
개인 의견있으면 가이드에게 가서 조용히 얘기하라고..
이 아줌마가 조금 변명하더니 곧 '알았다'고 꼬리를 내렸다.

 

이 일이 있은 후 같은 버스 안에 있던 손님들이 관광 중 내게 반갑게 인사한다.
어떤 분은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다.

 

여행 2일째 이 아줌마는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만 하고 있었다.

 

겨우 겨우 길가에 주차하고 어두운 시각에 동피랑 벽화골목을 찾았다.

비록 어두웠지만 좁은 골목길을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고

골목 골목에 재미있게 그린 그림들을 몇 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 언덕위에서 바라다본 통영 앞바다 강구안의 야경은 참 아름다웠고

바다에 투영된 밤의 등불은 파티를 준비하는 연회장 같았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골목 골목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벽화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풍상에 희미해지는 것이기에

벌써 많은 곳의 벽화가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벽화마을로 인해 할머니 바리스타도 생기고

골목 골목에 주민들이 너도 나도

작은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도시의 변화 모습이었다.

 

밤이 늦어 전체 골목을 다니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이미 정해진 시간때문에 언덕을 내려와 서호 어시장에 들러 통영에 오면

꼭 먹고 싶었던 싱싱한 회를 사러 골목안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장 이 자리에 앉아 회를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나 어릴 때 인천의 화수부두 동네 아주머니를 보는 것 같아 반가왔다.

큰 고무다라 안에는 돔과 숭어 그리고 광어가

물에서 튀어 나올려 펄펄 움직이고 있고

여기 저기 눈에 보이는 문어, 소라와 멍게 커다란 조개들

그리고 전복이 내 식욕을 자극했다.

할머니들은 너도 나도 앉은 채로 회를 써는데

다른 어시장처럼 한 두 마리 회를 써는 것이 아니고

단체손님들이 주문한 것인지 몇 마리를 한꺼번에

굵은 칼로 써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일식집이라면 날렵한 일본 칼로 얋게 회를 치건만

여기선 보통 대장간에서 만들었을 것 같은 부엌칼로

회를 굵직하게 잘도 썰어내고 있다.

 

나도 커다란 돔 한마리를 15,000원에 사고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아

두리번거리다가 싱싱한 전복도 6마리에 10,000원 주고

초장을 파는 횟집을 찾아도 사람들이 많아 몇 집 거쳐서야 겨우 자리를 찾았다.

 

아내와 둘이 앉아 회를 먹고 있는데

옆에 외국인과 한국 젊은이 2명이 같이 회를 가지고 들어와 앉았기에

영어 바름으로 보아 미국인 같기에 애기를 걸었더니 생선회는 좋은데

낙지회는 먹지 못하겠단다.

아무래도 꼼지락 거리는 낙지생물은 거부감이 있나보다. 

    

다 같이 모여 차에 오른 뒤 좁은 시장통을 빠져 나가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숙소가 바닷가에 있다면 산책이라도 했을텐데

저가여행이다 보니 숙소를 시내의 모텔에 잡아 놓았다.

다음에 혼자 여행하게 되면 강구안 바닷가에  게스트 하우스도 많으니

내년 국제음악축제기간에 음악회도 볼겸 해서 혼자 훌쩍 떠나오는 것도

기대해 볼만 하다.

 

시내에 락모텔이라는 숙소는 주위에 상가조차 없는 외진 곳에 있어

비록 깨끗하지만 저녁에 마실거라도 살까 해서 잠시 나왔다가

워낙 주위가 어두워 그냥 들어와야만 했다.

TV로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2를 보면서 또 다시 바다에 빠졌다.

 

둘쨋날 아침 6시에 모여 외도 관광을 위해 떠나야 한다.

주말이고 거제에 볼 것이 많아 30분 갈 거리를 차가 막히면

2시간 넘게 가야한단다.

 

일찍 출발했다.

서울에서는 오늘 비온다는데 다행하게도 여긴 맑은 가을 하늘.

가이드는 어제 떠날 때 부터 그렇게 사전 예고를 했다.

날씨 안 좋으면 외도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내가 아는 분도 외도에 들어갈려고 떠났다가 3번이나 실패했단다.

내게 이런 행운도 있네.

 

지난 밤 침대시트 밑에 비닐이 있었던지 영 불편해서 몸을 뒤척이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눈이라도 붙일까 했는데

원래 차에서 잠을 잘 자지 않는 습관이 있어 잠이 오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은 소리하나 없는 것을 보니 모두 조용히 잠들고 있는 듯 하다.

 

일찍 떠났는데도 외도 선착장이 있는 구조라포구까지 가는 길도 막힌다.

구조라포구의 식당에서 된장찌게로 아침을 먹고 배를 기다렸다.

알고보니 외도행 선박은 모두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받는 듯 했다.

가까운 곳에서 업무로 잠시 통영에 와 있는 지인에게

서울에서 내려온 김에 외도 방문을 권했더니 티켓이 현장 발매가 끝났다며

내일 표를 인터넷으로 예약하라고 했다.

 

관광회사 패키지를 다니니 티켓팅에 신경쓰지 않는 편리함이 있다.

배 하나에 우리 2대의 관광버스 승객이 모두 타는 것을 보니

100명 정원인듯하다.

머리도 단정하지 못한 채 선원복을 입고 모자를 쓴 뱃사람이

승객의 티켓을 검사하는데 연신 담배를 피고 있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왜 이런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지..

 

우리는 마치 과자상자속의 과자들처럼 좁은 의자에 차곡 차곡 앉은 채

배가 떠났다. 잠시 후 TV모니터로 안전교육이 있은 뒤

배의 선장인 듯한 사람이 조금 거만한 몸짓으로 손님에게

오늘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일부러 재미있게 할려는 듯

손님들에게 거의 농담조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 마치 기독교인처럼 경건하게 기도하다가 바로

부처님이 지켜 줄 것이라며 스님처럼 이야기한다.

아울러 손님들 관광 끝날 때 쯤에는 선착장 인근에

자기 아내가 건어물상회를 하고 있으니 꼭 사달라고 권하니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배안에서만 관광하는 줄 알았는데 해금강에 가까이 오니

손님들을 배의 난간으로 나오게 하더니 해금강을 바로 보게 한다.

남해 한려수도의 커다란 볼거리인 해금강.

바다의 금강산같이 아름답다는 뜻이겠지만 규모는 금강산의 세발의 피다.

 

커다란 절벽같은 바위 산이 바다 위에 불쑥 솟았다.

해금강은 이 바위 하나를 말하는건지 아리송.

기암괴석이 섬 주위에 포진해 있고 섬 사이에 작은 틈이 있어

파도가 치지 않는 날은 그 틈으로 가기도 한다.

커다란 바위 사이 틈새로 들어가면 그 안에 바위가 십자처럼 갈라지고

각자 틈 사이로 물골이 있어 십자바위라 한다.

 

해금강으로 오는 배들이 마치 전투를 나가는 군함처럼 많이 몰려들었다가

한바퀴 돌고 다시 빠져 나간다.

저 배들의 대부분이 외도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참 어마 어마한 숫자의

관광객이다.

 

외도에 도착. 돌아오는 시간을 확인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는데 어느 정도일까?

입구를 지나 숲으로 들어오면서 입을 벌리며 놀라야만 했다.

모두 수천번의 가위손이 갔음직한 나무들과

다른 바닷가의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대신

잘 다듬어진 사철나무들과, 돈나무, 대나무 등등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바다한가운데라 태풍이 많을텐데 어느 나무 하나도 쓰러져 있는 나무가 없다.

저런 나무들과 꽃들이 이런 염분기가 많은 흙에서 자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품종이 많고, 유럽의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어느 정원이 생각날 정도로

온 섬에 아름다운 꽃과 장식물과 호젓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이 숲사이를 마구 다니지 않도록 산책로를 정비해 놓아

식물들이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는 것은 없는 것 같고

여기 저기 사진 촬영하기 좋은 나무들을 형상화해 놓아

연인들이나 가족들이 너도 나도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무수히 많은 먹을 것 부스들이 있는 대개의 놀이공원처럼

그런 영리를 포기한 듯, 몇 개의 카페나 음식점

그리고 선물코너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사람많을 때 말고, 호젓하게 산책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득하다.

나무와 풀과 대화할 수 있는 곳.

카페에 앉아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어도 시간가는 줄 모르는 곳.

그리고 좋았던 것은 섬 전체에 종일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는 것.

 

나무와 꽃을 보면서 황무지의 외도를 식물원으로 건설한 두 분의 노력과 사랑이

보이는 듯 했다.

수없이 많은 결정을 묵묵히 아내가 따라 주었을까?

아니면 남편이 따라 주었을까?

우공이산 (愚公移山)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노력하면 산을 옮길 수 있다

하잖은 일이라도 노력하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뜻.

내게는 노력보다 부부간의 화합과 사랑이 보였다.

탐방로를 돌아가다 보니 구석에 작은 십자가가 달려 있는

교회가 있었다.

길로 향하는 곳의 길 바닥에는 각종 기독교의 상징들이 그려져 있고

작은 교회는 언젠가 오스트리아 여행 중 오베른도르프라는 곳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작곡한 이의 교회가 연상되었다.

 

아쉬운 것은 배를 타고 온 이상 그 배를 타고 나가야 하기에

섬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아주 짧다.

개인 여행을 하면 더 오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섬을 빠져 나와 거제도의 유명한 곳인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을 찾았다.

이 곳도 역시 차량의 행렬이 끝이 없다.

신선대는 바닷가에 있는 넓은 바위를 그렇게 부른다.

바닷가 작은 봉우리에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가 한 그루 하늘로 향해 있고

사람들은 그 곳으로 줄지어 내려 바위 위에서 바다를 가득 품고 있다.

옆에 작은 모래사장에는 쓰레기가 몰려 있어 보기 흉했지만

바위 만으로 되어 있는 곳에서도 시인이라면 한 수 읊을 만큼

가슴이 트이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다.

 

큰 길가에 테마박물관이 있는 그 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반대편의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 또한 사람들의 행렬로 가득하다.

그런데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손에 두툼한 핫도그를 먹고 있다.

저것도 이 곳의 기념될만한 추억인가?

아내도 기어코 오는 길에 그 핫도그를 사먹고

안에 있는 소세지는 안먹으니 내가 처리해야 했다.

 

내게는 그것보다  좁은 길 양옆으로 건축가 양덕복씨가 설계한

사무실과 펜션이 더 눈을 끌었다. 

바람이 몰아쳐도 얼기 설기 엮은 듯 하난 나무 사이로 

그냥 스쳐 지나갈 듯한 펜션과 마치 바람에 깍여나간 듯한

각지지 않은 건물들이 이채로웠다.

 

그리고 이어진 길의 끝에 거대하게 만들어진 풍차와 그 언덕 아래로

바다 끝에 만들어진 잔디 공원.

풍차의 벽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뾰족한 것으로 긁은 듯한

사랑의 증표들이 써 있다.  

사람들은 모두 그 곳에서 추억들을 만들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커텐을 닫고 잠들어 있는 낮시간에

버스가 해변을 따라 달리는 차창 밖으로 

파도같은 모습의 구름이 너무 아름다워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학동의 몽돌해변이다.

그 곳에서 점심을 각자 사먹고, 몽돌해변을 산책한다.

버스가 식당을 찾지 못해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내리자 마자 주차장에 내 눈을 잡아 끄는 은빛 물체.

무엇일까?

가까이 가서 보니 멸치를 바닥에 널어 놓고 말리고 있다.

수없이 많은 멸치를 주자장 바닥에 사각형 모양으로 말리고 있는 모습에

멸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내게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은 당연하다.

어제 아침에 통영에 오자마자 먹은 점심에도 멸치회 무침이 있어

일부러 더 시켜 먹을 정도였다.

멸치 회는 이런 바닷가가 아니면 먹을 기회가 없다.

 

식당에 들어가 아내는 멍게비빔밥, 나는 물회를 시켰다.

지난 번 통영에 왔을 때 먹고 싶었으나

아내가 거부감을 가져 침만 삼켰던 멍게비빔밥.

이젠 그 이후 먹어본 멍게비빔밥 맛에 끌려 나보다 먼저 찾았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 많은 식당인지라

멍게도 회도 양이 적었다.

강원도 물회는 맵지 않은데, 이 곳 물회는 매콤한 양념으로 만들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먹고 싶으면 양 많이 넣어 직접 만들거나

강원도로 갈 수 밖에...

 

몽돌해안으로 나갔다.

모래대신 맨발로 걸어도 될 정도의 수없이 많은 둥그런 조약돌이 해안에 가득.

물수제비라도 뜰려도 납작한 돌멩이를 골라 던져 보아도 파도 때문에

물에 폭 박힐 뿐이다.

커다란 파도가 칠 때마다 물이 썰려 나가면서 바윗돌 구르는 소리에

촤르르 촤르르 음악의 메리시마같이 소리가 들린다.

 

작은 아이들이 철썩거리는 파도 끝에 나가 일부러 물에 빠져 가며 놀고 있다.

또한 어떤 젊은 연인들도 그렇게 바지를 걷어 부치고 놀고 있다.

바닥에 길게 누워 하늘을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어린이가 되고 싶었다.  

신발을 벗고 청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에 들어가니 시원하다.

파도가 몰려 온다. 노래를 했다.

정훈희가 부른 나의 애창곡, 무인도.

사람들이야 있건 말건 목청껏 소리내어 불렀다.

옆에 앉아 있던 낯모르는 두 아가씨가 박수를 쳐 준다.

물가에 앉아 바다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작은 물고기가 수면으로 튀어올랐다가 다시 들어가 버린다.

두번씩이나..

이 곳에 앉아 노을을 볼 수 있을까?

 

서울은 비가 온단다.

버스가 충청도 쯤 지나칠 때 쯤 소나기가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맞은 편 하늘에 거대한 무지개가 떴다.

 

여행은...

이런 주마간산 여행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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