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낙엽 숲길 (나들길 17코스 고인돌 탐방길)

carmina 2015. 12. 20. 21:29

 

 

 

2015. 12. 19

 

아직도 버석 버석 낙엽밟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

종일 강화도 나들길에서 낙엽길을 걷고 왔다.

리더가 정해진 2개 코스에서  낙엽길만 걸을 수 있도록

나름대로 연구하여 비록 힘든 산길도 있었지만

구르몽이 내게 시몬아 시몬아 낙엽밟는 소리가 들리느냐 하며

내 귀에 속삭이고 있다.

 

지난 2달간 합창단의 공연을 위한 엑스트라 연습이 토요일로 정해지는 바람에

그간 나들길 토요걷기를 중단해야만 했다.

한결 추워진 12월 중순. 아침의 기온을 보니 영하 7도 한낮에는 영상 7도를 예보한다.

조금 갑갑하더라도 상하 내복을 챙겨 입었다.

 

버스가 김포를 지나갈 때 쯤 작은 하천에 자욱한 아침 안개가 덮여 있고

먼산에도 살짝 얼은 듯한 안개가 운무되어 낮게 깔려 있다.

김포의 넓은 평야도 황량해지고 아직 먼 나라로 떠나지 못한

기러기들이 멀리 떼를 지어 깊은 겨울 하늘로 날아가며 더 공허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오늘 코스는 나들길 17코스 고인돌 탐방길인데 가능한 시멘트 길을 적게 걷고

숲길을 많이 걸을 수 있도록 리더가 배려하여 상황에 따라

길벗들의 의견을 물어 코스를 정하였다.

 

시작점인 강회 지석묘에서 시작하지 않고 샘골에서 부터 시작했다.

온 마을에 서리가 가득한 길에 벌판도 집도, 수풀도 모두 하얗게 성에가  내려 앉고

어느 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에도 서리가 내려 앉은 듯

연기가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고 무겁게 무겁게 산 언덕을 기어가고 있다.

 

가끔 햇빛이 서리 위에 비치면 반짝이는 보석이 되고

어느 집 담장에 산수화는 빨간 열매들이 얼어붙은 서리로 둘러 쌓여 사파이어같이 보인다. 

잠들어 있는 마을에 집집마다 개들만 일어나 군대같이 지나가는

우리들 인기척에 끈애 매단 채 짖어대고

순한 녀석은 소리없이 반가움에 꼬리를 흔든다.

이 길의 집들이 이전에는 담장이 없었는데 나들길 코스로 되며

사생활을 간섭받기 싫은지 담장을 해 놓은 집들이 있다.

 

삼거리 지역 고인돌이 줄지어 있는 고려산 언덕으로 올라 가는 길에

걷기 편하도록 친환경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길이 깨끗해 졌다.

고인돌 주위도 모두 낮은 철제 울타리를 해 놓아 보호하고

주위의 나무들도 정리를 잘 해 놓아 보기 좋았다.

 

나무계단들에도 하얗게 서리가 얼어 차마 그 하얀 서리를 밟기가 아까워

나무를 피해 흙길을 밟았다.

언덕 길 옆에 몇 천 년 전 부터 잠들어 있는 고인돌이 줄지어 있다.

어떤 곳에는 가족묘인듯 여러개의 크고 작은 돌무덤이 있어

서열이 보이는 듯 하다.

그 곳에도 누군가 사랑하던 사람이 잠들어 있을 것이고

누군가 그 돌 옆에서 오랜동안 슬픔을 안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을테니

그 눈물이 지금은 차디찬 서리가 되어 여기 저기 맺혀 있다.

 

지천에 깔린 넓은 돌이 모두 고인돌은 아닌 듯

울타리가 둘러 있는 곳 외에는 단지 넓은 바위일 뿐일 것이다.

분명 고인돌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과학적인 힘을 빌렸을 것이다.

 

고인돌 무덤이 줄지어 있는 길에는 사람이나 동물 발자국 흔적도

모두 가려 버린 낙엽이 쌓여 단지 조금 벌어진 나무 틈 사이가 길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언덕으로 올라간다. 비가 오면 낙엽이 아래쪽으로 쓸려내려 갔을터인데

아직은 눈도 쌓이지 않고 비도 없어 낙엽들이 모두 정체되어 있는 상태다

 

언덕 위 고인돌 주위에 철제 울타리에도 서리가

마치 꽈배기에 설탕이 얇게 녹아 남아 있는 것처럼

보석같이 빛나고 있다.

이 호젓한 공간에 우리들 모여 올라오느라 흘린 땀을 식히며 웃고 있다.

 

낙엽송이 울창한 길을 지나 울긋불긋한 등산복의 빛깔들이

사라졌다가 보이기를 반복하며 점점 멀어져간다.

하늘 높은 곳을 향해 솟아 있는 무수히 많은 나무들에 비해 아주 작은 사람들의 모습.

나무는 천년을 살텐데 사람들은 백년도 살지 못하는 미물에 불과하니

자연앞에 더 겸손해져야겠다

 

일부러 일행들과 떨어져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속에서 가만히 서서

떨어지는 낙엽소리를 듣고 싶었다.

 

다시 고려산으로 올라가는 숲길을 올라간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 언덕길에 낙엽이 가득하여 와삭 와삭 소리가 나고

숲 길 옆 나무들의 잔가지가 얼굴을 스친다.

 

고천리 고인돌에 오르니 긴 평지의 오솔길이 나타났다.

여기 코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한 없이 팔을 벌리고 걷고 싶은 길.

데굴 데굴 굴러 가도 좋은 길이다.

양 옆으로 대나무숲같은 나무들이 열병하고

멀리 혈구산이 보이는 곳이다.

 

의견을 모은 끝에 적석사까지 가지 않고 내려가는 길이 나오는 곳인

적석사에서 17코스의 종착점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긴 시멘트 길이라

무릎에 무리가 생길 정도인 것을 알기에

다시 고천리  삼거리까지 되돌아와 숲길로 걷기로 했다.

이 길은 몇 번이고 왕복해도 좋은 길이니 되돌아가도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워낙 여기 길이 좋은 곳이라 마주 치는 사람들도 자주 보인다.

등산과 숲길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고려산 길.

봄이면 완전하게 산 전체가 진달래 꽃으로 덮여 사람들이 진달래꽃 만큼이나

많은 곳이 여기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이다.

 

갔던 길을 되돌아와 국화리로 내려가는 비탈길을 걸었다.

가파른 비탈길이 모두 두터운 낙엽으로 바위조차 덮어 버릴 정도라

조심해 걸어야만 했다. 낙엽 밑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

발을 헛디딜수도 있고 푹 빠질 수도 있다.

이런 길에 눈이 쌓이면 환상일 것 같다.

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심 조심 내려 온다.

나는 이런 길에서는 주로 나무에 의지한다.

우선 손으로 의지할 만한 나무를 보고 걸으면 주저함 없이 걸을 수 있다.

일부러 낙엽이 가득히 쌓인 곳을 발을 디뎠다. 그 푹 빠지는 느낌이 좋아서..

 

나무로 둘러 쌓인 곳에서 사람들이 잠시 쉬고자 발길을 멈추더니

늘 통과의려처럼 오랜만에 길을 나선 내게 노래를 청한다.

 

이 고요한 숲속에서 무슨 노래를 불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젊은 대학교 1학년 시절 겨울에 기타들고 강화의 이름모를 교회를 찾아와

중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노래를 불렀다.

 

김소월이 작사하고 사월과 오월이 작곡한 '눈오는 저녁'

 

바람 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今年)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눈은 퍼부어라 

저녁때 흰눈은 퍼부어라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눈 타고 오시네.

 

바람한 점 없고 길벗들의 숨소리조차  멈춘 숲속에서 

고운 노래가 조용히 퍼져 나갔다.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나도 행복을 느끼지만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모두 그런 기분을 느낀 것 같다.

 

길이 좋다.

사람이 좋다.

노래가 좋다.

 

가파르고 긴 산 언덕길을 내려와 오늘 길이 끝나는가 싶더니

다시 이제는 5코스 고비고갯길을 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길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길이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명확하게 길의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그 길조차 모두 낙엽으로 덮여 어느 길이 나들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냥 마구 걷는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려니 하고..

성황당나무가 있는 언덕길도 오늘은 낙엽을 밟고 걷느라 힘든 줄도 모르겠다.

얼마나 많이 이 길을 걸었던가. 오늘은 처음으로 역으로 걷는다.

 

봄이면 고려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나무계단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여기 저고 공터에 독립 가옥들이 예쁘게 지어지고 있다.

내가 저들처럼 노후를 저렇게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살 수 있을까?

소망은 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오늘 늦게까지 참 오랜 동안 숲길을 걸었다.

숲길처럼 내게 몸에 좋은 보약은 없는 것 같다.

그 곳에 오래 머물다 오면 내 몸에 생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매연 속의 답답한 도심 속 빌딩내에서

1평도 안되는 좁은 내 책상 의자 공간속에 파묻혀

종일 직간접으로 받는 스트레스와 컴퓨터의 전자파를 맞으면서도

몇 주를 견뎌 낼만한 에너지가 이렇게 가끔 길을 걸으며 얻는

숲의 기운으로 쌓인 에너지로 버텨 내는 것 같다.

 

그 곳에 꿈이 있고

그 곳에 앞으로 내 삶이 있을 것 같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