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도 혈구산 등반

carmina 2015. 10. 4. 22:05

 

 

2015. 10. 3

 

풍경을 비롯한 자연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들이

귀한 꽃이나 장면을 찍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이 그 꽃을 찍지 못하게

꺽어버리거나 풍경의 경우 바위나 나무를 손상시킨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오늘 그랬다.

외포리에서 혈구산을 넘어 찬우물로 가는 긴 산행.

그 과정중에 거쳐가는 숲길이 너무 오붓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아두고 싶을 정도였다.

 

토요 도보 리더가 혈구산 간다기에

그래도 혈구산은 마니산 다음으로 높은 산인데 조금 주저하긴 했다.

추석이 며칠 전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뜨거운 여름 햇살이 조금 무디어 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 낮에는도 30도까지 올라가며 더운 날씨인데... 

산을 올라가며 고생할 생각하다가 그래도 명절 때 먹은 음식으로

살이 조금 불었으니 운동도 할 겸해서 따라 나섰다.

 

강화가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김포 고촌에서 기다리는데

많은 철새들이 큰 V자를 그리며 저 편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또 한 계절이 가고 있구나.

사람들 마음도 철새처럼 겨울로 날아가고 있다.

 

길을 걷지 않고 등산한다고 해서인건지 아니면

요즘 놀러가기 좋은 곳이 많아서인지 길 걷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

조촐한 인원들이 모여 외포리 가는 버스에 올라 중간에 내려

어느 한적한 주택가 길로 접어 들었다.

 

길바닥에 이상한 열매가 떨어져 있어 리더에게 물어보니

아마 동백꽃 열매일 것이라 한다. 이렇게 열리는구나.

넓은 집 담장 안에 감이 영글어가고 있다.

집은 양옥으로 지어 놓고 시골의 운치를 가지고 싶었는지

낮은 담장에도 이엉을 얹어 놓았다.

 

오늘 걷는 길에는 수없이 많은 밤들이 떨어져 있는데

저절로 터진 밤송이들에서 삐져 나온 작은 무공해 밤톨들이

길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었고

발에 밟히는 도토리들로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인 듯 양발을 벌려도 넘치는 아주  작은

오솔길로 접어 드는 순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나무들이 춤추고 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죽죽 뻗은 리기다 소나무보다 이런 굽이치고 물결치는 소나무들이 보기 좋다.

 

길을 자세히 찾지 않으면 다른 길로 가버릴 것 같은

동물들이나 다녔음직한 희미한 산길을 찾아 올라간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멀리 외포리 앞바다의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혹시나 추울까봐 입었던 점퍼를 벗고 가볍게 입고 걷기 시작했다.

 

숲 속에 숨어 있는 산소하나에 정성을 들인 모습을 보며 흐뭇했다.

나도 우리 형제들을 대신해서 내가 몇 년 째 저렇게 가꾸고 있걸랑..

나이든 형제들이라 벌초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차라리 전문벌초꾼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래도 형제들 중 벌이가 괜찮은 내가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 해내고 있다.

올해는 제수씨가 길 옆의 산소처럼 예쁜 조화를 사다가 꽂아 놓았다.

 

이 길은 관리를 하지 않은 길이라

좁은 숲길에 많은 나무들이 길을 막고 가로 누웠기에

오늘은 많은 허들경기를 해야했다 

또한 제 무게에 못이겨 꺽어진 나무들도 많고

몇 년 전 태풍에 쓰러져 뿌리를 들어낸 나무들도

이제 뿌리부분에 부드러운 흙으로 사이를 조금씩 메워가고 있다.

때가 되면 그것조차 모두 감추어 지리라. 

 

어느 나무는 쓰러져 넘어지다가 나무 꼭대기가 옆에 나무에 걸쳐

거의 누인 채로 연명을 하고 있으니 끝에는 푸르는 이파리를 키우고 있다.

마치 혼신의 힘을 모아 자식을 키우는 장애인 부모처럼...

 

한고개 넘어갈 때마다 나무들이 변하고 있다.

유난히 소나무가 많은 이 곳이다.

길에 떨어진 밤송이만 아니면 맨발로 걸어도 좋을 정도로 부드러운 흙이

비록 등산화래도 지면에 닿는 감촉이 참 좋다.

오래된 낙엽이 쌓이고 켜켜히 쌓인 술잎들이 부서지고 있다.

 

그렇게 숲길에 취해 있는데 갑자기 세멘트 도로가 가로질러 있어

이제 아름다운 길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바로 길건너에 표시된

이정표에 다시 숲길로 들어가는 혈구산 화살표가 무척 반갑다.

혈구산 5.8Km.

산에서 5.8Km 상당히 먼길이다.

리더말에 의하면 외포리에서 혈구산까지 가기 위해

봉우리를 거의 10여개를 넘어야 한단다.

 

이 곳으로 들어오니 숲이 더 울창해 졌다.

보폭도 안되던 길이 이젠 더 좁아졌다.

겨우 발을 엇갈려 걸어야 할 정도로 아주 작은 숲길이다.

 

이름이 확실치 않은 빨간 열매가 눈을 끈다. 마가목일까?

마가목은 이렇게 크지 않은데..

마가목과 비슷한 산보리수 열매를 먹어보자며 모두 나무에 달라 붙었다.

콩알보다 작은 연한 자줏빛 열매를 잔뜩 손에 담아

한웅큼 입에 털어 넣으니 달콤하지는 않지만 시원한 맛이 안다.

 

거의 햇빛이 들어 오지 않는 숲길에 가느다란 햇빛을 받고 자란

작은 구절초 몇 송이들이 벌판을 뒤덮은 다른 구절초밭보다 더 이뻐 보인다.

 

리더가 발을 멈추며 스틱으로 이게 야관문이라며 알려준다.

요즘 내가 즐겨 보는 TV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출연자가 좋아하는 야관문.

온갖 병에 다 좋다며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 야관문 열풍이 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삼을 비롯한 몸에 좋다는 약초나 보약은 거의 먹지 않는다.

하다못해 비타민조차도 먹지 않는다.

그냥 아무 음식이나 잘 먹으면 보약이라고 생각하기에

우리 집에는 선물로 들어온 비타민들은 그냥 기한이 지나

버려질 정도의 신세밖에 되지 않는다.

대신 무슨 음식이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내겐 먹는 음식이 보약이다. 

 

가파는 언덕길에 밧줄로 안전을 생각해 놓은 것으로 보아

이 곳이 등산로는 맞는 것 같다.

 

이 곳의 소나무들은 참으로 모두가 저마다의 형상이 달라

걷는 것이 지루하지 않다.

소나무마다 많게는 10개가 넘는 큰 기둥을 가지고 자라고 있고

때로는 ㄷ자로 자라고 있는 것도 있고

마치 분재처럼 작아도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도 있다.

 

또 한고비 언덕을 올라왔다.

이제는 건너편 벌판이 보인다.

늘 걷던 내가저수지와 내가 성당이 보이고 덕산 봉우리가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멀리 석모도의 상주산

그리고 더 멀리 교동대교와 화개산도 뚜렷하게 보인다.

 

좁은 오솔길에 나무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같은 느낌을 준다. 저 길 끝에 파라다이스가 있을까?

 

혈구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여러 방향인듯 갈림길에서 길은

사방으로 갈라진다. 우린 무조건 앞으로 전진.

낮은 언덕과 아래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몇 개의 봉우리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길에는 거미줄이 가득하다.

스틱을 마치 기수들처럼 하지 않으면 금새 기분나쁜 느낌의

거미줄이 얼굴에 닿는다.

아마 그런 거미줄에 대해 거부감 가지는 여자들은 이 길이 쉽지 않으리라.

 

같이 걷는 어떤 이는 하나 둘 씩 주워 모은 밤들을 벌써 한 봉지 가득 담았다.

거기에 도토리까지 같이 주우니 점점 봉투의 사이즈가 커진다.

저러다 욕심내고 걷기 포기하고 노획물만 챙겨 내려가지 않을까?

 

힘든 길이라 그런지 아니면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배가 고프다.

해발 338m 높이의 퇴모산에 올라 이번엔 또 반대편 벌판을 바라본다.

멀리 빌딩이 많은 것으로보아 송도 신도시가 보이는 것 같고

김포지역의 아파트들도 눈에 보인다.

날씨 맑으면 부천의 우리 집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초고층 빌딩인 우리 집 옥상에서 때론 마니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외포리에서 퇴모산까지의 거리도 상당히 먼 거리인지 땀이 흐른다.

 

문득 좁은 숲길 양편에 돌무더기 많이 보이니 리더가 이 곳에

이전에 성곽이 있었다고 알려 준다.

13세기 몽고가 침략했을 때 그리고 17세기 외국의 상선들이

강화로 몰려 오고 임금들이 왜군에 밀려 강화도 피신했을 때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떤 몰지각한 등산객이 다 마신 물병을 바위틈에 콕 박아놓고

낙엽으로 덮어 놓았다. 산에 올 자격이 없는 나쁜 사람들..

 

길을 가다가 거대한 몇 그루의 소나무들이 이리 저리 뻗은

울창한 가지들로 춤을 춘다.

밤에 보면 마치 뱀의 머리칼을 가진 메두사의 모습같이 보여 

무척이나 무서울 것 같다.

 

문득 내 앞에서 낙엽하나가 공중에서 춤을 추고 있다.

가느다란 거미줄에 달려 바람부는 대로 이리 저리 움직이며

마치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떠 있어 한 참을 바라 보았다. 

 

퇴모산 근처의 공터에서 도시락을 먹으려 했으나 그늘이 없어

다른 장소를 찾아 늦은 점심을 다같이 둘러 앉아 맛있게 먹고

다시 길을 떠나니 먼 곳에 혈구산의 정상이 보인다.

 

그러나 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한 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오늘은 완전히 극기훈련이다.

그러나 이 코스가 반대편 혈구산 코스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나중에 내려갈 때 알았다.

 

이 쪽으로 오니 길 양옆에 진달래 나무들 군락이 퍼져 있다.

봄이면 강화도는 온통 진달래로 핑크 빛 염문을 뿌린다.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등 진달래는 붉게 물들고

사람들의 등산복으로도 산을 온통 원색의 크레파스로 만들어 버린다.

 

혈구산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가 문득 눈을 사로 잡는

길에 떨어진 작은 열매. 다래다.

얼른 눈에 보이는 대로 입에 넣어보니 단물이 입안에 가득찬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 보아다 다래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떨어졌을까? 한참을 둘러보아도 다래가 열린 나무가 없다.

 

한참을 더 걷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 높이 466m 의 혈구산 정상에 오르니

가슴이 탁 트이고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 사이로 스쳐 지나간다.

산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구비 구비 어어져 있다.

마치 한반도를 축소해 놓은 듯한 산맥들이 이어져 있고

멀리 은빛으로 빛나는 강화 앞바다는 동해를 보는 듯 하다. 

강화의 온 사방이 다 보이고 아스라하게 북한 땅도 보인다.

이곳은 한반도의 중심이라 한다.

혈구산 정상에 세워진 국토지리 정보원 안내표식에 의하면

백두산 정상까지 499Km 그리고 한라산까지 486Km이니 거의 중간인 셈이다.

그래서 혈구산이라 이름 붙인 것 같다.

 

추워진다. 벗었던 점펴를 껴 입고 오래 있고 싶어도 바람이 많이 불고

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쉽지만 더 머무르고 싶어도 빨리 하산하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무척이나 가파른 언덕이다.

안전 밧줄이 없으면 올라가고 내려오기 힘들 정도로

산이 험하고 올라올 때는 밧줄 잡느라 팔이 힘이 빠질 정도일 것 같다.

만약 이 길로 혈구산을 등반했더라면 아마 초주검이 되었을 것 같다.

 

가파른 산을 내려가면서 보이는 가을 황금 벌판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의 색깔들과 예쁜 펜션들의 모습이 예쁜 강화를 더 아름답게 보여준다.

 

우리가 걸어왔던 혈구산 등산로보다 이 쪽이 더 등산객이 많다.

무리지어 오는 사람은 없어도 남녀 등산객들이 천천히 올라오고

어떤 남자는 맨발로 걸어 오고 있다.

 

산을 내려가는 것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

정복자의 희열이랄까...

고통은 끝났다는 기쁨일까? 교만일까?

 

내려가는 길에 벗들 앞에서 멀리 보이는 황금벌판을 바라보며

노래 '향수'를 불러 주니 길가에서 쉬고 있던 다른 등반객도 박수를 쳐준다.

그 어느 공연장보다 더 어울리는 자연속의 노래가 내겐 큰 즐거움이다.

 

그렇게 긴 길을 내려 와 채석장에 도달해 이제 길이 끝나 아쉬워 했는데

채석장 끝에서 길은 다시 찬우물로 숲속으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이 길은 잘 다듬어진 산책로다.길도 넓고 맨발로 걸어도 좋을 정도로

부드러운 흙과 작은 쉼터 그리고 체육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오늘 무리하게 걸었는지 관절이 아파온다.

이젠 천천히 쉬엄 쉬엄 걷자.

나들길 14코스인 첫사랑길은 이 길이 아닌데

곳곳에 첫사랑길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변경되었나?

아니면 그냥 길이 좋고 첫사랑길에서 가까우니 그리 붙인건가?

 

오늘 참 많이 걸었다.

아마 이제껏 강화 나들길 트레킹하면서 가장 먼 산길을 걸은 것 같다.

원래 나들길 5코스를 강화터미널에서 시작하여 외포리까지 걷는

낮은 숲길이 있는데 오늘은 낮은 숲길 대신 높은 산길을 걸어

강화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걸었으니 5코스를 걸은 노력의

2배는 더 들인 것 같다.

 

참 흐뭇한 날.

강화 이사온지 1달되었다며  처음 온 도시풍의 길벗이

강화 길이 너무 좋다며 한 턱 낸 커피를 같이 모여 마시며

우린 또 다른 길을 계획해 본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