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공연후기] 부천시립합창단의 '한국을 담다'

carmina 2016. 1. 29. 10:37

 

 

2016. 1. 28

 

지난 열흘정도 온 대지가 꽁꽁 얼어 붙어

제주도를 비롯한 도서지방의 교통이 며칠동안 마비될 정도로

동장군이 온 천지를 꼼짝 못하게 만들더니

다음 주에 입춘이 있는 것을 아는지 그 세력을 조금 늦추고

사람들의 어깨가 풀어졌다.

이제 봄이 오려나 보다.

부천시립합창단의 신년음악회는 그런 편안해진 날씨에 열렸다.

 

특별히 이번 연주는 한국 작곡가들이 작곡한 곡으로만 무대를 꾸몄다.

조금 생소한 곡이 많지만 그 중 몇 곡은 우리 서울싱잉커플즈에서

직접 연주도 해 본 곡이라 조금 편하게 들을 수 있겠다 하는 마음으로

무대가 열리길 기다렸는데...

 

첫곡 이건용씨의 무언가 네편이 연주되면서

내 몸과 청각은 다시 지난 주의 강추위같이 얼어 붙어 버렸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이어지는 대사없는 합창.

가야금과 거문고 등 국악기의 소리를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이건용씨의 곡은 대개 한국적인 리듬을 이용하기에 조금 민요풍의

선율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런 국악리듬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선율속에 분위기가 어디선가 익숙한 흥얼거림이 들린다.

아...그건 영화 '미션'에서 들리던 '가브리엘의 오보에' 풍인데

합창곡 넬라 판타지아로 많이 부르던 그 어울림이다.

무반주 합창이지만 피아니스트가 한음 한음 정성들여 연주하는 

피아니시시모 음이 들리는 듯 했고, 오케스트라의 바순소리와

날카로운 오보에 소리도 들리고 있다.

모든 합창대원이 악기를 하나씩 가지고 연주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은 내 환상인가 아니면 환청인가?

 

그렇게 긴장되었던 어깨가 두번째 고병량씨의

난설헌의 세 걔의 한시에 붙이는 노래에 와서 조금 풀어졌다.

그러나 그도 긴장감은 만만치 않았다.

 

첫번째 채련곡 (연씨를 따면서)

시의 내용은

맑고 긴 가을 호수에 푸른 구슬 흐르는데

연꽃이 많은 곳에 란초 배 매었네

물 사이로 그를 만나 연씨를 던졌는데

누가 알까 하여 반나절 부끄럽네.

 

피아노의 고성부에서 아주 작고 둔탁하게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비오는 날 도롱이를 입은 농부가 연씨를 뿌리는 것일까?

구름이 흘러가고, 빗방울이 잦아지지만 농부는 연밭 속에 들어가 씨를 뿌린다.

빗방울이 굵어지기 전에 점점 손 놀림이 빨라지며 일을 마치고

천천히 밭고랑사이로 돌아가는 모습이 선율로 그려진다.

 

두번째 '오래된 헤어짐.'

첫음부터 남녀의 격정이 보인다. 무언가 불협화음이 들리고

큰 소리로 대화가 들리는 듯 했다. 바퀴가 같이 굴러가야 하는데

수레의 두 바퀴가 다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남성의 큰 소리가 들리고 여성도 이에 지지 않으려는 듯 소리가 높아지더니

어느 순간 부터 서로 포기하는 듯 소리가 멀어진다.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세번째 '생각이 나네' 

오랜 세월 지나면 모든 것이 그리워 지는 법

먼 하늘을 보며 한숨짓는 허탈한 남자의 목소리와

다른 곳에서 역시 옛시절을 그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서로 생각뿐..

사랑은 그런 것인가?

작은 타악기로 세월이 가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여인의 목소리로

곡이 끝난다. 사랑은 그런 것일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

 

이선택씨의 '가을 소나타'

바람이 스산하게 불더니 피아노에서 길위의 낙엽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버버리 옷깃을 세운 남성의 아득한 독백과 서로 다른 곳에서

여성의 지난 추억을 그리며 노래를 하고 있다.

지금 남녀가 서로 어우러지지 않은 다른 얘기들을 하고 있다.

그 시절을 후회하는 듯...

그러나 곧 그 때가 제일 아름다웠노라고 밝은 멜로디와 함께

멋진 화음이 들린다.  그해 가을 10월의 단풍은 아름다웠고...

영원히 가고 싶었는데..

바람부는 가을 언덕에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 때 사랑했었노라고...

 

김준범씨의 '가을'

귀에 익은 선율이 들려 온다.

수없이 부르던 김준범씨의 그 특이한 고운 선율.

나는 김준범씨의 선율을 정말 사랑한다.

지난 해 우리 합창단의 창단 40주년을 위해 특별히

작곡해 준 '내 노래의 계절' 연작을 부르며 그곡이 너무 좋아

지금도 흥얼거리고 있다. 그와 비슷한 선율이 지금

최고의 합창단의 화음으로 내게 다가온다.

차라리 눈을 감고 듣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의 감정이 이 노래의 선률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지연씨의 'Beautiful one, come with me'

한국인이 작곡한 영어 가사의 노래.

오페라의 클라이막스처럼 두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겨울도 지났고, 비도 지나갔으며 꽃도 피어나고 있으니

이 계절을 즐기기 위해 나가자고 속삭인다.

피아노소리가 꽃이 피어나는 것을 표현할 때

합창단의 허밍소리가 비둘기 소리되어 잘 어우러져 들린다.

포도송이가 익어가는 내음이 온 천지에 퍼질 때

내 사랑...같이 가자... 

노래는 인간의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그게 맞다는 것을 지금 합창단이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김기영씨의 '하늘'

이 노래가 귀에 익다. 어디서 들었을까?

선율이 너무 좋아 내가 아는 곡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합창단의 절제함으로 아름다운 화음이 이어진다.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기분.

결혼 전에 잠시 몸담았던 시온성합창단의 이동일 교수님이

'도와 레 두 음만 있으면 구름위에 앉은 듯한 화음을

만들 수 있다'하셨는데 지금 이 화음으로 구름위에 앉은 기분이다.

밤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건너 시간을 거슬러 갈 때 

아침에 창가로 보이는 맑은 하늘의 황홀한 일출을 보는 것 같다.

 

이현철씨의 편곡 '청산에 살리라'

내가 산길 숲길을 걸을 때 마다 흥얼거리는 영원한 나의 레퍼터리가

새로운 선율과 화음으로 멈출 듯 멈출 듯 길게 길게 이어진다.

나이들어도 저렇게 곱게 노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청산에 산다면 곱게 늙어갈 수 있을까?

내 영원한 꿈을 지금 노래로 부르고 있다.

 

오병희씨 편곡 '금강에 살으리랏다'

우렁차게 부르는 가곡을 현대곡으로 편곡했다.

이런 시도가 늘 반갑다.

절제된 노래를 부르던 합창단이 오랜만에 소리를 낸다.

무대가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다.

 

허걸재씨 편곡 '아리랑 봄봄'

서양의 미사곡의 똑 같은 가사로 수없이 많은 작곡가들이

서로 다른 합창곡을 만들듯이 우리네 아리랑도 그렇다.

같은 아리랑이라도 각지방마다 전통적인 리듬이 다르고

현대에 와서는 작곡가들이 이 곡에 더 많은 날개를 달아

날려 보내고 있다. 허걸재씨도 전통적인 한국 노래를

많이 작곡하였고 또한 아리랑을 테마로 하여

'아리랑 미사'를 작곡하기도 한 분이다.

아리랑과 풍년가의 귀에 익은 멜로디가 다양한 화음으로

무대를 가을 황금들판처럼 가득 채우고 있다.

 

우효원 '아! 대한민국'

정말 놀라운 우효원씨의 곡이다.

이 시대의 최고 작곡가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을만큼

우효원씨의 곡들은 수없이 많은 얼굴을 보여준다.

가슴을 저미게 하는 찬양들, 절기 찬양은 물론 칸타타, 현대곡

등등에 우효원씨 곡은 부를 때 마다 그 끝없는 창작의 샘물이

신선하고 늘 감동에 빠지게 한다.

특히 오늘 합창단 부른 이 곡은 그야말로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게 했다.

태극기의 4괘인 '건곤감리'를 주제로 한 합창곡인데

서양의 악기인 팀파니와 동양의 북을 동시에 연주하고

피아노 두대로 웅장함을 더했다.

 

바로 며칠 전 제주에서 있었던 합창축제에서 윤학원씨가

이 곡을 국내 3개 합창단이 함께 공연했다는 페이스북 내용을 보았는데

오늘 이 곡을 들을 줄이야..

 

정말 놀라운 장면은 북을 연주한 최영진씨였다.

팀파니를 연주한 정수경씨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고

북치는 고수는 악보없이 연주하는데 얼마나 정열적으로 북을

치는지 손으로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다리에도 그 리듬이 그대로 보여졌다.

 

앵콜곡으로 들려준 강원도 아리랑은

지난 해 우리 합창단에서 남성 합창으로 연주했기에 귀에 익었으나

부천시립합창단이 혼성으로 부르니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