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부천시립합창단 - 르네상스 시대의 세속음악

carmina 2016. 3. 9. 09:46

 

 

2016. 3. 8

 

기욤 드 마쇼, 죠스켕 데 프레, 오를랑드 드 라소, 몬테베르디, 토마스 몰리

합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작곡가들을 아느냐고 물어볼 때

과연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베토벤, 모짜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등등

빅뱅이나, 여자친구, 박진영 등등을 아는 젊은이들에게 이 런 이름들은 무척 친숙하다.

그러나 앞에 열거한 음악가들은 합창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익숙치 않은 이름들이다.

 

오래전부터 고음악 합창을 좋아하는 내겐 남들에게 익숙하지 이름들이

내겐 익숙하고 반가운 이름들이다.

 

모텟트 음악들을 좋아한 뒤로 르네상스시대의 합창곡들을 찾으러

음반가게들을 뒤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음반들을 찾으면 아낌없이 구입했다.

진정 합창다운 합창화음은 이런 고음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천 시립합창단이 이런 음악들을 연주하는 모닝콘서트를 가진다 해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결국 그 음악들이 그리워 하루 휴가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오래전 한국에 탈리스 스콜라스 합창단이 방한하여 이런 음악들을 연주했고

한국의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 바흐솔리스텐 서울이 이런 음악을 연주하긴 했지만

모두 종교곡이었다.

 

오늘 제대로 그리고 흥겹게 세속합창을 들어보자.

부천시립합창단 조익현지휘자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알기에

틀림없이 내가 씨디로 듣던 음악들을 연주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찾아간 음악회.

 

며칠 전부터 내 씨디랙에서 이 음악들이 연주된 씨디들을 찾아

우선 귀를 익숙하게 해 놓았다. 뭐 굳이 예습하지 않아도

내겐 늘 이런 음악을 연주하고 가르쳐 보는 되지도 않은 꿈이 있었다. 

"내게 '도'와 '레' 두음만 있으면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어"라고

말씀하시던 시온성합창단의 이동일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부천시립합창단의 모닝콘서트는 일반 공연장에서 연주하지 않고

단원들의 연습공간에서 연주한다.

연주장에 들어가기 전에 로비에서 커피와 쿠키를 함께 나누며 담소하고

연주장에도 커피를 가지고 들어가 마시면서 연주감상을 해도 된다.

 

또한 연주자와 관객들의 거리는 불과 5미터~10미터도 되지 않는다.

마치 오디션을 보는 느낌이랄까? 연주자도 관객도 마찬가지다.

웅장한 합창단의 커다란 화음에 묻어가는 그런 합창이 아니다.

연주자가 음이 조금만 틀려도 누가 그랬는지 다 들리는 소규모 편성이다.

오늘 연주도 최대 7명이 노래할 뿐이다.

 

'애너니머스4'라는 이름의 고음악 전문 여성 보컬 4명이 생각났다.

4명 모두가 정확한 음을 내야만 제대로 음악이 들린다.

오늘 연주는 피아노반주도 없다.

그러하니 반주가 내 틀린 음을 메꿔 주지도 못한다.

연주자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친절하게도 오늘 음악은 해설이 있다.

하긴 이런 음악은 해설이 있어야 초보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도무지 일반합창단에서는 하지 않는 음악이니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보석이 보석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오늘 설명에는 없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9세기와 10세기 시절에

선율에 화음을 붙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불경스러운 행동이라 해서

모든 제례음악은 성구를 낭송하는 듯한 단선율로 불리었다.

후에 교황 그레고리아 1세가 이런 곡들 그레고리안 찬트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이 곡들에 화음이 생기고 선율이 달라지며 모텟트 음악이 탄생한다.

그리고 이 모테트 음악이 교회뿐만이 아니라 세속적으로도 작곡이 되고

누구나 음악을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얼마나 큰 기존 성직자들의 반대가 있었을지

요즘의 교회음악 형태를 보면 대충 짐작이 된다. 

 

지휘자님의 친절한 해설로 르네상스시대의 음악의 발현에서부터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미리 강의자료를 지도와 사진들을 이용하여 충분히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처음 곡  '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라'를 연주한다.

 

그런데 음악연주하기 전에 지휘자의 설명이 재미있다.

마쇼는 곡을 연주할 때 각 파트다 모두 같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파트는 악보의 끝에서부터 노래한단다.

그래서인지 번역된 가사도 이렇다.

 

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

나의 세번째 소리는 단지 세번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시작은 나의 끝이다.

거꾸로 가면 끝이다.

 

10년전 모짜르트 탄생 250년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4/4박자의 리듬이 한마디씩 나뉘어져 있는 것을 무작위로 

8마디를 선택해서 2 소절로 연결하면 어색하지 않은 전형적인 모짜르트 풍으로

멜로디가 된다. 음악은 참 신비한 마술이다.

작곡을 공부한 아들은 내게 음악은 수학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수학적인 순열의 조합과 정확한 원칙이 있다.

 

4명의 성악가가 지휘자의 피치 파이프로 음을 잡은 뒤

나오는 첫 음의 화음에 입이 벌어진다.

"그래 맞아. 이 소리가 내가 원하는 화음이었어"

전형적인 바로크 스타일의 성악발성.

자신을 크게 나타내지 않으면서도 고운 앙상블이 이루어진다.

 

죠스켕 데 프레의 곡 수많은 슬픔.

15세기의 프랑스는 현대 음악의 커다란 원산지였다.

오늘 연주되는 곡들의 작곡가도 프랑스 작곡가가 많다.

당시에도 명문가의 자녀들은 이런 예술 활동에 참여하여야

귀족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기에 이런 예술가의 작품에 투자를

많이 했을 것이다.

 

집에서도 가끔 이 작곡가의 음반을 듣는다.

일부러 이런 곡들을 음반가게에서 찾아 구매하면서

훗날 이 음악들이 나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리가 어둠 속 가만히 문을 여는 듯한 손같이 조용히 시작되고

베이스의 묵직한 소리위에 천사의 노래들이 올라타고 있다.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빠세로의 그 남자는 멋지고 좋은 사람.

세속합창이라 모든 음악이 참 즐겁고 경쾌하다.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일반인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모두 노래의 가사가 되었다.

제대로 고전시대의 의상을 입은 바로크 리코더 연주자가

맑은 소리를 더하고 작은 북의 경쾌한 리듬이 기분을 더하고 있다.

 

오를랑드 드 라소의 내 사랑 당신.

이 곡은 후렴이 있어 마치 요즘의 아이돌 가수들이 노래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음악이 점점 더 재미있어 지고 있다.

당시 귀족들의 놀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음악을 들은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내 입에서는 후렴의 구절들이 흥얼거려진다.

돈돈돈 디리디리 돈돈돈돈

돈돈돈 디리디리 돈돈돈돈

 

루카 마렌치오의 마드리갈인 '잔인함 내가 싫어지는 이유'

세상에 변치않는 하나님의 사랑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사랑과 증오도 태초부터 있었고 지금까지 존재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서일까?

이 노래도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죽고 싶을 정도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소프라노의 고음이 머리속에서 울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고

Ah 라는 탄식음에서 h 발음이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익숙한 지오반니 가스톨디의 '불굴의 사랑속으로'

이 곡은 우리 합창단에서 연주했던 곡인데 가사가 원곡이랑

완전히 다르다. 원곡은 전쟁터로 나가기 전 병사들의 사기를

돋아주는 내용인데 우리들은 이 곡을 노래하는 즐거움을

가사로 바꾸어 불러 연주했다.

 

드디어 역사적인 인물로 이태리 작곡가인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곡이 연주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음악 음반 중 몬테베르디의 곡들이 많다.

지금도 고음악단체들이 많이 연주하는 곡들이 몬테베르디와 북스데후드의

곡들로 알고 있다. 아마 연주자들이 르네상스시대의 단순함에서

바로크시대로 넘어가며 음악이 더 화려해져서 좋아하는 것 같다.

그는 오페라를 최초로 작곡하였으며 내가 좋아하는 고음악 전문 지휘자인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하는 합창단 이름도 몬테베르디 합창단이다.

이 합창단의 음악을 많이 들어서 어느 날 지인 집에서 합창곡이 나오기에

익숙한 소리들이라 혹시 몬테베르디 합창단아니냐며 물었더니

지인이 어떻게 알았으냐며 깜짝 놀라던 적도 있었다.

 

언젠가 세종대강당에서 몬테베르디 합창단이 연주하는 바하 B단조 미사에

한없이 행복한 적이 있었으며, 해외 근무시절 이 합창단이 연주하는

메시아 전곡을 너무 많이 들어 테이프가 늘어나

결국엔 버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듣기도 했었다.

그만큼 몬테베르디는 내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다.

 

남성 솔로부터 시작되는 이 노래의 첫 발성을 들으며

나는 또 탄성을 지른다. 맞아 저렇게 불러야 해.

유난히 편한 자세로 노래를 부르는 테너의 모습에서

음악이 주는 평화를 느낀다.

뒤이어 여성들의 소리가 더해지고 하늘을 나는 듯한 화성이 들린다.

부러지지 않고 강하지 않은 고운 목소리의 어울림.

이런 것이 진정 모텟트음악의 아름다움이다.

 

한스 레오 하슬러, 춤추고 뛰어 오르자

이제 음악은 독일작곡가로 넘어간다.

화라라라라 노래하고 춤을 추어라

이런 음악들을 반향이나 공명이 잘 안되는 연주장에서

연주되는 것이 못내 불만이다. 조금 더 공명이 잘 되는 곳이었다면

아마 연주자들이 부르는 노래들의 음표들이 하늘을 떠 나녔을 것이다.

 

마지막곡으로 부른 영국작곡가 토마스 몰리의 지금은 5월.

노래의 첫음이 시작되는데 금방 우리 합창단에서 다른 가사로 연주했던

곡이었기에 내 몸이 흔들린다. 이 흥겨운 노래를 우린 그렇게

막대기같이 굳은 채로 노래했으니...

 

앵콜송으로 모텟트 한 곡과 나이팅게일의 새소리가 들리는 듯한

경쾌한 바로크 리코더의 독주가 있었다.

 

화음을 맞추어 노래하는다는 것.

이제까지 내 인생의 최고의 즐거움으로 알고 있다.

합창은 서로 양보하는 미덕에 있다.

그 밸런스가 깨지면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합창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하루 휴가 수당을 포기하고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았어도 하루가 아쉽지 않았던 공연.

돈을 많이 들여 해외 연주 단체 공연을 가야 들을 수 있었던 화음들로 행복하다.

 

음악이 있어 내 여생은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