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새 생명 주신 감사를 음악으로...

carmina 2016. 1. 29. 08:43

 

2012. 2.

 

2012년 1월에 삼성병원에서 신장암수술 전후에 병원에 있는 동안 

가능한 지인들에게 내 상태를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부부합창단에서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에게만 연락했더니 수술 후

병문안을 왔기에 내 생각을 전했다.

 

"생전 겪어 보지 않은 큰 고통을 견뎌내면서

병상에 있을 때 생각하기를 나 퇴원하고 컨디션 회복하거든

우리 합창단 내에서 가족이 모두 노래나 연주할 수 있는 3가족정도만 모여서

여기 저기 찬양을 다니며 은혜를 나누고 싶으니 팀 구성해 보자"

라고 부탁했고 그 친구도 그런 면에서는 적극적이었다.

 

"우리 혼자만이 즐겼던 것들을 누군가를 위해 나누고 싶다고..."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내가 받은 새 생명의 감사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다행하게도 그 친구 가족과 한의사 부부네 가족이 모두

음악적으로 노래와 연주가 가능했기에 내가 퇴원 후

우리 집에 모여서 일단 연습을 해 보았다.

모두 합하여 12명, 남자는 4명 여자 8명.

그중 전공자는 6명이지만 나머지 모두 음악에는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다. 

 

어릴 때 부터 같이 자란 아이들이라 

이제는 모두 자라서 엄마 아빠가 즐기던 음악들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주하는 스스로의 모습들이 좋은지

연습할 때도 학구적인 의견들을 제시하며 즐거워 했다.

 

아이들과 같이 모여 깔깔 웃으며 연습을 하면서

이것이 진정 행복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3가족 중창과 4중창이 가능한 가족, 그리고 악기 연주가 가능한

자녀들로 피아노 트리오, 바이올린과 기타 솔로를 구성하고

곡을 연습하고 첫 번 공연 장소는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의 북카페에서

연주를 가졌다.

 

영화 미션의 OST인 '넬라 판타지아'와 흑인 영가 '오, 해피데이'의 합창

피아노 트리오로 연주하는 성가곡들,

친구 딸이 기타로 연주하는 성가,

친구 가족이 아카펠라로 노래하는 성가.

우리 가족의 노래와 연주로 충분히 30분 넘게 공연이 가능했다.

특히 친구 딸이 부르는 오 해피데이의 솔로는 이제까지 내가

여느 합창단에서 이 곡의 솔로를 부른 사람 중 최고였다.

 

카페에 모인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연주를 감상했고 우리도

햇살이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고즈넉한 홀에서 연주하는 기분도 무척 좋았다.

 

며칠 뒤 다시 공연 기회가 왔다.

세브란스 영동병원의 신우회에서 주관하는 '작은 음악회'로

주말 낮 시간에 병원 로비에서 환자들을 위한 연주에 우리가 초청되었다.

 

병원 로비에 많은 환자들이 링게르 병이 달랑거리는 휠체어를 탄 채로 모여들었다.

비록 웃음은 별로 없지만 답답한 병실에 나와 사람들 틈에 있는 것만으로도

살것 같은 기분임을 나는 안다.

 

연주를 하며 다음 곡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내가 나서서 마이크를 잡고 얘기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나도 여러분과 같이 팔에 주사바늘이 연결된 휠체어 신세로

지내며 암수술을 했습니다. 그 때는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내게 생명을 다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재능으로 보답하고 싶어서

아직 완쾌되지 않았지만 찾아 왔습니다."

 

내가 며칠 전만 해도 환자였다는 말에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사회를 보시던 병원 목사님도 우리들 모습을 보고 아주 좋아하셨다.

 

그 다음 연주 장소는 한의원 친구부부가 있는 안양의 샘병원이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드리는 환우들의 예배에 우리가 공연하고 환자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 드렸다.

 

평소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내 딸도 열심히 따라 주었고

우리는 노래로 연주로 기도로 모든 환자들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의례적으로 듣는 교회 예배의 찬양대나

합창단에서 1년에 한 번 대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이렇게 작은 공간이라도 우리의 음악을 들어 줄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달려가 마음껏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

참으로 뿌듯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이 개학을 하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3회 연주로만 끝나고 지금은 각 가정의 자녀들이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기에 팀이 구성이 안되어 지속 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그런 일에 적극 나서고 싶다.

 

내가 가진 것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고

내 재능을 선한 곳에 사용할 수 있다면 사정이 허락되는 한 어디든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