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15코스 고려성곽길

carmina 2016. 2. 22. 16:08



2016. 2. 20

 

나들길 15코스 고려성곽길


고려시대 조선시대 임금들이 피난을 주로 강화도로 했기에

임금님 계시는 성 주위에는 일반인의 통제와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비록 작은 공간일지라도 서울의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 같은 울타리를 쳐 놓았다.

강화산성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로 천도한 후 성을 세겹으로 겹겹이 쌓았다.

내성은 대략 제대로 남아 있고 이후로도 보수를 하여 성곽의 흔적들이

거의 남아 있지만 중성이나 외성은 세월이 지나면서 무너져

흙길이나 돌담길 정도 밖에 존재하지 않아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간혹 강화도민들은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있다.

 

내성에는 동문, 서문, 북문, 남문이 있고

각 문마다 망한루, 첨화루, 안파루 및 진송루로 이름붙여져 있다.

동문은 이름은 아마 동쪽에 있는 한양을 그리워 하며 지은 이름인 것 같다.

동서남북 각 문은 60년대 이후 보수를 하여 대부분 새로 지은 문처럼 남아 있다.

또한 각 문을 잇는 성곽이 오래전 부터 존재했으나 많은 부분이 손실 혹은

붕괴되었으며 혹은 새로운 도로 건설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그 흔적은 오래 남아 길을 걸어 보면 산을 둘러 성곽이 남아 있는 것을 볼수 있고

산 정상에는 망루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은 그 4개 대문을 잇는 성곽길을 따라가 본다.

 

남문 근처에는 유니폼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날씨가 풀어지니 사람들이 이젠 집에서

나와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남문에 바라보는 성곽길은 거의 45도 경사 언덕으로  뻗어 있어 

비록 높지는 않지만 산행에 가까운 길을 걸어야 한다.

 

남문에 모여 눈에 보이는 가파른 성곽길을 우선 치고 올라갔다.

원래 성곽 안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도전정신이 많은 리더의 결정은 계단보다는 흙길이 좋고

경사도 계단보다 완만하다고 길도 없는 길을 걷는

즐거움을 누린다. 거대한 나무가 길을 막고 있지만

그 나무는 오히려 길은 걷는데 좋은 버팀목이 될 뿐이다.

 

그 꼭대기에 올라가니 성곽길을 따라가는 긴 능선이 보이지만

돌담은 무너져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곡 긴 흙담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저 멀리 보이는 곳에 돌담으로 쌓은 성곽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성곽 밑에는  5미터 정도마다 일련번호가 붙어 있어

관리를 지속적으로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돌담 주변에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술을 먹고 병을

벽에 던져 깨졌는지 소주병조각들이 많이 보였고

여기 저기 빈병들이 나 뒹굴고 있어 눈쌀이 찌푸러졌다.  


얼었던 흙길들이 요즘 조금 따뜻해 지는가 싶더니

한 낮에는 땅을 밟으면 푹 푹 들어가는지 길 바닥에

고라니의 선명한 발자국이 깊숙히 패어 있다.

사람 발자국보다 고라니 발자국이 많은 이 길에 나는

짐승의 발자국을 내 발로 덮으며 걷고 있다.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 맛볼 수 있으려나.

 

눈 아래 아직 조용히 잠들어 있는 강화읍이 보인다.

산 밑 그늘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이고

아침이라 추운 듯 어느 빌딩에서는 모락 모락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나들길은 성곽 끝까지 올라가지 않고 그 중간에서 오른 편 숲길로 걸어간다.

자. 이제 숲으로 들어가자.

숲 사이로 맑은 늦겨울 파란 하늘 아래 잔설이 남아 있고

멀리 길이 이어지는 것이 보이며 우린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 길은 읍에서 가까우니 산책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간편하게 입고 저 건너 청화약수터에 다녀오는 듯 이른 아침 운동을

즐기는 어른들이 천천히 내려 오고 있다.

처음 성곽언덕을 올라올 때만 해도 아직 겨울인지 차가운 공기가

등산복 사이로 스며 들어와 옷깃을 여미고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려

손가락을 옴추려야 했는데 한참을 숲속으로 걷다 보니

숲이 바람을 막아 주어서인지 추위가 느껴지지않고 땀이

솔솔 맺히기 시작할 때 쯤 문득 발 아래 낙엽 위에

막 부숴진 나무 부스러기가 보여 딱따구리가 이 나무에 구멍을 팠구나 하고

나무를 올려 보았으나 어디에 구멍을 팠는지는 확인할 수 가 없었다.

 

한참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걷다보니 이전에 걸었던 익숙한

청하약수터 가는 길이 보인다. 이 곳에서 강화도령이 원범이 처음

시골소녀 봉이를 만난 곳이라 전해진다. 

이전에 걸었던 강화도령가는 길도 이 길을 지나도록 되어 있다.

약수터로 오는 길이다 보니 아마 여기 저기 길이 자연적으로 생긴것 같다.

 

거북의 입에서 오줌정도의 가느다란 약수물이 나오는 두 개의 파이프 중

하나는 커다란 물통이 오래전부터 물을 받고 있는 듯 놓여 있고

다른 한 쪽에 졸졸졸 소리도 않들리는 파이프에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을 조금 받아 마셔보니 차가운 물인데도 이빨이 시리지 않고 상큼함을 느낀다.

 

넓은 공간 구석에 운동기구들이 보이지만 추워서인지 사람은 없다.

잠시 쉬고 다시 가파른 나무계단을 조금 올라가 숲길을 한참 걸어가니

남장대로 올라가는 긴 성곽 밑에 높이가 낮고 크기가 작은 터널을 지나

정확한 간격으로 열병식하듯이 조림이 잘 되어 있는 잣나무길을 오른다.

이 길은 매번 걸을 때마다 잘 단장된 성곽길과 쭉 쭉 뻗어 올라간 나무처럼 

저절로 어깨가 펴진다.

 

잣나무 숲길에 '숲바닥 이야기'라는 작은 안내문을 읽어보니

나무들조차도 생존 번식을 위해 얼마나 다른 나무를 배척하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영어이름으로 '코리아파인'으로 불리는

잣나무나 소나무등 침엽수들은 뿌리에서  

주위에 다른 나무들이 번식하지 않도록 발달을 저해하는 타감물질을

분비한다고 한다며 숲 바닥을 유심히 보라고 권하고 있다.

하긴 이제껏 길을 많이 걸으면서 소나무 밭 근처에 다른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소나무 군락이 만들어지고

바닷가에는 특히 해풍을 저절로 막아 주어 인간과 식물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초고층 아파트같은 잣나무길을 걷다가 언덕에 올라가면

건너편 언덕에는 전혀 다른 수종이 마구 우거져 있어

마치 판잣집촌에 들어선 것같은 기분을 느낀다.

 

잘 만들어진 이층 누각의 남장대로 가는 긴 성곽길 저편으로

시야가 가득 닿는 곳에 넓은 평원과 강화도의 낮은 산들이 펼쳐져 있다.

 

이곳 남장대도 올라오는 코스가 여러 군데라 멀리 반대편에서도

긴 성곽길을 따라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남장대 옆 별도로 세워진 망루에 산불감시원인 듯 작은 공간안에

근무를 서고 있기에 우리 일행이 간식을 좀 드릴려 했는데 사양한다.

 

맑은 날이라 멀리 바다넘어 북한땅이 보이고 그 쪽은 멀리서 보기에도

나무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선진국일수록 나무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땀이 식어지는 것을 느낄 때 쯤 왔던 길을 내려와 갈림길에서

반대편 산기슭으로 내려가니 작은 공동묘지에 무덤들이 빼곡하다.

비록 주변의 나무들이 듬성 듬성하게 세워져 있지만

아마 군에서 관리하는 듯 묘의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고

비석관리도 제대로 하는 것 같다.

 

무덤가는 양지바른 곳이라 얼었던 흙이 녹아 흙을 밟으면 질퍽하여

어쩔 수 없이 엉금 엉금 걷기로 잔디를 밟으며 걸어야만 했다.

 

문득 한 곳에 개인 묘인듯 세개의 산소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크기는 비슷하지만 두개의 묘가 가운데 묘보다 조금 앞 쪽에 있어

앞의 묘 두개는 후손일 것이라 추측해 보았더니 다른 이는 아마

두 개의 묘는 작은 마누라 큰 마누라일 것이라며 농담해 한참 웃었다.

하긴 오래 전에는 그런 첩살림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낙엽가득 쌓인 길을 걷는다. 원래 바로 시멘트도로로 내려가야 하는

코스인데 리더가 일부러 숲길로 안내한다. 이런 길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걸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숲길 끝에 마구 파헤쳐진 길가 언덕을 조심스레 넘어가니

잔뜩 얼었다가 풀어지고 있는 국화리 저수지가 아직 살얼음을

물가에 띄워 놓고는 주변 낮은 산과 하늘을 가득 안고 있다.

 

저수지를 지나 개들만 깨어 있는 마을길과 강화고등학교를 지나

이제 서문으로 내려왔다. 원래 이쪽도 성곽이 이어져 있었을텐데

도로를 새로 내느라 성곽이 끊겨 있다. 차라리 성곽을 그대로 두고

지하로 도로를 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길 저편에 강화영화관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강화가 외진 곳이다 보니 CGV나 롯데시네마 같은 대형 미디어업체가 없으니

군에서 영화관을 새로 지어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며

강화주민들이 좋아한다. 이전에는 강화를 변두리라 했는데 이젠

도로도 넓어지고 올림픽대로도 강화의 입구인 김포까지 이어지다 보니

강화에 별장을 짓거나 오래된 집을 사서 개축하여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한다. 나도 그 중 하나를 꿈꾸는 사람이고..

 

첨화루 라고 명명된 서문 앞에 아주 허름해 보이는 1967년의 서문의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사진 속 서문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해군복장차림의 남자와 남루한 복장의

어린 소녀의 모습이 자꾸 눈을 끈다. 소녀의 나이가 아마 내 또래 쯤 되겠다

생각해 본다.

 

첨화루 (瞻華樓), 뜻을 보니 화려한 것을 쳐다보는 망루라 하니

처음 세웠을 때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다. 강화의 4대문은 당시 개성의 성문의

모습을 본때 지었기에 아마 화려한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서문에서 성의 돌담벽을 끼고 올라가보니 그 끝 성안에 일반 창고같이

생긴 건물의 벽에 거대하게 불교의 상징인 만(卍)를 그려 놓았다.

무엇이던지 너무 크면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법.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또한 그 곳 주변에 나무들의

밑둥에 있는 나무껍질을 둥그렇게 잘라내고 톱질을 해 놓은 것으로 보아

나무를 고사시키고 있는 듯 하고 다른 나무에 밑둥에 구멍을 많이

뚫어 놓은 것으로 보아 나무를 말라 죽게 하여 베어버릴 핑계를

만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주변에 이미 잘려져 버린 나무들의 밑둥을

보니 무척 씁쓸했다.

 

길가의 싸릿대같은 작은 나무들의 가지가 봄이 되니 물이 오르는 것이

분명하게 보일 정도로 부분적으로 파릇해 지고 있다.

 

강화여고의 측면을 지나가는 흙길은 이미 한 낮이라 얼었던 흙이

녹아내려 질퍽거려 조심스럽게 걷고 조금 후 나들길 1코스와 만나는  

코스에 들어서서야 겨우 익숙하고 아늑한 숲길을 편안히 걸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강화 여고 뒷산 초입부터 능선으로 해서 북문까지 가는 오솔길.

그 끝에 진송루(鎭松樓)라고 명명한 북문이 있다.

왜 이름이 진송루일까? 소나무를 진압? 소나무를 벌목하는건가?

이런 성곽이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을테니 이름도 그에 걸맞게

지었을텐데 유래를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현판은 우에서 좌로 쓰는 것이

원칙인데 여기에서는 좌에서 우로 써 있다. 아마 이 현판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하니 한글에 익숙한 세대가 쓴 그대로

현판을 올렸나 보다. 당시 유학자들이 아마 혀를 찼을 것 같다.

 

남장대에서 우리 단체 사진을 찍어 준 부부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1코스를 걷는지 이정표가 각각 다른 길로 되어 있다고 망설이기에

북문을 지나 가면 지름길이고 북장대로 올라가는 길도 있다고 알려 주었더니

우리와 같이 북장대로 올라갔다.

 

북장대는 오래 전에 무너졌을텐데 성곽을 새로 쌓아 거의 새성곽이나 다름없다.

내가 5년전 처음 이 길을 걸을 때도 성곽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지금은 거의 완성된 것 같다.

 

성곽 벽을 따라 천천히 북장대로 올라갔다.

시야가 갑자기 툭 터진다.

가까운 곳에 북한 땅과 마을이 보인다.

이렇게 남북이 가까우니 바다가 얼면

스케이트로 불과 2~3 분 만에 탈북이 가능할 것 같다.

 

북장대에는 몇 년전에 무언가를 세울려 굴토 작업을 하다가

그만 그 곳에서 유물이 나와 작업을 포기하여 지금은 그냥 흙만 덮여 있다.

양 옆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돌담이 참 장관이다.

 

정상쯤에서 마주오던 두 사람 중 한 여자가 언성을 높이며 열심히

누군가에 대해서 힐난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왜 나들길을 기분좋게 걸으면서 저래야 하나 하고 안스러워 하고 있는데

문득 우리 리더가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언덕 아래에서 마주오는 또 다른 길걷는 이들이

평소 아는 얼굴들이다.

모두 이 곳 강화 주민들로 리더의 동창생들인데

휴일에 이런 산행을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좋다.

아마 도심지여자들이 휴일에 백화점 쇼핑을 나서는것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 이들의 산행 만남일 것이다.

 

오래전 눈이 많이 쌓인 이 곳 북장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길벗들을 위해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던 기억이 있다.

이 곳에 오면 꼭 그 노래를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븍장대에서 1코스인 오읍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이 조금 위험했었는데

이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지지대를 만들어 두었다.

여기 저기 보이지 않던 나들길 안전시설들과 상징물들이 많이 보인다.  

 

이젠 동문을 향해 긴 언덕길을 내려가야 한다.

풀이 많이 자라는 봄이나 여름에는 이 길이 참 아름다웠는데

오늘은 마른 풀만이 남아 있고 흙이 다 드러나 보여 초라해 보였다.

 

길가에 벌통이 있는데 아마 양봉업자가 이 길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것을 안다면 봄에 길을 막거나 혹은 벌통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만 같다.

 

원래 15코스의 마무리는 고려궁지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코스가 또 바뀐것인가?

 

고려궁지 근처의 지형도 변해 버렸다.

없었던 도로가 새로 생기니 늘 보던 600년 묵은 느티나무도

주위 환경때문에 마치 처음 대하는 것처럼 낯설게 보인다.

 

이 길은 나들길 초기에 혼자 다닐 때 왔던 곳인데

그 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러나 길을 걷다가 문득 낯익은 간판하나가 보여 반가왔다.

강화 기둥교회 팻말.

내가 당시 부천의 기둥교회 다닐 때라 처음 이 길에서 헤맬 때  

이 간판을 보고 무척 반가왔는데 그 간판은 색이 바랜 채 그대로였다.

 

동문의 넓은 공간에 오니 시원해 보인다.

오늘 겨울바람을 등에 지고 봄바람을 가슴으로 안으며

걸었던 나들길이다.

 

이제 봄이면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나들길은 사사시철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나를 유혹하는 요녀(妖女)같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