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동심속의 나들길 5코스

carmina 2016. 2. 10. 10:24



2016. 2. 9


설연휴가 지난 토요일부터 계속되고 있다.

원래 수요일까지 공식적인 휴일이지만 하루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공동연차 때문에 목요일까지 쉴 수 있다.


대개 전형적인 설행사는

설날 전날에 형제들 모여 식사하고 고스톱치며 놀고

설날은 산소가서 예배드리고 오후에 처갓댁 방문하여 세배하며

모든 것이 끝난다.


이전같으면 명절에 한복을 입고 고궁이나 박물관을 찾으면

무료 입장이라 그렇게 한적하게 시내를 산책했는데

이젠 걷기에 중독된 후로는 달력이나 일정을 보고

시시탐탐 언제 걸을 수 있는지만 눈여겨 보고 있다.

강화도 나들길은 늘 토요도보만 참석하다가

잘하면 이번 명절에는 화요도보도 갈 수 있겠다 했는데

그만 회요도보가 이번만 수요일로 바뀌었다 한다.


골프매니아들은 갖은 핑계를 다 대고 골프치러 가듯이

나도 조카들 데리고 간다는 핑계를 대고 길을 나섰다.

작은 처남네 3형제가 나와 몇 번 나들길 다녀오고 나더니

이제는 가자 하면 얼씨구나 하고 따라 나선다.


설날 다음 날 아침 목동에서 조카들을 태우고 떠난 시간 8시 15분

경인고속도로,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김포가도를 달리는데

도무지 길에 차량이 거의 없다.

거의 130km로 다려 강화터미널 도착하니 8시 55분.

세상에...무려 40분만에 그 먼거리를 달려 오다니..

평소 부천에서 버스를 타고 이 곳에 오면 무려 2시간 잡아야 하는데..


평소같으면 터미널에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오늘은 거의 볼 수가 없다.

5코스 고비고갯길의 차도가 끝나는 곳인 국화리 마을회관까지

가는 9시 10분 발 버스를 타고 와 신발끈 동여매고

중3, 중1, 초등5학년 조카들 3명과 파이팅 하고 출발.


동네가 쥐죽은 듯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모두 떠난 것인지..

시원한 겨울 아침 냉기가 점퍼의 목부위로 스며 들어 지퍼를 목끝까지 올렸다.

옆의 작은 하천의 흘러가는 물은 그대로 멈추어 흰 얼음조각이 되어 버렸다.


커다란 느티나무 옆에 기존 고택을 허물고 새로 지은 현대식 가옥이

무척 부럽다. 저런 독특한 디자인의 주택속에 사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멋있을까?

그래도 도심에 커다란 호화 아파트에 사는 부유층보다 이런 곳에서 서재로 보이는

이층에서 사면을 통유리로 자연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사람이 훨씬 더 부럽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어미소 두마리가 어린 송아지 두마리가 서로 꼭 붙어 있지만

코에서는 뜨거운 김이 보인다.


숲속으로 들어간다.

지난 한달 넘게 중부지방에는 눈도 비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언덕길에는 먼지같은 고운 흙들로 길이 미끄러울 정도다.

낙엽은 바스라져 있고 그나마 맨 땅이 많이 보일 정도로 메말라 있다.

자연이 갈증이 나 무척 고생하고 있다.


혈구산와 고려산으로 가는 산 비탈 사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조카들에게 어느 언덕으로 올라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둘 다 싫고 내려가는 방향을 선택한다.

아이들이 벌써 힘든가 보다.

내려가는 길로 간다했더니 얼굴이 환해진다.


계곡 사이에 있는 상황나무에 대해 설명해 주니 아이들이 흠칫한다.

그리고 옆에 나무에 걸린 빛바랜 색동 저고리를 보여 주니 조금 두려워 하는 눈치다.

오늘 실컷 놀려 먹어야겠다.

아이들에게 5코스 고비고개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외포리 바다에서 잡은 생선들을 육지로 보내기 위해 등에 메고 이 길로

실어 날랐을 것이라고..


숲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는데 반대편에서 산악자전거를 탄 나이든 아저씨가

다가 오기에 말을 걸었다.

원래 자기도 자녀들과 같이 산악자전거를 즐기는데

오늘은 오지 않았다며 적석사까지 1년에 1000번을 자전거로 올라가겠다고

목표를 삼고 하루 3번 그 깍아지른 비탈길을 오르기를 한 달을 했는데

너무 힘들어 90회만에 포기했단다.

나이도 제법 되는데 정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사는 모습이 얼굴에 보인다.


산길에서 흰 개 2마리와 마주쳤다.

어느 길을 걸을 때나 제일 두려운 것이 집잃은 개인데

마주 오는 개는 털이 제법 깨끗한것을 보니 주인과 같이 걷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 까 나이 지긋한 부부가 아침부터 배낭을 메고 슾길을 걸어 올라 오고 있다.

아이들이 개를 겁내지 않아 다행이다.

막내가 길을 가다 집에 묶여 있는 개가 짖는 것은 자기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인

별로 무서워 하지 않는단다고 들었단다. 아이들에게 이런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개를 무조건 무서워 한다.


마을로 내려와 길가의 커다란 축사에 있는 소들을 보고

묶여 지낸 소와 야생의 소가 서로 맛이 다른 이유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가끔 전염병으로 멀쩡한 가축들이 모두 도살할 수 밖에 없는

환경도 얘기해 주고 얼마나 환경이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다.


멀리 마주걸어오는 트레킹하는 여자분 2명에게 지나치며 말을 걸었다.

외지에서 왔는데 2박 3일 예정으로 나들길을 걷는단다.

처음에는 강화유스호스텔에서 하루 잤는데 너무 시설이 안좋아

모텔에서 숙박한단다. 그리고 코스들이 이어지지 않아

가능한 연이어 걷기 좋은 코스만 걷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5코스를 역으로 걷고 터미널에서 또 다른 코스를 걸을 예정이라 한다.

하긴 잘 걷는 사람이면 걷기 후 강화도 내에만 있다면  

하루 2코스 정도는 무난하게 걸을 수 있다.

내 경우도 혼자 걸으면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도 올레길 정도를

2코스 잡고 하루 30키로를 걸을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 분들과 헤어지고 조금 가다가 그만 2째 아이가 장갑 한 쪽을 어디선가

흘려버렸다고 안타까워 한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방금 지나친 이가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걸을테니 장갑을 발견하면 주워 터미널에 보관케 하여

찾을 수 있는데 무척 아쉬었다. 어쩔 수 없이 내일 이 길을 걷는 팀 리더에게

부탁해 두었다. 혹 발견하면 가지고 있으라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서로 노래를 불러가며, 티걱태걱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싸주신 간식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그 중 제일 걷기를 좋아하는 막내는 오늘 코스가 조금 힘이 드는지

뒤에 따라 오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할 기세는 아니다.

낙엽을 밟는 것을 기분 좋아하고

길가에 이상한 나무가 있으면 눈길을 준다.

멀리 오리들이 하늘을 열지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신기해 하고

조용한 시골집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

그 애들이 아마 온 천지가 푸르름과 열매로 가득찬

이 곳을 지나면 아마 즐기느라 제대로 걷지 못할 것 같다.


고인돌의 거대한 모습을 보고 신기해한다.

고인돌 옆에 나들길 스탬프를 찍는 박스안에 살던

작은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내가 저수지는 일부 구석만 남고 모두 얼어 버렸다.

아이가 돌을 주워 저수지 얼음위로 던지니 얼음이 깨지는 것이 아니고

돌이 깨져 버렸다. 저수지 구석의 남아 있는 조그만 수면 근처에

오리들이 떼로 몰려 있어 비상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훠이~~~ 하고 크게 소리질러도 날아가지 않아 실패했다.


내가면에 오니 십자가들이 많이 보이니

목사님 아들들이라 호기심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와 천주교의 선교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외세의 침입에 왕들의 피난지였던 강화의 긴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흩어져 있던 강화의 작은 섬들이 왕의 신하들과 군사들에게 불하해줄

농지를 위해 갯벌을 간척하여 현재의 강화가 만들어진 역사와

팔만대장경이 외세의 침입에 불심으로 대응하기 위해

강화에서 제작되었다는 이야기해 주었다.


애들은 여전히 늘 배가 고픈지 먹는 타령을 한다.

언제 밥을 먹는지 어디서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오늘 갈비탕을 먹는다 했더니 지난 3코스 야콘냉면집에서

먹었던 갈비탕 생각이 나는지 좋아하다가

내가마을 외내골에서 먹어본 젓국갈비는 짜고 맵다고

그다지 마음에 안들어하는 눈치지만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밥을 추가로 시켜 먹는 것을 보니 운동의 효과는 있나 보다.


식사 후 식당 뒷산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정확한 거리로 열을 지어 있는 장관을 보며 감탄을 한다.

평소 감탄이라는 것이 인색한 애들이 소리를 지를 정도로

이 곳의 조림은 정말 환상적이다.

아이들은 서로 이 곳에서 사진찍고 싶어 했다.

아이들에게 이런 나무들이 고모부가 어릴 때

박정희 대통령이 산림녹화를 위해 학교에서 식목일이면

강제적으로 산에 나무를 심은 결과라고 알려 주었다.

아울러 법으로 산에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하고

집에서도 나무를 밥을 짓지 못하게 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산이 자연과 환경에 대해 주는 효과를 얘기하고

바로 건너 보이는 북한 땅의 산이 이렇지 않다는 것을

얘기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가파른 언덕은 힘들지만 낙엽이 두텁게 덮은 언덕을

올라가며 아이들은 숨이 차지만 빠르게 언덕을 올라가며 연신 즐거워한다.

도심지 아이들은 이런 거친 자연 속에서 지내는 삶을 알기나 할까?

숲 속에 거대한 나무가 중간에 딱 부러진 채 꺽어져 있는 것을 보고

때론 나무의 큰 가지가 휘어져 땅까지 닿은 것을 보고

신기해 하는 아이들이 모습이 보기 좋다.


덕산 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예쁘게 생긴 나들길 산장이 하나 생겼다.

보기 좋은데 숙박비는 얼마나 할까?

나들길 걷는 사람들 위해 저렴하게 운영되면 좋겠다 하는 희망을 가졌다.

J2갤러리라는 멋진 갤러리겸 카페는 데이트하는 사람이면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 같이 예쁘다.


덕산으로 올라가는 넓은 산책길에 개와 함께 산책나온 연인과 가족들이

천천히 길을 가고 있다. 이런 풍경이 천국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힘이 드는지 언덕이 보일 때 마다 혹시 산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나들길은 언덕에서 숲속으로 들어간다 하고 숲으로 들어가니

신이 났는지 걸음이 빨라졌다.

등산화를 신지 않은 아이들이라 미끄러운 길을 넘어지지 않게

각별히 조심해서 걸으라 해도 여진히 걸음은 날라가고 있다.


덕산 숲 끝에 가서야 바다가 보이니 이제 거의 다왔다며 무척 즐거워 한다.

덕산 굿당앞에 서서 넓은 바다를 보며 참 좋다며 감탄을 한다.

외포리 바닷가에서 갈매기를 보고 바닷가 상점에 들어가

마른 생선을 2뭉치 사서 애들에게 하나 주고 나도 하나 챙겼다.


버스정류장에서 막내가 얼른 어딘가 다녀오더니

강화 터미널 가는 버스번호와 시간을 알아온다.

아마 세상을 제일 현명하게 살 것 같은 싹수가 보인다.

기다리는 동안 찐빵집에서 뜨끈한 찐빵를 사 하나씩 주니

너무 맛있다며 즐거워 한다.


걷기를 끝내고 터미널 근처에 차에 올라 서울로 오는 길에

아이들은 차에 타자 마자 모두 잠에 빠져 들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피곤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또 가자 하면 즉시 따라 나올 아이들이다.

막내는 언제가 걸었던 7코스 갯벌 바위가 있는 곳에

다시 가고 싶어한다. 장남이 저녁에 카톡을 보냈다.


"지난 한달동안 학원에서 살았는데

걸으니까 살아난거 같아요.

힘든만큼 즐거웠어요 ㅋㅋㅋㅋ"


스스로 체험하게 하고 느끼고 스며들게 하며

본을 보여 주는 교육이 가르치는 교육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