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가는 추억의 길

carmina 2016. 3. 19. 21:37



2016. 3. 19


내가 이 길을 언제 걸었더라.

도무지 가물 가물하다.

6코스에 식당이 없어 점심을 먹기 불편해진 뒤로부터 리더가 이 길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나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강화버스터미널역에서 출발하니 시간에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일어나 버스를 타고 가는데 오늘 3000번 버스가 이상하게

느리고 흔들림이 무척 심해 강화를 들어갈 때 쯤에는 속이 뒤집힐 정도였다.

아무래도 운전이 스무스하지 않아 가만히 보니 기사가 여자였다.

너무 조심스럽게 운전하느라 그런 것인지 보통 50분이면 고촌에서 터미널까지

오는 편인데 거의 1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오늘은 특별히 엄마와 딸이 같이 나온 팀이 4가족이나 된다.

반가운 얼굴들과 둥그렇게 모여 인사를 하고 큰 내를 끼고 창리벌판 사이의

일직선 농로를 따라 걸어가니 까마득한 벌판이 모두 회색빛깔이나

멀리 산에 낮은 안개가 낀 것을 오늘 조금 더울것이라고 생각된다.


너른 벌판에 벌판색 옷을 입은 오리떼들이 우리들의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벌판에 모여 있어 큰 소리로 놀래 주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남아 있는 옛집들은 변함이 없다. 대문은 굳게 잠겨있지만

열었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빈집같다. 또한 몇 년 전 의욕적으로

새로 지어 영업을 하며 커다란 장작들을 산높이 쌓아 놓았던

강화스파랜드에도 유리문은 쇠사슬로 매어 있고

광고지만 문 앞에 볼성사납게 놓여 있고 불이 꺼져 있다.

장사가 안 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숲길로 들어가는 언덕을 올라가는데 겨울 등산복을 입은 내 몸에 벌써

땀이 난다. 물이 흐르지 않지만 조금 고여있는 약수터 옆에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버린 빈 소주병과 펫트병들이 놓여있는 옆에서 잠시 쉬며

자켓의 겉옷을 벗고 내피만 입어도 내피가 동절기 내피라

따스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제 기분좋은 숲길로 들어간다.

6코스의 이 길은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느 해 겨울 쯤에 이 숲을 걸을 때 나무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눈이

바람에 흩날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라 쓰러진 고목에 이끼가 가득 끼어 있어

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일부러 돈을 들여 모양을 바꾸어 가며 다듬어 놓은 자연보다

이끼조차 살아 있는 자연, 벌레들과 새들이 살아 있고 낙엽이 땅을 부드럽게

하는 이 숲 속이 자손들에게 큰 유산이 될 것이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길벗들이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으로 사라진다.

문득 주위의 나무 밑둥들이 모두 까맣게 타 있는 것을 보니 이 곳에서 산불이

었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하게도 얼른 진화를 했는지 나무 밑에만 숯처럼

까맣고 내 허리쯤 부터는 제 색깔을 뜨고 있다.


이 길에 옹달샘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다가 한참 가서야

일부러 땅을 깊게 파 놓은 곳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고는 또 안타까워 했다.

누군가 일부러 땅을 깊게 파고 물이 고이기를 기다렸나 보다.

산 밑으로 내려가는 길에 작은 홈까지 있는 것을 보니 큰 욕심을 부리다가

옹달샘이 그만 위험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자칫 주위의 땅이 무너질 것 같고

물이 많이 고여 있을 때 누군가 빠지면 위험할 수 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사이를 요리 조리 지나며 언덕을 올라 능선위로 걸어가는 길은

6코스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이다. 멀리 삼동암천이 가끔 보이고 주위에 나무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길의 연속이다.  


그 능선 길에 원두막같이 생긴 나무 움막도 허물어 지고 세월 지나니 볼품없어 진다.

이전에는 움막에 색칠해 있지 않았었는데 오늘 보니 녹색칠을 새로 했지만

그나마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무너져 버렸다.


쭉 쭉 뻗었던 리기다 소나무숲을 지나니 어느 순간 춤추는 나무 숲 사이를 지나게 된다.

나무들은 지들 맘대로 구부러져 있고 마치 힙합 댄스를 추는 사람들처럼 온갖 포즈로

우리 길을 가로 막는다.

"같이 춤 춰 보지 않을래?" 하고 묻기에

"나 춤은 못 춰. 노래나 불러 줄께"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이 언덕에 외로이 서서....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던 능선길이 약간 비탈길로 이어지더니 너른 선원사 공간과

연결되었다. 선원사는 고려시대 몽고의 칩입을 막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집필하던

절이었다고 전해 진다. 그 절터를 남겨 둔건지 아니면 대장경 제작을 위해

작업했던 공간을 남겨둔건지 큰 절이라도 하나 들어설만한

넓은 공간은 전혀 손대지 않고 있다. 몇 년 전에 공간의 가운데 큰 부처님 상이

있었는데 그 부처님 마저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다.


암자 뒤에 장독들이 많이 놓여 있어 들여다 보니 날짜별로 표시된 된장들이 담겨져 있다.

특별한 기념일에 쓰였던 커다란 황소 모형도 누군가 건드렸는지 소꼬리가 떨어진 채로

그대로 두었다.


암자 내에 몇 개의 석탑이 있는데 큰 시주를 한 사람들이 사진을 석탑에 새겨 넣었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그렇게 큰 시주를 한 사람들은 모두 소원을 이루었겠지?

암자 가운데 커다란 약수터는 어디서 흘러 나오는지 모르지만 끝없이 맑은 물이 흐르지만

그 물 외에는 주위의 건물들은 모두 빛이 바래 버렸다.

허름한 방 안으로 들어가니 녹이 슨 대포와 커다란 염주가 가운데 있고

고 박정희 대통령과 그 가족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누군가 그 분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특별히 마련한 공간같다.


이 곳 선원사는 연꽃축제로 유명하던 곳인데 근처에 연밭들이 거의 모두 논으로 변해 버려

안타까운 마음이다. 연꽃보다 쌀이 더 필요했겠지.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커다란 돌에 새긴 노래비에 이 근처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유행가 작사가인 정월하씨가 기증한 것 같다.


정월하씨는 길벗들을 위해 자기 앞마당을 개방하고 그 곳에 마실 것과 간식과 컵라면을

놓아 두어 길벗들이 잠시 쉬다 가게 한다. 겨울에는 밖에서 쉬지 못하니

간이 건물을 지어 그 안에서 쉬게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집앞을 지나가는 것이

싫어 리본도 떼어 버리고 길을 막아 버리는데 이 분은 참 너그러운 사람이다.


길목에 작고 오래된 옛날 서당이 있었는데 그것도 외관이 조금 변했다.

앞으로 몇 년 뒤엔 이 서당이 양옥으로 변하지 않을까?


월하약수라고 써있고 돌확이 있는 약수터에 나오는 약수가 수도꼭지로 콸콸 쏟아지고

았는데 이게 과연 약수일까? 수돗물을 이렇게 낭비하지 않을텐데....


집들 몇 채가 조용히 잠들어 마을 길을 지나 다시 숲길로 걷는다.

이전에 막 닦아 놓은 것처럼 보였던 흙길에 풀뿌리가 가득하고 이젠 오래전부터

그렇게 있던 것처럼 변해 버렸다.


오늘 점심을 먹는 곳은 배나무집이라는 가정집인데

내가 4년전 책을 내고 나들길 산하 모든 단체들이 합심해서

준비해 준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곳이고

내가 어느 가을 날 우리 교회 찬양대들을 나들길에 리딩했을 때

점심을 먹고 농촌체험을 위해 고구마를 캐고 감을 따던 곳이다.

오늘도 이 곳에서 시골내음이 물씬 풍기는 맛있는 점심을 먹으니

반찬을 물론 밥고 국도 꿀맛이다.


식사 후 삼동암천의 끝이 안보이는 긴 농로를 걷는다.

이 길은 가을 추수할 때 쯤 걸으면 그야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갈이다.

그 길 끝에도 군데 군데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 서 있고

나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흑심을 품게 된다.

이 중 내 것도 하나 있을거야 하는...


이 길에 마리학교라는 대안학교의 커다란 간판이 있었는데

그 간판은 그대로 있지만 이름이 지워져 있다.

그들이 공부하던 한옥 주택도 집 앞에 공사용 자재들이 쌓여 있고

문 옆에 허름한 기타의 하드케이스들이 놓여 있다.

혹시 애들이 기타를 배우다가 놓고 간 것인가 궁금해서

안에 들어가 보니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이제는 학교가 없어지고

수제기타를 만드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며 실내를 보여 주는데

어수선한 작업실에 기타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너저분하게 놓여 있다.

기타 브랜드가 뭐라고 알려 주었는데 잊었다.

아니 그 작업공간을 보니 너무 지저분해 이런 클래식 기타를 좋아하고

고가의 클래식 기타를 가지고있는 내가 일부러 기억해 둘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애들이 공부하던 한옥 옆에 정자에는 못쓰는 가구들만 놓여 있다.


숲길로 들어가다가 오래 전 구제역으로 가축을 도살하여 묻어 두고 표시해 두었던

곳에 이젠 그 표시마저 없어져 버렸다. 혹시 그걸 모르고 누가 그 땅을 사고

파헤친다면 아마 기겁을 할 것 같다.


어느 부유한 가문에서 만들어 놓은 큰 사당과 집단 납골당에는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것도 하지 못하게 높은 나무들을 심어 놓아 위압감이 든다.

화남 고재형 선생이 살던 두두미 마을에는 그간 많이 변했다.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도록 최신식 화장실도 만들고 커다란 정원을 만들어

사람들이 차도 한 잔 마시고 압화같은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누군가 새로 만들어 놓은 우물이 있어 들여다 보니

안에 물이 고여 있고 두레박도 있어 호기심이 있었지만

일행들이 앞으로 먼저 가고 있기에 재미있는 일을 포기했다.


이 정감있는 마을에 딸과 같이 온 길벗이 정답게 손을 잡고 오손 도손

걷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딸과 엄마들은 이야기가 끝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딸과 있으면 몇 마디하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


두룩이 마을 지나 큰 거리로 나오니 어느 현대식 회사 앞 담장에

수세미들이 말라 비틀어져 있는 채로 그대로 두었다. 그래.. 이것도 멋이다.

그 자리에 올해 또 새파란 수세미들이 열리겠지..

 

큰 길을 걷다가 다시 숲길로 걷게 되어 있었는데

그만 그 길에 커다란 공장 창고가 생겨 본의 아니게 문이 잠겨 있는

그 지역을 옆 길로 해서 넘어가게 생겼다.

그래도 아주 막아 놓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눈을 돌리는 구석 구석보다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 서고 있다.

땅은 파 헤쳐져 있고 작은 언덕은 건물을 들어 설 수 있도록 깎여지고 있다.


낮은 언덕을 올라가 걷는 넓은 숲길은 참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멀리 푸른 빛의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있고 내 옆의 나무들은 하늘 끝이

어느 정도인지 재보려는 듯 하늘로 하늘로 치솟고 있다.


원래 6코스가 오두리를 지나 광성보까지 걷는 긴 여정이었는데

오두돈대에서 광성보길이 2코스와 겹치니 코스를 줄였다.


그래서 오늘은 오두리 마을 끝에 있는 능내촌까지 약 14km를 걷는다.

마을 끝에 푸른 소나무밭에 들어가니 길에서 느끼지 못한 시원한 바람이

숲 사이에 감돌고 있어 모두 탄성을 지른다.


숲에 푸른 바람이 분다.


길을 다 걷고 강화 일주 순환버스를 무려 40분이나 기다려 타야만 했다.


이젠 교통편을 생각한다면 6코스를 걷는 것이 역방향으로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늘 길을 걸으면서 봄을 준비하는 농부들을 자주 보았다.

이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농부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인다.


힘들지만 힘든만큼 보람있는 하루였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