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총천연색 나들길 고려왕궁성곽길

carmina 2016. 4. 14. 10:14



2016. 4. 13


이번 주에 떠나는 산티아고 까미노의 긴 여행 전에 나와 같이 한 번

길을 걷고 싶다는 친구들의 부탁에 멀리 지리산 둘레길 오미-난동코스의

벚꽃길을 계획했다가 4월 중순이면 꽃이 모두 진다는 둘레길 안내자의 말에

그 곳은 포기하고 아내가 쿠팡에서 주왕산 트레킹을 구매했으나

그것도 모객이 안되어 포기했다기에 가까운 강화도 나들길로 발을 옮겼다.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

투표는 편리한 사전투표제도로 지난 주말에 미리 해 버렸고..

전날 날씨 예보를 보니 비가 온다한다.

나야 당연히 날씨와 관계없이 가지만 다른 이들의 의견을 모으니 일단

강화로 가서 비가 오면 어찌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3가족 부부 6명이 차 한대로 이른 아침 김포가도로 가는 길은

강화도에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있어 혹시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리 막히지 않았다. 


사람들 별로 가지 않는 호젓한 고려 왕궁 성곽길로 코스를 잡았다.

적당한 등산코스와 숲길과 강화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성곽길은

강화가 서울만큼 큰 도시는 아니지만 이전에 고려시대 왕들이

외적의 침입으로 피난왔던 곳이라 갖출 것은 다 갖춘 곳이다.

강화읍 정도에 왕의 거처가 있고 강화읍을 원형으로 둘러싼 낮은 산에

동서남북으로 성곽을 쌓았다.

비록 대부분 성곽과 성벽이 허물어 졌지만 많이 복원해 놓았고

임금의 처소로 오는 길목에 세운 사방 대문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오늘 코스는 남문-서문-북문-동문으로 돌아오며 비교적 낮은 산인

남장대와 북장대를 오른다.


남문에서 시작하여 남장대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에

평소 운동량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앞서 가는 나와 한참 거리를 두었다.

나도 그리 강한 체질은 아닌데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나은 편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떤 특정 기준선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기준의 레벨이 무엇이냐에 달렸다.


지난 밤에 비가 내려 흙길을 걷기에 불편할 줄 알았는데

가파른 성곽을 잇는 흙길은 언제 비가 왔었냐는듯 흔적도 없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이쪽은 비가 오지 않았나?


언덕으로 오르다가 숲길로 빠지는 옆길로 들어 서니

오솔길 아래 위로 펼쳐진 황홀한 진달래 군락의

연보라빛 색의 향연에 탄성이 터진다.

물론 고려산 진달래보다야 덜하지만 이 정도 빛깔로도

충분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노래를 최고의 즐거움으로 아는 우리들이

진달래 노래를 불러 보자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기억속에 진달래 노래가 별로 없었다.

김소월의 시로 만든 가곡 진달래꽃과

유행가 '님과함께'의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는 노래 정도?

나중에는 가곡 '남촌'까지 생각해 냈다.


남장대는 동네 사람들의 주요 산책로이고 중간에

운동기구가 있는 청하약수터가 있어

이른 아침에도 이 곳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편한 복장의 동네 사람들이 지나치며 인사를 건넨다.

강화도 나들길은 이런 곳이다.

오랜 세월동안 마을 사람들이 삶을 위해 이용하던 자연스러운 길.

인위적으로 억지로 길을 만들어 여기를 걸어가십쇼 하는 전시적인 길보다

이런 길들이 좋다.

지리산 둘레길이 그렇고 제주도 올레길이 그렇다.


겨우내 빛깔없이 지내던 길가의 나무들이

긴 동면에서 깨어나 여린 파란 잎들을

봄날의 공간에 마구 터트려 놓는다.

걸으며 진달래 잎은 뜯어 먹었는데   

그 여린 잎들마저 염소새끼처럼 입으로 뜯어 먹고 싶을 정도다.


청하약수터에 물을 받으러 온 사람 2명이 물가에서 기다리고 있고

혼자 걷는 사람인 듯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정자에서 간식을 즐긴다.

청하약수터에서 남장대로 올라가는 길은 내 참 좋아하는 길이다.

오랜 세월동안 가꾸어 온 아름들이 나무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있는 오솔길. 그 길의 나무들을 보면 어린 시절 해마다 식목일이면

학교에서 단체로 산에 묘목을 심고 당시에는 유난히 많았던

징그러운 송충이들을 나무 젓가락으로 잡아 내던 큰 일들을 자주 했었다.

하루 종일 소나무의 송충이를 잡고 오는 날이면 온 송충이 털이 몸에 묻은 것 같아

저녁까지 근질거림이 뭅시 불쾌했던 추억들이 있다.

우리 세대의 그런 노력으로 지금의 저 나무들이 저렇게 튼튼하게

자랄 수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 길을 처음 오는 사람들은 남장대로 이어지는 유연한 성곽길의

담벽과 그 주위의 잘 다듬어진 잔디를 보고 참 좋다라는 탄성을 아끼지 않는다.

강화에는 성곽만을 돌보고 관리하는 성곽지기들이 있다.

끊임없이 보수하고 다듬는 그 들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생긴다.


평소 앉아서 쉬고 싶었던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에 앉아 한 참을 쉬었다.

벤치가 두개 밖에 없어 단체 걷기에는 늘 그냥 지나치던 곳.

소나무들이 열을 지어 서 있는 그 곳은 오로지 소나무만 존재한다.

소나무는 유난히 텃세가 심해 주위에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뿌리에서 특별한 액이 나온다는 들었었다.

산기슭하나가 완전히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소나무들과

땅바닥에는 마른 솔잎들이 잔디보다 더 촘촘히 덮여 있다.

날씨 좋은 날 이 숲에서 낮잠이나 자면 나도 신선이 될 것 같다.


그러나 그 언덕을 지나 남장대로 가는 능선에 오르면 그 반대편 산 언덕에는

무질서한 품종의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리고 있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렇지만 그 언덕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다.  


남장대에 올라서면 멀리 북한땅이 보였는데 오늘은 안개가 끼어

강화도 땅의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제 반대편 산길로 내려간다.

이 호젓함. 숲은 온갖 꽃들이 나 좀 보아달라고 아우성이다.  

연보라빛 진달래,  노란 개나리, 흰 벚꽃, 조팝나무, 노란 생강나무

어느 집 마당에 흐드러진 흰 목련화 등등

땅에는 온갖 민들레와 애기똥풀과 머위 등 먹어도 될 만한 풀들이 이제 막

솟아 오르고 있고 그간 땅을 뒤 덮었던 낙엽들이 바람에 밀렸는지

혹은 새싹들의 기세에 밀렸는지 옆으로 자리를 내 주었다.


긴 언덕으로 내려가며 우리끼리 노래를 부른다.

이 시간만큼 즐거운 시간들이 있을까?

노래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는 친구들..

만약 노래를 좋아해도 많은 사람들이 걸었다면 그런 즐거움을 가지지 못했을텐데

소수의 인원이라 더 가능한 것 같다.


친구 한 명이 길가의 작은 풀 잎을 사진찍더니 내가 알려 준 '모야모'라는

어플로 그 풀의 이름을 확인하고 무척 즐거워한다.

아마 페북이나 카톡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최고의 어플이라면

식물이름을 알려주는 '모야모' 어플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과 

자연의 꽃과 나무들을 이어주는 최고의 어플로 평가하고 싶다.

비록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누군가 찍어 올리는 꽃과 나무들의 사진들을 보고

즉시 즉시 이름을 알려주는 수많이 많은 이름모를 사람들이 참 고맙기만 하다.

 

국화리 저수지에 오리 한마리가 작고 긴 물결을 양 옆으로 만들어 내며 천천히 호수의

가운데로 헤엄쳐 가고 있다. 그 저수지 상공을 검은 가마우지 한 마리가 천천히 선회하고 있다.


휴일인데도 학생들이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소리가 꽃들의 아우성같다.

서문을 거쳐 북문을 향해 가는 길에서 반대편 길로 걷고 있는 반가운 길벗 부부를 만난다.

집이 이 근처라며 땀을 흘리며 걷고 있다.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강화에서 사는 선물이랄까? 

같이 걸으면 대화가 없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사이좋은 부부를 만나서였을까?

평소 그 길에 보이지 않았던 나무 한그루가 눈에 보였다.

대개의 나무는 큰 기둥 하나가 자라며 가지를 뻗어나가지만

그 나무는 뿌리만 같고 큰 기둥 두개가 바닥에서부터 서로 엉켜가며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다른 나무가 만나 하나가 되어 자라는 연리지는 아니고

그 나무를 보면서 최근 어릴적 쌍동이로 태어나 서로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가

페이스북으로 다시 만난 두 여자의 이야기가 떠 올랐다.


뒤에 뒤처진 우리 일행들이 조금 힘든지 

내가 길을 떠날 때 사 둔 막걸리 먹자며 큰 소리를 친다. 쉬자는 얘기다.

강화여고 뒷산 길에 작은 벤치가 있어 그 곳에서 쉴까 했으나

머리를 색색으로 물들이 어린 아가씨들 몇 명이 미리 자리 잡고 있어

풀 숲에 앉아 먹는 막걸리 한 잔은 그야말로 청량음료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있는 북문에는  진송루 (鎭松樓)라고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는 현판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써 있어 조금 어색해 보인다.


북문에서 북장대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길이 오늘의 마지막 오름코스다.

아침에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걷는 동안 햇빛이 비치고

이젠 북장대에서도 바다건너 멀리 건너편 북한땅이 보인다.

산 위에서 누군가 밭을 일구고 있다. 무엇을 심는 것일까?


북장대에서 길게 내려오는 멋진 곡선의 산 비탈길이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왜 다르게 보이지? 내가 다른 길로 내려왔나?

길 바닥길이 많이 패어 있다. 사람들이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두더지들이 이렇게 땅을 파 헤쳤을까?


약 11km의 코스를 4시간 정도 걸었다.

모두 만족한다. 그리고 더욱 만족한 것은 생선구이와 떡갈비로 먹은 점심.

그리고 남문 근처에 있는 남문로7 이라는 백범 김구선생 묵었던 유적지에

자리잡은 카페에서의 맛있는 전통차들과 클래식 음악들...


그 어느 길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강화 나들길.

같이 간 친구들은 이런 나들길 매니아인 나를 보고

노후에 강화에 살라고 한다. 그럴까?


유난히 막히는 김포가도를 달려 무려 3시간만에 부천에 도착해

내가 산티아고 잘 걸으라고 도가니팅을 끓여 주는 이웃과

까미노 길을 걸으며 와인 사먹으라고

축하카드 속에 유로 지폐 한 장을 넣어 준 친구가 있어

밤 늦게까지 와인을 먹으며 웃고 즐긴 하루가 즐거웠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