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 - 여름이 끝나는 길

carmina 2016. 8. 23. 21:41



2016. 8. 23


도대체 올해 폭염은 어느 정도 지속되는지 감을 못잡겠다.

다른 해 같으면 8월 중순정도 되면 해수욕장의 물이 차가워졌다고

서서히 한여름의 떠들썩함이 사라질법도 한데

올해는 8월 하순으로 넘어가도 여전히 전국적으로 폭염경보와 폭염 주의보가 살아 있다.


집에서 지내며 글을 쓰고 책을 읽다가 지루하여 외출하고 싶어도

열섬같은 도심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안되겠다. 숲으로 가야겠다.

마침 나들길 카페의 화요도보 일정에 숲길이 좋은 화남생가 가는 길 공지가 떴기에

이른 아침 강화가는 버스에 올랐다. 평일에 도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해

아침도 걸르고 일찍 떠난다고 했는데도 모임 시간인 8시 40분에 겨우 3분전에 도착했다.

밥 먹을 시간도, 물 한 병 살시간도, 간식 살 시간도 없었다.


원래 6코스는 출발점이 시외버스터미널인데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

숲길 입구까지 세멘트 도로를 피해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에 내려 바로 이미 오래 전 문을 닫은 강화한증막 옆을 지나 올라가니

그 간 길이 바뀌어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과 비탈길로 잠시 올라갔다.

원래 길에는 조금 올라가서 작은 약수터가 있었는데 이젠 그 곳으로 가지 않고

비교적 잘 다듬어진 숲길로 들어갔다.


확실히 숲길에 들어서니 대기 중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비록 서늘한 기운은 없지만 적어도 뜨거운 기운은 사라졌다.

푸른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려주고 도심에서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 대신

지열을 모두 흡수하는 부드러운 흙들이 있어 아래 위로 모두 열기가 없다.

도심 거리에서 조금만 걸어도 머리와 목에 땀이 흐를텐데

여기서는 비록 바람이 불지 않아 시원하지는 않지만 땀은 흐르지 않았다.


숲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간다.

작은 옹달샘이 있던 곳에 누군가 물을 더 많이 얻으려 했는지

크게 구덩이를 파놓아 더러운 물만 잔뜩 고여 있다.


이 옆을 지날 때 늘 김민기가 작곡한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르 흥얼거린다.


작은 연못에 예쁜 붕어 두마리가 살고 있다가 서로 싸우다가 결국 물이

썩어들어갔다는 가사처럼 이 연못에서는 물과 사람이 싸우다가 결국

물이 썩어 들어가 버린 꼴이다.


물은 적게 내 주어야 하는데 사람이 물을 많이 달라하니 결국

충돌이 생겨 물도 사람의 욕망도 모두 채우지 못했다.


지난 3월 이 길을 지날 때 나무 밑둥이 산불에 그을려 새까만 부분이 많았는데

이것도 이젠 불과 여름 한 철에 자연치유되었는지 나무 밑둥이 제대로 살아있다.

확실치는 않지만 길을 새로 만들었는지 걷는 길이 무척 편해졌다.

늘 올라만 가던 길에 이정표가 잘 못되어 조금 헤매다가

다시 제대로 찾아 올라가니 이젠 예전 길이 뚜렷이 보였다.

여름내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는지 무덤가 옆을 지나는 길에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6코스는 중간에 식사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 걷기에 조금 불편한 코스다.

도시락을 싸거나 누군가 개인에게 가정집 식사를 부탁하지 않는 한

다 걸을 때까지 식당이 없다. 때로는 중간의 선원사에서 절밥을 팔기는 하는데

그것도 늘 제공하지는 않는다.


6코스의 가장 환상적인 능선길이 이어진다.

작은 벌레들이 집을 만들어 나무에 대롱 대롱 매달려 있고

거미줄도 나무를 벗어나 오솔길 공간까지 침범하고 있다.


길가에 버섯들이 무척 많이 보인다.

식용인지 독버섯인지 모르지만

길가에 머리가 큰 하얀 버섯들이 줄지어 있고

나무밑에더 커다란 버섯들이 화석처럼 붙어 있다.


문득 색깔이 다른 낯선 이정표가 보였다.

고려 강화도성길. 아마 기존 나들길 외에

강화의 내성과 외성 사이에 있는 길을 강화도 중성길이라 불렀는데

그 길을 새로 개발한 것 같다. 또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 것인가.


부드러운 흙길. 나들길만의 자랑이다.

대부분의 국내 코스들에서 이런 부드러운 흙길을 걷는 경우가 드물다.

국내의 다른 코스들은 길을 억지로 만들어 놓고 트레킹 코스를 정해좋았지만

나들길은 원래 주민들이 간간이 다니던 길을 코스로 정해 놓아

대개의 코스가 자연미가 살아 있다.


선원사로 내려왔다.

이전에 불상이 있던 자리에 여름내 자란 잡풀이 무성하다.

경내에 일하는 사람만 보이고 불공드리러 오는 사람은 없다.

입구에 큰 약수터에는 최근에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도

물의 양이 줄어들지 않고 콸콸 쏟아진다.

갈증이 나지 않았는데도 약수를 보니 갈증이 느껴져 한 바가지를 퍼서 마셨다.


선원사를 지나니 코에 풍기는 묘한 냄새

길벗이 벼가 익는 냄새라 한다. 마치 밥할 때 나는 냄새같다.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조금씩 이삭이 누렇게 되고

아마 다음달 추석때 쯤 수확을 하는 논도 있을 것 같다.


 이 길에 온갖 과일이 눈에 보인다.

대추가 익고, 감이 익고, 밤송이가 실해지고, 모과가 덩치를 키워간다.

어느 옥수수대는 이미 다익은 옥수수를 시집보내 누렇게 변했고

수수대는 알갱이들 커져서 땅밑으로 자꾸 처지고 있다.

길가 주택 담벼락에는 커다란 수세미가 땅에 닿을 듯 매달겨 있고

어느 집 지붕에는 누렇고 둥그런 호박들이 툭 건드리면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율무가 금방이라도 쏟아질듯이 무성하고 호두는 이제 색깔만 바꾸면 될 듯 커져

열매에 솜털이 가득하며 그 옆에는 빨간 능소화가 가득 피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사패가 나들길에 보인다.

주민의 집 앞을 걸어가야 하는 코스에 군청에서 그 주민에게 감사하다는

표시를 패로 만들어 세웠다.


7년전 나들길 처음에 참 운치있게 보았던 월하선원의 지붕도 이젠 물이 새는지

커다란 천막을 덮어 놓았고 나들길 걷는 사람들이 차 한잔 먹고 잠시 쉬라며

어느 유행가 작사가분이 만들어 놓은 쉼터도 사람들 발길이 뜸해서 인지 문이 닫혀있고

주위의 의자도 먼지가 가득하다. 이제 가을이 되면 이 의자들이 다시 윤기를 찾을 것이다.


문득 길가에 처음 보는 큰 꽃잎이 신기했다.

오크라라는 줄기의 꽃인데 채소로 먹어도 된다며 알려준다.


화남생가로 가기 위해 삼동암천이 있는 넓은 벌판을 지난다.

넓은 논 옆에 암천의 지류에는 일반 흙이 아닌 갯벌이 있다.

오래전 이 땅을 간척해서 김포와 마주보고 있는 바다를 메꾸어

이 곳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 이 전에는 독수리도 많았고

철새도 많았다 하는데 지금은 가끔 백로만이 천천히 수면을 나르고 있다.

고려시대때 부터 강화도의 간척사업은 현재 강화도 땅을 2배 이상 넓게 만들었다.


고능리 마을에 있는 비닐 하우스에는 농부들이 수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재배농작물을 지면과 조금 높이 만들어 놓았다. 농부들이 깨어가고 있다는 것은

참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늘 내 불만은 이 곳에서도 보듯이

농가들의 주변이 정리를 해 놓지 않아 마을이 지저분한 것이 선진국과 비교해서

꼭 고쳐야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대안학교가 있던 건물은 지금은 기타같은 현악기제작을 하는 곳으로 변했는데

역시 주변이 지저분하다. 지난 3월에  대문 옆에 기대어 놓은 악기케이스가

아직 그대로 있어 먼지가 가득하고 어차피 쓰지 못할 것이라면

작업장 입구라도 깨끗하게 해 놓으면 좋으련만 왜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지 모르겠다. 악기를 만들고 있는지 작업소리도 들린다.  

  

오늘 점심은 특별히 나들길 회원이 개인의 집에서 콩국수로 준비를 해 주었다.

햐얀 꽃이 집 주위에 가득 피어 첫인상이 좋았고

그 안에 들어가니 직접 담근 각종 반찬들이 가득하게 상에 차려 있다.

얼핏 보니 하루 이틀에 만든 반찬들이 아니다.

콩국수를 먹지 않는 나는 잘익은 김칫국물을 넣고 열무로 비벼서

맛있게 먹고 맛있는 오징어부침은 강화의 전통 인삼막걸리와 잘 어울렸다.


후식으로 나온 과일까지 포식하고 모두에게 내가 산티아고 길에 대한

안내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몇 사람이 나도 가고 싶다며 손을 든다.

적어도 이런 트레킹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산티아고 완주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내 몸이 자연에 반응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 몸아 가을을 기다려라.

충분히 기뻐할 만한 곳으로 많이 데려다 주마..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