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6일차 (에스테야 - 로스 아르고스)

carmina 2016. 6. 8. 20:11



2016. 4. 24


아침이면 알베르게 접수대앞에 모여 있는 여행용 트렁크를 보며

이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지 순례를 다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들은 순례자라기보다는 그냥 걷는 여행을 다니는 사람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서 이 곳에 오고 싶은 열망은 이해하지만

본인의 짐을 직접 지고 걷지 않고 편한 방법으로 걷다가 힘들면

카페에서 택시 불러 목적지까지 가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아직 어두운 새벽, 살며시 배낭을 싸들고 아래 층으로 내려와

화장실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 알베르게 문을 나서 길을 나섰다.

몇 백 미터 걷다가 문득 이 길이 맞는 길인가 의심스러워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지만 

노란 화살표가 없으면 늘 불안하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어두운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떴다.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공기가 깨끗하니 밤하늘에 별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별을 거의 보지 못했다.

스페인은 밤이라는 것이 무척 늦게 온다.

어느 날 해가 지는 시간을 보니 밤 9시 40분이고

그 이후 하늘이 어두워 지는 시간은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니

그 시간엔 이미 알베르게는 문을 닫고 소등하며 나는 한참 잠에

빠져 들어 있다. 아침에도 이른 시간에 나오지만 이미 그 시간엔

별들이 빛을 잃은 시간이었다.


로타리에서 길을 찾다가 까미노 안내 책자에 주유소를 끼고 올라가라는

말이 생각나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오늘 코스 중 첫 번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은 약 7km가 넘는 아즈케타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거기까지는 너무 먼 것 같아 주유소에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와 일반 빵 

한 조각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여기 주유소 편의점에선 카페처럼

빵도 굽고, 커피도 내린다. 


에스테야에서 2km 지점에 있는 아예구이 동네 언덕으로 올라가다

그새 등에 땀이 흘러 패팅을 벗고 있는데

단체로 온 한국인들이 아래에서 밀려 온다.

얼른 빨리 걸어 거리를 두었다.


조금 걷다 보니 이라체 팻말이 보인다.

이라체에는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는 수도원이 있는데

순례자들을 위해 수도원 밖에 와인과 물을 따라 마실 수 있는

수도꼭지를 설치해 순례자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하루에 일정량만 공급한다기에 먼저 가야 기회가 있다 한다.


와인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꼭 이 곳에서 와인을 마셔봐야겠기에

까미노 오기전부터 여기는 꼭 들러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호젓한 언덕 길을 오래 걸어 도착한 이라체 수도원.

반가운 수도꼭지가 보이고 근처에 승용차들이 몇 대 보인다.

보데가 이라체 1891년에 세웠다는 팻말이 선명하다.

자, 이제 마셔 볼까나?

수도꼭지 밑에 와인 방울들이 선명하다.

누군가 금방 마신 것 같다.

꼭지 밑에 와인 잔도 있고 기대를 가지고 꼭지를 돌렸는데..

어?  안 나온다. 겨우 한 방울.

아니 벌써 하루 100리터 물량이 동 났다는 건가?

100리터면 큰 생수통 50개 정도인데..

저기 승용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약수 떠가는 것처럼 다 떠갔나?

뒤에 따라온 한국 단체 사람들도 와인을 따라 볼려다가 결국 실패.

내 실패담을 저녁에 알베르게에서 인터넷 네이버 카페인 까미노 친구연합에 올렸더니

누군가 금방 답변이 왔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나오는 것이 아니고 눌러서 돌려야 나온다며

자기는 와인을 마시고 수통에 한 병 담아왔다며 자랑한다. 

다른 꼭지 하나는 물이 나오는 곳인데 거기도 나오나 볼껄.

그 옆에 보데가 이라체 와인의 설명이 스페인어와 영어로 써 있는데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제공한단다. 아..너무 이른 시간이구나.

와인 박물관도 가보고 싶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포기했다.


급한 경사길을 올라가는데 벽에 달팽이가 그려진 별장들이 보였다.

스페인에는 왜 이리 달팽이들이 많을까?

청정지역이라 그런 것인가?

스페인에는 특히 제비가 많다.

대기 공기가 나쁘면 살지 못하는 제비

그래서 한국의 서울이나 큰 도시에서는 제비를 볼 수 없다.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 까미노는 또 다른 환상적인 숲 길을 보여 준다.

나무들이 우거져서 큰 터널을 만들고 있다.

다시 집 한채 안보이는 넓은 벌판으로 나왔다.

널은 밀밭과 유채꽃 단지. 이젠 질릴 때도 되었는데 도무지 질리지 않는다.

아즈케따 마을에서 오렌지를 직접 압착기로 짜서 만드는 쥬스 한 잔으로

갈증을 대신했다. 아즈케타 마을은 고양이에 대한 무슨 전설이 있는지

마을 곳곳에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즈케다 마을을 지나 멀리 보이는 산 정상에 무언가 건축물이 있다.

작은 성 같기도 하고 성당같이 보이기도 한다. 


언덕을 오르다가 몇 십 미터 앞에 어제 오후 숙소에서 만난

일본인 히테끼씨가 가고 있기에 일본말로 '이쇼니 이끼마쇼' 하니

반갑게 나를 맞는다. 

그 때부터 히테끼씨와 계속 같이 걸었다. 일본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

교육의 현실,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등 등..

내가 존덴버 노래를 흥얼거리자 자기도 그 노래 안다면 따라 불렀다.


Take me country road to place

To the place I belong
West Virginia mountain momma
Take me home country roads


몬하르딘 마을은 스페인의 레콩키스타가 일어난 전설적이 마을임을

어제 밤에 가져온 자료로 읽어 보았었다.

스페인 왕이 에브로 강이 흐르는 에스테야의  비옥한 땅을 그만

이슬람의 왕에게 뺏긴 후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스페인 땅에서

이슬람을 내 쫒기 위한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을

레콩키스타라고 한다. 만약 여기서 그런 시작이 없었으면 아마 스페인은

지금쯤 이슬람국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몬하르딘 마을에서 우린 얘기에 빠져서 그만 다른 길로 가는 줄 모르고

무심코 걷다가 우리 앞을 가로 막은 주민들에 의해 제대로 길을 찾았다.

당연히 마을 꼭대기에서 앞으로 갈 줄 알았는데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는 다시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둘이 깔깔 웃었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나무의 수종이 바뀌었다.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보던 낙엽송이다.

이런 조림산업이 이 곳에서는 모두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밀밭과 유채꽃밭과 포도밭이 이어지는 벌판길을 한참 걸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하게도 그 곳에 마실 수 있는 먹을 물이 있었다.


둘이 길을 가는데 어느 삼거리에서 나이든 순례자 한 명이

나무 아래서 쉬며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얼핏 나이 들어 보이기에

저 여자가 당신보다 더 나이 든 것 같다고 얘기하니 길을 가다 말고

되돌아서 그 여자와 한참 무언가를 얘기하고 돌아오더니

깔깔 웃으며 내 말이 맞다고 한다.

나이는 같은데 자기보다 생일이 빠르단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조금 맞고 가다가 빗방울이 굵어져 우비를 썼는데

히테끼씨는 가방을 뒤적이다가 그냥 일어서버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다른 짐은 배달해 버리고

작은 배낭만 멘 줄 알았는데 그 짐이 전부라 한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작은 배낭으로 일주일을 걸을 수 있을까?

배낭을 뒤져보다가 우비가 사라져 그냥 가자하기에 마침

내가 깔판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우산껍데기를 주었더니

나를 또 다른 사마리탄이라며 미소짓는다.

그러다가 자기는 천천히 가고 싶으니 나 먼저 가라기에 헤어졌다.


까미노에서 익히 보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들이 모두 한 군데 모여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아르코스가 아직까지 6km 정도 남아 있어

사람들이 길 벌판길을 걸으며 지쳐가는 것을 느낄 때 쯤

멀리 오아시스처럼 간이 매점이 하나 있었다.


차량을 개조한 카페에서 커피, 맥주, 간단한 음식들을

판매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곳으로 모여 들었다.

이 것을 보고 나는 참 궁금해 졌다.

왜 이런 목 좋은 자리에 간이카페가 하나밖에 없을까?

너도 나도 이 곳에 카페를 차리면 푼 돈 좀 벌 것 같은데

이것도 허가제일까?


누군가 이정표위에 등산화를 올려놓고 그 안에 노란꽃과 하얀 꽃을

넣고 옆에 채색된 계란 하나를 놓았다.

신발도 비교적 낡지 않았고 꽃이 싱싱한 것으로 보아

얼마 전에 올려 놓은 것 같다. 여기서 신발을 이렇게 버릴 만한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로스 아르코스까지 계속 비스듬한 내리막길이다.

길은 조금씩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

걷기 편하지만 사람들이 지쳐간다.

이 넓은 자연 속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순례자들 뿐이다.

길 옆에 오래된 성채가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벽만 남긴 채 지키고 있고

그 길에 문득 말을 탄 4명의 남자가 마주 오고 있다.

복장과 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순례자는 아니고

그냥 말을 타기 즐겨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끝없는 벌판길을 걸어 도착한 로스 아르코스

당초 이 곳을 지나 약 8km 지점에 있는 토라 델 리오까지 갈려 했으나

벌판 걷는 것이 지쳐 그냥 이곳에 여장을 풀었다.


존과 히데끼는 보이지 않았다.

이곳 마을에서도 말을 탄 사람들이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에스타 시간이라 그런지 마을엔 사람들 인적이 없다.

배가 고파 마을에 있는 마트에서 이 근처 레스토랑을 찾으니

지금 시간엔 모두 문을 닫는단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든 피자가 있다고 권하기에 어쩔 수 없이 피자 한 조각과

콜라 한 병을 들고 가게 앞에서 먹는데 다른 순례자들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알고보니 마을에 성당 앞 레스토랑은 문을 열었다.

그 마트에 이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반창고를 잔뜩 붙인 두 발바닥을 그리고

'Sin Dolor, No Hay Glory"

고통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는 말.

그 말이 백번 지장한 표현이다.


매일 저녁에 사람들 샤워할 때 보면 너도 나도 발바닥과 발가락에 붕대를 감고

여기 저기 핏자국이 있고 걸을 때도 절뚝거리지만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침에 등산화를 신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뚜벅 뚜벅 걸어 나왔다.


산타 마리아 대성당 앞에 레스토랑이 있고 사람들은 그 곳에서 식사를 했다.

성당 앞 까스티야 문을 지나 큰 강이 흐르는 다리 뒤에 조금 현대적인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알베르게를 찾아 체크인을 하고 보니 이층에서 유료로

마사지를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빨래를 하고 햇살 좋은 곳의 빨래줄에

널고 나니 행복감이 밀려 온다. 자판기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 마시고는

천천히 마을을 산책했다.


마을 곳곳에 기사들의 특이한 석상이 있다.

주로 산초4세의 석상을 4면을 모두 다른 사람으로

새겨 넣었다. 어느 곳은 활을 든 병사의 모습과

순례자를 새겨 넣기도 하고..

로스 아르코스는 '활'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활에 관련되

큰 역사가 있는 마을임을 추정해 본다.

  

산책하고 오니 갑자기 못보던 한국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어보니 카톨릭 순례자 그룹이라 한다.

그 들이 또 주방을 점령했다.


조용해진 주방에 나와 같이 몇 밤을 같이 지낸 한국청년들과

파스타를 해 먹고 전기히터위를 보니 앞서 먹은 사람들이

밥을 해 먹고 큰 냄비 바닥에 밥 눌러 붙은 것을 그대로 남기고 가버렸다.

몹쓸 사람들. 설거지도 하지 않고 가 버렸네.

한국사람들이 남기고 간 자리가 지저분하다는 평을 받을까봐

그 냄비를 씻을려다 그 곳에 물만 부으면 누룽지밥이 될 것 같아

팔팔 끓여 청년들과 후식으로 나누어 먹었다.


그 다음 날 아침이 시끄러웠다.

누룽지밥을 아침에 해 먹을려고 남겨 놓았는데 누가 치워 버렸다고..

나는 변명하기 싫어 모른 척 했다. 


숙소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이 사람들을 부른다.

지금 산타마리아 성당에 일년에 한 번 오는 기적이 보일것이라고..

급히 나갔더니 회랑 뒤에 있는 성당 문 위에 성모 조각이 있는데

저녁 햇살이 까스티야 문 위의 작은 공간을 지나 시간이 지나니

성모의 아래쪽 몸체 부분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구름이 잠시 해를 가려 못보는가 싶더니

다시 구름이 벗어나고 햇살이 정확하게 성모의 몸 전체 부분만 아주 환하게

잠시 비추다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6번째 날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