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5일차 (푸엔테 라 레이나 - 에스테야)

carmina 2016. 6. 8. 15:34



2016. 4. 23


다행하게도 아침에 빨래들이 다 말랐다.

자다가도 잠시 잠이 깨면 널어 놓은 빨래들이 다 말랐나 하고

확인할 정도로 나는 어느 덧 주부의 마음이 되어 버렸다.

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얼마나 내게 행복을 주는지

아마 산티아고를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원래 어제 확인한 야후 날씨 어플로 확인한 바로는 오늘도 비가 예상되어 있었다.

아침에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문을 나서니 한국인 단체 일행들이

나보다 먼저 밖에서 점호를 하고 있었다.

비는 살짝 내리는 것 같고..


알베르게가 있는 언덕을 내려오면서 고요히 잠들어 있는

중세도시를 바라보니 내가 마치 중세시대에 와 있는 느낌이다.

오늘은 나보다 먼저 떠나고 있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길을 가다가 얼핏 뒤를 돌아 바라본 일출의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먼저 길을 떠나 걷고 있는 호주부부를 만나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

한참 얘기하며 걸었다. 

그가 내게 묻는다.

"어떻게 이런 긴 기간동안 시간 낼 수 있나요?"

"지난 달에 은퇴했습니다"

"나이가 어찌 되는데요?"

"올해 환갑입니다"

"그렇게 안보이는데요?"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넘치는 시간뿐입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에 계획한 내 버킷리스트의 2번째 항목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럼 첫 번째는 무엇인가요?"

"여행관련 책을 하나 냈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며 걷고 있는데 생장에 올때 만난 한국인 부부가

손을 꼭잡고 빠른 걸음으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멀리 일출에 붉게 물든 채석장이 보였다. 그 앞을 지나가나 했는데 길은

오른쪽으로 나있는 언덕을 오른다.

길가에 쌓아 놓은 건초더미에 싹이 나고 있다.

이 들은 한국처럼 건초를 흰 비닐로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단단하게 뭉쳐서 길 옆에 쌓아 두고 있다.


아침 추울까봐 옷을 잔뜩 껴 입었더니 언덕을 조금 오르니

땀이 온 몸에 가득하다. 호주 부부는 반바지 차림으로 걷고 있는데

나는 패딩까지 껴 입었으니 더울 수 밖에..

그러나 감기 안 걸릴려면 내 몸을 항상 따뜻하게 해 줄 수밖에 없다.

지금 내 웃도리도 무려 4겹의 옷을 입었다.

내의, 등산셔츠, 방풍점퍼 그리고 경량패딩까지..

이번 여행에 제일 내게 도움을 준 것은

평생 직장생활하며 와이셔츠 속에 내의를 입고 다녔는데

등산할 때는 땀에 젖는 내의를 입지 않으니 한국에서는

짧은 코스에 등산쳐츠만 입고 다녔지만, 이 여행은 오래 다녀야 하니

내의가 필요할 것 같아 상체가 허전할 것 같아 고민하던 중

우연히 이마트에서 축구선수들이 입는 얇은 내의를 사 입었는데

신축성이 있고, 땀이 스며들지 않아 너무 좋았다.


언덕 반을 올라가 패딩을 벗고 또 정상에 올라가 방품점퍼를 벗었다.

마을을 지나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길가에 자판기로 빵과 커피를

파는 곳이 있으니 그냥 지나갔다. 마침 몇 십미터 앞에 카페 간판이 있어

찾아 갔으니 문이 닫혀있다. 8시에 문을 연단다.

그런데 2층 창문에 인기척이 있다.

8시에 문을 열테니 기다리라 하더니 손님이 문 밖에 기다리고 있어도

정말 정확하게 8시에 문을 열었다.

늘 그렇듯이 아침을 주문했다.

카페 콘 레체 그리고 또띠야 하나.

거의 매일 이런 간단한 아침을 즐겼다.

직장 다니면서도 늘 출근 때 집에서 빵이나 떡 하나 싸들고 와

회사에 출근해 머그컵에 가득 담은 봉지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즐겼다.


구름이 많이 걷힌 하늘이 참 아름답다.

노란 유채꽃이 군데 군데 피어 있고 그 외에는 모두 녹색의 밀밭이다.

나무도 별로 없고 앞에 보이는 자연의 색깔이 참 심플하다.

하긴 지금 내 하루의 생활도 지극히 단순하니 궁합이 잘 맞는 셈이다.


조용한 마을의 끝에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해외를 다니면서 제일 부러운 것이 공동묘지다.

미국에서 본 공원의 바닥에 간단한 명패와 작은 글만 적힌 묘지와

지금 유럽에서 보는 마을 옆의 한 공간에 십자가로 대신하는 묘지.

왜 우리는 죽어서까지 넓은 땅을 차지하고 산소를 가질려 하는지 안타깝다.

그것도 집에서 아주 먼 장소에..

묘지 철문 안에 핸드폰을 집에 넣고 사진 찍으며 핸드폰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몹시 조심했다. 손에서 놓치면 그야말로 낭패다.


지금 이정표상으로 내 걷는 속도가 한 시간에 약 4키로 정도인 것 같다.

이정표상에 2km 정도 남아 있다는 시라우끼 마을이 아침의 여명에 반사되어

마치 샹그릴라를 보는 것 같다.


그 샹그릴라를 가기 위해 좁은 길을 걷다가 마을 가까이 오니

길이 넓어지고 양 옆에 이제 겨우 싹이 나지만 포도밭인 것 같다.

이번 여행에 처음 보는 와이너리다. 가을에 오면 장관을 볼 수 있으련만

지금은 단지 미래를 예상할 뿐이다.


마을 언덕을 올라가는데 문든 이상한 세 사람을 보았다.

나이든 두 명은 얼굴이나 몸으로 봐서는 걷기 힘든 사람들이고

한 명은 건장하고 프로같이 보인다.

아마 프로같이 보이는 사람이 나이 든 부부의 산티아고 길을

안전하게 걷기 위해 안내하는 것 같다. 이 그룹은 그 뒤에서

계속 볼 수 있었다.


인적없는 동네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창문에 널린 빨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까?


동네의 골목을 구불 구불 걸으며 벗어나니 다시 넓은 벌판이 보이는 길이 열린다.

그런데 앞서 가던 무리들이 갈림길에서 갈팡 질팡하고 있다.

오른 쪽은 올라가고 왼편은 내려가는데 이정표가 없다

결국 올라갔던 사람들이 다시 내려오며 길이 아니라하고

이정표는 없지만 아래 쪽으로 내려가면서도 걸음을 주춤거리고 있다.


나도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문득 그 길 가운데 박힌 말뚝에

써 있는 낯익은글을 보았다. 한글.


기로에서다

아래로 가보겠습니다.

부엔 까미노!

아래가 맞을 것 같네요.

화이팅!

거기가 아니면 다시 쓸께요

16. 3. 29


바로 얼마 전에 쓴 글이다.

마침 뒤에 따라 오던 프로같이 생긴 순례자가 왼쪽 길이라며 가르치고는

나보고 11시 방향을 바라보란다.

아! 이런 바로 눈 앞에 있는 이런 멋진 풍경을 못 보았다니.

누군가 경사진 언덕에 무엇으로 표시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세계 지도를 그려 놓았다.

이 광경을 언젠가 인터넷 까페에서 본 적이 있다.


사진을 찍고 내려가다가 나는 다시 그 갈림길로 돌아와서

작은 돌들을 몇 개 주워 아래쪽으로 내려가라는 화살표를 만들어 놓았다.

나중에 내 뒤를 따라온 한국 청년이 자기도 이 길에서 걱정했는데

바닥에 돌 화살표가 있기에 그 걸 보고 아래로 내려 왔다고 얘기해서

한참 뿌둣함을 느꼈다.


잠시 좁은 길을 내려가다가 고속도로가 있는 다리 위를 지나갔다.

그런데 다리 난간의 색깔이 빨간 색이다.

아마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앞에 다리가 있음을 쉽게 식별하기 위해

색을 그렇게 뚜렷이 보이게 했나 보다.


왼 쪽 발바닥이 또 아프다.

작은 계곡위에 있는 돌다리 끝에서 쉬며 발바닥을 맛사지하고 있는데

어제 저녁을 같이 지냈던 호주인 조가 내 앞을 지나며 괜찮으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잠시 쉬고 그를 따라 잡아 스위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자기는 운동을 좋아해서 겨울에는 스키를 주로 탄다 한다.

그리고는 내 걷는 속도가 느리니 먼저 가겠다며 훌쩍 멀리 가버렸다.


길가 언덕 옆에 이번에는 덴마크 인의 십자가 묘가 있다.

기록을 보니 약 76세정도. 그 나이에 이 길을 걷다가 이 곳에서

운명을 달리 했나 보다. 걸으며 놀라는 것이 나이 70살 이상 된

사람들이 길을 많이 걷고 있다. 과연 그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그리고 얼마 못가 이번에는 나무로 얼기 설기 만들어 놓은

십자가가 보인다. 날짜를 보니 불과 며칠 전이다.

나와 같은 나이의 슬로베니아사람이 기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직 추모를 뜻하는 돌들이 던져져 있지는 않았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길에 달팽이가 참 많다.

한국에 달팽이라는 가요가 있는데 그 노래를 좀 배워올껄...

다리 아래 터널이 있어 그 밑을 지나며 늘 그랬듯이

큰 소리로 오! 솔레미오를 노래했다. 울림이 좋으니까..


길을 걷다가 길 옆의 나무들이 만들어 놓은 터널을 걸을 때

기분이 참 좋다.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길 같은 착각이 든다.


끝없는 평원 길.

늘 이 곳에서 밀밭을 보며 한국 농부가 불쌍한 생각이 든다.

이 곳은 이 넓은 밀밭을 가꾸지만 어디에도 낮 시간에 밀밭에 나와

농사를 짓는 사람을 볼 수 가 없다. 한국 논이나 밭에서는 줄기차게

논에 피를 뽑아야 하고 밭에 잡초를 제거해야 하느라 종일

뙤약볕 아래 나가 살아야 하는데 이 곳에는 도무지 그런 일을 하는

농부를 보지 못했다. 가끔 큰 트랙터를 몰고 지나가는 농부는 보긴 했다.


멀리 로르까 마을이 보인다. 까마득하게 멀지만 이젠 그 거리가

가소롭게 보는 자만심이 생겼다. 뭐 저 정도야 30분이면 가지.

한국에서는 걸어서 10분 거리의 대형마트도 차를 가지고 가는

게으름을 이 곳에서는 상상할 수 가 없다.


녹색의 밀밭과 노란 유채꽃 사이를 걷는 순례자들을 보는 평화

말과 노새가 정답게 머리를 마주하고 풀을 뜯는 그림같은 평화

달팽이들이 궤적을 그리며 느리게 이동하는 평화

목장에서 목에 둔탁한 소리가 나는 방울을 달고 풀을 뜯는 소 떼들

사람이 앞에 와도 금방 도망가지 않는 새들

아침에 길을 걸을 때 들리는 차임벨 소리같은 새들의 지저귐

저녁이면 알베르게에 모여 왁자지껄 떠는 순례자들의 소리들

이 평화가 이 곳 까미노에 있다.


주택가 옆에 주차되어 있는 기아차를 보니 반갑다.

마을로 들어가는 돌다리를 건너니 그 곳 공터에서 한국 단체 순례자들이

쉬고 있으나 어울리고 싶지 않아 지나친다.

외국인들이 한국 단체 순례객들을 보는 시선이 별로 안좋다.

저녁이면 알베르게에서 주방을 장악해 버리고

아침에 첫 번째 마을에서 누구나 즐기는 아침 식사를

한국 단체 순례자들이 오면 내 주문 차례 올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한다.


그 다리 끝 공간에서는 현지의 아이들도 놀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며 점심을 이 곳에서 먹을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그냥 맥주 한 잔으로 대신했다.


아주 오래된 성당 앞에서 잠시 쉬며 물을 보충하고

숲길을 지나가는데 마주 오는 사람의 옷차림이 심상치 않다.

어디서 오느냐 물었더니 스페인 땅끝 마을인 묵시아에서부터

걸어 오고 있는데 프랑스를 거쳐 이태리와 터키 그리고 요르단을 지나

예루살렘까지 7개월 동안 걸을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적은 벨기에, 이름은 미쉘.

그는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그 뒤에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싸인을 받고 있다. 내 이름도 적어 달라며 유성싸인펜을 주기에

나도 그 곳에 내 이름을 적었다.


햇빛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한 겹씩 벗다가 결국은 너무 더워 내의 하나만 걸치는 신세가 되었다.

마을 입구에서 잠시 쉬는 순례자들의 얼굴도 지쳐 보인다.

풀밭에 있는 돌 식탁에서 점심을 즐기고 책을 읽는 여자 순례자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마을로 들어가는 곳에 각각 다른 모양의 다리들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오늘 하루 묵을 별이라는 뜻을 가진 에스테야는 관광지인 듯

순례자가 아닌 여행객들이 자주 보인다.

길가 순례자들을 위한 음수대 옆에 지팡이를 든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기에 인사를 드렸더니 조용하게 인사를 받는다.


마을 초입에 아주 오래된 성당 앞에 관광객들이 모여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그 앞을 관광객 용 코끼리 열차가 지나간다.

성당 앞 넓은 잔디밭에서 젊은이들 풀밭에 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고

그 앞에 넓은 강이 흐른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스위스 인 조와 점심을 같이 했다.

물론 점심 식사는 더치 페이다. 마을을 돌아 보자 하고

동네 구석 구석 기웃거리다가 작은 전시회를 하는 곳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기에 펜으로 평범한 것에서 무언가 나타내려한 그림들을 보면서

스페인어로 써 있는 작품설명을 서로 알고 있는 빈약한 스페인어

능력으로 해석하며 깔깔 웃었다.


숙소에서 늦은 점심을 만들어 먹는 한국 단체 순례객들이

부엌을 차지하여 스테이크과 삼겹살을 구워 대며 갑자기 시끄러워 졌다.

보통 영업식당에서 들을 수 있는 전문 요리사 같은 도마위 칼질 소리가 들린다.

외국 순례객들이 그 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15명 정도 되는 거의 2 시간 동안 식당을 장악하고 웃고 떠들다가 모두 사라졌다.

그 뒤에 나도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나이 든 동양인이 내게 말을 건다.

자신의 이름이 히데끼 상인데 떠듬거리는 영어로 말을 잘 이어나간다.

나이는 74. 참 대단하다고 했다. 내 아들이 교사라 했더니 자신도 교사였다며

반가워 하고는 자기는 일주일 정도만 까미노를 걸을 예정이라 한다.

오늘도 길을 걷는데 어느 한국인이 자기에게 빵을 주었다며

사마리탄을 만났다며 좋아한다. 그래서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데

어떻게 성경의 이야기를 아느냐 했더니 그냥 안다며 씩 웃는다.

하긴 사마리탄은 이제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영어의 보편화된 단어이다.


산티아고 까미노을 걸으면 누구나 서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서로 격려해주고 서로 걱정해 주며

무언가 자기 배낭에 있는 것을 나누어 주는 마음들이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같은 낙원임을 느낀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