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3일차 (라라소나 - 팜플로나) 15.3 km

carmina 2016. 6. 7. 19:59



2016. 4. 21


지난 밤 내가 언제 잤는지 모를 정도로 잠에 빠져 들고 새벽에

아래층에 있는 화장실을 가느라고 전등을 켜다가 그만 잘못해서

사람들 곤히 자는 윗층의 전등을 켜서 미안했다.


그런데 내 안경이 어디갔지?

자다가 안경의 코걸이가 부러진 꿈을 꾸었는데 안경이 찾아봐도 없다.

물론 여분으로 하나 가지고 있으니 꿈처럼 코걸이가 고장나도

다른 안경으로 쓰면 되긴 하다. 헤드 랜턴을 끼고 찾아 보니

내가 밤새 안경을 깔고 잤으나 다행하게도 이상은 없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빨래들은 비닐 봉지에 싸서 배낭안에 넣고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사무실 숙소 앞에서 배낭을 다시 메다가

그만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아직도 비가 그치지 않은 지라 또 우비를 입고 길을 나섰다.


노란 화살표 방향대로 마을 옆 길로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줄을 지어 가고 있다.

어느 다른 알베르게에서 자고 나온 듯 이제까지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비가 오락 가락 하고 더워지니 몸에 습기가 돌아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까미노 처음부터 감기 조심할려고 작정했었다. 그래서 일부러 조금 덥게 입고

잘 때도 늘 따뜻하게 입고 잤다.


앞서 가던 일행 중 한 외국여자 하나가 내가 전방을 사진찍으려 하니 내 앞에서

이빨을 다 보이고 환하게 웃으며 내 앞을 가로 막는다. 이태리에서 몇 명이 왔단다.

자기 이름이 팔레리아라기에 나는 까르미나라 했다. 까미노에서는 내 한국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주로 외국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내가 인터넷에서 주로 쓰는 내 아이디를

쓰기로 하고 그렇게 내 소개 스탬프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내 아이디가 까르미나라고 하면 대개 뜻을 모르는데 이 곳에서

만나는 외국사람들은 대개 '까르미나'하면 '부라나' 하고 나올 정도로 내가 왜

그 아이디를 택했는지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 팔레리아는 내 미소가 좋다고

자꾸 내게 자기 카메라를 내 밀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습하니 이런 날에는 달팽이나 갯벌의 민챙이같이 생긴

검은 색의 긴 몸통을 가진 민달팽이들이 길가에 누워 있어 밟지 않으려 조심해야 한다.


어제와 지난 밤 비에 아르가 강물이 물어 물 흐르는 소리가 유독 크다.

그러나 한국처럼 소나기는 아니라 다행이다. 어떤 길에서는 비가 많이 오면

길에 비가 넘칠 것 같아 미리 늘 야후날씨 어플로 그 지역의 비 예보를 확인해야 했다.


길은 피레네 산맥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라 때로는 급하게 경사진 길이 있고 바닥에

이끼가 끼어 있어 조심스러웠다. 까미노 길을 걸으며 감기 이외에 제일 조심했던 것이

발이 접질리는 것이었다. 주로 돌길을 걸을 때 발이 한 번 삐끗하면 그 부위 통증으로

계속 그렇게 삐끗하는 경우를 국내 트레킹 중 자주 당해 보았기에 모든 길을 걸을 때

상당히 조심했다.


비가 그치고 걷기 시작한지 5km 정도에서 만나는 이로츠 마을에서

아침 식사를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해결하고 늘 그래야 하듯이

반드시 화장실을 이용했다. 까미노에서는 카페나 숙소 이외에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기회될 때 마다 들러야 한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주위가 웅성 웅성 해 지더니 이태리 친구들과 동행인

팔레리아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그 이후 급격하게 친해졌다.

마을에서 식사 후 길은 차도옆을 가야 하기에 걸을 때 조심해야 했고

지나가는 차들도 역시 우리가 지날 때는 천천히 달렸다.

가능한 까미노는 차도의 바로 옆을 지나는 경우가 없지만 이런 경우는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약 600 미터 정도 지나 다시 벌판길로 들어 섰다. 영어를 전혀 나이 든 이태리 부부가

반갑게 인사한다. 안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 '라 스트라다'가 까미노 아니냐고 물었더니

약간 다르다며 한참 이태리어로 설명하는데 대충 이해하기로는 walk 와 way의 차이를

말하는 것 같다. 이 이태리 부부와도 그 뒤 지속적으로 만났다.


숲길을 지나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 수도원처럼 생겼으나 거의 폐가수준의

건물이 보였다. 앞에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마을길을 따라 진행하니 돌 다리가 있고 강물이 불어 낚시하기에 좋은 듯

낚싯군 한 명이 강 복판에 긴 낚싯줄을 드리운 채 인적이 들렸을텐데도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마을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캠핑할 수 있는 장소가 보였다. 어떤 이들은

알베르게에서 지내지 않고 진짜 순례자처럼 야영을 하기도 했다.


벌판 길을 지나 고속도로 밑의 지하차도로 들어가니 터널 벽에 온갖 그라피티가 잔뜩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앞으로 보이는 모든 지하차도는 그야말로 낙서의 분출구였다.

터널을 지나 다시 약간 오름길을 걸으니 멀리 큰 마을이 보였다. 저 곳이 오늘의

목적지인 팜플로나 일 것이다. 그 언덕길에서 누군가를 추모하는 검은 십자가가

풀 숲에 세워져 있었다.


지나치는 마을에 현대 소형차가 보이고 벤치가 있기에

잠시 앉아서 쉬고 있으니 이태리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 오더니 사진을 같이 찍자고 서로 어깨를 모두 같이 하고 포즈를

취하며 까미노 친구들의 우정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팜플로나가 약 8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부르라데라는 큰 도시를 지나고 곧 오름길에 오르면서 다시 모두 힘들어 했다.

그 언덕을 오르니 왼쪽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고 높은 곳에 지나는 전선줄에

누군가 운동화를 던져 올려 대롱 대롱 매달려 있다.


언덕을 내려오며 태양빛이 무척 밝아 내가 큰 소리로

오! 솔레미오 노래를 부르는 같이 걷던 외국인들이 따라 부른다.

그 때 부터 사람들은 나만 보면 노래를 같이 하자 했다.


이제 팜플로나가 가까와 오는 듯 점점 도시 모습이 커지고

돌이끼 꽃이 가득 핀 다리가 아름다워 서로 사진 찍어주느라 즐거웠다.

막달레나 다리 끝에 작은 성당이 있는데 미사를 드리는 성당은 아닌 것 같고

어떤 기념용 성당같아 보였다.


성당에서 잠시 스탬프를 찍고 나와 깨끗한 팜플로나 거리로 들어서는데 기분이 좋다.

어쩌면 도시가 이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도시 한 켠에 커다란 쓰레기통에 눈이 간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려도 넘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쓰레기통이라

주변에 다른 쓰레기들이 널려진 것이 없다.


2010년에 이 도시에서 여성을 위한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길가 벽에

각 나라말로 '여성'이라는 단어를 써 놓았는데 그 중 한국어로도

'여성'이라는 단어를 보니 반가왔다. 내가 사진 찍는 것을 보더니

같이 걷던 외국인도 자기도 같이 찍자며 내 옆에 선다.


원래 산티아고를 걷는 이들이 부족한 물품을 사거나 병원 등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

늘 큰 도시인 팜플로나에 가면 모든 것이 다 있다고 알려 준다. 대충 눈으로 보기에도

커다란 학교와 병원이 있는 것 같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늘 까미노를 걸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시내의 공공시설들을 모두 현대식 건축물이 아닌 고딕양식으로 지었기에

도시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어떤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벽을 담쟁이 덩쿨로

감싸게 해 신비감을 느끼기도 한다.


갑자기 큰 도시에 오니 길가의 마트에도 들어가고 싶어 커다란 오렌지를 사서

길을 가면서 까먹기도 했다. 길을 걸으며 오늘은 도시에서 잘 수 있구나 생각하며

노란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니 갑자기 지나가던 시민에 내게 Jesus y Maria 라는

알베르게 이름을 말하며 그곳으로 가라고 말해 준다. 그렇지 않아도 그 곳을

목표로 가고 있었기에 계속 이정표만 보고 따라갔다. 로타리를 지나고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다시 한적한 마을을 지나니 눈 앞에 커다란 성벽이 나타났다.

커다란 돌다리를 건너니 그 곳에 알베르게 이름이 적힌 이정표를 발견했다.  


프랑스 문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말라까레기 문을 지나 비스듬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성 안에 또 다른 큰 마을이 있었다. 우선은 대성당 근처에서

알베르게를 찾아 접수하는데 접수하는 사람이 영어를 전혀 못한다.

그러나 이 알베르게 규모가 상당히 크고 깨끗한 편이다.


얼른 빨래를 해서 널고, 오랜만에 버거킹에서 와퍼하나를 맛있게 먹고

시내 산책을 나가니 여기 저기 볼만한 곳이 많았다. 성벽위로 올라가니

멀리 보이는 산들이 참 시원하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 곳에서

전쟁을 가졌던 흔적들이 성벽 아래 그대로 다 보였다.


팜플로나가 유명한 것은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였고 소설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에서 나오는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도시다. 매년 7월에 열리는

이 축제는 동키호테 기질을 가진 스페인 사람들이 일부러 성난 소에게

쫒겨다니며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는 스페인 전통 축제다.


어디엔가 헤밍웨이 흉상이 있다 하는데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포기하고

시청사를 보니 참 아름다웠다. 청사 꼭대기에 몽둥이를 든 사람과

나팔을 든 사람의 동상이 재미있다.


하다못해 거리에 있는 음수대도 그냥 간단히 만들지 않고 멋진 형태의

주조물로 만들어 마치 예술품같이 보인다. 골목 골목에 있는 집들도

주거 목적외에 거리의 미관까지 고려해 건축해서

커다란 성곽이 있고 역사가 깊은 도시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빙빙 돌다보니 커다란 광장에 도달했다. 같이 걷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른 마을처럼 순례자들만 쉬는  곳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이 곳에서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골목에 치킨을 파는 곳이 있던데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은 것 같아 포기했다.


팜플로나가 큰 도시이다 보니 대성당 근처 여기 저기 거리의 악사들이 있어 좋다.

기타를 연주하며 혼자 노래하고, 팀이 구성되어 바이올린 어코디언으로

내가 모르는 노래들을 연주한다. 가까이에서 들으면 동전하나 던져야 하니

조금 멀리서 여유있게 음악을 즐긴다.


까미노를 며칠 다니다 보니 알베르게 내에서나 시내 산책할 때

신을 수 있는 신발이 필요해 한참 고민하다가 무척 가벼운

구멍뚫어진 신발과 빨래를 널 때 옷핀이 많이 필요한데 모자라

더 구입했고, 늘 빵만 먹다 보니 과일이 필요할 것 같아 사과도 샀다.


낮에 종일 같이 걷던 이태리 부부의 남편이 내 옆에서 자게되었는데

나보고 자기 전에 귀를 막고 자라며 손짓으로 알려 주기에 알았다 하고

말았는데 그 다음 날 내게 마구 손을 흔들며 내 코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못 잤단다. 나도 그 사람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친건 모르나?


물집이 생겼다.

지인의 조언대로 떠나기 전에 발바닥에 바세린을 골고루 바르고

늘 물집 생기는 곳에 물집방지 패드를 붙여서 2일 걸어도

물집이 안생기기에 효과 있구나 생각했는데 오른 발 뒷부분 옆에

하나 생기기에 바늘로 물을 빼고 거즈 붕대를 붙여 놓았다.


어제 종일 비가 오고 빨래 말릴 장소도 없어 등산 양말 3 켤레를

이 밤중에 어떻게든 말려야 내일 신을 수 있다. 그러나 걱정된다.


빨래 마르는 곳 옆에 앉아 시간을 보내면서 젊은 시절

논산훈련소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자대 배치 받기 전에

자신의 옷들을 빨래하고 남들이 훔쳐갈까봐 한가하게 빨래 건조대옆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생각났다.    


참으로 단순한 생활이 앞으로 한 달간 지속될 것이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스마트폰도 와이파이로만 접속이 가능하니

걸을 때는 바깥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소식은 단절되고

오로지 걷는 일에만 집중해서 좋다.


특히 오늘같은 넓은 알베르게에서는 와이파이가 된다고는 하는데

도무지 잡히지 않아 저녁에도 외부 세상과 단절되었다.


걷는 것 외에는 그냥 먹고 자는 일 밖에 없다.

나머지는 조용히 벽에 기대어 묵상하고 오늘 지나온 길들을

가슴과 머리에 채우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이다.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