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13일차 (부르고스 - 온타나스)

carmina 2016. 6. 11. 21:08



2016. 5. 1


산티아고 까미노를 보다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조건 중 하나가

영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스페인이라 해도 전 세계에서 모이는 순례자들이다보니

자연적으로 영어는 만인 공용어가 되었고

아무리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제일 먼저 말을 건낼 때는

부엔 까미노 이외에 모두 영어로 우선 상대방을 탐색한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까미노는 언제부터 어디에서 출발했느냐 등등 간단한 질문에

답변이 제대로 나오면 그 때 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어대화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길어지고 서로 길에서나 알베르게에서 대화하는 시간과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물론 영어 아니어도 대화할 수 언어는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이태리어도

있지만 대개 이런 대화는 서로 같은 국민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 예를 들어, 남미 쪽 사람들에게는

스페인어가 편하고 포르투갈이나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은 스페인어와

비슷해 대화가 편한 편이다.


까미노를 걷는 중에는 인텔리도 많아 외국인이라도 대부분 영어를 하는 편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자국어밖에 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는 대체로 대화를 기피하는 편이지만

적극적인 사람은 바디 랭귀지를 통해서라도 서로 대화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내 경우는 영어는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서 대화 정도는 무리없게 하는 편이고

스페인어는 20년전 멕시코 업무를 보면서 간단한 대화나 단어를 읽는 법을

조금은 알고 있다. 스페인어는 영어와 읽는 법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영어권에 있는 사람보다 오히려 한국사람이 스페인어를 읽기 편한 편이다.

그냥 단어에 있는 알파벳을 우리 식대로 읽되 몇 가지 기본 원칙만 알며 된다.

예를 들어

단어에 J가 들어가는 Jesus 경우 J는 발음을 H로 발음하니 '헤수스'가 되고

중간에 J가 들어가도 역시 H로 발음한다.

그러니까 San Juan 은 산 후안이 되고, Najera 는 나헤라로 읽는다.

단어에 H가 들어가는 단어 즉 오늘 내가 걸은 Hontanas 같은 경우는

H가 묵음이 되어 '온타나스'로 발음하고,

Hospitalero 는 오스피탈레로, Hijo (아들)은 이호로 발음한다. 

C의 뒤에 모음이 a, o, u가 있을 때는 까, 꼬, 꾸로 발음되지만

뒤에 i 와 e가 있을 때는 씨, 쎄로 발음한다.

또한 G의 경우도 뒤에 모음이 a, o, u가 있을 때는 가, 고 , 구가 되지만

뒤에 i 와 e가 있을 때는 히, 헤로 발음한다.

LL(엘엘)이 연이어 있는 단어는 영어의 y로 읽는다. 따라서 Mansilla 는 만시야로 읽고

Estella는 에스테야로 읽으며 닭고기를 뜻하는 Pollo 는 '뽀요'로 읽는다.

그리고 영어의 and 는 스페인어로 y 인데 '이' 라고 발음한다.

de 라는 정관사는 '데'라고 읽고

rr이 연이어 있으면 '르' 발음을 혀를 조금 굴려서 읽는다.

그리고 C 발음은 조금 거세게 발음하는 편이다

Camino 를 '카미노'라고 발음하지 않고 '까미노'라고 읽는다.

Alto de Poyo 는 '앨토 데 뽀요' 라기보다는 '알토 데 뽀요'로 읽는 것이 더 스페인어 답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수없이 보는 지명이나 음식이름들을 미리 읽어보는

연습을 하면 길을 물을 때나 Restaurante(레스타우란테)에서 음식을 주문하기 편하다.


부르고스를 나오는 아침은 어제보다 조금 덜 추웠다.

큰 도시만큼이나 도시를 빠져 나오는 것도 거리가 길었다.

너무 어두운 새벽이라 가끔 서서 이정표가 어디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당연하게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직진 표시 후 바로 좌회전하게 되어 있어

개를 데리고 아침 산책하는 이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2시간을 걸어 도시를 벗어 날 때 쯤 누군가 전선줄에 운동화를 던져 올렸다. 이것도

그라피티같이 무슨 유행을 타는가 보다.

나무들은 말라 있었고 아직 신록이 우거질 때가 아닌지 모두 초라해 보였다.

그 아침의 맑은 하늘에 비행운이 초승달이 남아 있는 푸른 창공을 길게 가로 지르고 있고

그 밑에 아추 천천히 이태리인 이지노씨가 걷고 있어 반가움에

뒤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그는 늘 걷기의 원칙이 'Slow and Steady'였다.

천천히 걷지만 멈추지 않는다. 아침을 안먹고 점심도 맥주 한 컵 정도로 끝내니

카페같은 곳에서 쉬지 않았다.


오늘이 벌써 5월 1일. 일요일이라 도심공원도 조용했다.

부르고스에서 그 다음 첫마을까지는 무려 6km나 떨어져 있었다.

한기가 느껴지는 아침에 따뜻한 난로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먹고 나와

부르고스에 까미노를 시작한 노르웨이 부부를 무심코 따라가다가 그만 길을 잃을 뻔 했다.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정표가 없어 내가 정지시키고 잘못된 길이라고 확신하고

우선 멀리 보이는 대성당이 있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아 조금 걸어가니

지나는 운전기사가 길을 알려 주었다.

대체적으로 까미노 루트는 대성당 앞을 통과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어디서든 길을 잃으면 대성당앞으로 가면 십중팔구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멋진 저택이 많은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는데 손이 시렵다.

장갑을 하루빨리 구입해야겠다. 한참 외곽 벌판 길을 걷다가

고속도로가 보이는 곳에 공사중으로 인해 까미노 길이 바뀌었다.

멀리 돌아서 가는데 걸음 빠른 이태리인이 지나가기에 얼른 사진 한 장을

부탁했더니 사진 찍어 주고는 같은 일행을 따라 잡기에 한참 애쓰는 것을

멀리서 바라 보았다.


고속도로 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길을 따르다오스 마을을 지나고

또 긴 벌판을 지나 인적없는 깔자다스 마을에서 초라한 현대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세차 좀 하지'하며 끌끌댔다.


다시 한 줄기 흰 줄이 길게 그어져 있는 대평원을 오전 내내 걸으며

자연과 인간이 만든 초원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 버린다.

그 넓은 초원위에 아주 멀리 나무 한 그루 달랑 세워져 있을 뿐이다.

국내 영화 '편지'에서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최진실이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기고 간 아들 손을 붙잡고

이렇게 벌판에 하나 우뚝 서 있는 나무와 인사를 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넓은 평원에 나무들이 달랑 몇 그루 서 있고 그건 너무 외로워 보였던지

돌무더기 위에 어느 순례자가 등산화와 와인 한 병 그리고 꽃을 꽂아두었다.

낮은 언덕에 오르니 한숨이 나올 정도로 기다란 외줄기 길이

아주 멀리 보이는 오르니요스 마을까지 이어져 있다. 어쨋거나 가야 한다.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다. 그 먼 길을 걷는 의미가 있건 없건 지금은

생각할 필요가 없고 이 길도 내가 모두 선택한 과정일 뿐이다.


오르니요스 마을에 기진맥진하여 카페 앞에서 잠시 쉬는데

갑자기 어느 백인 여자가 배낭을 메고 유모차에 아들을 태운 채

카페 앞으로 다가왔다. 순례자 맞느냐 했더니 그렇다 한다.

어이가 없다. 아이의 볼이 햇볕에 타서 발그스름하다.

국적은 독일, 아이의 이름은 헨리.

너무 경이로운 만남이라 아기에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작은 선물을 주었다.


이어지는 마을 중앙로에서 이번엔 깨끗한 현대 i30 모델을 보아

아까 본 꿀꿀한 기분이 사라졌다.


또 한참을 벌판 길을 걷다가 어느 모퉁이를 돌아가니 남녀 두 순례자가

두 마리의 개가 노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기에 인사를 하니

체코에서 왔단다. 참으로 다양한 순례자들의 모습이다.


언덕 오르고 내려가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다. 다행한 일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조금 높은 언덕에 순례자들이 하나씩 쌓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 꼭대기에 돌 하나 정도 더 올라 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시도했다. 조심 조심 밑에 쌓은 돌무더기가 무너지지 않게

올라가 검은 돌 하나를 올려 놓았다. 성공이다. 그리고 근처 말뚝에

내 스탬프를 꾸욱 찍어 눌렀다. 오래 오래 살아 남기를 바란다.


누군가 철판에 그려진 화살표의 하얀 바탕에 'BELIVE IN YOUR DREAMS."라고

스펠도 틀린 명언을 써 놓았다. 그런 틀린 말이라도 그 말은 틀림이 없다.

나도 나의 꿈을 믿는다. 이 꿈을 위해 무려 5년간을 준비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내 꿈속에 들어 와 있는 것이다.

하늘에 구름이 둥실 떠간다. 결코 구름처럼 그냥 사라질 꿈이 아니다.


산볼에 가까이 와서 갈증도 나고 허기가 져서 부는 바람을 피해

십자가가 세워진 돌무더기 뒷편에서 남은 콜라와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내 모습이 여지없이 힘든 순례자의 모습이다.


오전에 아득하게 멀리 보이던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어느 새 내 옆에 있다.

정말 먼길을 걸어왔다. 거리를 확인해 보니 30KM가 넘었다.


오늘 길은 평탄한 길이가 바이크 순례자가 많았고, 아침부터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한국인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길이 끝이 없는데 오늘의 도착 예정인 온타나스 마을이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작은 언덕 아래에 보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숙소를 잡고 주문한 햄버거가 상당히 맛있었다.

뒤이어 따라 온 한국청년들도 오늘은 배낭을 모두 택배로 보내고

빈 몸으로 도착했다. 한국인 단체 순례자들도 도착하여 내게 아는 척을 한다.

어느 덧 나도 이 곳에서는 유명인사가 된 것 같다.


숙소의 이층 침대는 밑에 침대에 걸터 앉아도 머리가 윗 침대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아 좋았고 나무 침대라 아늑해 보였다.


어쩌다 보니 낮에 카페 앞에서 본 유모차 아줌마가 숙소의 내 자리 옆에

오게 되었다. 알베르게의 뒷 산 풍경이 아주 좋아 내가 3살박이 꼬마

헨리에게 놀러가자고 유혹했더니 그 곳에서 너무 좋아한다.

꼬마에게 그네를 태워 주고 놀이도 하며 한 참을 같이 놀았다.

멀리 보이는 곳에는 곡식창고가 있는 듯 새들이 무리지어 돌고 있었고

구름 한 점없는 하늘에서 따스함이 쏟아져 내려왔다.

저녁에는 혼자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문득 이 마을에서 하루 더 있고 싶어졌다.


부엔 까미노

































    



 


  

맥주 한 잔 마시며 쉬는데 독일 여자 한 명이 유모차에 아들을 태우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외모가 순례자 옷차림이고 유모차는 거의 중무장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