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제 15일차 (보아디요 델 까미노 - 까리온 데 로스 콘센도)

carmina 2016. 6. 12. 18:47



2016. 5. 3


항상 좁은 방에 여러 개 2층 침대가 있는 곳에서

자다보니 모두들 자기 침대 바닥 주변에 널어 놓는데

새벽에 어둠 속에서 짐을 챙겨 가기 위해서는

내 짐의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항상 기억을 해야 한다.


그 중에 안경은 잠 깨자 마자 제일 필요한 것이기에

안경은 아래 침대에서 잘 때는 꼭 누우면 보이는 곳인

이층 침대 매트리스 밑의 철방에 끼워 놓는데 오늘  

눈을 뜨고 화장실을 가려고 안경을 찾다가 문득

늘 내가 꽂아 두는 것에 없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혹시 떨어져 다른 사람이 밟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다행하게도 떨어진 안경은 내 복잡한 짐들 사이에 있어

온전히 그대로 있었다.


화장실에 가니 이태리인 한 명이 나를 웃기기 위해 마치 중국 영화의

강시처럼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내어 뻗고 몽유병자처럼

걷고 있다. 비록 힘들지만 이렇게 아침을 웃으며 시작한다.


맑은 하늘에 조금 남아 있는 달빛에 비치는 주변의 나무들과

건물들이 한 편의 실루엣이다. 초승달이 물위에 떠 있고

요란한 새소리가 새벽을 깨운다.


멋진 까스티야 운하를 따라 걷다가 옆에 보이는 작은 건물안에

노숙을 하는 순례자가 이 곳에서 하루를 지냈는지

다 마신 와인 한 병이 돌 위에 얹어져 있다.  


어둠 속에서 대지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희미하게 비치는

까미노 흔적 뿐이다. 운하에 풍부한 물이 흐른다. 이 물로

이 광대한 밀밭을 경작을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운하는

무려 200km가 넘어 이 근처의 도시들이 풍요로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한다. 밀밭을 지나다가 물을 끌어 오는

작은 수로를 자주 보았다.


한 시간을 넘게 걸으니 앞서 가는 외국 커플을 추월하고

운하 끝에서 프로미스타로 가는 작은 타원형 다리를 건너기 전에

무슨 글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된 책을 석고상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대충 써 있는 스페인어를 읽어 보아도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다리 건너 길이 바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미 다른 여자 순례자가 한 명이 왼편 길로 가고 있기에

따라 가려 멈칫 거리다가 구석에 그려진 작은 이정표는

그 길은 잘못된 길이기에 순간 내 입에서 '오이가' 라는 말이

스페인어가 튀어 나왔다. 여기와서 써 본적이 없는 말인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멕시코에서 사람들이 아무나 부를 때

그렇게 부르는 것이 순식간에 생각났다.

마침 그 여자는 스페인에서 온 여자기에 금방 알아 듣고 되돌아 왔다.

 

도시로 들어가는 길에 늘 그렇듯이 이태리인 이지노씨가 천천히

앞을 가고 있기에 큰 소리로 불러 손을 흔드니 그도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긴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쯤 내가 따라올지 생각해 보았단다.

우린 서로 잘 알고 있는 순례자들이다.


조금 전 만난 스페인 여자 줄리아가 내 옆에서 영어로 한없이 무어라고

하는데 도무지 못 알아 듣겠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맞는지...

프로미스타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 어제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제대로 안 되어 페이스북에 올리지 못한 사진들을

올리다가 문든 벽에 재미있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형태를

그대로 배치한 채 대상을 완전히 영화배우과 가수들로 바꾸어 놓았다.

예수님 자리에 마릴린 몬로가 앉아 있고 양 옆에 클라크 케이블, 엘비스 프레슬리,

제임스 딘과 찰리 채플린 등 눈에 익은 탑스타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제 넘어 온 모스텔라레스 언덕이후로는 드디어 200km의

메세타 대평원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길의 굴곡이 없는

평야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길은 거의 다 레온으로 가는

도로와 평행으로 걷게 되어 있다. 비록 도로 옆을 걷기는 해도

까미노는 조금 떨어져 있어 차량들이 속도를 내어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대평원을 걸을 때는 특별한 건물이 없으니 순례자를 나타내는

조형물이 자주 보였고 길 양옆에 돌기둥을 세워

까미노 표시를 새겨 넣었고 그 외에도 많은 돌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조용한 마을에서 보이는 인적은 모두 순례자들 뿐이고, 도시와 가까워서인지

이제까지 지나치며 보아오던 마을의 집들과는 거리가 먼 밋밋하고 작은 시골형

주택들이다.


레벤가 데 캄포스 마을의 중앙광장에서 한참 쉬며 물도 보충하고 따뜻한

햇볕에 땀에 젖은 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말리고 있으니 뒤따라온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밀밭 한가운데도 돌십자가를 세워 놓은 것은 역사릉 유물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것 같았고 그 주위를 커다란 농기계가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넓은 벌판에 일하는 농기계는 단 한 대 뿐이다. 이 사람들은

언제 일을 하나.


비야르멘테로 마을을 지나다 코카콜라 자판기 옆에 써 있는

산티아고까지 419km라는 표시를 보다가 이제 곧 300km 대로

진입한다고 생각하니 다리에 힘을 얻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전체 거리 중 반 정도에 도달할 것이다.


길을 걷다가 포르투갈의 파르코가 언제 걸어 왔는지 내 옆에서 말을 건다.

긴 긴 시간동안 우린 왜 한국이 이렇게 다른 아시아 국에 비해

경제성장이 빠른지 얘기를 나누었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설명을 해 주었다. 파르코는 다른 이들 하고는 영어가

잘 안 통하는데 나와는 잘 통한다고 나와 대화히기를 즐겼다.

나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지만 파르코도 역시 영어를 미국사람처럼

굴리는 영어발음은 아니어 서로 편했다.


벌판 넘어 아주 먼곳에 있는 북쪽 산에 지금이 5월인데도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그 쪽은 아마 향후 내가 걸어 보고 싶은 까미노 북쪽길일 것이다.

  

길을 걷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파르코는 약국에 들러야 한다며

마을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앉아 쉬었다.

오늘 예정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마을로 이어지는 긴 길을 걷다가

슬로베니아 아내를 둔 이태리인이 내게 왜 이 길을 걷는지 묻는다.


하나 하나 대답해 주었다.

첫째, 나는 크리스챤이기에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걸었던 길을

걷고 싶었고

둘째, 내가 걷기 취미라 이미 책을 내 경험이 있어 까미노에 관심이 많았고

셋째, 까미노는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고

넷째, 내가 이 길을 걸음으로서 내 자녀들의 열심히 살려하는 

아버지의 노력을 본받기 바랬다고 얘기했더니 자신의 목적과

부합되는 것이 몇 개 있다며 좋아한다.


마을 입구에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공립알베르게의 위치를 물으니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가라기에 물어 물어 찾아가는데 나보다 늦게

도착해야 할 한국인 단체 여행객 몇 명이 먼저 마을에서 보이기에 물어보니

걷다가 힘이 들어 중간에 카페에서 택시를 불러 미리 왔다한다.


산타마리아 성당에 무척이나 친절한 수녀님과 호스피탈레로가

접수를 하고 침대까지 안내를 해 주어 여장을 풀고 점심을 위해

밖으로 나왔더니 까미노 출발 때부터 보였던 한국인 부부가

성당 밖의 광장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짐을 택배서비스로 보냈는데 도무지 어디에서 찾아야 될 지 모르겠다며

시스템을 원망하고 있다. 어쩌면 그 들이 영어가 통하지 않아 짐을

잘 못 보냈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매일 매일 똑같은 서비스가 필요하면

영어를 전혀 못한다 했으니 미리 써서 지명과 알베르게 이름만 바꾸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가 보다. 그 이후 그 부부는 더 이상 까미노에서 보지 못했다.

   

마을 여기 저기 거닐다가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마침 주위에

마트가 있어 저녁 파스타 만들어 먹을 재료와 비누를 샀다. 비누는

3개가 한 셋트로 되어 있으나 한 개만 살 수 없어 두개는 내가 갖고

한 개는 알베르게에 기부했더니 무척 고마와 했다.


여기 알베르게는 방명록을 보니 눈에 익은 한글이 많이 보이는데

하나같이 이 알베르게가 친절하다고 써 있어 마음에 들었다.


햇빛 좋고 바람이 좋아 성당 앞 광장에서 쉬고 있는데

수없이 많은 제비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정말 많은 제비들이 마을에 서식하는 것을 보고 참 복받은

나라라고 부러워 했다. 대기의 공기가 나쁘면 살지 못하는 제비가

한국에서 서울은 물론이고 중소도시까지 제비들이 모두 사라져

시골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제비들이 여기에선 제비들이 마치

참새떼들처럼 몰려 다닌다.


내 뒤를 이어 알베르게로 찾아 온 한국청년들이 저녁을 같이

해 먹는다며 내 식사도 같이 만들어 주겠다기에 다음에 내가

저녁 재료비를 제공하겠다 했다.


저녁을 맛있게 만들어 먹고 이 성당의 오랜 전통대로

순례자들을 모두 불러 놓고 수녀님들이 앞에서 기타를 치며

싱어롱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각나라 노래가 적힌 가사를 나누어 주고 목소리가 청아한 수녀님 한 분이

기타를 치며 리드를 했다.

우선 노래를 하기 전에 서로 자기 소개를 돌아가며 했다.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이 자기 소개와 함께 순례의 목적을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인생의 목표를 생각하기 위해서

어떤 이는 가족과 형제들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어떤 이는 오래 전 부터 꿈꾸어 오던 소망이였기에

어떤 이는 자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모두 돌아가며 이야기하고 가사 리스트 중 첫 곡을 다 알것이라고 생각되는

흑인 영가인 Amazing Grace를 부르기에 내가 화음을 넣어 조그맣게 불렀더니

노래 후 내게 노래 좀 해 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기에 기타를 잡고

우리 나라 노래는 아니지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고

어떤 나이 든 미국인은 일어서 '오 대니보이'를 부르는데 손을 떨고 있었다.

호주인 형제인 듯 둘이 중창을 했고, 브라질 여인이 노래를 했다.

이태리인 이지노씨는 Que Sera 를 불렀다

브라질 남자 한 명은 기타를 아주 잘 쳤다. 또 다른 미국인 부부는

크리스챤이라며 미국 스타일의 찬송가를 불렀다.

그리고 노래소리를 듣고 찾아 온 한국인 청년이 스마트폰으로

멜로디를 들으며 요즘 젊은이들이 부르는 CCM 음악을

아주 간절하게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정겨운 시간 후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싶은 사람들은 가고

나는 기타를 빌려 뒷 마당에서 혼자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저녁에 이 성당 알베르게에서는 특이하게 모든 순례자들에게

야간 간식으로 렌틸콩으로 만든 스프와 빵을 제공하고 저녁 시간을 즐기라고

트럼프나 작은 놀이 도구들을 제공해 주었다.


스프를 먹고 이지노씨와 리투아니아 모녀인 도나와 루타 그리고

내가 합세해서 밤늦게까지 와인과 함께 이야기를 즐겼고

이야기가 파할 즈음에 늘 분위기를 즐겁게 해 주는 루타에게

언제 또 다시 만날지 모르니 고마움의 표시로 작은 한국 선물을 주니

눈물을 흘리며 고마와 했다.


전 세계의 순례자들이 모여 별같이 빛나는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