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제 16일차 (카리온 데 로스 코센도 - 테라이요스 데 로스 템프라리오스)

carmina 2016. 6. 12. 19:58


2016. 5. 4


까미노 순례길은 모두 걷기로써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늘 이별과 만남이 존재한다.

비로 서로 모르는 사이였도 같이 다니기로 작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내 경우는 거의 혼자 다녔다.

때론 내 걷기 속도가 다른 사람과 다르면 서로 불편함이 될 수 도 있고

서로 감성이 다르면 관심의 포인트가 달라 이야기가

잘 안이어 질 수 도 있기에 내 경우는

걷기 속도를 내가 조절하고 쉬고 싶은 곳에서 마음대로

쉴 수 있도록 혼자 다니는 것이 편했다.


성당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들이 6시 반 전에 나서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 놓았기에 미리 여장을 준비한 순례자들은 모두

동시에 문을 나섰다.


어제 저녁의 싱어롱 시간 이 후 같이 묵었던 사람들이 모두

내게 친절하게 대했다. 노래를 사람들을 참 즐겁게 만든다.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심을 걷는데 주택가에 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것 같은데 주차 시설은 따로 공용시설이 있는 것인가?

하다 못해 길가 호텔 마당에도 주차된 차들이 별로 없다.


오늘 걷기는 처음부터 각오해야 했다.

다음 마을까지의 거리가 무려 17 km에 달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침에 본 카트를 끌고 다니는 순례자가 다른 알베르게에서 숙박한 듯

나보다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고, 뒤이어 따라 온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마을 중간 쯤 내 주변으로 왔다.

걷다 보니 카트를 끌고 다니는 또 다른 순례자를 보았다.


길은 주변에 작은 나무들이 있는 외줄기 직선의 흙길이다.

내 그림자보다 긴 도로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로타리를 몇 개 지나고 가끔 만나는 고속도로에도 차가 없어 한산했고

사람대신 마을에서 멀리 걸어 온 동네 개 뿐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걷다가 허기를 느껴 길 옆 간이 식탁에서

어제 파스타 해 먹을려고 샀던 토마토 케첩과 오렌지

그리고 까미노 초기에 사 둔 대추 열매로 아침을 대신했다.


날이 훤해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길 끝에 쯤에 날씨가 안좋으면

짐시 쉬었다 가라는 듯 나무로 작은 쉼터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 곳에서 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 여행객의 가이드는 중간에 간이 매점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 벌판에 간이 건물을 세워 만든 곳으로

모두 이끌고 들어가 식사를 했다. 가이드는 이 곳에 가이드 차

자주 오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도무지 풍경이라고는 벌판 밖에 없다.

무려 4시간을 걸어서 칼자디야 데 라 쿠에자 마을을 만났다.

길 가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갈증을 채우고

누군가 흘린 동전하나를 주워 Donation하라고 주인을 주었다.

여기까지 오는 듯 모두 기진맥진 한 듯 카페 앞에 오니

배낭을 집어 던지듯이 내려 놓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다시 또 도로와 평행인 길을 걷는다.

얼마나 이 평원을 걸어야 할까?

평원의 우측의 끝은 어제 보았던 흰 눈 덮인 산맥이 보였다.

걷는 사람들이 심심한 듯 가끔 길 바닥에 돌을 주워

누군가의 이름을 쓰거나 화살표를 표시해 놓았다.


다음 마을의 카페 앞 통나무 의자에 앉아 쉬면서

카페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을 들인

이 곳 마을에서 하루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오늘 가기로 목적한 템프라리오스 마을까지는

멀지 않으니 조금 참기로 했다.

하늘에는 구름한 점 없고 가끔 실바람이 불어 간에 기별을 줄 뿐이다.

만약에 이 길을 걸었다면 아마 소금없이는 걷지 못할 정도로

탈진했을 것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까미노를 걷는 대학생들에게 메세타 대평원은

아마 가장 극복하기 힘든 코스일 것이다.


힘든 길을 걷고 있는데 마주 오는 순례자를 만났다.

산티아고에서 출발하여 생장까지 걷는다 한다.

산티아고 까미노는 제 코스로 걸어본 사람이 아니면

역으로 걷기 힘들 것 같다. 모든 방향표시가 산티아고로만

표시되어 있어 역으로 걸을 때는 화살표를 찾지 못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길은 바이크 순례자들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도무지 거칠 것이 없는 직진길이라 조심할 것도 없었다.

그저 주욱 뻗은 길을 내 달리기만 하면 된다.


마을 가운데 쯤 있는 숙소를 찾아 들어가니

알베르게 접수하는 주인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아마 한국인들이 많으니 꼭 필요한 한국 단어들은 배워 놓은 것 같다.

접수증에 개인 서명하는 칸이 있어 Firma? 하고 물었더니

한국말로 Firma을 뭐라고 하는지 알려 달란다.

서명이라는 단여는 있지만 사인이 더 보편적이라 해도

굳이 서명이라는 말을 되출이하며 외우는 것 같았다.

직업 정신을 제대로 가진 사람이다.


여기 알베르게는 주방이 없어 식사를 사먹어야만 했다.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시켰더니 참 먹음직하게 만들어 주었다.


긴 긴 길을 걸어 온 한국 단체와 청년들 그리고 루타 모녀를 비롯한 순례자들이

이 곳 알베르게에서 여장을 풀고 정원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나도 의자에 앉아 하루의 여정을 기억하며 메모하며 쉬고 있는데

어제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내가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외국인이 어디선가 기타를 가져 오며 나보고 노래를 불러 달라 한다.


나무 아래에서 기타를 치며 한국 포크송들을 연이어 조그마한

소리로 부르다가 손가락이 아파 잠시 기타를 내려 놓으니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난 미국인 크리스챤 남자가 기타를 이어 받았다.


그런데 이 미국인의 기타 솜씨가 참 좋다.

기타 코드를 일반 3화음 코드가 아니고 노래의 모든 부분에 맞는

온갖 어려운 코드를 찾아 노래를 할려고 애를 쓴다.


문득 내가 참 좋아하는 존덴버의 My Sweet Lady의 전주 부분을

시작하며 노래 부르기에 내가 따라 불렀다. 둘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정원에서 편하게 쉬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며

더 불러 주기를 원했다.


나이가 나와 동갑인 그는 미국 교회에서 방송음향 담당을 하고 있다고 하여

찬송가를 같이 부르자고 했다. 어차피 찬송가는 미국이나 한국이 같은 것이

많으니 그 때부터 서로 즐겨 부르는 찬송가들을 찾아 둘이 화음을 맞추어 가며

불렀다. 그와 나는 오랜동안 마주 앉아 그는 영어로 찬양하고

나는 한국어로 찬양 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