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22일차 (폰세라돈 - 폰페라다)

carmina 2016. 6. 13. 21:52


2016. 5. 10


어른들도 힘든 일에 3살박이 아들이 얼마나 힘들까?

비록 많이 걷지는 않아도 헨리가 정말 힘든 듯

밤새 칭얼거렸다. 엄마는 어떻게든 같은 방에서

잠자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줄려고 아이를 달래고 있는

모습이 참 안스러워 보였다.

아침에 헨리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나

모두 괜찮다며 마음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로 이런 여행을 떠나 온 이유는 금기사항같아서

물어 보지 않았지만 헨리는 낮에는 늘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살짝 밖을 보니 안개가 너무 짙어 출발 시간을 늦추었다.

안개가 없다면 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가히 장관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산티아고의 아름다움은 피레네 산맥을 오를 때의 풍경으로 만족해야 하나 보다.


문을 나서니 몇 걸음 가지 않아 또 빗방울이 떨어진다.

다행하게도 신발이 보송보송하게 말라 발걸음은 가벼웠다.

걸으며 주위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아마 구름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이고 나는 비구름 속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길은 비가 와 걷기가 불편하였지만 그래도 길이 넓어

물웅덩이가 있어도 피할수 있고 걷지 못할 형편을 아니었기에 그대로 진행했다.

 

안개가 짙어질 수록 빗방울이 거세어졌다.'

같은 방의 튼튼해 보이는 미국인이 어제 폰세바돈 올라 올 때도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가더니 오늘도 역시 내 뒤를 따라와 앞질러 갔다.

그 뒤로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속에 희미한 건물들, 바닥에 누군가 돌멩이로 만들어 놓은 이름,

길가의 낙서들 몇 개만 보일 뿐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그 곳에서 까미노의 상징인 철십자가가 있는 크루즈 데 페로는 멀지 않았다.

까미노의 대표적인 탑이 지금 안개에 가려 그 위용을 잃어 버렸다.

수없이 많은 사연을 볼 수 있는 기회인데 철십자가 기둥까지 올라가는 것도

미끄러워 불편해 보이기에 멀리서만 사진만 찍고 말았다.

철 십자가 주변은 많은 물건들은   아마 사람들이 놓고 간 것들이

지금 비에 젖어 너저분하게 있었는데 무척 보기 안좋은 상태다.


철십자가 정상에서 언덕 아래로 내려오니 주변에 폐허된 건물들의 즐비하다.

철십자가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올텐데 이 곳에서 머무는 순례자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곳 어디에 사람이 살고 있는 듯 승용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다.

마치 전쟁에 폭격을 당해 폐허된 건물같은 골목길 까미노 끝에 정리되어 있지 않은

엉성한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만하린이다.

나무로 얼기 설기 만들어 놓은 카페 안에 들어갔더니 장사는 하는 듯 보온병이나

취사도구는 있지만 정리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이런 곳에서 식사가 가능한지 궁금했다.

그런 취사 도구도 모두 깨끗하지 못한 헝겊으로 덮여 있다.

카페 입구에는 이 곳을 기점으로 주요 목적지나 도시까지의 거리가

엉성하게 페인트로 써 있고 산티아고 222 km, 예루살렘 5,000km,

뮌헨 2,470km, 로마 2,475km 등 맞는지 모르지만 이 자리가 중요한 자리임을 표시했다.

인적은 없는데 카페 옆 언덕에 개 한마리가 묶여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시간이 되면 나와서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도심에 원자폭탄 맞은 것 같은 만하린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모두 지붕이 날라가고

벽체도 겨우 일부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얼마의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될까?


그곳을 내려오니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눈 앞의 초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구릉이 진 계곡 밑 넓은 풀밭에서 말들은 한가하게 아침식사를 즐기고 멀리

산 머리에는 이제 조금씩 물러가는 안개와 비구름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숲길을 한참 걸어 큰 도로에 나오니 반가운 간이 카페가 있어

커피와 포장된 빵으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아스팔트 길로

순례자 한 명이 올라왔다. 아마 그도 숲길을 포기하고 차도로 올라 온 것 같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경찰차가 언덕 위로 올라오더니 카페 앞에 세우니

주인이 경찰에게 가서 한참 무엇인가를 말하더니 경찰차를 타고 가버렸다.


아마 폰세라돈이 있는 산의 반대편과 이쪽의 기후가 완전히 다른 것 같았다.

그렇게 안좋았던 날씨가 산을 넘어 오니 맑게 개이고 전방에 바라보는

산 정상에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촘촘히 서 있는 것이 자세히 보였다.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 오다가 길이 불편해 오른 쪽 도로 옆으로 가는데

아래에서 경찰차가 올라오면서 손짓으로 나보고 왼쪽으로 걸으라 한다.

하긴 까미노 길은 왼쪽으로 걷는 것이 맞다. 특히 이런 차도를 지나갈 때는

반드시 차가 오는 방향으로 걸어야 차도 사람도 조심할 수 있다.


그 쾌적한 길의 도로 아래에서 누워서 타는 자전거인 리컴번트바이크를 탄

두 명의 남녀가 경사길을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파이팅을 외쳤다.  


경치가 환상이다. 그토록 나를 감싸고 비를 뿌렸던 구름들은 저편 산위로 물러가고

눈 앞에 보이는 낮은 산에는 내가 가야 할 길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훤해 보인다.

비록 아주 멀리 보이는 산은 흰 눈에 덮이어 있지만 이제 거긴 남의 일이다.

 

그렇게 차도로 내려가던 길이 옆의 편안한 흙길로 내려가게 되어 있어

경사도 급하지 않아 기분좋은 발걸음으로 내려가고 엘 아세보 마을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아침 산행의 어려움과 긴 경사길을 내려오는 피곤함을 달랬다.

모두의 피곤함과 쉬고 싶은 심정이 같은지 불과 몇 분 안 되어 카페가 순례자들로 가득 찼다.

이제 산을 완전히 넘어 왔으니 비는 더 이상 없는 것인가?


언덕 아래로 이어지는 곳에 인적은 없는 마을에 저전거의 틀만을

세워 놓은 작품이 있다. 미리 책에서 본 작품인데 어느 사이클 선수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 이후부턴 좁은 계곡길이 있었다. 그 길도 어렵지 않게 내려가는데

문득 저 앞에 어제 내 옆에서 잠을 잤던 헨리가 엄마와 같이 길을 조심 조심

내려가고 있다. 왜 여기로 내려왔을까? 이제까지 걸어 온 길이 평탄해서

몰리나세카까지 그런 길이 이어질 줄 알고 내려 온 것 같다.

계곡의 중간 중간 물이 흐르는 곳이나 바위가 울퉁불퉁해서 헨리가 유모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헨리를 내가 안고 건너고 엄마는

유모차만 몰고 갔다. 그러다가 어느 때 부터인가 헨리가 내가 안고 가는 것을

즐겨 하기에 가능한 유모차에 헨리를 태우고 가지 못할 길들은 내가 도와 주었지만

어느 곳에서는 유모차마저 끌고 가기 힘든 바위 언덕도 있어 쩔쩔 매고 있었다.

물론 유모차에 끈을 달아 허리에 묶고 있기에 놓칠 염려는 없지만 매우 고생하고 있었다.

결국 한참 내려와서 계곡 밑에 자전거도로가 보이니 헨리는 그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어떻게 헨리가 나보다 빨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그녀가 유모차를 끌고 평지를 걸어가는 것을 보니 걷는 속도가 부척 빨랐다.

그래서 넌즈시 혹시 직업이 스포츠 선수냐 했더니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애기가 있어도 힘에 자신이 있으니까 데리고 온 것 같다.

그리고 이 들 일행을 처음 만났을 때가 한참 전인데 열악한 조건에도

내가 걷는 속도와 비슷할 정도로 따라 온것을 보면

그간 얼마나 열심히 걸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나는 계곡으로 내려가고 헨리는 자전거도로로 오다가 마을입구에서 만났다.

그러더니 나와 헨리가 같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기에 포즈를 취해 주었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니 배가 고팠다. 다리를 건너 적당한 레스토랑에서

먹은 햄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나는 스페인 보카디요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했다.

몰리나세카는 도시가 깨끗했다. 알베르게도 외관성으로는 훌륭해 보였고 정원의 시설도

좋아 보였다. 그 도시 끝에 도로가 갈라지는 곳에 특이한 기념비가 있는데

2009년 일본 스페인이 까미노 우호 기념으로 세웠다.


남의 문물을 잘 받아 들이는 일본은 이렇게 산티아고 까미노와도 자매결연을 맺어

내가 알기론 일본에도 까미노와 비슷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고 들었다. 일본은

한국의 제주 올레길과도 자매결연을 맺어 큐슈지역에는 올레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있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이 곳부터는 큰 도로의 도보를 따라 오래 걷는데 길가의 집들이 깨끗해서

비록 비개인 오후의 뜨거운 태양에 덥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쾌적하게 걸은 편이다. 무릎에 통증이 있었는데 그것도 잊고 걸었다.


폰페라다에 가기 전에 있는 캄포마을에는 아무도 없는 유령도시 같았다.

길을 걷는 것은 순례자들 뿐이고 집들 사이 골목엔 이끼가 가득 끼었다.

평탄한 벌판 옆의 목장에서는 양떼들이 평화스럽게 풀을 뜯고

저 멀리 그름 밑에 산에는 흰 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멋진 풍경을

스마트폰으로 바라보니 한 장의 외국 엽서같다.


길에 누군가 100m마다 표시를 해 놓았기에 내 걸음 속도를 측정했더니

100m를 평균 65초에 걷고 있다. 혼자 다니니 이런 것도 재미다.


폰페라다에 도착했다. 알베르게 표시를 멋있게 해 놓은 곳을

찾아 가니 고급 알베르게인지 접수창구의 아가씨가 까만 정장을 입고 있다.

2인용 실에 들어가면 12유로란다. 그래야 한화로 15,000원 정도 밖에 안되는 돈인데

나는 일부러 이런 사설 알베르게 보다는 공립알베르게나 저렴한 곳을 원하기에

길을 물어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 찾아 들어갔더니

그 곳에 헨리가족이 미리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눈에 익은 사람들이 많았다.

빨래를 하고 로비에 나와 있는데 이제는 전혀 못 볼 줄 알았던

팔레리나 일행이 불쑥 들어왔다. 우리들은 남자고 여자고 서로 껴안고

무척 반가와 했다. 내가 레온 전에 많이 걸어 이젠 못볼 줄 알았다며 

섭섭했다 했더니 자기들도 내 소식을 듣고 일부러 빨리 걸어 왔단다.


저녁 먹거리로 마트에서 소세지와 방울토마토를 사 왔는데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던 헨리엄마가 내 식사도 준비하고 있으니

헨리와 같이 먹자고 하며 내 재료와 함께 저녁을 만들며 오늘의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울러 계란도 쪄서 내 것도 챙기며 내일 가다가 먹으라고 싸 주었다.


비록 오늘 새벽에 떠날 때는 안개 낀 산을 오르느라 힘들었지만

험한 산을 넘어오니 종일 흐뭇하고 좋은 일만 생긴 하루였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