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24일차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 - 라 라구나)

carmina 2016. 6. 14. 13:04



2016. 5. 12


또 비가 온다.

어제 오후 내내 날씨가 좋아 참 즐거운 까미노였는데

그 비구름이 힘들게 폰세라돈 산을 넘어 폰페라도를 지나

여기까지 따라 왔는지 이제 이 곳에도 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 새벽길이 더 어두울 것 같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어제 마을을 산책하며 봐 둔 길로 가는데 어떤 순례자는 다른 길로 간다.

어느 길이 맞는건가. 조금 가다가 마을을 벗어날 때 쯤 그를 다시 만났다.

그러고 보니 까미노에 있는 마을들은 어느 골목이나 마을을 벗어나는

이정표가 그려져 있음을 알았다.


다리를 건너가는데 비가 와 강물이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강가 언덕에는 고급 연립 주택들이 줄을 이어 있었다.

마을을 빠져 나오니 왼쪽에는 계곡 그리고 앞에는 국도와

높은 고가에 고속도로가 있었다.


국도와 까미노길이 콘크리트 벽으로 분리가 되어 있어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높은 곳의 고속도로에 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며 내는 천둥치는 소리같이 끝없이 들렸다.

세멘트 길이 한없이 지속된다.

문득 앞서가는 여자 순례자가 우비 아래로도 치마가 보일 정도로 긴치마를 입고 있어

수녀님일 것 같아 길을 가면서 인사만 건네니 그녀도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기에

얼른 그 옆을 지나쳤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비록 세멘트 길이라도 어느 곳에서는 빗물이 넘쳐 고여서

어쩔 수 없이 옆에 숲을 가로막은 철망을 잡고 넘어서야 걸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만약 상황이 계속 이렇다면 오늘 높은 산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까지 걷는 것은 내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이 곳은 삼림자원이 풍부한지 길가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베어져

길 옆에 쌓여 있고 어느 곳에선 비가와 작업을 하는 목재소가 있었다.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을 지나 평화로운 루이테란 마을 위로는

산을 아래 위로 뚫고 고속도로가 지나갔다.  


까미노 초반에 오른쪽 발바닥이 아프던 증상은 사라지고

후반으로 갈수록 오른쪽 무릎이 아침에 걸을 때 아파 조금 절룩걸렸는데

조금 걷다보면 그 통증을 잊고 걸을 수 있었다.

청년시절부터 왼발보다 오른쪽 발이 늘 부실했다.

군시절 태권도를 배울 때도 왼발은 잘 올라갔는데 오른발은 늘 불편했다.


페레헤 마을에서 이어지는 마을로 나가기 위해서는 늘 국도를 횡단해야 해서

조심스러웠다. 이 코스는 마을이 1 ~ 2 km 간격으로 자주 있어 한 코스에

마을이 무려 10개 정도나 있다. 

마을은 늘 국도의 오른 편에 있고 까미노는 왼편을 걸어야 하기에

마을로 가기 위해 늘 국도를 횡단하고 다시 까미노로 오기 위해 다시 국도를 건너야 했다.

차라리 마을로 들어갈 필요가 없으면 그냥 계속 직진하는 편이 나을 뻔 했다.

그러나 차량 통행이 별로 없어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았다.

비가 많이 오니 쉴 곳은 남의 집 추녀 밑이거나 고가 도로 아래 뿐이었다.


라스 에레리아스 마을 입구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두리번 거리는데

일본인 아가씨가 어느 식당에서 나오기에 여기 음식 맛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

들어가 다른 날처럼 햄버거를 시켰는데 무척 컸다. 너무 커서 반은 잘라 먹고

반은 싸달라 했다.


햄버거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식당에 팔레리아 일행이 우비를 쓰고 들어왔다.

우리들은 서로 반갑다고 다시 얼싸 안았다. 그러면서 오늘 목적지인

오 세브레이로가 시설이 않좋으니 바로 그 전의 마을에서 쉴 예정이라 하기에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종업원에게 계산서를 달라 했더니 청구액이 무려 14유로.

내가 이제껏 매일 햄버거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햄버거는 없다고 투정했더니

내가 미리 가격을 묻지 않기에 자신들의 메뉴대로 가져다 줄 뿐이었다기에

내가 잘못했다며 그냥 나왔다.

하긴 여기 햄버거가 너무 커서 반은 저녁 식사로 대신할 수 있었다.


오 세브레이로는 거의 1,400m 고지에 있는 마을이다. 아마 이 높이가

까미노의 후반에 가장 높은 산일 것이다.


작은 마을을 지나 이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긴장된다.

비구름에 가려 아득하게 보이는 산까지 내가 올라 갈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쉬어야 할까? 얼마나 힘이 들까?


초입에서 길이 두갈래로 갈라졌다. 왼편길은 까미노 숲길, 오른편은

바이크 순례자 및 차도. 오른편길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비가 오니

빗물이 산에서 흘러내려 숲길이 지난 번 폰세라돈 올라 갈 때 처럼 

걷기 어려울 정도의 상태일 것 같았다.


스틱을 꺼내 들고 고개를 숙이고 아주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아무리 봐도 차도를 걷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다.

힘들지만 길의 상태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오로지 걷기만 집중할 수 있다.

그렇게 천천히 걷는데도 앞서 가는 커플을 추월했다. 그들은 나보다

천천히 올라갔다. 나도 더 천천히 걸어 올라가자.


산티아고 까미노는 아무리 산이 높아도 한국의 산처럼 험한 바위길을

올라가지는 않는다. 모든 길은 어떤 장애자가 걸어도 남의 도움없이

충분히 올라 갈 수 있을 만큼 길이 잘 되어 있다.  


큰 계곡 건너편 위의 있는 마을은 무슨 마을인데 저렇게 좋을까?

굽이쳐 흰 띠 두른 도로의 끝 까마득한 정상에 마을이 하나 보인다.

저 곳이 오 세브레이로인가 아니면 라구나인가?

그런데 이상하게 이 곳으로 올라오는 바이크 순례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자주 보이던 그 들이 다 어디로 갔나?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부터 이제까지 바이크 순례자를 보지 못한 것 같다. 다른 길이 있나?


드디어 1,200m 고지에 있는 라구나에 도착했다.

온 몸에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 곳은 알베르게가 하나 뿐이며 레스토랑을 같이 하고 있다.

종업원이 내게 우비를 받아서 레스토랑 건너편 창고에 널어 놓는다.


8명이 잘 수 있는 방을 배정받으니 방문을 여는데

이미 여장을 푼 다른 순례자에게서 비냄새 땀냄새가 가득하다.

적어도 까미노에선 이 것이 순례자들의 냄새다.

같은 방에 있는 외국인들의 짐을 보니 모두 짐을 다음 코스로

보내는 순례자들 같다. 오늘 걸으며 다른 날보다 더 자주 보이던 택시와

택배차들이 모두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많아진 것 같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하는 요금이 다른 곳보다 배나 비싸고

레스토랑도 하나 밖에 없으니 정식 메뉴를 시키지 않고 간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붐비는 홀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앉아야 했다.

종업원들은 얼굴에 미소도 없이 갈테면 가라는  고자세였다.

 

빨래 너는 곳은 야외 밖에 없어 배낭에 챙겨 둔 끈으로

처마 밑에 널어 놓았더니 누군가 다른 사람도 이용했다.

샤워하고 내려가니 이태리 일행들이 있어 이따 저녁에

와인 같이 하자 했더니 좋다기에 저녁을 기다렸는데 그 들은

다른 일행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기에 그냥 없던 것으로 했다.


오늘 길은 참 단순했다. 도로를 따라 걷고, 산위를 오른 것 뿐.

세상 사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모든 날이 무지개 빛이 아니듯

이렇게 단순한 삶을 사는 날도 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