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부엔 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21일차 (아스토르가 - 폰세바돈)

carmina 2016. 6. 13. 18:02



2016. 5. 9


아스토르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시라

이 곳에서 하루 더 묵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걷기 위한 순례자라 그런 욕심은 버렸다.

이미 까미노를 걸은 친구들이 중간 레온쯤에서 하루 쉬었다 가라고 했지만

그다지 하루 휴식을 필요로 할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을 듯 했다.


거리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이 곳이 프랑스길 뿐만이 아니라 세비야에서 출발하는

은의 길과 만나는 지점임을 깨달았다.

은의 길은 Via de la Plata 라 하는데 스페인의 남부 도시 세비야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올라와 자모라를 거쳐 이 곳 아스토르가에서 합류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약 1,000km의 까미노이다.


어둠 속 도시를 빠져 나오면 가우디의 작품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는 얼마 멀리 않은 곳에 카톨릭 성당같지 않은 십자가가 달린

건물이 있어 혹시 교회가 아닐까 생각되었지만 그럴리 없을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에 눈에 익은 단어가 적힌 팻말이 들어왔다.

찬양 '평화의 기도'가사로 유명한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의 거주지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지만 나는 이 곳에서 혹시 들어 가 볼 수 있을까 하고

한참 기웃거렸다. 그러나 인적없는 곳에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갈 수가 없어

건물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길 한켠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듯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의 바퀴를 세멘트로 고정시키고 옆에 나무에

꽃으로 장식한 것을 보고 만약 한국에도 이런 것이 허가된다면

수없이 많은 곳에 이런 식으로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를 만들 것 같아

안타까움보다는 헛 웃음이 나왔다.

 

비가 안 오는가 싶더니 들판길을 걸을 때 다시 빗방울이 떨어졌다.

서둘러 우비를 쓰고 걸으려 하니 오스트리아에서 온 할머니가

나를 멈춰 세우더니 배낭이 젖지 않도록 우비를 덮어 주었다.


어제의 경험이 있어 이제부터 비가 오면 걷기 힘든 길은

아스팔트 길로 걷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간이면 늘 일출을 보고 걸었는데

언제 일출을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길가 이정표위에 등산화가 하나 올려져 있다. 이런 것들은

그냥 사라질 때 까지 그냥 두는 것인지 아니면

누가 오래되면 치우는것인지 궁금하다.

첫번 마을에서 커피 한 잔과 크로와상을 시켰더니 

커피는 특별히 그란데로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많이 주고

크로와상도 반을 잘라 따뜻하게 그릴로 데워 주었다.

아마 비를 맞고 온 순례자들이 따뜻한 것을 원하니 그런 것인가?


끝이 안보이던 대평원길은 엘 간소에서 끝이 났다.

길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길을 걸으면서 문득 최근 걸은 길들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개 마을의 밭이 있는 공간이나 집이 있는 곳의 담을

우리나라 제주도 처럼 돌담장을 쌓아 놓았다.

특별히 돌이 많이 나오는 곳이 있는지 확인은 안되지만

제주도 올레길을 걸을 때의 기분과 느낌이 비슷했다.


그리고 또한 이 쪽 지방에 오는 까미노 이정표에

꼭 무지개 그림이 같이 들어갔다. 무슨 뜻일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멀지 않으니 희망을 가지라는 뜻일까?


어떤 이정표는 가리비를 표현하게 위해 돌을 어떻게 깎아냈는지 모르지만

돌을 붙인 것 같지는 않은데 돌출된 가리비가 내 손가락 같았다.


비가 오락 가락 한다.

비가 주춤하는가 싶어 우비를 벗어 배낭에 끼워 놓고 가다가

다시 비가 내려 입었는데 마을 골목에서 어느 나이 든 분이

자기는 까미노 MOM이라며 내 우비를 정돈해 준다.

내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친근감이 있는건지 허술해 보이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내게 쉽게 다가온다.


깨끗한 마을을 통과할 때 쯤 길가에 선물가게인 듯

대문에 밝은 코발트 블루색을 칠하고 대문에 가리비와

표주박 그리고 직접 깎은 듯한 나무 지팡이들이 세워져 있다.

문득 이 사진을 책이든 블로그이든 배경으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엘 간소마을에서 조금 요란한 카페를 보았다. 이름하여 카우보이 바.

그 안에 들어가니 마치 서부의 세계에 온 것처럼   요란하다.

그 안에 어제 밤 알베르게에서 만난 순례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아마 그런 모습이 그 들의 취향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서부의 사나이가 문을 박차고 들어 오며 권총을 겨눌 것 같았다.

허름한 마을로 보이는데도 마트가 있었고, 집집마다 까미노 표시가 있었다.

까미노가 없었다면 이 마을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길을 걷다가 처음 보는 일본아가씨를 만나 인사했더니 고개를 돌린다.

또 다른 일본 남자를 만났는데 다리가 불편한지 절룩거린다.

조금 전 일본 여자에게 당한 수모가 생각나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반한 감정인가?


길가의 나무들의 수종이 바뀐 것 같아.

이제까지 나무들은 어디에도 조림이 잘 된 나무였는데

이젠 길가 숲속의 나무들이 이끼가 많이 끼어 있고

특별히 건강해 보이는 나무도 없다.

또 어느 곳은 큰 소나무가 불규칙적으로 자라고 있었다.

길가에 개인 사유림인듯 철망을 쳐 놓은 곳에

초기 까미노에 도로 옆 철조망에 나무가지를 꺽어 십자가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이 곳도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수없이 많은 십자가들이 철조망에 걸려 있다.

라바날을 지나면서 부터 빗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다행하게도 미끄러운 길이 아니라 불편함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발이 삐끗할까봐 무척 조심했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빗방울이 굵어진다.

낮은 산에도 구름이 걸려 있을 정도로 비가 가까운 곳에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소나기가 오기 시작했다.


이정표를 따라 숲속 길로 올라가는데

많은 오솔길이 산에서 흘러내린 빗물로 물웅덩이가 되어

그 곳을 피하느라 오솔길 위의 언덕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언덕조차 미끄러우니 더 언덕으로 우회하고 또 우회하고..

이런 길이 계속될 뿐만 아니라 숲이 우거진 길은

숲이 빗물을 머금고 있어서 거의 늪을 걸어가는 수준이었다.

힘이 든다. 때론 도무지 물 웅덩이를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한참을 서서 앞을 바라봐야만 했다.

멀리 전방에 보이는 길도 사정은 똑같아 보였다.

나를 추월해서 간 사람들은 어디까지 갔는지 모르지만

이대로 가면 춥고 지쳐서 더 이상 못갈 것 같다.

마침 그 때 옆에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했다.

이 곳 까미노에서 사망한 사람의 표식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숲속길을 포기하고 도로로 내려왔다.

내려와 보니 이미 다른 순례자들은 아스팔트 도로를 걷고 있었다.

비록 비는 많이 오고 있지만 걷기 편하니 조금 나은 편이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 약 1,400m 높이의 폰세바돈에 도착했으나

이 곳 마을은 다른 시설이 없고 오로지 알베르게 뿐이다.

첫번 눈에 보이는 알베르게에 들어갔는데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아

건너편 조그마한 알베르게 들어 갔더니 접수대 뒤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가 있어 무조건 이 곳을 선택했다.

서둘러 접수를 마치고 바로 난로 옆으로 가서 몸을 녹이며

등산화에 신문지를 구겨 넣어 말려야 했다


이곳 폰세바돈은 레스토랑도 찾기 힘들었다. 비가 오니

나가기도 싫어 간단하게 알베르게에서 파는 샌드위치와 콜라로 대신하고

샤워하러 갔는데 이제껏 다녔던 모든 알베르게보다 샤워장이 커서 좋았다.

또한 대개의 알베르게 샤워장은 버튼을 누르면 조금 나오다 꺼지고

또 버튼을 지속적으로 눌러야 나오는데 이 곳은 밸브를 한 번 돌리면 물이 계속나오니

얼마나 편한지 마치 집에 온 것 같았다.

한참 오랜만에 샤워의 즐거움을 누리고 그 물에 빨래까지 해 버리니 기분이 좋아

방으로 돌아오니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헨리 엄마가 그 곳에 들어 와 있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헨리의 얼굴은 상처가 많았지만 나를 보자마자

아는 얼굴이라는 듯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더니 반갑게 내 품에 안겼다.


이 곳 폰세바돈은 고지대라 전망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산 밑은 구름 안개가 약간 끼어 그다지 멋진 풍경을 못본 것이 안타깝다.

내 이후로 알베르게에 도착한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지

모두 기진맥진하여 초주검 상태였다.


저녁에 식사할 곳은 알베르게 해주는 저녁 셋트메뉴밖에 없어 미리 주문해 놓았는데

투숙한 순례자 중에 독일 청년이 기타를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저녁을 기다리며 그 청년이 기타를 연주하는데 그다지 잘 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한 두 곡 독일 팝송인 듯 잘 연주하는 곡이 있었다. 

그 청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허락을 받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니

눈이 동그래지며 반가워한다.


저녁 식사는 이태리인 독일인 미국인 영국인 그리고 캐나다인 등이 합세했다.

메뉴는 평범했는데 와인이 무제한 제공되었다.

저녁을 먹고 우린 청년의 기타 반주로 노래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전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미국 팝송들을 끊임없이 부르니

여흥의 시간이 길어지고 와인을 자꾸 더 청하니 주인이 눈치를 주었다


그날 낮은 모두 고생했지만 밤에는 모두 행복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