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77) 끝이 없는 길 (노래 박인희)

carmina 2016. 7. 29. 17:08



끝이 없는 길 (박건호 작사 이현섭 작곡 박인희 노래)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위에 어리는 얼굴
그 모습 보려고 가까이 가면
나를 두고 저만큼 또 멀어지네
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가는 길

잊혀진 얼굴이 되살아나는
저만큼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바람이 불어와 볼에 스치면
다시한번 그 시절로 가고싶어라
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가는 길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 길을 가을에 걸어 보고 싶었다.

끝이 없는 길의 노래가 어울릴려면 가로수의 잎이 떨어져야 하는데

내가 걸었던 끝이 없는 길은 봄이라 나뭇잎만 무성할 뿐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걸었던 길 중에 지평선을 볼 수 있던 곳이 있었던가?

지평선이 있는 곳은 외국에서 가보았지만 모두 차로 다녀 본 기억은 있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까기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 국내에서 다니면 결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는 산티아고 까미노다.


끝이 없는 길을 걸었다.

그것도 하루가 아니고 한달을...

매일 새벽에 배낭을 메고 나오면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는 더욱이 보이지 않았고 해가 벌건 한 낮에도

눈 앞에 보이는 시야에 집이나 마을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없이 펼쳐진 밀밭과 포도밭과 유채꽃 밭.

색이 참 단순하다. 녹색, 노란색 그리고 갈색 뿐.

어느 지점이 끝인지도 모르는 끝없는 길.

끝이라고 생각되는 지점까지 걸어가도 역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언덕이라면, 산이라면 그 정상임을 알텐데...

평원은 끝이 어디인지 알 수도 없었다.


메세타 평원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 중 중간지점부터 시작되는 200km의 평원이다.

사람의 시력으로 평원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최대 거리는 얼마나 될까?

5km? 10km?

아니, 어느 정도 되어야 지구의 둥근선이 구부러지나?

걸으면서 고민을 한다.

저 끝까지 갔는데도 마을이 없으면 어떡하지?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한데 그 길은 끝이 없다.  

특히 하루 온 종일 뙤약볕 아래를 걸어 더 이상 걷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될 때

눈 앞에 지평선만 보이면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세상 사는 것이 이렇게 막막하다면 어떨까?

끝도 없이 고생만 하며 희망없이 사는 날들만 있어도 쓰러지지 않을까?

사랑하고픈 사람이 끝없이 먼곳에 있어

아무리 다가가도 점점 더 멀어진다면 포기하고 싶을까?


끝이 없는 길에 낙심하고 육신이 견디지 못해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해

길가에 영혼만 십자가에 담아둔 표식들을 많이 본다.

조금만 더 견디어 마을까지만 갔으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끝없는 길의 끝에는 늘 작은 마을이 숨어 있었다.

어느 순간 길 끝에 언덕 아래 내려가면 작은 마을이 있었고

긴 커브를 돌아가면 어느 순간 신기루같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마을이 있었다.

그 때부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희망은 절대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단지 거리상으로 시간상으로 조금 늦을 뿐이다.


끝이 없는 길을 걷느라 그토록 힘이 들었건만

난 아직도 그 길을 다시 가고 싶다.

어느 해 가을에 포도밭에 포도가 영글어

와인향기가 온 대지에 퍼지고

가로수에 낙엽이 지고 까미노가 나를 부르는 날

그 끝없는 길을 다시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