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나들길 5코스 고비고개길 - 파란 하늘 신비한 구름

carmina 2016. 8. 27. 22:56



2016. 8. 27


올해 여름처럼 뜨거운 해가 있었을까?

늘 해가 가면 지난 해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지 잊는 법인데

올해 여름은 내가 1994년 부천에 이사오던 해 몹시도 뜨거웠던

기억이 생각날 정도 뜨거웠ㄱ에 두고 두고 기억날 것 같다.

다행히 그 때는 새로 산 아파트의 맨 꼭대기층이라

다른 집들보다 바람이 잘 불어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퇴직 후 종일 집에서 지내는 신세라

더 뜨거운 여름을 지내는 것 같다.


그러다가 그제 밤에 비가 쏟이지며 대지를 식히고

열대야가 줄어 들더니 어제 새벽부터 선선한 바람이 불고

어제 낮에는 창문을 열면 육중한 창문이 바람에 저절로 닫힐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토요일 아침.

하늘은 정말 몇 달 전 다녀왔던 스페인 산티아고의 하늘같이 파란 색깔로 가득찼다.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강화도에 도착하니 가을을 실감할만한 날씨였다.

강화도 들어가는 왼편 넓은 벌판에 벼들이 약간 누런 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곧 바람 몇 번 불면 뜨거운 햇빛을 머금었던 벼들이

금세 누런 황금색으로 변할 것 같다.


원래 5코스 출발점은 강화읍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아스팔트 길을 걷기 싫어 늘 국화리 입구까지 대중교통편으로 이동해 걷는다.

그러나 그 버스편도 사라져 오늘은 길벗들의 자가용으로 이동했다.


청련사쪽으로 가는 길 왼편의 하천에는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초가

하천을 덮어 버렸다. 길가의 잣나무에 튼실해 보이는 잣송이들이 열려 있고

작은 독립가옥 가기 전에 새로 지은 창이 넓은 집이

개인 주택인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펜션 이름이 붙어 있다.


어제 심하게 불던 바람에 상수리 나무의 열매들이 떨어져 지천에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열매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숲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잡풀이 무성하다.

아마 최근에 단체로 이 길을 걸은 팀이 없는 것 같다.

숲 사이로 보이는 구름한 점 없는 텅빈 하늘이  그야말로 진부한 표현이지만 코발트 빛이다.


학생야영장 옆길로 내려가는 길에 누군가 작은 쉼터 공간을 조성해 나무 의자와

통나무로 만든 간이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아마 나들길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걸 걷는 우리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생겼다.


문득 앞에 흙벽에 작은 딱새같이 생긴 새가 벽틈에서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벽틈에 숨어 있는 벌레를 사냥하는 것일 것이다.


숲길도 평소 자주 걸어주어야 흙이 단단해 지고 비가 와도 무너지지 않을텐데

아마 올 여름 너무 더워 사람들이 길을 걷지 않으니 숲속 오솔길들이 부드러워져서

언덕에 있는 좁은 길은 심한 비 한번 쏟아지면 길이 사라질 것 같다.

이제 날이 선선해 지면 사람들 지나다니고 흙이 다져지면 괜찮아지겠지.


고려산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나누어 먹고 내려가는 작은 협곡은

알고 지나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잡초가 무성하다.

이 길을 무던히도 많이 다녔지만 오늘은 오솔길 옆에 눈을 끄는 나무하나가 보였다.

두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있는데 한 쪽나무의 뿌리가 다른 쪽 나무의 밑둥을 감아 돌아갔다.

일종의 연리지일까?  한그루는 굵고 다른 나무는 조금 가는 것이 마치 아내가 바람난 남편을

도망가지 못하게 치마끈으로 붙들고 있는 형상이다.


오솔길에 아직 익지 않은 것같은 밤송이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있어 지나치다가

누군가 밤송이를 열어 보더니 토실 토실한 밤송이들이 있다고 좋아라 한다.

아마 지난 밤에 떨어졌고 아직 벌레들이 손을 댈 틈이 없던 것 같다.

앞서가던 이가 얼핏 뱀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며 알려준다.

이제껏 강화도에서 한 번도 살아있는 뱀을 본 적이 없는데 뱀이 있긴 있나 보다.

한참을 더 가다가 길 바닥에 뱀이 말라 죽어 껍질만 남아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어느 집 돌담 사이에는 커다란 호박이 주렁 주렁 열려 있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마치 중동지방에서 파는 럭비공 형태의 수박같다.


문득 하늘을 보니 놀라운 구름의 모습들이 보였다.

누구는 갈빗대라 하고 누구는 빨래판의 모습이라 했다.

하늘을 향해 뻗어가며 익어가는 수수대 위로 그리고 노란 해바라기의 하늘위로

조물주의 예술작품이 보였다.

오늘은 조물주께서도 예술의 영감이 떠 오른 듯 먼 곳의 파란 하늘에 

도다리 생선회를 썰어 놓은 듯한 또 다른 멋진 구름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모두 하늘을 보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당나귀 한 마리가 풀을 뜯다가 우리 일행을 보고 호기심에 바라보고 있지만

길가 외양간의 소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심하게 관심을 갖는 것은 주택 앞에 매어 놓은 커다란 개들 뿐이다.


오상리 고인돌에서 길 벗 한 분이 따스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고인돌 위에 누워 버렸다.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 누릴 수 있을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인지 숲속에서 영지버섯들이 아직 남아 있고

오솔길 한 가운데는 이제 막 자라는 영지버섯이 면봉처럼 자라고 있다.


내년초쯤 준공예정인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다리 공사로

덕산으로 가는 길이 온통 공사판이다.

다리가 덕산 넘어 황청리에서 시작되니 강화읍으로 통하는 길을

새로 건설하느라 온통 흙이 파헤쳐 있고 덕산 휴양림 시설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다. 차 하나 겨우 지나갈만한 길은

이제 4차선 도로가 가능할 정도로 넓어지고 있고,

길벗들이 늘 쉬던 정자도 사라져 버렸다.

그 곳에서 내가 나들길 길벗들을 위해 제일 처음 노래했던 곳인데

추억의 장소가 사라져 버렸다.


족제비 한 마리 휘익 지나가다가 잠시 멈추어 나를 보더니

숲으로 들어간 덕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에서 하늘의 구름이 너무 아름답다고

모두 길바닥에 누워 내게 노래를 하나 신청했다.

가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노래는 아는데 가사가 익지 않아 스마트폰을 보며

누워 있는 길벗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휴양림에서 지난 해 인천아시안게임의 산악 자전거 코스였던 길은

이제 완전히 잡풀로 덮여 루트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아마 여기도 나들길을 모르는 사람이면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잡초가 우거졌다.


코스가 끝나는 굿당의 넓은 마당에서 조금 더 지나면 구석의 벤치까지 잡초가

덮힐 정도로 그린필드로 변해 버렸다.

이제 곧 이러한 잡초들이 수그러 들것이고, 나들길에는 길벗들의 발길이

잦아 질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다시 몇 개월 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그 길은

밤과 감과 으름과 대추들이 가득찰 것이다.


참 아름답고 힘찬 가을의 전령을 오늘 만나 보았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