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9코스 교동도 화개산 둘레길

carmina 2016. 9. 10. 23:26



2016. 9. 10


이제 더위가 조금 누그러졌으니 걷기 좋은 계절이 다가와

시시때때로 걸을만한 곳이 없나 하고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강화도 나들길 토요 정기도보.

걷겠다고 신청한 사람들을 보니 오랜 세월 같이 걸었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비친다. 그래 나도 도장 꽝.


이른 아침이라 월선포는 조용하다.

일찍부터 나와서 좌판을 펼치신 할머니 앞에 가을 먹거리들이

주르륵 펼쳐져 있다. 땅콩, 고추, 빨간여주, 오이같이 생긴 큰 콩

고구마와 옥수수, 곡식들

그리고 한켠에는 이 곳에서 캠핑을 한 듯 누군가 수돗가 옆에서 아침을

차려 먹고 있다. 하긴 조용하니 여름밤을 지내도 좋을법 한데

이 곳은 밤 12시 이후는 민간이 출입이 통제되니 아침에 도착한 사람들 같다. 


오늘 이전까지 걷던 화개산 등반코스를 대신하여 화개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아직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


벌판에 벼가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고 이미 낟알의 무게를 못 견텨

단체로 쓰러져 시위를 벌이는 논들도 있다.


조용한 마을들. 늘 내가 사고파서 눈독 들이는 깨끗한 시골집.

그리고 그 옆에 낡은 시골집에는 이전의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 한 분이

밖에 낡은 의자를 가져다 놓고 벌판을 바라보고 계셨다.

먼 훗날의 내 모습도 저렇겠지?


햇빛보다 그늘이 더 많은 편안한 숲길로 올라가다 문득 이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군인들의 각개전투용 타이어를 심어 놓은 것이 있였다.

군시절 긴 총을 들고 이런 언덕을 기어서 뛰어서 올라갈 때 하늘이 노랬다.

하마 벌써 40년이나 지났나? 세월 참 빠르다.


작은 쉼터에서 간식을 나누며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비교적 젊은 단원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멋지게 불렀고

나는 이 가을에 맞는 동요 '노을'을 불렀다.


숲을 한참을 가로질러 도착한 교동향교에는 이제까지 한번도 보지못한

행사가 열렸다. 그간 닫아 덜었던 문을 연 커다란 대청마루에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들이 앉아 가훈을 붓으로 써주고 있으니 부탁하라 한다.

그 안에 나무베게용 침목들이 전혀 사용하지 않은 듯 아니면

사용한지 너무 오래 된 듯 나무에 머리기름이 하나도 배어있지 않고

차곡 차곡 쌓여 있었다.


향교를 나와 화개사로 올라가는 길의 아스팔트에는 지난 봄에 떨어진 오디들이

회색빛의 아스팔트을 물들여 검은 색깔의 도로로 만들었다. 오메! 오디물 들었네.


가파른 화개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화개사 끝에서 숲길로 접어 들었다.

첫 눈에 이 숲이 사람이 별로 지나다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길이 좋아. 나무들은 우거지고 오래 전에 쓰러진 나무들은 그 자리에서 썩어가며

문드러져 부스러지고 있다.


지난 6월 화개산으로 올라갔다 내려 올 때 너무 인위적인 계단들이 새로 생겨

보기에 불편했는데 오늘 처음 걷는 이 길은 내 마음에 꼭 드는 길이다.

힘들이지 않고 끝없는 숲길을 걸어 화개산을 돌고 있다.


작은 오솔길이 5부 능선에 길게 이어지고, 푸르른 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내 몸이 푸르게 물들어 간다. 어느 시인의 시상을 끌어 낼 만한 오붓한 숲길이 있고

사람키의 20배 정도나 될법한 높은 나무들이 아래를 굽어보고

원시림같은 나무들이 이 곳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듯 밤나무에서 밤송이들이 그냥 벌어진 채 열려 있어

큰 나무로 한 번 두들기면 우수수 떨어질 것 같다.


그 끝에 대륭마을이 있었다.

이제 대륭마을은 이전의 대륭마을이 아니다.

그 골목을 지나며 무척이나 신기햇던 과거의 모습들이 좋았는데

이제 하나 하나 도시의 어느 가게들모습같이 평범하게 변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떠날 것이고 촌스런 가게이름들은 뜻도 알수 없는 영어표기로

변할 것이며, 농기구와 시골용품을 팔던 가게들은 장식품과 싸구려 중국수입품을

파는 곳으로 변해 도심의 여느 골목과 다름 없어질 것이다.

지난 봄부터 이 곳 골목에는 각 집마다 제비들이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웠는데 

추녀가 있던 집들은 내부 인테리어 개조를 하느라 지붕을 개량하여

제비집이 있는 집은 이제 한 두채 밖에 없다.


평소 잘가던 수진이식당에 들어가니 단체로 관광버스타고 와서 마을을 보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 식사는 참 맛있었다.  


대륭포구 옆의 마을에는 밭에서 땅콩수확을 하고 있었고

대추나무가 올 여름에 햇빛을 많이 받아 알차게 자라서인지

가지들이 땅이 닿을 정도로 축 늘어질 정도다.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벌판길에는 양옆으로 열병준인 수수대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오늘은 다른 길로 걸어볼까 하며 옆의 바닷길로 접어 들었다.

커다란 바위를 넘고 갯벌로 가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그 곳에서

어느 부부가 낚싯대를 드리웠다.

부인은 그저 멍하니 낚시질 하는 남편만 바라볼 뿐이다.

사람이 다니기에는 조금 불편한 길이다.

어느 집 옆 나무에 수목장을 해 놓은 듯 나무 옆에 작은 제물이 놓여 있었다.


남산포 선착장에서 칼국수를 만들어 파는 예쁜 가게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문을 닫은 반면 TV에서 방영하는 맛집에 몇 번 나왔다는 집은 번창하여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 문득 칼국수집을 빌려 주말 별장으로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남산포 옆 저수지에는 올여름의 긴긴 폭염과 갈수로 녹조가 생겨 푸른 물감을 풀어 놓았다.

교동읍성의 연산군 유배지 우물들도 관리를 안해 볼성사나왔는데 이젠 잘 정비해 놓았다.

교동이 변하고 있다.


푹신한 풀들이 덮힌 해안가 긴 둑길을 걸으니 멀리 바닷가에 망둥어 낚시를 하는 듯

사람들이 물 속에 몸을 반쯤 들어간 채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다.

날씨가 더워 둑길 정자에서 쉬고자 했으나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 곳을 모도 차지하여

술판이 벌어졌다. 주변에는 소주병과 쓰레기가 난무하고 우리가 잠시 앉아 쉬는 중에도

술에 취한 사람이 담배를 피느라 역한 냄새에 얼른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멀리 둑 위해 하얀 해오라기 두마리가 앉아 있다가 인기척에 한 마리는 산으로

한마리는 바다로 날아간 뒤 그 길에 새까만 염소들 열 댓마리가 산책을 나왔다가

우리 때문에 길을 비켜 주었다.


둑길 끝에서 다시 월선포 선착장으로 바로 가는 나무데크가 새로 생겼다.

편하긴 한데 무언가 찜찜하게 생각되는 것은 왜 그럴까?


교동이 예전의 교동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