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 - 바다 바다 바다

carmina 2016. 10. 8. 23:35

 

 

2016. 9. 30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제주도 올레길을 우중에 걷는라

발에 물집이 잡혀 불편한데 나들길 토요도보 리딩 요청이 들어왔다.

금요일 공지를 올리니 토요도보가 없는 줄 알고 길벗들이

다른 약속을 잡았는지 나까지 포함해서 5명이 같이 걸었다.

 

초지진에서 출발.

아침시간인데도 초지진은 이미 큰 관광버스가 한대가 정차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 옆에 간이 테이블을 펴 놓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 스님을 포함한 불교신자인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많은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어 젊은이들이 작은 매점앞에서

컵라면을 즐기고 있다. 커피가 한 잔이 먹고 싶어 매점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찾으니 물을 끓여 종이컵에 1회용 커피를 부어 타 준다.

가격을 물어 보니 1000원. 화들짝 놀라니 원래 1000원인데 내 손에 든

500원짜리 동전을 보더니 그것만 달라한다. 더 할 말이 없다.

 

새로 만들어진 나들길 지도를 보니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의

이유는 모르지만 출발 점이 이 곳이 아닌 황산도 선착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거리가 긴지 8코스를 A, B 두코스로 나누었다.

선착장까지 멀지 않은 곳이니 그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 같은 매니아들이 굳이 출발점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정원이 잘 가꾸어진 집의 뒷길로 해서 초지대교 밑을 돌아

조금은 황량하지만 큰 상가건물 뒤로 길이 나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이 곳에 처음 길을 걸을 때 헤맸던 곳이다.

바닷물이 멀리까지 쓸려 나가 있는 갯벌에는 수없이 많은 게구멍에서

부지런히 칠게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칠게들은 오랜만에 본다.

아마 갯벌에 칠게가 없다면 모든 바닷가는 죽어 버렸을 것이다.

게들은 부지런히 구멍을 파고 미생물의 호흡을 도와 주고

그렇게 자란 미생물은 갯벌을 정화시키고 아울러 칠게는 먹이사슬로

낙지같은 차 상위 생물의 좋은 먹이가 된다.

강화의 다른 바다보다 이쪽 바다에 바닷물이 바로 유입되니

유난히 갯벌에 칠게가 많이 보인다.

 

흐린 날에 멀리 보이는 초지대교의 끝없는 차량의 행렬이 보인다.

아마 월요일까지 연휴라 이 곳 강화도로가 몸살을 앓을 것 같다.

황산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갯벌 위에 긴 긴 나무덱크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갯벌을 바로 위에서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그 주위에 사람들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있어 주변이

지난 밤의 여흥으로 지저분해 보이고 어떤 이는 낚시로 제대로

재미를 봤는지 그물 안에 큰 고기 몇 마리가 들어 있기도 했다.

 

커다란 배 모양으로 만든 황산도 어시장.

각 상점마다 수족관에 싱싱한 생선들과 어패류들이 그득하다.

침이 꼴깍 거린다. 내가 바다에 살면 이런 것 실컷 먹을 수 있을까?

특히 김장용 새우 수확철이라  작은 젓갈용 새우가 많이 보여

어느 상점앞에서 새우를 다듬고 있어 양해를 받아 하나 주워먹어 보니

짭짜름한 서해의 바다내음이 입안에 가득하게 찬다. 좋다.

 

황산도 어시장에는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할 수 있도록

스텐레스로 농게를 크게 만들어 놓았고, 그 옆에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나무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주변 풍경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나무테크 길이나

혹은 산길로 걸을 수 있었는데 이젠 산길 쪽은 건물을 짓기 위해

완전히 산을 깎고 있고 바닷가에 접한 산의 바위도 통째로

뭉개 버렸다. 이런 자연의 훼손이 어디까지 갈려나.

 

건물의 전망을 위해 산을 허물어 버리고 있다는 현실에

우리는 모두 안타까워 했다. 또한 누군가 나무데크 내의 쉽터에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몇 개 걸어 놓아 보는 이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나쁜 시민의식은 어떻게 해야 변화될려나..

우리가 걷는 나무데크길까지 올라 온 갯강구들이 앞장 서서

도망가기에 바쁘다. 얘들아 사람들을 조심하거라..

 

나무데크를 넘어서니 오래 전 부터 폐허가 된 커다란 상가가 있다.

지난 번에 왔을 때만 해도 문을 연 상점이 한 두개는 있었는데

이젠 그 마저 완전히 철시해 버리고 건물은 유령이 사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근처에 커다란 낚시터가 생겼으니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이 곳에 투자한 사람들은 애써 번 돈만 날린 셈이다.

 

반면 낚시터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고기가 낚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낚시터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까지 차를 주차해 놓고 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어느 낚싯꾼의 줄이 팽팽해 지는 것 같아 얼른 옆으로 가 보았으나

올려 온 것은 빈 낚시바늘 뿐이었다.

 

한참을 걸어왔기에 쉴려고 찾아간 정자에는 이미 두 개나 있는 정자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먹자판을 벌렸다. 할 수 없이 길 건너 벤치에 가서야

쉴 수 있었다. 그 곳에도 어떤 이가 강아지 3마리를 몰고 오니

강아지들은 여기 저기 자기 흔적을 남기느라고 다리를 올리기에 그 곳에서도

우린 슬며시 자리를 떴다.

 

길은 차도 밑으로 나있는 바위길을 걸어가야 한다.

커다란 바위를 깔아 만든 바윗길은 발 딛는 것을 잘 봐야 하기에

길도 멀지만 힘들다. 이 곳에서도 절로 날라와 자란 잡풀과

작은 나무들로 서서히 뒤덮여 지고 있다.

 

10월이니 날씨가 조금 차가울까봐 가을 등산복 바지를 입었는데

날이 더워 불편하다. 올해는 더위가 참 오래 간다.

 

긴 바위길을 지나 동검도로 향하는 길에 길가에 승마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늘 앞에 작은 우리를 하나 세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오늘 나와 있는 붉은 색깔이 돋는 듯한 진한 갈색의 말의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하늘 높아지는 가을이 오니 말이 살찌는 것 같다.

 

동검도로 가는 길의 오른쪽으로 가는 좁은 둑길 옆에 펜션들 주위에

에쁜 꽃들이 가득 피었다. 그 풍경을 담고 싶어 스마트폰을 들고 포즈를 잡다가 그만

한 손에 든 손수건때문에 폰을 떨어트렸더니...아차..모시리로 떨어져 액정이 나가 버렸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무언가 손에서 떨어지면 얼른 반사적으로 발을 피할지 혹은 발을 내밀어

충격을 완화시키곤 했는데 그러한 반사신경이 나이가 드니 둔해졌나 보다.

 

꽃길을 걸었다. 그 주위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벤치가 많이 만들어 졌지만

과유불급이랄까? 한번도 누군가 앉아보지 않았을 것 같은 벤치가 자주 보였다.

 

그 끝에 선두리어판장에는 차가 무척 많이 몰려 있다.

덩달아 늘 그 곳에서 품바를 하는 엿장수도 신이 났다.

차가 많아 도로까지 차가 주차를 할 지경이고 장사가 잘되는 어느 상점은

별로도 옆에 건물을 만들고 카페도 만들어 성업중이다.

 

그 어수선한 곳을 지나 우리는 한적한 오솔길로 접어 들었다.

그 길은 환상적이었다.

마치 나를 위해 봄부터 자란 어린 나무들이 양 옆에 도열해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갯벌의 수많은 게구멍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칠게들이

집을 짓고 있다. 파도 한 번이면 다 무너질 집들이지만 그들은 짓고 또 짓는다.

 

그 길에서 우린 영화하나 주제로 너무 많이 웃었다.

생각만 해도 슬금슬금 웃움꽃 피게 만드는 영화하나가 종일 웃음꽃을

가을 오솔길에 피어났다.

 

긴 긴 둑길을 지나 다다른 분오리 어판장에서 맛있는 칼국수와

회무침으로 하루 일정을 끝내면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걷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쓴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