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16코스 서해 황금들녘길

carmina 2016. 10. 8. 23:44

 

 

2016. 10. 7

 

죽마지우 친구가 은퇴하여 집에서 쉬고 있으면서

내가 늘 걸으러 다니는 것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시간을 내어 둘이만 어디 걸으러 가자기에

비교적 걷기 쉬운 나들길 16코스 황금들녘을 선택해

금요일 아침에 강화 터미널에서 만났다.

 

16코스는 해마다 가을이면 멋진 황금벌판을 보기 위해 꼭 가는 곳이다.

올해는 조금 늦었는가? 버스를 타고 가며 강화의 벌판을 보니

벌써 추수를 한 곳들이 있다.

 

터미널에서 제시간에 창후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만

버스가 중간에 엔진고장으로 멈추어 버렸다. 요즘 강화내에서 운행하는

버스는 확실치는 않지만 중국제 버스를 운용하는 것 같다.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기사는 내려서 손님들에게 설명도 없이

밖에 나와 있기에 물어보니 다음 차 기다리는 것외에 달리 방법이 없단다.

그 다음차가 11시 넘어서 터미널에서 출발할텐데 대책이 없다고? 

친구와 나는 마침 창후리 방향으로 가는 자가용을 세워 양해를 구하고

선착장까지 무사히 찾아갔다.

그 후 버스는 어찌되었을까?

그 안에 타고 있던 늙으수레한 마을 사람들은?  알아서들 하시겠지.

 

인적없는 나들길 16코스 입구.

길가의 민가에 주렁 주렁 매달려 있어야 할 감이 수확을 했는지 겨우 한 두개만 남아 있다.

둑길로 들어서자마자 친구가 감탄한다. 그래. 이런 길을 걷고 싶었어.

요즘 지인을 따라 등산을 자주 했는데 너무 힘들었단다.

나들길 여권에 출발 스탬프를 찍기 위해 길가에 세워 둔 박스를 열었더니

무언가 움직임이 있다. 그안에 무려 작은 청개구리 5마리와 누런 개구리 한 마리가

자기들 보금자리를 침입했다며 화를 내고 이리 저리 슬금 슬금 움직이고 있다. 

얼른 우리 볼일만 보고 문을 닫아 주었다.

그 안에 있은 한 날짐승들에게 먹힐 가능성을 없을것이다.

 

물이 고이는 곳에는 멍석을 깔아 두어 걷기는 편했다.

이제 이런 멍석은 전국의 둘레길에 거의 보편적으로 깔려 있다.

벌판이 보이는 곳에 올라서자마자 조금 실망했다.

벌써 많은 논이 추수를 한 뒤라 제대로 된 황금벌판을 볼 기회를 잃었다.

 

군청에서 길은 잘 정비해 두었다.

평소 무성하게 자라 있어야 할 풀들이 모두 사라지고 걷는 길은

부드러운 흙과 키가 작은 잡풀들 뿐이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바닷물도 작은 파도가 인다.

 

억새의 흔들림과 같이 작은 파도의 일렁임같이

둘이 걸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이야기들이 벌판 둑길에서 넘실거린다.

그 땐 그랬지.

그 땐 왜 그랬지?

맞아...맞아..그랬어..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내게 아낌없이 베풀었다. 늘 영화를 보는데 나를 동행했고

어디든 가면 늘 먼저 선심을 썼다.

친구집 부모님은 나를 아들로 생각했고

나는 많은 날을 친구와 놀러다니고 운동을 하고 그 집에서 같이 보냈다.

그런 친구의 결혼식에 나는 존경의 표시로 새 양복을 맞추어 입고 참석했다.

청년시절에 둘이 강화도 마니산을 해마다 다녔다.

당시 마니산 중턱에 오래된 산장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묵으며

하늘을 별을 보고 노래를 했고

마니산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 둘이 발가벗고 알탕도 즐겼었다.

실로 40년만에 둘이 강화도를 찾은 셈이다.

 

벌판에 곧 황량해 질 것이다.

어느 벌판에는 벼를 베고 이른 작물을 심었는지 누런 황금을 걷어내고 파란 초원을 만들었다.

오늘도 여지없이 바닷가에는 망둥어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빈 돌축대도 많았다.

그 들이 머물다 간 둑 위에는 버려진 양심들이 늘 쓰레기같이 풀속에 숨어 있었다.

망월돈대에서 잠시 쉬고 다시 둑을 따라 걷고 있는데

길가에 김이 모락 모락 나는 황금덩어리와 그 주위에 흰 티슈가 나풀거린다.

분명 범인은 근처에 있는 차량 두 대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다니는 곳인줄 알면서도 실례해 놓은 것이 무척 꽤심했다.

 

문득 이제 막 추수를 하고있는 논을 보았다.

커다란 콤바인이 누런 벌판을 마치 군대 입대하는 장정의 머리를 밀듯이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기다리고 있는 트랙터에 벼이삭만 커다란 파이프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콤바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볏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지난 봄에 이앙기로 간단하게 심었던 벼들이 가을이 되니 콤바인으로

간단하게 수확해 버린다. 물론 그 사이 농부들의 많은 손길이 있었겠지만

그렇게 간단히 수확하는 장면을 처음 보는 나는 무척 신기했다.

그러나 지난 봄에 스페인의 넓은 평원에서 자라는 끝없는 밀밭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농사는 아직도 영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시간 반 정도 걸어 한적한 계룡돈대에 도착하고 둑길 걷기를 끝내고

마을길로 내려왔다. 용두레 마을 앞에 많은 어린이들이 용두레 체험을 하고 있고

조금 지나니 또 다른 많은 아이들이 손에 자신들이 직접 캔 고구마를 박스에 담아들고

재재거리며 지나가고 있다. 그들이 고구마를 캔 자리에는 아직도 담지못한 고구마들이

흩어져 있지만 일인당 박스하나로 정해놓았는지 더 이상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수녀원에서 잠시 쉬고 숲길로 접어 드니 온통 밤껍질 투성이다.

가끔 작은 밤톨이 뒹굴고 있지만 굳이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 숲길을 오늘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는지

거미줄이 앞을 가로막아 질겁을 했다.

 

나무들을 타고 올랐던 담쟁이 덩굴의 잎들이 나무보다 먼저 가을을 맞았는지

발갛게 타오르고 있다. 이게 곧 온 천지가 발갛게 물들 것이다.

 

긴 숲길을 지나 도착한 강화청소년 수련원에는 오랜만에 인기척이 있다.

그리고 어디선가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어 가까이 가보니

직장 체력훈련으로 나왔는지 서바이벌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추운 겨울이 오기전에 가을이 마지막 남을 계절의 춤을 추고 있다.

 

외포리선착장에는 새우젓축제가 한창이라 무척 시끄럽다.

그 틈에서 둘이 맛있는 전어회무침에 밥을 비며 먹고

꼴뚜기젓과 낙지젓을 사들고 집에 오면서 

오늘 하루 40년전 그 때를 돌아가 서로의 잊혀져 가는 추억들

생각하며 걸었던 시간들이 참 소중함을 느꼈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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