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첫눈 오는 날의 강화 산성길

carmina 2016. 11. 27. 20:11



2016. 11. 25


어제 밤 뉴스에 토요일 눈이나 비가 온다하기에

배낭 옆에 우산을 챙겨 넣었다.


요즘은 강화 나들길에도 걷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 때는 토요도보에는 몇 십명이 모여서 식당을 통째로 빌려야 하는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국내에서 트레킹 코스가 많다보니

나들길 매니아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찾는 이가 별로 없다.

다행하게도 강화에 사는 주민들이 나들길을 상당히 좋아하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 강화가 좋아 거주지를 옮겨온  사람들은

유난히 나들길을 좋아한다.





오늘은 나들길 15코스인 고려성곽길을 역으로 걷는다.

최근에 강화 나들길 코스를 재정비하고 있어

이 곳 사람들이 아니면 길을 찾기가 조금 어렵지만

가이드가 강화본토배기 사람이라 골목 골목까지 모두 알고 있어

그저 따라가는 우리들은 편하다.


오늘 가이드는 제대로 된 성곽길을 안내한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쌓았지만

몽골과의 화친조약으로 쌓았던 백성들이 다시 허물어야 했던

슬픈 역사가 있다.


지금은 그 허물어진 성곽길을 문화재로 정해 다시 쌓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흙속에 돌들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

고려궁 성곽길은 강화읍을 중심으로 동문, 서문, 남문 그리고 북문이 있다.

각각의 문에는 망한루, 첨화루, 안파루 및 진송루라고 명명했다.

오늘은 강화 입구 쪽의 성곽길로 발길을 옮긴다.


풍물시장 건너편의 넓은 공터에 시골 할머니들이 김장 배추를 가지런히

쌓아 놓고 추운지 두터운 옷에 몸을 옴추리고 우리들을 빤히 바라보고 계셨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마을 골목길로 조금 언덕을 올라가니

무너진 축대에 돌들이 보인다. 그 축대을 오랜 세월 그대로 두었는지

나무들이 뿌리를 박고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을텐데 최근에

그 나무들을 모두 잘라냈다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성곽길 보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려는 것 같다.


돌은 무너져 있거나 흙속에 파묻혀 있지만 덮인 흙들은 뚜렷하게

이 곳이 성곽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 축대 옆에 두툼한 낙엽들이 말라 길은

마치 솜이불을 밟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꼭대기에 나들길 코스 재 정리를 보여주는 나들길 1코스의 팻말이 보였다.

나들길 1코스를 이쪽으로 변경할 것이다.



이 곳에 현충탑이 있다.  강화도 출신 군인들의 넋을 기념하기 위해

계급별 특수부대별로 새긴 돌에 빼곡한 이름이 가득 정렬되어 있다.

이 곳 현충탑은 차로 올라 올 수 있도록 도로와 주차공간이 있다.







잘 정리된 언덕길을 내려와 동문에 오니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난다.

낙엽태우는 냄새. 어디서 나는 것일까?

골목길을 돌아가니 아주머니 한 분이 집게를 들고 서서 연기가 하늘로

올라 가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다.

이런 곳에서 낙엽을 태우면 늘 물 한 양동이를 준비하는 것이 좋은데

그건 하수의 준비고 고수는 세월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아주머니 세월의 열배나 더 산 느티나무도 이제 허리에 세멘트로 기브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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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 올라가는 길에 낮은 담으로 보이는 넓은 마당을 가진 집이 있다.

늘 인적없던 이 곳에 할아버지 한 분이 구부정한 허리로 방으로 들어가시기에

크게 소리쳐 인사를 드렸지만 가는 귀가 들었는데 돌아보시지 않았다.

이 집은 늘 보아도 마당이 깨끗해 모두 감탄하는 곳이다.







이제부터 북장대로 올라가야 한다.

강화나들길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부드러운 흙길이다.

오랜세월 쌓아 둔 나무 장작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

북장대를 오르고 내리는 길이 모두 이런 잔디가 덮인 흙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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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배낭을 정리하고 계시기에 물어 보니

전주에서 새벽차로 나들길로 혼자 오셨다한다.

전국의 길을 모두 다니시는 그 분의 정말 혈색이 좋았다.

나들길 코스에 대해 미리 확인하시지 않은 듯

코스 구분없이 그냥 다니시기에 우리 일행 중에 한 분이

나들길 지도를 하나 드렸다.

나이들어도 이렇게 걸을 수만 있다면 평생을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분은 나의 스승이다. 


오늘은 안개가 많아 북한 땅이 보이지 않았다.

늘 이 곳에 오면 가슴이 탁 트인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이 곳에 우렁차게 불러야 제 맛이 난다.


긴 북장대 길을 걸으며 이어지는 성곽의 축대가 장관이다.

이 곳은 오래 전 부터 보수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기에

성곽이 튼튼하게 지어져 있다. 사람들 많이 다니는 길은

성곽의 축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흙색깔의 세멘트로 덮어 놓았다.


북장대의 '진송루'현판은 지금 고초를 겪고 있는 박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필체이다. 다른 현판은 모두 중국식으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읽어야 하는데 박대통령의 휘호는

한글처럼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써 있다.

아마 중국이 아닌 우리 것을 고수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곁 계단에 고스란히 말라가는 낙엽들이 바람에 밀려 성곽을 보호하고 있다.


북장대 옆의 공중화장실은 겨울 동파를 피해 문을 잠가버려 

이미 겨울모드로 바꾸어 버렸다.










이제 강화여고 뒷산 능선길을 역으로 걷는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이 길을 역으로 걸어 본 적이 없는데

역으로 걸으면 전혀 다른 풍경을 보는 것 같다.

따라서 강화 나들길은 봄.여름.가을.겨울이 다르고

역방향으로 걷는 것이 다르다. 그러면 몇 번을 걸어야 하나.

전체 20개 코스에 4배를 하고 다시 두배를 하면 160번인가?



1코스와 15코스와 겹치는 이 길은 작은 오르막길이 있어 참 좋다.

울창한 소나무 사이에 사람이 겨우 한 명 지나갈 정도의 길이 있어 좋다.

긴 성곽길을 따라 가는 끝에는 서문인 첨화루가 있다.

서문 옆 성곽의 축대를 가만히 살펴보니 이제껏 그냥 지나쳤던

대단히 큰 돌이 몇 개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렇게 큰 돌을 옮기기 위해 얼마나 힘을 썼을까?

강화의 성곽들은 모두 세멘트없이 돌만을 가지고 축대를 쌓았기에

그 시대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돌은 다 어디서 구했으면 그 높은 곳까지 돌들을 나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역이 있었을까? 그걸 보면 당시에 강화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서문 앞에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데 무언가 손등에 떨어진다.

눈이다. 첫 눈이다.

올해의 첫눈을 길을 걸으며 맞는다는 기쁨에 모두 좋아했다.


이제부터 남장대로 올라가기 위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힘든 길로

올라가기로 했다. 강화읍에서 보면 전방에 높은 산에 정자가 하나 보인다.

그 곳이 남장대다. 보통 그 남장대로 가기 위해서는 남산길을 비스듬하게 올라가니

그다지 힘들지 않은데 오늘은 그야말로 직선으로 이어진 가파른 릿지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나무계단길을 올라가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가끔 뒤 돌아서서 바라보는 공간에 흰 눈으로 한 폭의 수묵화같다.

각 계단의 사이도 간격이 높아 발을 성큼 성큼 디뎌야 한다.

숨을 몰아 쉬며 끝까지 올라 한 참을 쉬고 있는데 아까 북장대 올라갈 때

만났던 할아버지께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오고 계셨다.

그 분의 하얀 머리칼에 하얀 눈이 내려 앉았다. 

그 분이 올라오신 길은 정식 나들길 코스가 아닌데 길을 모르니

무조건 올라오신 것 같다. 마침 배낭에 커피가 남아 있어 따라 드렸더니

무척 고마와 하셨다.


눈발이 한참 굵어졌다.

노래를 불렀다.


'눈내리는 날이면 떠 오르는 눈동자

눈내리는 겨울이 오면 하얀 눈꽃속에 떠오르는 맑은 그대 눈동자

은빛 바다 처럼 조용한 아름다운 눈동자

내 마음 깊이 간직하리라.'













북장대에서 남문으로 내려가는 긴 길을 걸었다.

전나무가 빼곡한 숲에서는 사잇길 외에는 눈이 모두

전나무의 울창한 숲에 막혀 눈의 흔적이 없을 정도다.


내려 오는 동안에도 눈이 계속 오니 이젠 미끄러울까봐 조심해야 했다.

다음부터는 아이젠을 챙겨 가지고 다녀야겠다.


청학약수터에는 강화도령이 애인과 함께 눈을 맞으며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고

그 앞에 공터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고 그 옆 약수터에서

졸졸 흐르는 약수 한 잔의 시원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길에 눈이 덮여 있긴 하지만 아직 땅이 얼지 않아

눈을 밟아도 미끄럽지 않은 긴 길을 내려와 남문에 도착하니 배가 고프다.










양푼 그릇안에 큼지막한 돼지고기가 가득 들어간 김치찌게를 먹으며

첫눈길의 행복함과 하얀 눈길의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는 기분에

모두 즐거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침에 공터에서 보았던 배추파는 아주머니가 드디어 임자를 만난 듯

옆에 어떤 이가 차에 열심히 배추를 싣고 있는 것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